이 문서는 수치심, 쪽팔림, 창피함, 민망함 등으로도 모두 들어올 수 있다. |
1 인간의 감정 중 한 느낌
사람에 따라 죽음의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지만 그렇기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
물론 서브컬쳐에서는 반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몫인 것.
평생 수치심을 안고갈 김상사....
큰 망신을 당했거나 열등감을 느꼈거나 잘못을 저질렀거나 주어진 일을 못해 양심에 가책을 느끼던가 떳떳치 못한 것 또는 숫기가 부족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못하거나 어색한 것. 당당하지 못하다는 공통 분모는 있지만 보통 전자는 '수치스럽다'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후자는 '수줍다'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속어로는 쪽팔림이라고 하는데, 어느 쪽으로 사용되든 보다 노골적이고 강렬한 어감을 준다.
또한 수치심은 다른 사람의 시선의 유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즉,사람이 고양이 앞에서 창피한 행동을 하거나, 사람이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곳에서 이상한 춤을 추는 것은 수치심을 일으키지 않지만, 모두가 바라보는 단상 앞에서 바보같은 말을 내뱉는 것은 수치심을 강하게 일으키는 것.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부되지만 너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그나마 후자의 경우 개인의 문제로 끝나고 말 일이지만 전자의 경우 이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한다면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까지 있다. 참고로 전자는 양심이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술먹고 흥분하고 사고를 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억제해버리기 때문에, 결국 술을 먹으면 개가 된다고 한다. 참고로 노출에 대한 수치심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크다고 한다.
수치스러운 상황이 강제되거나, 이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자세한 건 수치플레이 참고.
남이 한 이상한 언행으로 인해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유행어로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가 있다.
1.1 수치심과 죄악감의 관계성
수치심, 죄악감 모두 "자신의 과오"와 관련된 감정이며,동시에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만들고 지키는 규범의 한 장치로서 작동한다. 다만 둘은 서로 다르기도 한데, 학자들마다 다른 견해를 갖는다.
1. 과오가 사적인가 공적인가
- 수치심은 타인이 그 행동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고, 죄악감은 타인의 시선과 관련 없이 오로지 혼자서도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또 그렇기에, 수치심은 집단주의적 문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집단 혹은 개인일수록 더 영향력을 갖게 되며, 죄악감은 개인주의적 문화와 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benedict. 1946)
2. 과오적 행동에 무게가 쏠리는가, 자기 자신에게 쏠리는가
- 위의 이론보다 더 신빙성을 갖는 이론으로, 똑같은 과오를 저질렀더라도, 자기의 내면화된 타인에 의해 자기의 어떤 면이 부정당한다면 수치심으로 연결되며,반대로 자신의 과오적 행위에 무게가 쏠린다면 죄책감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lewis, 1971)
또한 위에서 언급한 특성들로 인해 수치심은 죄책감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작동한다. 무가치감, 움츠러듦,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내면화 된 타인에게 받는 비난"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죄책감은 자기 자신이 아닌 행위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행위를 수정하는 데에 더 적극적으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의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수치심 유발보다는 죄책감 유발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집필: 모상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출처: 니이버 지식백과 인문과학- 죄책감과 수치심)
2 한국의 경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유명한 한국의 수필가 윤오영이 1974년에 발표한 수필. 한국의 고전적인 여인상의 아름다움을 담담한 시선으로 은은하면서도 멋스럽게 드러낸 작품이다.
주인공인 화자는 당시 14살의 중학생으로 오래간만에 고향 마을에 돌아와 머물던 중 잠깐 먼 친척뻘되는 집에 들리는데 그 집에는 주인공보다 한 살 어린 친척 여동생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가워하며 스스럼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소녀는 제법 처녀 티를 내고 주인공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 한다.
친척 아주머니는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면서 소녀의 방으로 주인공을 안내하며 이윽고 소녀가 들어와 닭국물에 만 밀국수를 대접한 후 물러간다. 아니 왜 그 방의 주인인 소녀의 방에서 먹고 가라고 하는데... 식탁에서 먹으면 되잖아 그런데 벽에 걸린 분홍색 적삼이 하필 주인공의 눈에 띈다. 소녀와 마찬가지로 사춘기였던 주인공은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묘한 호기심에 소녀의 적삼을 힐끗힐끗 쳐다보게 된다. 밖에서는 소녀의 다급한 목소리와 친척 아주머니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친척 아주머니는 묘한 미소를 띠고 주인공에게 많이 먹으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적삼을 가져간다.먼 친척이라는 언급을 보면 뭔가 사돈 관계라도 맺으려고 했을지도[1]
가장 유명한 구절은 마지막 문단으로 소녀가 싸리문 뒤에 숨어서 주인공이 가는 것을 엿보다가 주인공과 눈이 마주치는 장면이다. 이때 주인공은 그녀의 뺨이 붉어진 것을 보게 되며 그제서야 소녀가 자신을 꺼린 이유를 깨닫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그는 부끄러웠던 것이다' 라는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마침으로써 소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가 추구하는 주된 주제였던 한국적 아름다움에 고전적인 멋을 더하였으며 더불어 사용한 어휘도 예스럽고 고풍스러워 한국의 경수필에 심미성과 전문성을 더하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수동적인 여성상이 현대에도 환영받지는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