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希
(? ~ 206)
[머목차]
1 개요
후한 말의 무장.
동해 사람으로 태산에서 장패, 손관, 오돈, 윤례 등과 함께 세력을 거느리면서 여포를 도왔다가 여포가 조조에게 패하고 하후연, 장료 등의 공격을 받자 조조에게 항복했는데, 200년에 유비가 조조의 공격을 받고 원소에게 도주한 후에 유비에게 호응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장료의 설득으로 조조에게 다시 항복했다.
그러나 기주가 평정하자 다시 반란을 일으키면서 우금, 장패 등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막았고 하후연이 와서 우금과 힘을 합쳐 공격하자 10여 둔영이 항복했으며, 창희는 우금과 교분이 있어 그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법에 따르면 포위당한 후에 항복한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우금이 눈물을 흘리며 직접 형을 집행하면서 창희는 참수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태산의 도적으로 나와 조조와 유비가 여포를 공격하기 위해 서로 밀서를 보낼 때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포에게서 연락을 받아 손관, 오돈, 윤례 등과 함께 산동 연주의 여러 군을 공격하도록 요청받았다.
장패가 데려와서 태산의 산적들이 조조에게 항복했으며, 창희만은 유일하게 항복하지 않았다.
2 창작물에서
삼국전투기에서는 마음의 소리의 조석으로 등장한다.[1]
화봉요원에서는 손관, 오돈, 윤례 등과 함께 연계해서 서황을 고전시켰으며, 허저와 싸울 때도 고전시켰다. 그러나 가후가 허저를 분발하게 만드는 말을 해서 싸우면서 손관, 오돈, 윤례와 함께 허저에게 죽었다.- ↑ 정확히는 거기에 인도영화 춤추는 무뚜의 무뚜가 섞였다. 단행본에서 작가가 직접 언급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