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레스티노 5세

라틴어: Caelestinus V
이탈리아어: Celestino V
영어: Pope Celestine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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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명첼레스티노 5세
본명피에트로 델 모로네
(Francesco Tedeschini Piccolomini)
출생지이탈리아 산탄젤로리모사노
사망지이탈리아 페렌티노
생몰년도1215일 ~ 1296년 5월 19일 (81세)
재위기간1294년 7월 5일 ∼ 1294년 12월 13일
문장
역대 교황
191대 니콜라오 4세192대 성 첼레스티노 5세193대 보니파시오 8세


1 생애

속명(俗名)은 피에트로(Pietro), 즉 베드로이며, 1294년 7월 5일 교황으로 즉위, 1294년 12월 13일 자진 사임하여 약 5개월 동안 -정확히는 161일- 재임하였다. 1215년 나폴리 왕국령의 이세르니아(Isernia)에서 태어났으며, 베네딕토회 소속 수도자. 평범한 은수자(隱修者)로 독실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는 술모나 근교의 모로네(Morrone) 산중에서 은거하는 삶을 살았는데, 당시 로마에서 오르시니 가문과 콜론나 가문 간에 심각한 갈등으로 2년 동안이나 교황이 선출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민중들의 압력, 나폴리 왕 카를로 2세(1285~1309)의 영향으로 별다른 정치적 배후가 없는 피에트로가 교황으로 선택되었다. 당시 피에트로는 이미 80세의 고령이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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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과 성스러움을 지닌 교황, 즉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위인에 대한 민중의 갈망에 나폴리 왕의 정치적 야심이 결합되어 피에트로는 교황직에 오를 수 있었지만, 80살이 되도록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수도했을 뿐 본격적인 교육을 받거나 학식을 쌓은 적이 없어, 당시 교회의 공식언어인 라틴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고, 우르바노 2세 이후 조직된 정교한 교회 관료제도를 통제하거나 다스릴 줄도 몰랐다.[2]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판단력이 결여된 교황은 노회한 추기경들의 말에 넘어가 우왕좌왕해 교황청의 노선은 혼란스러워졌다. 게다가 페루자에서 교황이 선출된 뒤, 교황이 로마로 가려 하자 정치적 후원자가 없는 교황의 후견인을 자처한 카를로 2세가 교황의 로마 정주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거듭되는 문제에 지친 교황은 결국 여러 추기경들, 특히 후임자가 된 베네딕토 가에타니 추기경의 조언에 따라 사임하기로 하고, 퇴임 후 은수자로서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1294년 12월 13일 즉위 5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사임하였다. 그러나 사임한 첼레스티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새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약속을 무시하고 전임자를 사망할 때까지 1년 반 가까이 푸모네 성의 너비 4m2짜리 좁은 독방에 감금시켰고, 그곳에서 첼레스티노 5세는 1296년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3] 말년에 된 예시. 첼레스티노 5세가 죽고 20년 가까이 지난 뒤, 아비뇽 유수를 시작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1313년 첼레스티노 5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2 탄생 800주년 기념

2010년 7월 4일, 첼레스티노 5세의 유리관 위에 팔리움을 증정하는 베네딕토 16세

2009년, 첼레스티노 5세의 탄생 800주년을 기념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동년 8월 28일부터 다음해 8월 29일까지를 '첼레스티노의 해'로 지정했다. 2010년 7월 4일, 첼레스티노 5세의 무덤이 있는 술모나 대성당을 찾은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팔리움을 첼레스티노 5세의 유리관 위에 올리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
  1. 현재의 기준으로 봐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평균 수명이 짧던 중세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오래 산 것이다.
  2. 결국 교황을 배려해서 교회 관료들은 이탈리아어공용어로 채택해야 했다.
  3. 하지만 보니파시오 8세 또한 정치를 제대로 못해서 삽질만 일삼았다. 특히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의 마찰로 인해 그한테 심한 수모를 당하면서 화병으로 죽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