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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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습은 망나니 장군에 출연한 마츠다이라 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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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슈사이 샤라쿠 작, 에도시대

1 개요

丁髷 (ちょんまげ)

마게촌 일본 에도시대 때 사무라이 계층을 중심으로 유행한 헤어스타일로 일종의 변발상투이다.

머리를 이마 위쪽 부터 정수리를 비롯한 머리 윗쪽을 거의 밀고 옆머리와 뒷머리만을 길러 상투로 틀어 올린 모양이다. 머리의 위에서 보면 고무래 丁(정)자와 비슷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본의 경우 전통적으로 인구가 밀집했던 남반부는 여름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우면서 습한 기후인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전투를 하다 보면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기 마련이다. 갑옷은 벗기가 매우 힘들고 투구는 벗어도 머리카락이 있어 체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체온을 쉽게 떨어뜨리기 위해 윗머리를 밀어버린 상태를 유지했던 것이다.

2 특징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까지만 해도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거나, 관을 썼을 경우 관 밖으로 삐져 나오는 머리카락을 밀어주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관모인 칸무리를 쓸 때 그림에 나와있듯, 머리를 막대 모양으로 모은 뒤 비녀로 뚫어 관에 고정시켰다(다만 이건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전후로 헤어스타일이 변하면서 코지에 비녀 대신 흰 종이끈으로 머리와 턱을 둘러 고정하게 된다). 그러나 무사들의 경우 늘상 투구를 쓰고 격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머리를 밀 필요가 있었는데, 상술한 관을 쓰는 방식 때문에, 관을 쓸 때 필요한 머리카락은 남겨둬야 했다. 따라서 관을 고정시킬 뒷머리는 남겨두고 윗머리를 민 스타일이 무사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촌마게의 기원이다.

전국시대 때 사무라이들이 이런 머리를 많이 했다고. 이후 전국시대가 끝났지만 일종의 사무라이의 특징 중 하나가 되어 사무라이들은 이런 머리를 유지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계층에게도 유행하기 시작해 그냥 상인들이나 농민들도 했다고 한다. 다만 에도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촌마게를 한 건 아니고, 의사, 유학자, 수도승 등은 예전처럼 머리를 밀지 않고 길러서 뒤로 묶는 소하츠(総髪)라는 머리 모양을 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정부에서 단발령을 내리면서 결국 성년남자 모두 촌마게를 자르게 되었다. 물론 반발이 없던 건 아니지만 메이지 덴노가 머리카락을 잘라냈다는 소식이 나오자 바로 잠잠해졌다.[2]그래서 고종 머리도 잘라봤는데 역효과

청 시대 이후의 변발과 마찬가지로 옛 일본인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여겨지는 헤어스타일이라 여러 그림이나 매체에서는 고대 일본인이나 헤이안, 가마쿠라 막부 시대 사람들까지 촌마게를 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전국시대 즈음부터 유행해 에도 시대에 완전히 자리잡은 헤어스타일이므로 잘못된 고증이다.

실제 이 시대를 다룬 드라마 <노부나가 콘체르토>에서는 가신들 이 최신 헤어스타일(...)을 상경 준비를 하는 주인공에게 권하지만, 주인공이 못하겠다며 땡깡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은 모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라고 묻는 주인공의 말에 뜨끔하는 가신 일당의 모습이...#[3]

한국의 상투와 달리 의외로 관리가 필요한 머리였는데, 부분적으로 짧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민머리였기 때문에 그 부분은 면도를 자주 해줘야 해서 당시엔 나름 럭셔리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당연히 본인이 하긴 힘들기 때문에 종자가 깍아 주거나 해주는 사람을 따로 고용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탈모가 될 경우에는 관리비용이 줄기야하지만 뒷머리와 원형 탈모일 경우에는 심히 난감했다는 모양.[4] 그래서 사치를 멀리 하는 풍조의 집단에 속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개인이 검소함을 신조로 삼은 경우엔 머리를 길러서 촌마게를 하기도 했다. 이를 상술했듯 소하츠(総髪)라고 한다. 실제로 도망다니는 낭인의 상징 중 하나가 덥수룩한 산발 머리. 전국시대 일본을 다룬 영화를 보면 아시가루같은 평민들은 이마 위로 짧게 머리가 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영주님들이나 가신같은 고위층은 빤딱빤딱하다.

덕분에 일본 사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아역이 아닌 이상 촌마게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 삭발을 해야하는 아픔이 있다. 한국에서는 그 부분을 대머리 가발처럼 처리한 가발을 쓰기 때문에 한국 배우들은 일본 배우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청나라 변발과는 달리 옆머리를 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모양. 물론 촌마게가 아니라 청나라 변발을 하게 되면 한국 배우들도 얄짤없이 삭발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현대 관점에 보기에 좀 이질감이 심하기에 속되게 말해 촌스럽다 창작물의 주인공을 낭인으로 설정하면 덥수룩한 산발 내츌러 헤어로 떼울 수 있어 애용되는 설정이다.

중종실록 42권, 중종 16년 8월 12일 신묘 두 번째기사에는 '방망이 상투'라 카더라.
  1. 가부키 배우 이치가와 에비조가 타케무라 사다노신 역으로 분장한 모습
  2. 물론 단발령때는 그나마 저항감이 적었지만 폐도령이 시행되는 등의 조치가 지속해서 이어지자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할 사무라이들이 대거 반발을 하여 전쟁이 터지기도 했다.
  3. 링크에선 '사카야키'라고 나오는데, 사카야키는 머리를 미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촌마게는 상투 자체 및 스타일을 뜻한다.
  4. 물론 뒷머리 탈모가 진행되었을때는 가발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