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基山
Boniface Choi Ki-San
오른쪽 문장의 사목표어인 'FIAT VOLUNTAS TUA'는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 홀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인생의 방패로 삼아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기로 한다"는 의미이다.[1] |
역대 천주교 인천교구장 | |||||
초대 윌리엄 존 맥나흐톤 굴리엘모 주교 | ← | 2대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 → | 공석 |
대한민국 가톨릭 교회의 제2대 인천교구장 및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서기. 세례명은 '보니파시오'이다.
1948년 5월 16일 경기도 김포시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울 성신고등학교[2]를 나와 1974년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사제 생활을 시작했다.[3]
부평1동성당과 백령성당 보좌신부를 거쳐 김포성당과 해안성당, 심곡본동성당 주임신부를 역임했고 인천교구 사목국장을 역임했다. 미국 유학 겸 교포사목을 다녀온 뒤에는 산곡3동성당 주임신부를 맡았다가 새롭게 개교한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중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주교로 피명됐고 그해 말 부교구장 주교로 서품을 받았다.
2002년 초대 교구장인 윌리엄 존 맥나흐톤 굴리엘모 주교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최기산 주교가 교구장직을 자동 승계해[4] 제2대 교구장이자 인천교구 설정 이래 첫 한국인 & 첫 교구 출신 교구장 주교로 착좌했다. 주교 서품 이후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내에서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 교육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고 최근까지는 주교회의 고위직인 서기직을 맡았다.
2015년 12월에는 고 김영삼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종교예식 중 천주교 예식을 집례하셨다.
그러던 중 2016년 5월 30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선종하였다.[5] 최 주교의 묘소는 인천 서구 백석동 천주교 성직자 묘역 안에 있다.- ↑ 라틴어로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뜻으로, 주님의 기도 라틴어판에서도 있는 구절이다.
- ↑ 과거에는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과정이 있었는데 현재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대신학교였고 그 아래의 중등 교육 과정이 소신학교였다. 소신학교를 졸업해야 대신학교를 갈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예비신학생 제도와 비슷한 셈. 성신고등학교는 대표적인 소신학교였지만 1983년 폐교됐다.
- ↑ 이 당시 함께 사제서품을 받은 신학교 동기가 이기헌 주교다. 이 주교는 최 주교의 장례미사 때 강론을 하기도 했다.
- ↑ 교회법에 따라 부교구장 주교는 전임 교구장 주교가 은퇴 또는 선종했을 경우 교구장직을 자동적으로 승계할 수 있다.
- ↑ 사후 평소 지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장 계통 질환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