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부라야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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円谷英二 1901.07.07-1970.01.25

본명은 츠부라야 에이이치(円谷 英一). 울트라 시리즈로 유명한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설립자다. 일본 SFX 전반에 영향을 주어 SFX의 신으로 불린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항공학교에 입학했지만, 추락 사고를 일으키고 제적.

이후 영화 업계에 들어가서 카메라 촬영기사로 일하다. 1933년작 킹콩을 보고 감명을 받고 특촬 기술에 깊이 빠진다.

일본 영화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건 2차대전 당시 선전영화(1942년작)였던 "하와이 말레이만 해전"에 특수기술 감독으로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 전투필름은 거의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군사기밀이었던 고로 기록에 근거해서 해당 전투를 미니어쳐로 재현하여 촬영했었고 이것이 이후 일본 특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군의 프로파간다 영화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GHQ에 의해 공직추방된다.(44살)

영화업계를 떠나 장난감 자동차나 카메라를 만들어 생활하던 1952년 GHQ의 통치가 끝나고 공직추방이 해제된다.(51살) 그 동안 만들어싶었던 영화 - 해저에서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서, 선박들을 마구잡이로 침몰시킨다는 내용 - 가 결실을 맺은 것이 1954년작 고지라였다.

특촬기술에 있어 항상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며 소재 가격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우주대괴수 도고라 촬영시 아직 판매되지 않아 가격이 비싼 소재인 소프트 비닐을 사용해서 조형을 한 것을 직원이 걱정하자 그런 건 네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상을 제작할 때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표현을 싫어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피가 튀거나 사람이 살해되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 근무처인 토호의 모토가 '밝고 즐거운 토호 영화'인 점도 있었으며 이후 츠부라야의 영상제작에도 영향을 미친다.[1]

일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한 인물로 장비 취급, 모형 제작, 필름 낭비 같은 일이 있을 때는 크게 소리를 지를 정도. 덕분에 촬영장에서 직원들이 얼빠진 모습을 하는 일은 없었다. 허나 그런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촬영과 작업에는 크게 관여를 하지 않고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고 하며 심지어 입을 벌리고 잤다고 한다. 촬영 아이디어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촬영 중 갑자기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임기웅변으로 대응했을 정도.

일이 끝나면 직원들과 술을 먹으러 간다거나,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고 항시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해 상당히 이상적인 모습의 상사로 비춰진다.

협심증으로 향년 68세로 사망. 토호에서는 츠부라야 에이지 사후에 영화 제작을 중단한다.

여담으로 이분의 손자가 바로 우주형사 샤이다의 주인공 사와무라 다이 역을 맡았던 배우 故 츠부라야 히로시. 울트라맨 다이나에서도 사령관 역으로 출연했었다.

울트라 시리즈 30주년 기념작인 울트라맨 티가의 세계관에서도 특촬물의 대부라는 설정으로 등장.[2] 우연히 1966년으로 시간이동을 한 마도카 다이고와 만나기도 했다. 여기서는 과거 츠부라야 감독이 우연히 한 호숫가에서 초대 울트라맨[3]과 만난 적이 있으며 그에게 신비한 광석을 받게 된다. 이후 티가와 괴수와의 싸움을 우연히 보게 되는데 티가가 고전을 하자 티가를 응원하고 그 마음에 반응하여 가지고 있던 광석이 빛을 발해 초대 울트라맨으로 변한다. 이후 티가는 초대 울트라맨과 힘을 합쳐 괴수를 물리치고[4] 츠부라야 감독은 이것을 토대로 울트라맨을 제작했다고 한다.

2015년 7월 6일 구글 두들이 그의 114년을 기념하여 로고를 바꿨다 구글 두들 링크 . 울트라맨을 포함한 특촬물의 특수효과를 만드는 미니게임도 포함.
  1. 근데 이건 그가 죽자마자 바로 엎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고지라 시리즈의 헤도라가 있다.
  2. 이때 담당배우 정보는 추가바람.
  3. 빛의 나라 세계관의 울트라맨이 아닌 티가 세계관의 평행세계 울트라맨.
  4. 스페시움 광선의 효과음도 그때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