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七政算. 1444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
조선 세종대왕 시기 이순지(李純之)와 김담(金淡)이 만들었다.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를 칠요(七曜)라고도 한다)의 운행을 계산하는 일곱 천체의 운행 계산법이라 하여 칠정산이라고 한다.
2 내용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로부터 조선이 들어설 때까지 중국에서 만든 역서를 수입해서 사용하였다. 이에 세종대왕이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 것을 지시, 국내에서 대간의, 소간의 등의 천문기구들을 제작해 수도 한양, 백두산, 강화도 마니산, 한라산 등 주요 지점들에 관리들을 파견하여 각지의 북극고도를 측정하였고, 별을 관찰하여 한반도 만의 고유한 별자리를 관측,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시간과 오성 운행 시간을 알아낸 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었다.
이후 세종이 명나라 원통이 편찬한 대통통궤(大統通軌)를 구해내는데 성공, 원나라의 수시력법(授時曆法)과 대통통궤의 신기술을 칠정산에 적용하여 칠정산내편을 편찬했다. 또한 이순지와 김담이 아라비아의 역법인 회회력을 바탕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교정한 칠정산외편을 편찬했다.
3 의의
한반도에 정확하게 맞춘 역법으로 우리나라 내에서의 일식, 월식 등 천문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칠정산으로 구한 한양의 동짓날 낮의 길이는 39.13각(刻)인데, 기존 사용하던 중국 역법으로 구한 연경의 동짓날 낮의 길이가 38.14각이었으므로, 북경보다 위도가 낮은 한양이 연경에 비해 현대시간으로 14분 이상 동짓날 낮이 긴 것이 칠정산을 통해 밝혀졌다.
정묘년교식가령(丁卯年交食假令)에서는 칠정산을 이용해 세종 29년에 한반도에서 일어날 일식을 미리 예고했는데 확인 결과 동일한 상황 하에서 인공위성을 통한 현대의 기술로 계산한 값과 1분 정도의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중국은 아라비아 역법인 회회력 자체는 우리나라보다 일찍 들어왔지만 1444년에 이미 칠정산에 적용해 사용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70년 뒤에야 패림(貝林)이 계산법을 발견하여 겨우 사용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세종은 칠정산을 편찬할 때 기존 회회력에는 없던 태양최고행도와 일중행도표 등을 추가하여 편찬했다. 때문에 근래 중국 천문학자들은 조선의 칠정산외편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1634년 조선통신사에 의해 칠정산 계산법을 전수받고 이것을 연구하여 1682년 시부카와 하루미(澁川春海)에 의해 일본 최초의 역법인 정향력(貞享曆)을 완성하게 된다.
4 문제점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하늘을 관측하는 것은 천자 만의 특권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늘의 명을 받아 임금으로서 정당성을 부여 받았고 왕조의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선이 독자적인 역법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명나라 조정이 발칵 뒤집어진다.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 연합군이 조선으로 들어오게 되자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독자 역법인 칠정산을 쓰는 것을 들킬까봐 매우 두려워했다. 이때 "제후국에 두 가지 역서가 있으니 매우 떳떳치 못한 일이다. 대국을 보기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라며 자체적으로 달력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다행히 효종 4년, 1653년에 이 금지를 냅다 풀어버리고 다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