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구역 강화군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江華島. 强化島(Reinforcement Island)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한 섬. 강화군의 본섬이다. 원래 경기도의 섬이었지만, 1995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1]
1 역사
자세한 건 강화/역사 참고.
역사적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일단 지리상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조선 및 대한민국의 수도인 한양/서울과 가까우며, 양 지역의 주요 하천인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바다 쪽 출구를 막는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우선 몽골군에 쳐발린 고려 조정이 수도(강도江都)로 삼았던 역사가 있고, 조선 인조가 즉위하던 시절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청나라 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도피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다. 이때는 홍이포와 뗏목 부대에 털렸다. 방어를 맡은 강도검찰사 김경징이 하도 무능해서 술이나 마셔대고 청군을 감시하지 않다가 기습을 받는 바람에… 이때 봉림대군 등이 인질이 되었는데, 인조로서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았으며 결국 얼마 못가 항복한다.
왜란·호란 이후에는 강화유수부로 지정, 한양의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였다.[2]
근현대에 와서도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굴복하던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며, 병인박해로 인해 프랑스가 침공해와서 벌어진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인한 미국이 강화도를 침공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하는 등 하여튼 일이 많다. 강화도의 역사를 공부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농담이 존재할 정도. 한국전쟁에는 개성의 실향민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개성의 문화를 이었다고 한다.
덤으로 크고 작은 고인돌이 은근히 도처에 깔려 있다. 얼마나 많은지 고창군, 화순군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 관광지로 지정되어 얼굴이 자주 팔리는 큰 녀석 이외에도, 지나가다가 밭 한가운데나 산길 옆에 고인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걸 보면 충격과 공포. 그게 고인돌인지 모르고 보면 그냥 굴러다니는 돌덩이로 보일 정도의 위장(?)이 되어 있다. 관심 있는 이라면 강화 북부와 서부에 몰려있으니 그 쪽을 뒤져볼 것.
강화도에서는 아무 데서나 땅을 파면 유물들이 나온다 카더라
취소선을 치긴 했지만 실제로 강화도에선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있던 도자기 등 유물들이 발견돼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경주시???
2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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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에서 제공하는 강화도 관광 지도.
201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면적으로 4번째 섬이다. 원래 제주도, 거제도, 진도, 남해도에 이어 5번째 섬이었고 면적이 300제곱킬로미터가 안 되었으나, 장기간 간척사업을 진행하여 면적이 조금씩 늘어나다가 300제곱킬로미터를 넘어, 원래 면적차이가 적던 남해도보다 넓어져서 대한민국 제4의 섬이 되었다.[3]
동쪽으로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대곶면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황해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과 마주하며, 북쪽으로는 한강(휴전선) 건너 북한 개풍군, 연안군, 배천군과 마주한다.
김포시와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 4면이 바다 및 염하로 둘러싸여 있으며, 강화와 김포 사이에 강화대교와 초지대교의 2개의 다리가 있다.
특히 한강(휴전선) 건너편은 북한이기 때문에, 강화도 북부 지역에는 긴장이 느껴진다. 실제로 강화도의 관문인 강화대교에서도 저 멀리 북녘 개풍군 지역의 산이 보인다.
인천광역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육로로는 인천광역시 본토로 바로 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로로 가려면 경기도 김포시를 경유해야 한다. 다만, 언제 실현될지 기약이 없지만(...) 영종도와 강화도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면 그 때는 굳이 김포를 경유하지 않아도 된다.
3 생산물
주민 일부분이 농업 및 수산업에 종사하는 편으로 주로 쌀과 인삼 등을 생산하고 젓갈 등도 생산한다. 그 외에 한우, 쑥 재배도 성한 편으로 약쑥이 유명한 편이다.
4 강화도의 원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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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원래부터 현재와 같은 모양이 아니었고,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져 현재와 같은 모양이 된 것. 석모도도 본디 세개, 교동도도 두개 섬이었고, 강화도의 경우 수십개의 섬이었던 데다가 서남부지역은 그냥 갯벌일 뿐이었다. 이걸 매립하고 개간하여 지금의 해안선이 만들어진 것. 해안선이 일부는 절벽이고 일부는 평지인 이유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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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이 있는 화도면도 원래는 강화도 본도와 다른 섬이었지만, 1706년 숙종때 간척사업으로 본도와 연결되었다.[4] 실제로 마니산 근처엔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 상당히 넓고 평탄한 농지가 있는데, 이 일대가 예전엔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길상면 초지리 일대에도 (일반적인 강화도 풍경에 비해)상당히 넓고 평탄한 농경지가 있고, 이곳도 20세기 중반쯤에는 갯벌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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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의 강화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강화도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산이 있는 부분만 섬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대강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생각할 경우, 잦은 외침에도 강화도가 요새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해안선이 꼬불꼬불하고, 사방이 갯벌인데다가 섬의 해안선은 온통 산과 절벽뿐이니 적이 상륙하기 참 까다로운 지형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문에 세곡선들이 이근처를 지나다 수시로 침몰하기도.
5 강화 사투리
지리적으로 황해도와 가깝고 6.25때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이주, 정착했다보니 본래 강화 사투리는 전반적으로 황해도 방언과 상당히 유사했다.
어미가 전형적인 황해도 방언의 특징인 -시다(평서), -시꺄(의문) 등으로 변하며 일부 자음 발음이 탈락되거나, 중모음의 발음이 세분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강화도의 인구가 줄어들고 표준말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등,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줄어든 바람에 고유한 표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상태이...긴 하나 아직 중노년층들에게서 강화 사투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황해도와 가까운 교동도 지역은 거의 황해도 방언과 판박이다.
6 유명 관광지
단군이 제사를 지냈다던 마니산으로도 유명하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이 쌓았다는 참성단이 남아 있고 (물론 현재의 참성단은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자유롭게 방문도 가능했지만, 현재는 훼손이 심해 출입을 통제중이며, 개천절 전후로만 잠깐 개방한다. 전국소년체전의 성화는 전통적으로 여기서 출발한다.
길상면 초지리 초지진 근처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지정,보호하는 매화마름군락지(멸종위기 2급)가 있는데,람사르 습지에 처음으로 등록된 논 습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매화마름논에는 물장군(역시 멸종위기 2급)과 저어새(천연기념물 252-1호)도 서식한다.#
이 초지리 근처에 매화마름 카페라는 데도 있는데, 매화마름군락지 옆이라 매화마름의 이름을 땄다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몰락한 요주의 인물들이 귀양살이를 한 곳이지만, 현재 자세한 위치들은 알려져 있지 않다.
7 경기도 재편입?
2015년 5월 들어 지역 내에서 경기도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오는 중이다. 인천이 강화도를 홀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방향은 독립보다는 김포시 편입. 강화도가 다리(강화대교·초지대교)를 통해 김포시와 연결돼 있다는 지리적 여건도 작용했다.
이에 경기도의회도 "강화군 경기도 환원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는 등 호응 중. 물론 인천시는 반대. 그런데 문제는 현행 법규상 인천시가 끝까지 반대하면 강화군은 소속을 바꿀 수 없다는 것.
8 그 외
뻔뻔의 어원이 된 섬이다.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인천국제공항은 영종도가 아닌 강화도에 지어졌을 것이고 강화도가 교통의 허브로 급부상한 반면 영종도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거란 주장이 종종 나오곤 한다. 강화도의 위치와 분단 이전 이 일대 교통의 위상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