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고

프랑스어 : Cagot
바스크어 : Agotes
브르타뉴어 : Cacons

20세기 초까지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 등지에 있었던 천민 집단.

1 개요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 지역에 주로 존재하던 천민 집단이다. 프랑스어로 카고(Cagot)라고 하며, 스페인어바스크어로는 아고테스(Agotes)라고 한다[1]. 인도 공화국불가촉 천민, 한국백정, 일본부라쿠민이 있다면 서유럽에는 이들이 있었다. 카고는 보통 서유럽에서 기피되던 직업인 망나니와 같은 직업에나 종사할 수 있었다. 다만 한국의 백정이나 일본의 부라쿠민과는 달리 도축업자는 카고로 분류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서유럽권 지역, 특히 게르만족의 권역에서는 고대부터 고기를 도축해 나누는 역할은 그 마을의 최고 권력자가 하던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시대가 되면서 육류의 도축이나 해체는 민간업자들이 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이런 풍습의 영향으로 인해 서유럽에는 도축업자를 차별하는 분위기가 없었다. 대신 아무도 하기를 꺼려했던 망나니나 박피공 등의 일을 주로 하곤 했고, 그래서 망나니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이 되었다[2].

2 역사

카고의 기원 자체는 불분명하나,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서기 1000년경부터 이런 계층이 존재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카고는 우선 일반인들의 거주지와 떨어진 일정한 지역에만 몰려 살도록 강요받았고, 이런 곳은 프랑스어로 '카고테리'(cagoteries)라고 불렸다[3]. 그리고 카고는 카고가 아닌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었고, 음식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없었다[4]. 거기다가 가축을 기르거나, 방앗간에 출입하거나, 술집을 갈 수도 없었고, 심지어 시장에 진열된 음식을 만지는 것도 금지되었다. 거기에 교회 조차도 카고들을 위한 전용 출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고, 예배가 시작하면, 카고들에게 지정된 좌석이 있는 곳과 카고가 아닌 사람들이 있는 좌석 사이에 레일을 설치해서 두 집단이 서로 섞이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이들은 푸줏간에서 일하는 것도 금지되고, 밧줄 만드는 일조차 금지당하였다. 르네상스기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고도 이들에 대한 대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 상태로 20세기 초반까지 카고들은 무수한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이 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고 만다. 이 무렵에 전 유럽을 뒤흔든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이때 카고 출신이건 아니건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점점 카고와 비(非) 카고를 구분하기 힘들어졌고, 특히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초대형 사건이 일어나면서 카고 출신을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레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카고라는 계층은 오늘날에는 사라진 계층이 되었다[5].
  1. 아고테스라고 쳐도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2. 19세기 이탈리아가톨릭 성인인 돈 보스코 신부가 한 신도의 집을 방문하려다가 실수로 망나니의 집을 신도의 집으로 착각하고 방문했는데, 이에 감격한 망나니 가족들이 그를 매우 환영하자 '잘못 왔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망나니 가족들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성직자조차 차별할 만큼 당시의 망나니라는 직업은 엄청나게 차별받는 직업이었다.
  3. 일본부라쿠민들도 이런 식의 차별을 받았다. 애초에 부라쿠민이라는 말 자체가 본래는 '마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참고로 오늘날 부라쿠민이 사는 동네는 동화지구라고 불린다.
  4.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대로 카고는 도축업자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들에겐 요리사와 같은 직업도 불허되었다.
  5. 이 점은 한국백정과 똑같고, 일본부라쿠민과는 다른 부분이다. 백정이나 카고가 사라진 계층이 된 것과는 달리, 부라쿠민은 아직도 존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사회의 공공연한 차별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