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콜

1 16~17세기의 권총을 사용한 기병전술

rocroi-a.jpg
테르시오 대형을 향해 카라콜 전술을 구사하는 기병들.

Caracole. 승마용어로 '반회전한다'는 뜻이다. 권총을 휴대한 기병이 적에게 접근하여 차례로 권총 일제사격을 가하고 빠르게 물러나는 전술.

위와 같이 대정의는 단순하지만, 당대의 전투교범들을 보면 세부적인 설명에서 차이를 보인다. 교범마다 제각기 나선형으로 나와서 쏘거나, 두 줄로 나뉘어서 쏘는 식으로 내용이 다르고 사격 이후 선회방향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때문에 실제로 어느 방식이 주로 사용되었는지는 논의의 대상이며, 학자들은 대개 서로 다른 여러 방식이 공존했을 것으로 여긴다.

스위스 용병들의 활약을 시작으로 파이크는 점차 기병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기존의 중장 창기병들은 갑옷을 보강함으로서 이에 대응하였다. 그러나 점차 화기의 발달 속도가 방어구의 개선 속도를 넘어서게 되었고, 이윽고 파이크 방진과 개인화기의 화력이 결합하면서 기존의 중세-르네상스식 중장 창기병의 돌격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워졌고, 설사 방진 돌파에 성공한다고 해도 기병대 역시 심각한 피해를 받기 일쑤였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병들은 곧바로 돌격하는 대신에 적의 주위를 이동하며 총포류로 공격하는 전법을 택하게 되었다.

발상은 괜찮았다. 사실 방진을 더 효율적으로 깨뜨리고 아군의 피해를 줄이려는 과정에서 당연히 나올만한 시도기도 했고, 처음에는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료 창기병들이 있을 때 괜찮았다. 카라콜 기병들이 총을 쏴서 방진에 구멍을 내고, 창기병들이 일제히 돌격하는 식으로.

그러나 정작 대활약한 건 대기병전. 특히 위그노 전쟁에서 창기병들을 탈탈 발라먹으면서 기병계의 주류를 차지했고, 네덜란드는 1597년 아예 기병용 창을 제식무기에서 제외하는데에 이른다. 다른 서유럽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30년 전쟁 전반기는 카라콜을 사용하는 기병들의 천하나 마찬가지였다(30년전쟁 전기간 군 내에서 기병의 비율은 30~50%에 육박했다).

하지만 카라콜 전법은 곧바로 많은 문제점들을 내보이면서 도태된다.

  • 창기병이 거의 사라지면서 오히려 방진을 돌파하기가 어려워졌다. 애시당초 기병이 가질 수 있는 화력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준에 불과[1]했기 때문이다.
  • 부족해진 돌파력을 대체하기 위해 화력을 강화하려고 했으나, 휴대할 수 있는 개인화기의 성능은 명중률도, 사거리도, 화력도 당연히 뒤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기병들은 앞의 한 횡렬이 돌진해서 적 전방 28m 거리까지 적의 화력을 받아내며 달려가서(...) 총을 쏘고, 전장의 포화 속에서 말을 진정시켜 가며 어떻게든 대열의 맨 뒤로 돌아와 재장전을 수행해야 했다. 물론 다음 열도 마찬가지로 진행한다. 당연히 화력이 앞서는 보병 전열을 이길 수가 없다.
  • 파이크 방진에서 갈수록 머스킷 사수의 비율이 증가했다. 대구경에 총신이 긴 머스킷을 든 보병은 권총을 든 기병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위력적인 사격을 높은 밀도로 퍼부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병들이 어설프게 권총 수준의 화력으로 깔짝거려 봤자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 게다가 카라콜을 제대로 하려면 기병들의 훈련 수준이 굉장히 높아야만 했고, 또한 고가의 갑옷과 갑옷을 입은 기병의 무게를 지탱할 만한 체격 좋은 말을 갖추어야 했다. 때문에 단기간에 기병을 양성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여러 모로 적합하지 않았다.

때문에 30년 전쟁 후반기의 스타인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는 카라콜이 아니라 근거리에서 권총을 일제사격하고 돌격하여 격투전을 벌이는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왔으며,[2] 이후 18~19세기에는 아예 기병들의 주 임무는 어설픈 사격이 아닌 돌격으로 변하게 된다. 군사 기술의 발전이 서유럽에 비해 더뎠던 이집트의 맘루크 기병은 나폴레옹 시대까지도 카라콜 전술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나폴레옹의 보병진에게 카라콜로 싸움을 걸기도 했으나 결과는 참패 그 자체. 방진을 짜고 있던 프랑스군 보병의 일제사격과 산탄을 장전한 포병대의 지원 사격에 벌집이 되었다.

전장에서는 잉여신세가 되었던 바람에 아예 주스트의 대체격으로 마상 카라콜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총알을 장전하지 않고 화약만 쟁여놓은 상태에서 양측이 총을 쏘면서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었는데 주스트처럼 진짜로 부상당하는 사람들도 없었던 데다가 폭음과 연기가 매우 스펙타클한 효과를 제공해준 덕분에 한동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게임에 해당 전법을 사용하는 기병대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것이 토탈워 시리즈의 라이터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의 콩키스타도르 정도인데, 보통 기병의 기동성 + 총병의 공격력이 더해진 무시무시한 최강 유닛으로 나오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게임 유저들에겐 알게 모르게 "괜찮은 병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현실의 카라콜 기병대가 한때는 군사학자들에게 "기병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는 악평을 듣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지금은 약간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긴 한 모양이나 여전히 좋은 말은 나오진 않는다. 다만 대기병전에 강한건 나름 역사고증일지도 모른다. 의도한 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하지만 이 전술은 사라지진 않았고 기병이 아닌 타찬카를 첫 시발점으로 보는 중화기를 장착한 고기동 보병지원차량에 의해서 현대에 들어서도 계속 구사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테크니컬험비같은 화기장착차량들.

2 키르기스스탄 이스크쿨주의 주도

옛 이름은 리바체(Rybache)로 1990년 주권 선언후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비슈케크 남동쪽의 이시크쿨호의 연안에 위치한다.

  1. 18m 거리를 넘기면 페트로넬의 표적 명중률은 고작 10%에 불과하고, 피스톨의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수준이다.
  2. 이러한 개혁의 배경에는 키르홀름 전투에서 폴란드의 2500 윙드 후사르가 사격 이후 돌격을 통해 스웨덴군 12500을 개발살낸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원래 윙드 후사르의 무용담이란 것들이 대체로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