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ke
1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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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아름다워
그림의 스코틀랜드 병사가 든 긴 창이 파이크이고, 짧은 쪽이 잉글랜드에서 많이 썼던 빌이다. 일단 저 경우 일반적으로 창날 안쪽으로 들어온 빌을 든 병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창의 일종으로 중세 말에서 근세기, 그리고 근대 초기까지 주로 쓰였다.
일반적인 창의 길이를 비약적으로 늘린 형태로, 그 전시대 장창이 보통 3~4미터 정도였던데 반해, 파이크는 5~6미터에 이르렀다.
무기의 중심이 도검, 타격무기, 창 등 냉병기에서 흑색화약을 이용한 총기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창병의 역할도 보병의 핵심에서, 화력의 주축인 총병을 호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갑옷의 발달로 강화된 기병의 방어구를 공략하는 데에는 전시대의 폴암류(할버드, 글레이브, 빌 등)로도 한계에 달했고, 차라리 기병의 랜스보다 더 긴 단순창을 들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스코틀랜드나 스위스 용병대의 전훈 등을 통해 입증되면서 중세말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르네상스와 종교전쟁 시대가 되면 사실상 전시대의 장창, 폴 암류를 도태시키고 창병=파이크로 통일된다.
마케도니아의 사리사와 길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유사한 무기로 생각하거나 사리사의 영향을 받은 무기로 생각하기 쉬우나, 양자간에는 시간적인 간극이 크고, 일단 외형부터 파이크는 전시대의 일반 창보다 축소된 창날을 갖고 있으며 심한 경우 단순한 송곳만 달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상하 분리되는 사리사와는 달리 파이크는 단순한 일체식 나무자루로 되어있다. 단, 스위스 용병의 일부등 예외적으로 운반과 관리의 효율을 위해 사리사와 유사한 조립식 파이크를 사용한 경우도 존재했다. 따라서 영향을 받았다 보기엔 힘들며 전장환경에 적응하며 비슷해진 수렴진화에 가깝다.
사용법에서도 사리사를 장비한 팔랑크스는 모루의 역할이었지만, 파이크 방진은 모루의 역할과 동시에 주로 아퀘버스나 머스킷병들이 일제사격을 하고 다음 탄환을 장전하는 동안 적의 보병이나 기병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패 및 장애물 역할을 맡았다.
파이크의 방어진형은 팔랑크스와 유사한만큼 장단점도 비슷해서 정면은 매우 강력하나 만능은 아니어서 진형을 갖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측면과 후방이 매우 부실하여 진형을 갖추기 전에 공격당하든지 정면이 아닌 측면과 후방을 털리면 처참한 피해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라벤나 전투(1512)에서 진형을 채 갖추지 못한 독일 장창병대가 검과 원형방패로 무장한 스페인의 보병대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던 예가 있다. 또한, 병사의 숙련도에 영향을 많이 받아 비숙련병일 경우 진형유지가 힘들어 폴란드 윙드 후사르 같은 초월적인 기병은 파이크 대열을 정면돌격으로 돌파해 버리기도 했고 물론 루스 차르국과의 전쟁 중 클루시노 전투의 일이다. 물론 이도 절대적인 명제는 아니고 예외적으로 몇번 생겼던 일이며, 후사르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파이크 방진에 막무가내로 꼬라 박는 짓 따윈 최후의 발악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거기에 빽빽하게 밀집하는 밀집대형 인지라 대포와 같은 화기에 취약하여 마리냐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당시의 명중률이 낮은 대포의 도움을 얻어 스위스 용병의 파이크 방진에 20회 이상 차징을 걸어서 기여코 돌파[1]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진형을 못갖출 경우엔 다른 병기들 보다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데 플로든 전투(1513)에서 뻘밭에 걸려 기동력이 둔화된 스코틀랜드 장창병들은 폴암으로 무장한 잉글랜드 보병들과 대포에게 털렸고 국왕 제임스 4세와 지휘관들 대부분이 전사하는 참패를 겪었다. 거기에 중세이후의 중장기병들은 플레이트 아머를 장착한 쇳덩어리 들이었기에 순수하게 파이크 방진만으로 중장기병의 차징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어려운 법이어서 파이크 방진은 상당히 쇠퇴하였는데 따라서 영국군은 백년전쟁 당시 하마기사에 다수의 장궁병을 조합했고 깡통을 쉽게 딸수있는 폴암으로 무장했다. 이후 총기의 발달로 갑옷이 총기에 거의 확실하게 관통되자 스페인은 장창벽을 방패로 하고 화승총을 창으로하는 장창방진인 테르시오전술을 개발해내며 장창방진이 유행하게 된다. 테르시오에 다수의 총병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당시 중장기병의 갑옷수준은 파이크 방진만으론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기 힘들었고 '중장기사에게 충분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병과가 반드시 조합되어야만 비로서 '중장기병의 돌격을 격파하는 보병대' 가 되었다.
파이크는 총병의 지원역할을 하기에 방어적이라 지원을 꼭 받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고대로부터 원거리 지원병과없이 서로 전쟁에서 충돌하여 싸우는 일은 많았다. 특히 다른 병과에비해 피해가 많이 나는 일이 근대화전시대에 많이 일어났다. 그때에는 기병과 중장보병이 쇠퇴하는 시기였고 화약무기보급도 아직 더딘편에 갑옷도 고대시기보다 경무장화되어서 장창병만 전장에서 만나서 서로 방진을 접근시켜 싸우는 Push of Pike라는 시대를 역행한 병림픽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 상황이 일어나면 양쪽에 피해도 피해지만 사기를 잃고 도망치는쪽은 당연히 더 큰 피해를 입기에 서로 목숨을 건 후퇴도 없는 피비린내나는 전투로 발전을 자주하였다. 이 상황은 화약무기가 발전하여 밀집대형이 사라지고 보병들에게 머스킷이 완전보급되어 제식병기를 차지한뒤 총검이 개발되어 창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어 창이 퇴출되기 전까지 계속됬다.
파이크를 위시한 화승총의 등장은 상대인 기병의 전술도 변화시켜, 프랑스의 경우 위그노 전쟁초기만 해도 중갑옷을 입은 검기병이나 창기병이 기병 전력의 주류였으나, 위그노 전쟁 말기에 이르면 기병대는 피스톨로 무장하고 접근하여 카라콜 기동을(총으로 쏘고 퇴각했다가 장전하고 다시 돌아오는) 주전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카라콜 기동전술은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효용성에 점점 의문의 가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고 결국 총 한발 쏘고 검으로 돌격하는 돌격전술로 회귀하게된다. 카라콜 항목 참조.
파이크의 방어능력과 공격력은 우수한 편이지만, 그 거대한 크기로 인해 세밀한 기술을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양손으로 잡기에 한손무기만으로는 위협하기 어려웠으나 장병기나 양손무기로 지레의 원리를 이용해 끝단부를 타격할 경우 조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파이크 부대간의 싸움에는 도플솔드너(양손검사)와 같이 파이크의 창대를 베거나 쳐내는 양손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사, 창을 걷어내기 쉬운 만능형폴암을 다루는 병사 동양에서는 창을 걷어내기 위한 당파와 같은 무기를 다루는 병사 혹은 전시대 중무장 보병처럼 갑옷과 방패로 무장하고 파이크의 숲을 해집는 중보병들이 상당기간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17~18세기가 되면서 아퀘버스 총기가 사라지고 보다 강력한 머스킷이 주력이 되면서 파이크병간 전투가 감소하게 되고, 귀찮게 따로 타겟티어(검-방패 보병)를 운용하느니 차라리 파이크병에게 칼을 들려주는 식으로 통합적인 운영으로 바뀌면서 이러한 검방보병은 사라진다.
다만 최근의 학설은 양손검을 쓰던 도펠졸트너는 충격부대나 안티 파이크 부대로 운용되었다기 보다는 당시 할버드 등 파이크병이 활약하던 시대의 다른 전통적인 폴암처럼 지휘관이나 배너를 보호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설이 더 강세다.[2] 사실 단단한 재질의 창을 양손검 따위로 잘라내거나 쳐내서 무력화시키는게 가능했다면 수백년전 사리사와 씨름하던 로마군이 먼저 양손검을 만들어써서 마케도니안 팔랑크스에 대한 정면승리를 쟁취했을 것이다(...). 방패만 믿고 돌격하기에도 뭣한것이, 사리사나 파이크 정도 되는 질량의 장창을 두손으로 잡고 힘껏 쑤시면 방패도 뚫는다. 기량으로 따지면 시대 불문 최강으로 쳐주는 그 로마 군단병도 사리사 밭은 정면돌파 못하고 학살당하다가 측면공격으로 겨우 승리했다. 고대 로마 시절이나 스페인 테르시오 시절이나 장창 밀집대형을 보병돌격만으로 정면돌파하는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기록에 따라서 도펠죌트너도 전투에 투입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고 양손검으로 창자루를 부러뜨리지는 못하더라도 걷어내거나 밀쳐내고 측면을 공격하는 등 실전에 투입될 만한 여지는 있었기에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다만 파이크 자체도 화기의 발달로 총의 신뢰도와 사거리 명중률이 늘어나고 선형진의 등장으로 쇠퇴하다 머스킷 총구에 다는 베요넷(대검)의 발명으로 그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부착상태에서도 사격이 가능한 소켓형 베요넷이 등장하면서 전열보병이 파이크 방진을 완벽하게 대체해 결국 파이크는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영국 등의 몇몇 나라에서는 고참 부사관의 상징으로 사람 키보다 조금 큰 하프 파이크 등이 사용되었기도 하지만, 19세기 중반이 되면 의장용으로 물러나게 된다.
2 민물꼬치고기
항목 참조.
3 파이크 시클리드
중앙아메리카~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시클리드의 일종으로, 위의 파이크처럼 길쭉하게 생겨서 파이크를 딴 이름이 붙었다.
4 아프리카 파이크 카라신
피라냐랑 골리앗타이거피쉬와 같은 카라신과에 속하는 열대어로,
또 다른 이름은 브랜드노즈가. 이름만 보면 가피쉬의 일종 같지만 카라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