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헨리 8세의 다섯번째 아내
- Kathryn Howard (1523 - 1542) 1540 - 1541 (결혼기간)
캐서린 하워드는 15세에 헨리 8세와 만나 연애 끝에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헨리의 둘째 왕비 앤 불린의 사촌이기도 하다(앤 볼린의 어머니가 하워드 가문 사람이다). 왕과 캐서린의 나이차이는 무려 32살(!)이었고 결혼 당시 헨리의 딸인 메리 공주보다도 어렸다. 10대의 나이로 미모에 앳되고 발랄한 성격이었으며 헨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랑을 쏟아 헨리는 '가시 없는 장미'라고까지 얘기하며 그녀를 아꼈다.
캐서린은'하워드'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에게는 노포크 공작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그녀의 부모님 자체는 가난하고 별볼일없어 그녀를 제대로 키울 수 없었고, 노포크 공작 미망인의 저택으로 보냈다. 노포크 공작 미망인의 저택에는 캐서린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고 미망인은 그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캐서린은 당시 사회 분위기에 비해서 굉장히 자유롭게 자라났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웠고, 어떻게 말하면 난장판이었다. 캐서린은 앤 불린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서 간신히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였다. 캐서린과 다른 소녀들이 함께 자는 침실에는 남자들이 드나들며 소녀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음악 교사인 헨리 매녹스는 캐서린을 유혹했지만, 캐서린은 그가 신분이 낮다면서 잘 상대해 주지 않았다. 헨리 매녹스는 예배당에서 캐서린을 더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후 상당히 부유한 젊은 귀족 프란시스 더럼과 캐서린은 사랑에 빠진다. 대귀족 하워드 가문이었지만 가난한 캐서린에게 더럼은 매력적인 상대였다. 두 사람은 아예 성관계를 맺었고, 거의 부부처럼 행동했다. 중요한 사실은 중세 유럽에서는 결혼이 성사되려면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결혼한다"라고 말하고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것. 따라서 둘은 부부라고도 할 수 있었다. 더럼은 아일랜드에 업무를 보러 가면서 캐서린에게 자신의 돈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더럼의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캐서린은 더럼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캐서린은 곧 헨리 8세의 새 아내, 클레페의 앤(클레브스의 앤, 클레페의 안나라고도 한다)의 시녀로 발탁되어 가게 된다. 왕비의 시녀는 명문가의 처녀들에게만 주어지는 직책이었으므로 상당한 명예였다. 헨리 8세는 클레페의 안나를 매우 싫어했고 동침조차 하지 않았는데, 자유분방하고 발랄하고 어린 캐서린 하워드에게 끌리게 된다. 하워드 가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캐서린에게 왕을 사로잡도록 가르쳤다. 결국 헨리 8세는 클레페의 앤과 이혼하고 17세인 캐서린과 결혼을 한다.
하워드 가문은 구교도 파였기 때문에, 캐서린 하워드는 구교도들이 지지하는 왕비가 되었다. (클레페의 앤은 신교도 지역인 클레페 공국의 공녀였다.)
헨리 8세는 어린 캐서린에게 푹 빠져 있었다. 가녀린 체구에 어린 그녀가 순진한 처녀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공개적으로 하나님에게 "지금까지 제 결혼사는 굴곡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완벽한 아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올릴 정도였고, 캐서린에게서 손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캐서린이 젊었기 때문에 헨리 8세는 그녀에게서 후사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임신하지 않았고, 헨리 8세는 다친 다리에서는 고름이 흐르고 허리가 50인치에 달하는 비대한 남자였다. 캐서린은 헨리 8세를 존경했는지는 몰라도, 이성으로 사랑하지는 못했다. 캐서린은 곧 왕이 오지 않을 때 자주 자신의 방을 걸어잠그고 시녀들조차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 왕비나 왕의 방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는데, 캐서린이 닫힌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곧 미망인의 기숙사에서 살던 시절의 친구들을 시녀로 고용하기도 했는데, 자유분방한 과거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리 8세는 캐서린이 과거에 방종한 생활을 했다는 하워드 가문의 반대파인 신교도 존 라셀이 쓴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존 라셀의 누이 메리는 캐서린과 같은 미망인의 기숙사 출신으로, 캐서린의 과거 남자관계에 대해 존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헨리 8세는 처음에는 왕비를 음해하려는 세력의 음모라고 여겼으나, 곧 헨리 매녹스와 프란시스 더럼이 체포되어 사실을 털어놓자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캐서린 또한 감금되었는데, 말 그대로 멘붕을 하고 만다. 그녀를 등에 업고 세력을 얻었던 하워드 가문은 그녀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캐서린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매녹스와 더럼과의 육체 관계에 대해 세세하게 털어놓았는데, 더럼과는 결혼했냐는 말에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사실 캐서린이 더럼과 정말로 결혼을 했다면 헨리 8세와의 결혼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간통죄도 성립하지 않았고, 결국 풀려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캐서린은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이해할 정도로 현명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고, 한편으로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 전 과거의 일로는 간통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하워드 가문의 반대파는 이제 캐서린이 토머스 컬페퍼라는 왕의 젊은 시종(물론 귀족이다)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토머스 컬페퍼의 방을 뒤지자 "어떻게 지내냐, 말만 해 주면 너를 만나러 가서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사랑한다"라고 서툰 철자법으로 작성된 캐서린의 편지가 나왔다.[1] 캐서린과 컬페퍼 모두 서로 정신적으로 연애를 했다고는 인정했으나, 육체관계는 완강히 부인했다. 캐서린 하워드의 시녀이자, 앤 볼린의 남동생 조지 볼린의 부인이기도 했던 로치포드 부인(Lady Rochford)는 두 사람이 동침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에 사귀던 남자를 비롯해 자신의 정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을 주변 심복으로 채용하거나 뇌물을 줘 입막음을 했다는 것도 밝혀진다.
왕비의 간통은 그저 간통이 아니라 반역죄였다. 캐서린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었다.
헨리 8세는 순수하다고 믿던 어린 아내가 사실은 적어도 두 남자와 성경험이 있었는데다 자신의 심복이자 총애하던 시종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특히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건 남편이 그녀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당대 인식에 비추어 보면 캐서린은 일국의 왕이 자기 부인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고자라고 물을 먹인 거나 다름 없었다(...) 당시 기록에 보면 주변 사람들은 헨리가 미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분노하기도 하고, 왜 자기의 팔자가 이런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검을 가져오게 해서 캐서린을 손수 죽여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헨리는 이후 왕비가 될 여성이 자신의 전 남자관계를 숨기는 것은 반역이라는 법을 만든다.
헨리 매녹스는 무죄로 방면되고, 캐서린의 옛 남자 프란시스 더럼과 불륜 상대 토머스 컬페퍼는 방종한 생활의 죄를 물어 사형당했다. 캐서린 하워드 또한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캐서린은 죽음을 의연하게 맞기 위해 처형을 기다리면서 처형에 쓰이는 참수대를 가져와 목을 대는 연습을 했다. 죽기 전 그녀는 자신이 정당한 벌을 받는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난 차라리 이 나라의 왕비가 아니라 토머스 컬페퍼의 아내로서 죽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설은 후대의 창작이다. 그녀의 나이 19세였다.
로치포드 부인은 역시 토머스 컬페퍼와 캐서린 하워드의 불륜을 도왔다는 혐의로 사형 당했다. 로치포드 부인은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로 남아 있는데, 일단 그녀가 앤 불린이 앤의 남동생이자 자신의 남편 조지 불린과 근친상간을 저질렀다고 증언을 해서 앤 볼린과 조지 볼린 남매의 죽음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 있다. 그런 로치포드 부인은 캐서린 하워드의 죽음에도 한 몫을 한 것이다. 로치포드 부인은 감금되어 있는 동안 "미쳐버렸는데" 당시 광인은 사형을 받을 수가 없었다. 혹자는 로치포드 부인이 죽지 않기 위해 미친 척을 했다고도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결국 처형 직전에 법을 뜯어고쳐 기어이 그녀를 사형시켰다.
한편 헨리 8세는 캐서린 하워드의 죽음 이후 매우 우울해하다가, 30대 초반의 부유한 과부 캐서린 파를 적절한 왕비 후보로 낙점하여 청혼한 끝에 결혼을 성사시킨다. 캐서린 파는 캐서린 하워드와는 정반대의 여성으로 이미 두 남편을 떠나 보낸 과부였기 때문에 남자 관계로 흠을 잡을 이유도 없었고, 경박한 어린 캐서린과 달리 진중한 성격이었으며, 늙고 병든 남편들과 산 경험이 있어서 노년에 접어 들며 건강이 부쩍 상한 헨리 8세를 잘 돌봐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여자였다.[2]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또 결혼을 하는 헨리 8세에게 경악한다. 이에 헨리 8세는 후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적통 왕자가 에드워드 6세 하나뿐이었으니 아들이 하나쯤은 더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파와 4년 남짓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에도 파의 임신 소식이 없어서 침울해했으며 파 역시 헨리 8세에게 '아들을 낳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헨리 8세 사망 직후 재혼한 파가 멀쩡히 애를 낳은 점을 감안하면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것은 헨리 8세 책임이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노년의 헨리 8세는 고도 비만으로 불임이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발기 부전 증상까지 보였다는 학설이 있다.
2 튜더스의 캐서린 하워드
배우 이름은 탬진 머챈트(Tamzin Merchant)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2005)에서 다아시의 여동생 조지아나 다아시로 나왔다. 배역은 거의 바보인데 배우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엘리트.[3]
시즌3, 4에 걸쳐 등장한다. 이미지 탓인지 6명의 왕비 중 출연 횟수에 비해 정사씬이 대단히 많으며 10대의 왕비답게 굉장히 순진하고 자유분방한 동시에 튜더스 최고의 백치미를 자랑하는 성격으로 등장한다. 다만 기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촐랑대는 모습 때문에 메리 공주를 비롯한 몇몇 이들에게는 비웃음을 사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그녀를 보필하는 위치에 있는 제조상궁 시녀장 로치포드 부인 역시 그녀를 왕비로 대하고는 있지만 가끔씩 어린애를 보는 듯한 태도다.[4]
헨리가 안나 클레브스를 쫒아내고 결혼한 것이기 때문에 사촌인 앤 불린과 상황이 미묘하게 들어맞는다. 또한 그녀의 경박한 모습 때문에 메리 공주가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어린애처럼 토라지기도 한다. 이때는 헨리가 시간을 주자고 다독거려 넘어갔다. 그러다가 메리의 방에 쳐들어가 왜 자신을 왕비로서 존중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메리가 그녀의 태도 등을 지적하더니 결국 폭발하여 "나이도 많은데 아직도 결혼을 못해서 젊은 나를 질투하는 것 아니냐. 평생 결혼 못하고 노처녀로 늙어죽을거다"라는 무개념 대사를 매리의 면전에서 시전하고, 하녀들과 키득거리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동안 메리의 고생을 봐온 시청자들에게 어그로를 대폭 끌어 안티가 폭증했다.[5]
다만 엘리자베스 공주와 에드워드 왕자와는 별 충돌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캐서린에게 친절했고 에드워드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에겐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에드워드는 보자마자 귀엽다고 좋아하더니 부채로 장난을 쳐서 에드워드를 웃게 하려 시도.사실 나이만 보면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뻘인데
그 와중에 자신의 옛 친구인 조안 부머가 찾아와 시녀로 삼아달라고 한다. 캐서린은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곁에 두기가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그녀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시녀로 고용한다. 하지만 조안은 얼마안가 로치포드 부인에게 캐서린이 옛날에 남자가 있었다는 걸 이야기하고 로치포드 부인은 컬페퍼에게 이야기한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토마스 컬페퍼가 접근하자 캐서린은 그에게 흥미를 가지고, 로치포드 부인까지 부추긴 덕에 결국 불륜을 저지른다. 컬페퍼도 그렇고 로치포드 부인도 그렇도 다들 정신줄을 하나씩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전개. 설상가상으로 캐서린과 관계를 맺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프랜시스 더들햄이 자리 하나 차지하고자 그녀를 찾아온다. 캐서린은 자신의 과거가 탄로날까봐 결국 그를 고용한다. 문제는 입단속을 시켜놨더니 이 놈이 깐죽깐죽 나불나불...[6]
결국 헨리는 프랜시스 더들햄과 캐서린의 관계를 알고는 분노, 그녀에게서 왕비 자격을 박탈하고 쫒아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도중에 컬페퍼와의 불륜사실이 밝혀지자 자비고 나발이고 집어치운다. 결국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캐서린은 어린 나이답게 두려움에 떨지만 나중에 타워로 연행되면서 참수당한 컬페퍼의 목을 보고는 절망한 뒤, 미리 사형대에 설 연습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로치포드 부인의 처형을 지켜보고 뒤이어 사형대에 선다. 로치포드 부인이 참수당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두려움에 떨지만, 곧 자신의 일을 발설해버린 친구 조안에게 초연한 미소를 짓고 구경꾼들에게 "나는 이곳에 죽으러 왔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죽기보다 컬페퍼의 아내로 죽고 싶다"라고 선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만큼은 무척이나 강단있는 여성의 모습. 마지막에 남긴 말은 "인생은 정말 아름다워(Life is very beautiful)." 그 때 그녀가 죽을 때 안타까워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던 것을 보면 그녀의 과거와는 별개로 그 자유분방함을 좋아한 사람들도 있던 듯 하다.
이 때 캐서린의 죽음에 대해 헨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7] 흠좀무. 이것은 앤 불린의 죽음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8] 드라마상에서는 캐서린 하워드와 앤 불린의 상황이 여러 가지로 비슷하게 나온다. 예컨대 캐서린이 임신했다고 헨리에게 전했는데 알고 보니 착각이어서 헨리가 화를 내는데, 이 때 캐서린은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해요."라고 말한다. 이 말에 헨리는 앤 불린을 떠올리고 얼굴이 굳어진다. 이후 시즌 4 마지막에 죽은 부인들이 나와서 헨리를 만날 때엔 등장하지는 않지만, 앤 불린이 이를 언급하며[9] 헨리를 일갈한다.
- ↑ 몇몇 학자들은 캐서린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편지가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 ↑ 사실 파가 헨리 8세의 실질적인 간병인이라 봐도 무방했다. 헨리 8세 역시 아픈 자신을 돌봐줬던 파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꼈고 그녀에게 호의적인 유언장을 작성해 주었다.
- ↑ 정확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이루는 31개의 College중 하나인 호머튼 칼리지 출신이다.
- ↑ 토머스 컬페퍼와의 대화에서는 캐서린에 대해 "그저 춤추는 예쁜 인형일 뿐"이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 ↑ 재밌는 건 메리 역의 사라 볼저는 탐진 머천트보다 4살이나 어린 91년생이다.
- ↑ 캐서린 하워드를 케이트라고 부르면서 알랑대는 게 꼭 한대 쳐주고 싶은 태도다. 아직 캐서린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입단속을 안한다. 캐서린과 옛날에 그런 관계였다고 주변 시종에게 떠벌리기까지 했다! 왕에게 걸리면 완전 파탄난다는 걸 이해 못할 정도의 바보가 아닐까... 결국 나중에 걸려서 고문받고 끔찍하게 처형당한다. 그것도 교수척장분지형으로. 무슨 방법인지는 이 문서를 참고하길.
- ↑ 연회에 초청된 이들은 시모어 형제, 찰스 브랜든 등 유력 신료들의 아내들이었다. 이때 참석한 여인들은 장난삼아 차례로 왕비의 어좌에 앉아보는데, 이를 헨리 8세가 매우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왕비들이 모두 슬픈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연상시켰을 것이니까.
- ↑ 시즌 2 마지막 화를 보면 앤 불린이 처형당한 직후 씬이 헨리 8세가 연회에서 파이를 손으로 뜯어먹는 모습이다.
- ↑ 대사는 다음과 같다. "불쌍한 캐서린, 그녀는 차디찬 대지에 내 옆에 누워 있죠. 불쌍한 아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죠. 하지만 우리는 두 나방과 같았었죠. 불꽃에 다가가다... 타 버렸죠." (Poor Catherine Howard. She lies in the cold ground next to me. Poor child. It was not her fault either. But we were like two moths, drawn to the flame... and bur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