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페의 앤

1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

파일:Attachment/클레페의 앤/canne.jpg
문제의 초상화

Anne of Cleves
1515-1557
헨리 8세와의 결혼 기간 : 1540 Jan. - July

클레페 공국의 요한 3세와 윌리히-베르크의 마리아의 딸. 독일식 이름은 안나 폰 클레페.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

3번째 왕비였던 제인 시모어가 죽은 뒤 슬슬 재혼을 생각하던 헨리 8세는, 신하들의 권유로 클레브스의 안나에게 혼담을 건넸다. 당시 왕가의 혼인은 대개 국제결혼이라, 혼담이 결정되면 매년 초상화를 보내 신부나 신랑의 성장과정을 알리곤 했다. 이때 앤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당대의 대화가 한스 홀바인[1]이었는데, 이 양반이 안나의 초상화를 너무 예쁘게 그려서(…) 아주 큰 오해가 생겼다. 신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얌전하며 순종적인지에 대해 열변을 늘어놓은데다가, 한스 홀바인 이 양반이 너무 미화를 시켜놔서 헨리 8세는 초상화 속의 여인을 새 왕비로 맞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실물을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한다. 본격 뽀샵질의 원조 그런데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는데, 헨리 8세는 자신을 전설이나 동화에 나오는 이상적인 왕자/군주로 생각하기를 좋아했고, 상당히 로맨틱하면서도 도취적인 면이 있었다. 헨리 8세는 젊었던 시절 첫째 캐서린 왕비에게 자신은 변장하고 왕비를 찾아가 놀래켜주는 이벤트를 많이 열어주었는데, 그 때마다 왕비는 속아넘어가는 척하면서 그를 알아보는 식으로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따라서 헨리 8세는 클레페의 앤과 처음 만나면 운명의 상대인 서로를 알아보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리라 기대를 했고, 특별 이벤트를 준비한다.

신부가 영국에 도착하자 헨리 8세는 신하와 함께 변장을 하고서는 클레페의 앤을 갑작스레 찾아가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웬 뚱뚱하고 늙은 남자[2] 갑자기 나타나 친밀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자, 전혀 언어가 통하지 않은 클레페의 앤은 미래의 남편을 알아보고 기뻐하는 대신,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했다. 무시를 당한 헨리 8세는 엄청나게 화가 났고, 옆의 방으로 가서 이제는 왕의 복장으로 갈아 입고 앤을 다시 찾아갔다. 앤은 이제 공손하게 그를 대했지만 헨리는 이미 대단히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생각에는 앤이 자신이 기대한 만큼 예쁘지도 않았다.

그날 밤, 헨리 8세는 노발대발하며 결혼을 주선한 신하에게 화를 내고 "저런 여자와 잘 수 없다!!!!"며 방방 뛰었다.[3]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게다가 헨리 8세는 여자를 볼 때 자신과 대등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수준과 위트를 갖추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불행하게도 클레페의 앤은 일단 영어프랑스어를 잘 하지 못했고 따라서 재치있게 헨리와 대화를 나눌 역량이 없었으며, 여자에게 가사일 외의 교육은 거의 하지 않은 궁정에서 자라 예술이나 학문에도 조예가 없었다고한다. 그러나 나르시스트 기질이 강한 헨리 8세는 로맨틱한 미녀 공주를 원했고 에라이 도둑놈아, 앤은 정숙하고 조용하지만 따분한 독일 공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클레페의 앤과 결혼하려 한 이유는 처음부터 정치적 이유였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클레페의 앤은 개신교 제후라 카를 5세에게 영지를 몰수당하고 추방당한 율리히 공국과 친척인 클레베 공작의 딸이며 동시에 당시 독일 신교도 제후의 대표격인 작센선제후의 요한 프리드리히 1세의 처조카였다. 따라서 이 혼사는 상대적으로 가톨릭 세력에 포위당한 외교적으로 고립을 피하고, 독일 개신교제후들과 연합하여의 동맹을 얻으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혼인 시도 과정에서 이미 독일 신교도 제후연합은 헨리 8세를 거부했다. 헨리 8세가 루터파 교리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의 역할을 왕이 대신하는 무늬만 개혁이자 복음주의자들이 무시한 개혁에 그쳤고, 더군다나 골수 가톨릭인 토머스 모어를 중용하여 그 가톨릭의 교리인 성만찬 화체설을 부인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신학자 교수 40여명을 고문하고, 6명을 화형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클레페의 앤은 당초 의도와 달리 이미 사용가치가 매우 현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결혼하게 된 격.
상식적으로 헨리 8세는 여색을 매우 밝히긴 하나 왕비 자리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보는 것이었고, 그것도 대륙에서 결혼 동맹을 위해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인데 외모는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여성들은 이미 국내에도 아내나 딸을 첩으로 바치려고 줄선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클레페의 앤이 추녀라는 말을 한 사람은 헨리 8세뿐이다. 사실 헨리 8세는 이때 몸이 비대해진데다가 고름으로 가득 차 썩어들어가던 다리 상처에서는 엄청난 악취가 풍겼고, 결혼한 왕비마다 죽어버린 터라 신랑감으론 평도 나빴으므로[4] 딴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헨리 8세의 미래의 왕비들에 비해 클레페의 앤이 훨씬 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외모라는 기록도 있다. 바르델 브루인(Barthel Bruynthe the Elder)이 그린 말년의 초상화를 보아도, 추녀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무난한 외모이다#.


결국 헨리 8세는 결혼 생활 내내 앤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앤과 카드 놀이를 하고, 매일 밤과 아침 이마에 인사의 키스를 하는 정도였다. 신하들에게는 "앤의 가슴이 커서 축 쳐져 있으며 배에 살집이 있으니 처녀가 아닐 거다. 그러니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다."라는, 인격의 바닥이 보이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5] 워낙 보수적이고 엄격한 궁정에서 자란 클레페의 앤은 상당히 순진했는데, 성관계를 해야 아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후에 헨리 8세가 이혼을 신청했을 때 앤은 육체관계가 있었냐고 묻는 시녀에게 왕이 자기 전과 아침에 이마에 키스를 해주는 게 전부라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대답했고, 시녀는 경악하여 "아이를 낳으려면 그것보다 더 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헨리 8세: 하늘을 봐야 별을 딸 거 아니냐고

헨리 8세는 이미 클레페의 앤의 시녀인 어린 캐서린 하워드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제 그는 사랑할 수 없는 앤과는 이혼하고 캐서린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국 헨리 8세와 클레페의 앤은 합의하에 결혼을 무효화했다. 부부간 동침을 하지 않았기에 결혼이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무효화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처음에 클레페의 앤은 이혼하자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 영어도 막 익혀가고 있었고,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서 신망을 얻는 등 그녀는 나름대로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그녀는 클레페 공국의 대사와 변호사를 동원하여 결혼 무효화에 맞서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이미 캐서린 왕비를 내쫓고 앤 불린은 목을 벤 전력이 있는 왕과 대치해봤자 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또 이혼을 당하고 클레페 공국으로 돌아가 봤자 소박맞은 여자라는 경멸을 받을 게 뻔했고,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될 것이었다.

한편 헨리 8세도 클레페의 앤이 조용하게 이혼을 받아들여주어야 국제 문제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막대한 보상을 제시했다. 죽어도 이혼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다가 불행한 삶을 살았던 아라곤의 캐서린과 달리, 안나는 "너도 아라곤의 캐서린 꼴 날래?!"라고 협박을 당해서 현명하게 그 제의를 받아들여 잉글랜드에 남아 화려한 궁전과 막대한 연금을 받으며 평생 풍족하게 살았다. 앤은 영어를 익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와인에 맛을 들였으며, 남자와 여자가 동침한다는 의미조차 모르는 순진한 여자에서 카드놀이와 연회를 즐기는 여유롭고 사교적인 성격의 귀부인으로 거듭났다. 왕의 세 자녀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앤은 이혼을 함으로써 막대한 재산과 함께 왕의 여동생 칭호를 보장받고, 공주들의 친구로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앤은 자신의 시녀였으나 헨리의 다음 왕비가 된 캐서린 하워드를 다시 만나게 되자,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대했고, 캐서린 하워드는 그래도 다른 나라의 공주나 다름없는 귀한 신분의 앤이 전직 시녀였던 자신에게 이렇게 나오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앤이 자신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헨리 8세는 매우 흡족해했고, 헨리 8세와 새 왕비, 클레페의 앤은 화목하게 지냈다. 흥미롭게도 결혼 생활 동안은 앤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헨리 8세였지만 정작 이혼하고 나서는 앤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호의를 베풀어 그녀를 잉글랜드 왕실의 일원으로 대했다. 헨리 8세의 변덕스러운 성격이 잘 나타나는 대목이지만, 앤 본인의 사려깊은 행동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리라. 캐서린 하워드가 처형된 이후 앤의 친정을 중심으로 그녀를 왕비에 복위시키려는 움직임, 혹은 그에 대한 소문이 한동안 잉글랜드 정계에 나돌았다. 헨리 8세는 이를 일축하였기에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는데, 앤이 실제로 왕비 자리에 다시 돌아가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헨리 8세가 죽고 나서 지급되던 연금이 끊기는 바람에 잠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때문에 에드워드 6세와 친정에 금전적인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 때 "결국 우리는 외국인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 것이 남아있다. 다행히도 몇 년 뒤 영국 왕실의 지원을 다시 받았고, 그녀는 예전처럼 다시 넉넉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클레페의 앤은 1557년 4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사인이 명백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역사가들은 암이 원인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살았던 사람[6]으로 다른 왕비들의 삶이 너무나 파란만장했던 반면에 그녀는 불행했던 잠깐의 결혼 생활을 제외하면 행복하고 따뜻한 삶을 살았다. 왕실의 어른으로 국가행사에서 언제나 대우받았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늘 한결같이 관대하고 상냥했던 그녀의 성품 덕분에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모두 그녀를 진실된 친구로 여겼으며 영국 백성들 역시 그녀를 존경하고 좋아했다. 유언에서조차 그녀는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과 자신을 오랜 기간 모셨던 시종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렇게 가장 자유로운 삶을 만끽했던 왕비는 마지막까지도 우아한 성품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 튜더스에서의 클레페의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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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스 스톤[7]이 연기한 클레페의 앤. 원래는 제인 시모어 역의 오디션을 봤었다고 한다.

영국의 보통 여인들과 달리, 카드나 유흥거리를 전혀 즐기지 않는 딱딱한 생활을 하고 있던 외국인인데다가 잉글랜드와 달리 루터교회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으로 출항하기 전 칼레에 도착했을 때 방문한 찰스 브랜든에게 영국식 예법이나 카드를 배우는 등, 영국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서투른 듯 소심한 태도를 보이지만, 헨리 8세가 자신을 보고 냅다 간 것을 '영국식 예절에 익숙치 않았다'며 자신을 탓하고 메리에게 사촌의 얘기를 꺼내며 남자를 소개시켜주는 등 심성이 착한 여인.

하지만 헨리 8세는 그녀와의 결혼을 무척 후회하고 있었으며, 안나 역시 이 상황에 조바심을 느끼면서도 헨리 8세와의 생활을 괴롭게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메리 역시 그녀가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 때문에 내심 탐탁지 않아했다. 그나마 그녀를 챙기는 것은 혼인을 주선했던 토마스 크롬웰이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8]

끝내 헨리 8세와 이혼을 한 뒤로는 왕의 누이로써 지낸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대신에 엘리자베스를 자기 딸처럼 돌보는 재미에 살고, 메리도 아버지의 이혼 이후에는 철딱서니 없는 캐서린 하워드를 보며 앤이야 말로 정말 좋은 사람이라며 아버지는 앤과 이혼하지 말았어야했다고 한다. 찰스 브랜든또한 그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전과 같은 소심한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고 웃음이 많아졌다.

캐서린 하워드도 맨 처음엔 헨리 8세의 전 왕비인 그녀를 경계했으나, 안나가 그녀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며 다정히 대하자 나중에는 자신이 받은 선물을 안나와 나누어받겠다고 할 정도로 그녀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서툴렀던 카드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나중에 찰스 브랜든을 다시 만났을 때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고 농담할 정도. 사교 스킬 만렙이 되었다

자신을 방문했던 헨리 8세에게 결혼 반지를 돌려주면서 파혼한 헨리에 대한 원망을 지웠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결혼 전 클레브스에 있을 때의 답답했던 생활에 비해 자신이 지금 음악을 듣거나 와인을 마시는 등 자유롭게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행복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캐서린 하워드의 방탕해 보이는 생활에 조금 지쳐있던 헨리 8세는, 안나 클레브스의 착한 심성과 성숙함에 곧 감동하게 되고,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며 그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1. 말년엔 헨리 8세의 궁정화가로 일했는데, 제인 시모어캐서린 하워드의 초상화 역시 그의 작품이다.
  2. 앤과 결혼할 때 헨리의 나이는 49세였다.(...)
  3. 이 때 그가 한 말도 가관. "바다 건너에서 암말이 왔구나!!!!" 이 대사는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약간 대사가 바뀌기는 하지만 - "생긴 게 완전히 말이야! 털 없는 암말이라고!"(She looks like a horse! A furless mare!)
  4. 신붓감 중 하나였던 마리 드 기즈(프랑스공주이자 메리 스튜어트의 어머니)는 헨리 8세가 청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냉큼 스코틀랜드 왕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했고, 다른 유력한 신붓감이었던 밀라노 공작부인 덴마크의 크리스티나는 청혼하러 온 대사에게 대놓고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목이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며 내빼버리기도 했다.
  5. 한편으로 헨리는 다음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는 가녀린 체구라 처녀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처녀는커녕 상당히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했던 여자였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6. 단, 아라곤의 캐서린이 50세에 세상을 떠났기에 가장 오래 살지는 못했다.
  7. 사실 조스 스톤은 가수로 더 유명하다.
  8. 안나는 헨리 8세가 자신과 잠자리도 하지 않을뿐더러 헨리 8세의 다리상처에서 악취가 나는 것이 괴롭다고 토마스 크롬웰에게 토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