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필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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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케빈 마크 필립스
(Kevin Mark Phillips)
생년월일1973년 7월 25일
국적잉글랜드 (England)
출신지하트퍼드셔 - 히친
포지션스트라이커
유스 클럽사우스햄튼 FC (1985–1991)
소속 클럽Baldock Town (1991-1994)
왓포드 FC (1994-1997)
선덜랜드 AFC (1997-2003)
사우스햄튼 FC (2003-2005)
아스톤 빌라 (2005-2006)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2006-2008)
버밍엄 시티 (2008-2011)
블랙풀 FC (2011-2013)
크리스탈 팰리스 (2013-2014)
레스터 시티 (2014)
국가 대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02)
8경기
스태프레스터 시티 수석코치 (2014-2015)
더비 카운티 수석코치 (2015-)

1 소개

해리 케인 이전 EPL 최후의 잉글랜드 득점왕이었던 선수

가장 과소평가된 레전드 중 하나

케빈 필립스는 잉글랜드 출신의 前 축구 선수이다. 그는 90년대~2000년대 잉글랜드 최강의 공격수 중 한명이었다. 특히 선덜랜드 시절엔 나이얼 퀸과 함께 환상적인 투톱으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대표로서 겨우 8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오늘날 그를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분명 EPL 역사에 길이남을 희대의 공격수임에 분명하며 탁월한 몸관리로 22시즌을 소화하며 화려하고도 긴 경력을 세운 점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초기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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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dock Town 시절 필립스 (가운데 인물)

필립스는 1973년 7월 25일 잉글랜드 남동부에 위치한 하트퍼드셔 주의 히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1985년 12살의 나이로 사우스햄튼 유스팀에 입단해 학교를 다니면서 축구 선수로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는 공격수가 되고 싶었지만 키가 고작 170cm밖에 안된다는 이유로 공격수로뛰지 못하고 라이트백으로 활동해야 했다. 그는 사우스햄튼 유스팀에서 1990년경 리저브 경기에 2번 출전했다. 그러나 필립스는 사우스햄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결국 방출되었고 1991년 여름 논리그에 속한 준 프로 팀인 Baldock Town에 입단했다.

Baldock Town에서, 필립스는 수비수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팀내 공격수들이 모조리 부상당하는 악제가 발생하자, 이안 앨리슨 감독은 필립스를 공격수로 전향시키기로 결정했다. 필립스는 소원하던 공격수가 되자 곧바로 진가를 드러냈다. 그는 공격수로서 첫 경기에 2골을 몰아넣었고 이후 팀내 최고 공격수가 되어 논리그를 평정했다. 필립스는 3년간 Baldock Town에서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고 이를 주목한 왓포드 측이 1994년 12월 1만 파운드에 5천 파운드를 보너스로 붙인 이적료를 지불하며 영입했다.

2.2 왓포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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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는 1994-95 시즌 중반기에 왓포드로 이적한 후 팀내 주전 공격수로서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1996년 3월, 그는 발 부상을 당했는데 정밀 진단 결과 무릎에 실금이 나 있고 발 쪽의 인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1년간 축구를 중단하고 수술과 재활에 공을 들여야 했다. 필립스가 1년간 빠져있는 동안, 왓포드는 1995-96 시즌 2부리그에서 강등당해 3부리그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후 필립스는 성공적으로 복귀한 후 다시 팀의 핵심 공격수로서 활약하며 한때 왓포드를 리그 선두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왓포드는 후반기에 거짓말처럼 연패했고 결국 13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필립스는 이렇듯 지리멸렬한 왓포드에서 59경기를 출장해 24골을 몰아넣어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사는데 성공했고 1997년 7월 기본 32만 5천 파운드에 보너스 충족 시 60만 파운드까지 늘어나는 이적료를 지불한 선덜랜드로 이적했다.

2.3 선덜랜드 시절 : 선덜랜드 역사상 최고의 투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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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가 합류할 당시, 선덜랜드는 지난 시즌에 EPL에서 강등당해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선덜랜드는 이 분위기를 제때에 수습하지 못하고 1997-98 시즌 개막 후 15경기까지 치른 상황에서 중위권에 머물렀고 필립스는 겨우 4골만 기록했다. 그러다가 그의 잠재된 포텐이 마침내 폭발하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다음 경기들에서 맹활약하며 7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해 클럽 레코드를 경신했고 홈에서 9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이후에도 맹활약을 선보였고, 마침내 이 시즌에 전 대회에서 35골을 기록하며 눈부신 활약을 선보였다. 그가 기록한 35골은 선덜랜드 역사상 브라이언 클러프가 1961-62 시즌 30골을 기록한 이래 36년만의 일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것이었다. 특히 FA컵 3라운드에서 로더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4골을 몰아친 것과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로더햄을 상대로 2골을 몰아친 것은 그의 활약상 중 가장 눈부신 순간이라 할 만했다.

필립스는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도 선덜댄드의 2번째 골을 기록했지만 73분경 부상으로 교체되었고 선덜랜드는 찰튼 애슬래틱과의 결승전에서 4:4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7:6으로 패해 아쉽게도 EPL 승격이 좌절되고 말았다. 필립스는 훗날 이 결승전에 대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날"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정작 팬들은 이날 경기가 그의 활약상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고.

이후 필립스는 1998-99 시즌이 시작된 이래 첫 주에서 8골을 몰아넣는 미친 활약을 앞세워 팀을 리그 선두로 등극시켰다. 그런데 9월 중순 리그컵에서 체스터 시티와 경기를 치르던 도중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4개월 동안 부상으로 결장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복귀하자마자 또다시 골폭풍을 몰아쳤다. 그는 4월에 베리를 상대로 4골을 몰아치며 선덜랜드의 승격을 달성했다. 그는 이 시즌에 고작 26경기만 뛰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23골을 몰아넣는 미친 활약을 선보였고(컵대회까지 합하면 25골) 팀내 득점왕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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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필립스와 나이얼 퀸

필립스는 EPL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는 그보다 한시즌 먼저 선덜랜드에 입단했던 나이얼 퀸과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였다. 두 사람의 파트너쉽을 요약하자면 '빅 앤 스몰' 전략이었다. 즉, 키가 193cm에 달하는 나이얼 퀸이 큰 키를 이용해 공중볼을 따낸 뒤 필립스에게 전달하면 170cm의 필립스가 빠른 주력을 활용해 쏜살같이 달려가 골을 넣는 방식이었다. 그는 이런 방식에 딱 들어맞는 선수였고 선덜랜드가 EPL로 승격한 첫 시즌인 1999-00 시즌에 무려 30골을 몰아넣으며 EPL 득점왕에 등극했다. 이로 인해 그는 프리미어리그 골든 부츠를 수여받는 영예를 누렸다. 선덜랜드는 이렇듯 나이얼 퀸과 케빈 필립스의 맹활약을 앞세워 한때 대륙 대회까지 노렸지만 아쉽게도 7위에 그쳐 유로파 진출에 실패했다.

2001년 1월, 필립스는 선덜랜드에서 104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팀내 가장 많은 골기록이었다. 그런데 그는 1월부터 5월까지 4개월 동안 불과 1골만 기록하는 부진에 휩싸여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2000-01 시즌에 리그에서 14골, 종합 18골을 기록해 어느정도 제역할은 해줬다. 이후 선덜랜드는 2001-02 시즌 강등 위기에 직면했는데 필립스는 시즌 마지막 날에 더비 카운티를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만들어내 선덜랜드를 17위에 끌어올려 가까스로 잔류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아스날, 토트넘 같은 여러 팀들이 필립스를 영입하려 했지만, 필립스는 "나는 선덜랜드와 함께 미래를 개척하기로 맹세했다"며 선덜랜드에 잔류했다. 그런데 실은 8월 경에 비밀리에 이적요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선덜랜드 감독 피터 리드토레 안드레 플로마커스 스튜어트를 영입한 후 필립스에게 "자네는 더 이상 자동으로 첫번째로 기용되는 선수가 아닐세"라고 경고했고 이에 필립스는 입지가 좁아진 걸 느끼고 이적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고 정작 영입된 공격수들이 죄다 잉여로 전락한지라(...) 그가 리그 38경기 중 32경기를 선발로 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겨우 6골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선덜랜드는 고작 4번 이기고 승점 19점을 획득하고 시즌 득점 21골만을 기록한 채 강등되고 말았다.

이후 필립스는 챔피언쉽에서 뛰고 싶지 않아했고 2003년 1월에 두번째 이적요청서를 제출했지만 거부당했다. 하지만 그는 공개적으로 선덜랜드에서 더 이상 뛰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고 선덜랜드 측은 결국 2003년 여름에 그를 사우스햄튼으로 이적시켰다. 필립스는 선덜랜드에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6년간 235경기에 출전해 130골을 기록했다.

2.4 사우스햄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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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필립스는 사우스햄튼으로 32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이적했다. 그는 그해 8월 16일 레스터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 교체 출전함으로서 데뷔전을 갖게 되었는데 곧바로 골을 기록하며 팀의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이후 그는 9월 20일 토트넘과의 원정 경기에서 2번째 골을 기록했고 유로파 컵 첫번째 라운드에서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상대로 3번째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미들스보로 전에서 1:0으로 패할 때 상대 수비수 프랑크 퀘드루를 걷어차 퇴장당하는 바람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필립스는 4개월 동안 골을 넣지 못하다가 2004년 1월 17일 리즈를 상대로 골을 기록해 2:1 승리를 일궈내면서 시즌 4번째 골을 달성했다. 이후 그는 마지막 4개월 동안 10골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는데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울버햄튼 원더러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사우스햄튼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줬다. 필립스는 사우스햄튼에서의 첫 시즌인 2003-04 시즌을 37경기 13골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그런데 사우스햄튼은 이 시기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필립스가 사우스햄튼에 왔을 때 감독이었던 고든 스트라칸은 2004년 3월에 물러났고 그의 뒤를 이은 폴 스토록은 2004-05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된 8월 23일 5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그후 그뒤를 이은 스티브 위글리 역시 불과 3개월 만에 경질되었고 해리 레드냅이 12월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결국 필립스는 한 해에 감독 4명과 함께 하는 진풍경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혼란에도 불구하고, 필립스는 묵묵히 피터 크라우치와 좋은 파트너십을 맺고 2004-05 시즌 10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우스햄튼은 이 시즌에 꼴지로 추락해 27년만에 2부리그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후 2005년 6월 29일, 필립스는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2.5 아스톤 빌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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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는 2005년 6월 29일 아스톤 빌라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데뷔전인 버밍엄시티 전에서 경기 시작 4분만에 골을 기록해 팬들을 열광시켰지만 얼마 후 부상으로 교체아웃되고 말았고 팀은 졸지에 버밍엄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후 필립스는 온갖 부상에 걸리며 많은 경기를 결장했고 23경기에서 고작 4골만 기록해 아스톤 빌라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8월 22일, 필립스는 7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챔피언쉽 소속 클럽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이적했다.

2.6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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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립스가 웨스트 브롬위치로 이적하기 전, 과거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팀동료이자 선덜랜드의 회장으로 부임한 나이얼 퀸이 그에게 선덜랜드로 와서 함께 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필립스는 그의 가족이 3년동안 3차례 이사하면서 많은 고통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결국 런던에 정착하고자 퀸의 제안을 거절하고 웨스트 브로미치에 입단했다. 그는 첫 시즌에 입스위치 타운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5:1 승리에 기여했고 반슬리를 상대로 다시 한번 해트트릭을 기록해 7:0 완승에 공헌했다. 필립스는 웨스트 브로미치에서의 첫 시즌인 2006-07 시즌 22골을 기록했고 승격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 울버햄튼을 상대로 2차전에서 골을 기록해 1:0 승리를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웨스트 브롬위치는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더비 카운티에게 1:0으로 패해 EPL 승격에 이르지 못했다.

2007-08 시즌, 필립스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11월 초까지 경기를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회복한 후 득점포를 가동하며 리그 35경기 22골, 컵대회 포함 38경기 24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강력한 면모를 과시했다. 이 시기 그는 2008년 3월 13일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통산 200번째 득점을 달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인 QPR 원정에서, 필립스는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2:0 승리에 견인했고 웨스트 브로미치는 마침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다. 팬들은 그의 활약상에 감동해 필립스를 '슈퍼히어로'라고 칭하며 "슈퍼 켑"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필립스는 이 시즌에서의 활약으로 웨스트브로미치 팬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뽑혔고 팀내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2.7 버밍엄 시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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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탁월한 활약을 선보인 필립스를 잡고 싶어한 웨스트 브로미치 보드진은 시즌이 끝난 뒤 계약이 만료되어가는 필립스에게 1년 연장에 19경기 이상 출전 시 한 해 더 연장하는 계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필립스는 이 제안을 거부했고 마침 EPL에서 강등당한 버밍엄 시티의 2년 계약을 수락하고 버밍엄 시티로 이적했다. 그는 2008-09 시즌 개막전에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교체 출전해 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필립스는 다음 2경기(사우스햄튼, 반슬리)를 상대로 골을 몰아넣으며 3연속 득점을 기록했다. 또한 레딩을 상대로 환상적인 골을 넣었는데, 이 골은 나중에 버밍엄시티 올해의 골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008년 12월 20일 레딩전에서 필립스가 기록한 원더골 영상

이렇듯 훌륭한 활약을 선보인 필립스는 2008-09 시즌에 모든 대회에서 14골을 기록했고 버밍엄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한 시즌 만에 EPL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때 그의 나이가 어언 36세였던 터라 EPL에선 경기 출장이 줄어들었다. 버밍엄은 시즌 초반 12경기에서 1패도 하지 않는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다만 후반기에는 성적이 떨어져 중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 겨우 2경기에 선발 출전했고 17경기를 교체 출전해 4골을 기록했다. 다만 이 4골은 버밍엄이 EPL에서 호성적을 거두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먼저 그는 울버햄튼을 상대로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놓고 2골을 몰아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2010년 3월 27일에는 홈에서 1:0으로 지고 있던 와중에 교체 투입되어 후반 92분경 바카리 사냐로부터 공을 빼앗은 후 골키퍼와 1:1 경합 상황에서 절묘하고 구석으로 공을 차 골을 기록하며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다. 더구나 이 골이 그의 통산 250번째 골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은 골이었다.

이후 필립스는 1년 재계약을 체결하고 2010-11 시즌에도 버밍엄에서 뛰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즌 개막 직전 부상을 입는 바람에 많은 경기를 놓치고 말았고 리그에서 5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리그컵에서는 선발로 기용되었고 준결승전에서 3부리그 팀인 브래트포드를 상대로 한 골과 한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결승전으로 인도했다. 그후 버밍엄은 아스날을 2:1 로 격파해 리그 컵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버밍엄은 이 시즌에 18위를 기록하며 강등되고 말았고 필립스는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2011년 7월 10일 블랙풀과 1년 계약을 체결했다.

2.8 블랙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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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풀에 입단한 필립스는 8월 14일 피터보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해 2:1 승리를 이끌어내며 홈 데뷔전을 멋지게 장식했다. 그는 며칠 뒤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원정에서도 2골을 기록해 팀의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또한 11월 5일, 필립스는 밀월과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단 3분만에 이 날 경기의 유일한 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2012년 1월과 2월에는 교체로만 5경기를 뛰어서 3골을 만들어내며 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필립스는 이렇듯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2011-12 시즌 전체 대회에서 17골을 기록해 막 강등당한 블랙풀이 챔피언쉽에서 안정을 찾는데 기여했다. 이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필립스는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해 블랙풀에서 한 시즌 더 뛰게 되었지만 18경기에서 2골만을 기록한 후 2013년 1월 마지막 날 크리스탈 팰리스로 임대되었다.

2.9 크리스탈 팰리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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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는 찰튼 애슬래틱과의 홈경기에 교체 출전해 데뷔전을 가졌고 크리스탈 팰리스는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과거 소속팀이었던 왓포드와의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팀이 2: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교체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급기야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해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또한 필립스는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1골을 포함해 3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어냈다.


2013년 3월 헐시티 전. 이때 그의 연세가 39세 7개월이었다! 이로서 필립스는 크리스탈 팰리스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계다가 그는 이 해트트릭을 8분만에 달성했는데, 이는 크리스탈 팰리스 역사에서 더기 프리드먼이 그림즈비 타운을 상대로 11분만에 해트트릭을 넣은 이래 17년만에 가장 짧은 시간 안에 해트트릭을 달성한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이후 필립스는 5월 27일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왓포드를 상대로 추가시간에 교체 출장해 페널티를 얻어내 골을 만들어내며 팀의 승리를 견인했따. 이로서 크리스탈 팰리스는 고대하던 EPL 승격을 달성했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필립스의 공로를 잊지 않고 2013년 7월 20일 그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필립스는 프리미어리그에서는 4경기밖에 뛰지 못했고 결국 2013년 12월 31일 계약을 해지했다.

2.10 레스터 시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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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5일, 필립스는 레스터 시티와 6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14년 1월 18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데뷔전을 치뤘다. 그후 2014년 2월 1일, 필립스는 본머스를 상대로 출전해 안토니 녹카드의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해 레스터 이적한 이래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 그는 2014년 3월 15일 블랙풀과의 홈경기에서 2번째 골을 기록해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이렇듯 필립스는 잔여시즌에 12경기 출장해 2골을 만들어낸 후 2014년 4월 28일 은퇴를 선언했다. 이때 레스터는 이미 챔피언쉽 우승을 확정지은 지라 남은 경기에 굳이 연연한 필요가 없었기에 필립스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게 배려해줬다. 이에 필립스는 2014년 5월 3일 돈케스터 로버스를 상대로 선발 출전했고 65분 경에 교체되며 홈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것이 그의 통산 660번째 경기이자 선수로서 치른 마지막 경기였다.

2.11 국가대표 경력

필립스는 국가대표로서 1999년 4월 헝가리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이 경기에서 득점 기회를 맞이했지만 아쉽게도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다리에 걸리는 바람에 득점에 실패했다. 이후 그는 74분경 에밀 헤스키와 교체되었다. 이후 필립스는 1999-00 시즌에 EPL 득점왕에 등극했지만 정작 유로 2000에서 벤치에 앉은 채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다. 당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엔 마이클 오언에밀 헤스키가 투톱을 결성하고 거의 매경기를 출장했기에 그의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대표팀으로서 8경기를 출장했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했고 2002년 2월 이후 국가대표로 다시는 뽑히지 못했다.

3 스태프 경력

선수 생활을 은퇴한 필립스는 2014년 여름 레스터의 수석코치로 부임해 한 시즌을 치른 후 2015년 여름에 더비 카운티의 수석코치로 이적하여 현재까지 더비 카운티의 수석코치로 일하고 있다.

4 수상

4.1 클럽

1, 선더랜드

- 2부리그 우승 : 1999년

2.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 챔피언쉽 우승 : 2008년

3. 버밍엄 시티

- 챔피언쉽 준우승 2009년

- 리그컵 우승 : 2011년

4. 크리스탈 팰리스

- 챔피언쉽 승격 플레이오프 우승 : 2013년

5. 레스터 시티

- 챔피언쉽 우승 : 2014년

4.2 개인

2부리그 득점왕 : 1998년

EPL 이 달의 선수 : 1999년 10월

유로피언 골든 슈 : 2000년

EPL 골든 부츠 : 2000년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 1999-00 시즌

챔피언쉽 올해의 선수 : 2007-08 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