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속 표정부터 뭔가 불안하고 빈약해 보인다. 실제 사람의 초상화가 저렇게까지 2D매체 엑스트라 얼굴처럼 되기도 힘든데...
小早川秀秋(소조천수추)
1582~1602
1 개요
통칭 킨고(金吾).[1] 초명은 기노시타 히데토시(木下秀俊). 그 뒤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면서 개명한 이름은 하시바 히데토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먼 혈연으로 아들이 없던 시절에 도요토미가 어떻게든 자신의 혈연자를 세습시키기 위해서 긁어모아온 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2] 그러나 말년에 득남한 히데요시에게 자신의 후계자로 점지해둔 혈연자들은 방해가 되는 존재였고 따라서 모리 가에 대한 견제로 양자로 보내질 뻔 했으나 코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선수를 쳐서 히데아키를 자신의 양자로 달라고 했다. 물론 그러한 노골적인 수작에 넘어갈 히데요시도 아니었으나 평소에 총명한 타카카게를 총애한 것도 있고 타카카게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히데아키가 코바야카와 가를 잇게 될 터였으니 좋다고 치고 넘어가게 된다. 타카카게 사후 이름을 잘 알려진 히데아키로 바꾸었다. 그 후로는 정유재란에 참가하였으며, 일부 기록에서는 정유재란의 총대장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직접 출진하여 싸운 것 때문에 히데요시에게 "총대장의 본분을 어겼다."며 질책을 듣고 에치젠의 작은 영지로 전봉된다. 이 이후 히데요시 사후에 다시 본래의 영지를 찾았다.[3]
전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난 일은 하지 않았다. 세키가하라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내응하기로 했으나 실제로 행동에 나서지 않고 상황을 보고 망설이고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도 망설이고 있는 상황에서, 서군의 격렬한 반격에 오히려 궁지에 몰려있던 이에야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히데아키의 진에 철포 사격으로 출진을 재촉했다. [4] 어쨌거나 히데아키는 당초의 약속을 지켜서 동군 측으로 돌아섰고, 여기에 희생된 것이 오오타니 요시츠구였다. 요시츠구는 히데아키의 배신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지 못하고,[5] 마침내 오오타니 군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본인은 할복한다. 이 때 코바야카와의 진을 향하여 히데아키는 3년 안에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저주했다는 설도 있는데 진위는 불명. 오히려 히데아키가 약 2년만에 죽자 후세에서 덧붙여서 만들어낸 창작 에피소드일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세키가하라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을 가지고 있던 히데아키가 배신함으로서 서군은 패배. 이 때문에 서군의 인기 탓에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 있는데 사실 인기가 많은 다케다 신겐도 동맹을 깬 적이 있고 그 밖에도 많은 장수들이 배신이나 하극상을 일삼은 시대의 인물이라 다소 억울한 감도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은 젊은 나이에 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문 측에서 이것을 숨겨서 사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당시부터 죽은 오오타니 요시츠구의 저주 때문에 앓다가 죽었다는 설은 있었지만 이건 물론 헛소리고, '길에서 시비가 붙어서 칼에 베여서 죽었다', '식사를 나르다가 엎어버린 코쇼[6]에게 할복을 강요하다가 거꾸로 베여서 죽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방침 때문에 암살당했다', 낙마설 등이 있다. 비교적 신빙성이 높은 것은 병으로 죽었다는 것인데 두 명의 형이 모두 병몰했기 때문에 '유전병이나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설이 있다. 초상화만 봐도 건강해보이지는 않잖아[7]
자신에게 훈계를 하는 가신을 베어죽이거나 히데아키의 인물됨에 실망하여 재야로 내려갔다는 가신이 있다는 점하고 인기가 낮다는 점[8]에서 능력 면에서도 혹평을 받아왔으나 실제로 히데아키의 지배령에서는 정치와 경제가 안정되었다는 점과 전공을 세운 기록이 있기 때문에 창작 작품이나 후세의 평가만큼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 정설. 또한 기록에 따르자면 히데아키의 죽음을 백성들이 몹시 아쉬워했다는 부분이 남아있다.
특히나 어릴적부터 상당히 총명하여 와카 등을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말도 있고, 특히나 천하를 갈랐지만, 정작 다수의 대다이묘들은 천하를 가르는 전투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32만석에 불과한 다이묘 주제에 병력을 정말 미친듯이 긁어모아 무려 15000명의 병력을 동원, 요충지에 진을 쳤고. 정말 다수의 병력이다보니 이에야스로부터는 참전을 댓가로 비젠과 미미사카 2개국을 포상으로 받을 것을 약속받았고, 미츠나리로부터는 히데요리가 성인이 될때까지 관백의 자리와 함께 근기지방 2개국을 포상으로 받을 것을 약속받았던걸 보면, 확실히 그냥 범용한 인물은 아니었던 듯하다.
모가미 요시아키가 다테 마사무네의 숙부인데다가 사이가 안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음흉하며 간계를 꾸미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하고 비슷한 요량이다. 일본 내에서는 서군을 치켜올리면서 서군을 배신했기 때문에 부당한 비난까지 듣게 된 기색이 강하다.
어쨌거나 코뱌아카와 히데아키에 대해서는 다른 다이묘들과 마찬 가지로 일본에서도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서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게임이나 소설의 인물됨은 어디까지나 후세의 창작.
……사실 오다 노부나가의 철포 3단 사격이나 다케다 신겐의 다케다 기마군단은 후세의 창작임에도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다루어지기 때문에 일본 전국시대에 관해서는 사료에서 얻어지지 않은 정보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 창작작품에서의 코바야카와 히데아키
2.1 전국 바사라 시리즈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전국 바사라) 문서 참조.
2.2 지휘봉의 행방의 등장인물
비주얼 신장 170cm, 비주얼 연령 16세, 취미는 웃는 얼굴 연습. 좋아하는 것은 죽순.
불편할 정도로 정중한 태도에 생글생글 웃는 얼굴, 천사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어깨 갑옷까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착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역시나 여기서도 배신자. 도쿠가와 측과 내통하고 있었으며, 본색을 드러낸 뒤에는 머리카락도 삐죽삐죽 솟고 1인칭도 달라지며(와타시->오레) 말투도 거칠게 변한다. 도쿠가와 측의 신호로 오오타니 군을 급습하나 오히려 배신에 대비하고 있었던 오오타니 요시츠구에게 패퇴. 이후 등장이 없다가 마지막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호통을 듣고 패배한다. 실존 인물의 최후 탓인지 이때 그동안 배신한 사람들의 허깨비를 보는 듯한 대사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아들 히데요리가 태어나자 코바야카와 가의 양자로 간 것에 상처 받아 인간은 모두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라 여기게 되었다. 믿을 만한 친구도, 믿을 만한 가신도 없는 처지라 오오타니 요시츠구에게도 시마즈 요시히로에게도 동정 받았다.
2.3 기타 창작물
하라 테츠오의 카케무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정유재란 때 여자와 아이들만 잡아 욕먹는 놈으로 바뀌어서 변한 게 없었다. 또한 자신에게 높은 자리를 달라고 이에야스에게 조른게 하필이면 세라다 지로사부로였으니. 아무튼 여기서는 키 작은 찌질이.
토탈 워: 쇼군2의 히스토리컬 배틀에서도 당연 배신. 처음 로딩 화면 때 적군 측으로 소개되어 있어 배신할 거란걸 눈치 챌 수 있다. 군세는 약 1000여명으로 맵 서쪽에 짱박혀 안 싸우고 있다가 도쿠가와 군이 밀리기 시작하면 배신한다. 문제는 아군은 필경 도쿠가와 군과의 싸움으로 약해져있을테고 근처의 시마즈 군은 수도 적고 삐져서 그 전에 안 도와주다가 코바야카와에게 밀려나가기 일쑤다. 그저 도쿠가와 군을 최소한의 희생으로 쓰러뜨리고 코바야카와 군을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그냥 봉록 축내는 쓰레기. 천하창세와 천도에선 하카타 지방의 다이묘로 나오는데, 자기 능력치가 전국패왕 급인 것도 모자라 가신들의 수도 능력치도 변변찮은데다 영지 양 옆에 구로다 간베에와 나베시마 나오시게라는 무시무시한 세력이 있어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한다(사실 역사상 영지 경제력을 조금이나마 반영해 줘서 초기 기반은 히데아키가 약간이나마 더 강하지만 도저히 그거로 만회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인기가 보잘 것 없어서 빠심 같은 거로도 커버할 수 없는 순수한 하드코어 플레이용 세력으로 꼽힌다. 심지어 혁신에서 아예 시동의 손에 죽어버리는 이벤트까지 있다! 그러나 창조에서는 약간 재평가(?)받았다. 개명이벤트에서 미래를 내다본 말을 하고 목소리도 침착한 청년의 목소리다.
창조 PK에서 이시다 미츠나리로 세키가하라 전국전을 진행했을 경우 조건에 맞추어 이에야스와의 약조를 어기고 만오천의 병력을 가지고 서군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승리하면 서군 장수들 끼리 덕담 나누고 있는 가운데 미츠나리가 자신을 관백을 추천하겠다고 하니 대놓고 기뻐한다.
게임 이벤트 내에서는 나름 머리 굴리거나 통찰력이 있는 듯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정작 게임 내 능력치가 폐급인 케이스.
태합입지전 시리즈에서도 역시 쓰레기. 한데 여기서는 유일하게 나오는 시나리오가 1598년 태평의 장인데 큐슈 북부의 다이묘로 나온다. 물론 능력치는 가장 높은 능력치도 40밖에 안되는 쓰레기.수하에도 쓸 만한 놈이 없는 주제에 세키가하라에서 전용이벤트가 있다. 서군에 참가하는 분기를 고를 경우 이에야스의 밀서가 오고 머뭇거릴때에 이에야스가 철포를 쏘며 재촉하는데 이 때 이에야스 편을 들면 동군이 이기고 미츠나리 편을 들면 서군이 이긴다. 특이한 점으론 다른 이벤트에 참여하는 다이묘들은 대개 한 쪽 편을 들경우 다른 한쪽 편에 선 인물과 이벤트 전투가 있는데, 이놈은 워낙 무능해서 그런지 한쪽 편을 들 경우 그냥 그 쪽이 승리한다. 서군편을 들경우 오와리로(거성은 키요스성), 동군편을 들경우 빗추국으로(거성은 오카야마성) 전봉되는데 어느쪽으로 가도 기존보다 땅은 넓어지니 선택은 자유. 다만 성의 수는 서군편을 들어서 오와리로 전봉될때가 더 많다. 그리고 동군편을 들 경우 더 이상 이벤트 진행은 없으나 서군편을 들 경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 승리할 경우 서군측 장수들에게 나오는 가상 이벤트인 후지미카와 전투가 있다. 원군으로 우키타 히데이에 부대가 붙긴 하지만 여기서 패하면 게임 오버(-_-)
- ↑ 히데아키가 받은 관직 중 하나의 중국명인 집금오에서 유래한 별칭이다.
- ↑ 히데아키의 경우는 큰 처남의 다섯 째 아들.
- ↑ 하지만 이설도 있다.
- ↑ 라는 설이 있는데 사실 이건 후세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철포의 성능으로 이에야스의 진에서 사격을 해봐야 히데아키의 진까지 그 소리가 들릴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수 백 명이 한꺼번에 쏘아대는 철포 소리는 충분히 들린다. 당시 수 만 명이 목격한 전투 기록이라서 이에야스가 철포를 쐈다는 것이 통설이다..... 라지만, 안개가 껴있던 데다 그 전 철포 사격으로 연기가 자욱하고 굉음으로 차있던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의 철포사격을 구분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 ↑ 통솔 병력이 1,500 대 15,000으로 열 배나 차이가 났음에도 일시 후퇴시켰을 정도이나, 타군의 병력들이 가세하여 결국 중과부적이었다.
- ↑ 시중을 드는 역할을 가진 비교적 신분이 낮은 무사 등의 자식
- ↑ 술로 인한 주독으로 죽었다는 의견이 현대에는 있다.
역시 모토나리 옹의 말은 맞았다 - ↑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 인기가 높은 무장은 낮은 무장의 공로까지 흡수하는 경우가 있다. 사나다 유키무라와 모리 카츠나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