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정보부의 행동 부대인 작전부내 군사정보과. 이 부서에서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소위 혁명 열기가 강한 지역에 군사 고문을 파견하는 일을 담당하기에 용병이나 다름없었다.
"공산국가에 용병?"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으나 쿠바는 공산 혁명 후 야심차게 시작한 경제개발계획이 미국의 경제봉쇄와 소련의 무관심, 지도층의 무능으로 실패함에 따라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서 다수의 용병을 친공 국가들에 파견한 실적이 있는 나라이다. 특히 소련은 소련군을 보내기 힘든 아프리카 지역에 쿠바군의 파병을 돈과 장비를 쥐어줘가며 독려하기도 했다.
1965년에 체 게바라가 지원자들을 이끌고 콩고 동란에 참가했던 것이 처음이나 이때는 중국-소련 국경분쟁으로 소련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자 '모택동주의자'들에 의해 구성된 콩고의 공산세력이 친소 정책을 유지하던 쿠바에게 등을 돌렸고 결국 쿠바인 용병들은 얼마 있지도 못하고 쫓겨나듯 철수하고 말았다. 다만 짧은 체류 기간 중 싸움을 벌였던 와일드기스는 그들을 상당한 투사들이라 칭찬했다.
이후 라울 카스트로가 정보관리국 국장에 오르자 정보관리국의 주도로 본격적으로 쿠바 정규군에서 인원을 차출, 돈을 위한 군대의 수출에 나서게 된다. 특히 유명한 것은 1975년에 있었던 르완다 내전으로 당시 쿠바는 소련의 지시에 따라 연 인원 35만명에 따르는 속칭 '군사 고문'. 실제로는 전투 병력을 르완다에 파견했고 남아공군과의 격전으로 2,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당시 UN총회에서 미국 대표가 쿠바군을 '소비에트 제국의 구르카병'이라고 비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소련 측이나 쿠바 측은 그러는 미국도 중남미에서 용병일을 한다고 맞받아치면서, 결정적으로 쿠바에 쿠바계 용병이나 다를 거 없는 이들을 침투시킨 게 누구냐고 미국을 같이 비난했다. 이 말에 당시 미국 대표는 뭐라고 반격할 건덕지가 없어서 그런지 그냥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 난데없이 쿠바군이 나오곤 하는데 영화 부시맨2에서도 쿠바군 1명과 남아공 산림관리원이 뒤엉키며 소동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