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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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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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의 국가정보
국기
국장
공식명칭르완다 공화국(Repubulika y'u Rwanda)[4]
면적26,338㎢
인구12,661,733명(2015)
인구밀도419.8명/㎢[5]
수도키갈리
정치체제이원집정부제 (사실상 대통령제)
대통령폴 카가메 (Paul Kagame)
임기2000년 4월 22일 ~ 2003년 8월 25일
2010년 8월 9일 ~ 2017년 4월 22일(예정)
총리아나스타즈 무케레지
명목 GDPGDP84억 6,800만 달러(2015)
1인당 GDP743$(2015)
GDP(PPP)GDP136억 8,400만 달러(2011)
1인당 GDP1,340$(2011)
수출1억 5,280만 달러(2010)
수입3억 6,570만 달러(2010)
공용어르완다어 (공용어), 프랑스어 (국가어), 영어 (상용어)
민족구성후투족 84%, 투치족 15%, 트와족 1%
종교가톨릭 56.5%, 개신교 37.1%, 이슬람 4.6%
화폐단위르완다 프랑 (Franc)
ISO 4217 : RWF
국가(國歌)아름다운 르완다(르완다어: Rwanda nziza)
모토통일, 노동, 애국(Ubumwe, Umurimo, Gukunda Igihugu)
이전 국가루안다-우룬디(벨기에)

1 개요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동부의 5대호 지구 안에 있는 작은 내륙국. 면적은 26,338 km2. 남한의 1/4 크기다.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와는 다르기 때문에 혼동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KOEI社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는 루안다를 "르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마 번역상의 오류인 듯 싶다. 이 기사도 루안다를 르완다라 써서 댓글에서 지적당했다.[6]

2 자연

2.1 지리

우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천 개의 언덕의 땅"이라 불리는 험한 산악 지형이지만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된다. 그래서인지 인구밀도도 인구가 1000만 이상인 국가중에서 4위이다.[7]

2.2 인구 및 언어

국토 대부분이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투치족과 후투족 그리고 트와족이 있는데 이 중 투치족과 후투족은 서로 사이가 나빴던 영향으로 이들 종족끼리 내분 및 내전을 일으켰던 전적이 있었다. 공용어는 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8]

2.3 기후

고산 지대인 만큼 연중 20℃ 정도의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을 갖고 있으며, 대륙 아프리카 안에서 가장 조밀한 인구분포를 나타낸다. 인구가 무려 1047만 명에 달하며, 이는 이웃의 큰 나라 우간다의 3분의 1, 면적으로는 80배가 넘게 큰 대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의 6분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결과적으로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토지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3 역사

3.1 고대

거의 1만 년 전 피그미족인 트와(Twa) 족이 어디선가 르완다로 이주해 왔으며, 약 1000여년 전 반투족이 이주해 왔다. 이들은 20여 개의 우브워코(ubwoko)라는 부족을 이루었다. 18세기엔 이 부족들이 8개의 왕국을 세웠는데, 지금의 투치에 속하는 니기냐(Nyiginya) 부족의 르완다 왕국도 이 중 하나였다.

3.2 근대

이후 19세기 말부터 부룬디, 탄자니아와 함께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독일 제2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들은 르완다 왕국을 없앤다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계속 꾸준히 영향력을 늘려갔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전에 의한 베르사유 조약으로 1919년에 벨기에 위임 통치령이 되었다. 벨기에는 식민통치를 위해 소수인 투치족을 '관리지배층'으로 선택해 특혜를 주었으며, 박탈감을 느끼게 된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이후 1946년에 부룬디와 합병되어 벨기에신탁통치령루완다 우룬디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다만 부룬디 왕국은 존속해 있었다.) 1959년에 별개의 왕이 상주해있던 부룬디와 분리되어 신탁통치하의 르완다 왕국(Ubwami bw'u Rwanda)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 해 투치족의 지배에 분노한 후투족의 반 투치족 봉기가 일어나 르완다 왕국은 무너졌으며, 1962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초대 대통령인 카리반다는 투치족을 외래종족으로 간주하면서 투치족 탄압정책을 펼쳤고, 1965년에 후투족 일당 독재 국가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인종 분규과정에서 1만명의 투치족들이 학살되고, 약 30만에 달하는 투치족들이 해외로 추방되었다.

3.3 현대, 르완다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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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베날 하뱌리마나 대통령.

그러나 1973년 쿠데타로 쥐베날 하뱌리마나(Juvénal Habyarimana) 대통령이 집권했다. 그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투치족을 학살했다. 그러자 1979년 해외 망명 르완다인들이 르완다 후투족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투치족의 폴 카가메를 중심으로 르완다민족통일동맹(Rwandese Alliance for National Unity, RANU, RPF의 전신)이 결성되었다.

그래도 쥐베날은 초기에 정계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투치족을 포용하려는 듯했고,[9] 경제성장에도 제법 힘을 써서 그의 집권기 르완다는 주변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20년에 이르는 집권기간에서 보듯이 하뱌리마나는 야당을 허용하지 않고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독재자였으며 1960년대-70년대 초반의 후투족 지도자보다 온건하지만 고위각료 30명중에 1명만 투치족을 배정하는 등 여전히 투치족을 차별하는 정책을 펴는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당시에 경제상황이 괜찮았기에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80년대 후반에 커피값이 폭락하면서 경제가 파탄나고 IMF로부터 손을 벌려야되는 처지에 내몰렸다., 이를 틈타 그 동안의 투치족 차별에 분노한 투치족들과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끼지 르완다에서 추방된 투치족들(1990년 당시에 인구의 폭풍증가로 60만명대로 늘어났다.)을 중심으로 RPF(르완다 애국전선)을 결성해 1990년 내전을 일으켜 전쟁이 일어났다. RPF는 처음엔 잘 나가다 이내 장비 부실과 내분으로 몰락했다. 그래도 이후 북부 지방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세를 늘렸고, 기존 후투족 기득권층은 불만을 돌리려는 겸해서 투치족들을 몰살해야한다는 프로파간다 신문과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후투족들을 선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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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뱌리마나가 현실을 깨닫고 1991년 헌법에서 다당제를 허용하고, 1993년 아루샤 조약으로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내전과정에서 반 투치족 선전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이러한 선전물이 후투족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내전이 끝난후에도 과도 정부가 조약대로 성립하지 않았고 르완다 정부내에서 벌레같은 투치족의 지배를 용납할수 없다는 강경파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투치족과 권력을 공유해야한다는 온건파가 나누어지는 등의 혼란이 펼쳐졌으며, 정부내의 후투 강경파의 후원으로 살인 무기들이 대거 일반인들에게 배급되었다. 그리고 1994년 하뱌리마나 대통령이 시프리앵 은타랴미라 당시 부룬디 대통령이 함께 평화협상에 대해 논의하러 가는길에 함께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하루 뒤에 후투 온건파인 총리도 암살당하는 사태까지 연이어 일어나면서 미디어전에서 강세를 보인 후투 강경파가 세를 불러나가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1990년대 초반까지의 부룬디처럼 투치족들에게 지배당할까봐 공포에 떤 상당수의 후투족들도 이러한 공포분위기에 동참, 학살에 대거 나서며 3달여간 르완다 학살이 벌어지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최소 50만명에서 최대 107만 1,000명(RPF 주장)이 학살당하였으며(현재는 80만명이 정설이다.) 살아남은 투치족 여인들은 대거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당해야했으며, 부모를 잃은 고아들과 남편가 가족을 잃은 과부들도 대거 속출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들이었고 대학살로 르완다 내 투치족의 약 70%가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다룬 영화가 호텔 르완다.

그러나 르완다 내의 참상이 국제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후투 강경파가 고립되어나갔고, 이 틈을 타 RPF가 키갈리를 점령하고 학살을 주도한 후투 강경파들이 힘없이 밀려나가자, 인구의 반 가까이에 달하는 300만 명이 넘는 후투족들도 보복을 당할까봐 공포에 떨며 피난을 떠났다. 이후 RPF는 르완다를 장악하고 전투 중지를 선언하고, 후투 온건파와 거국정부를 수립하였으며, 대다수의 후투족들도 보복학살극이 펼쳐지지않게 되고, 자이르에서 내전이 터지면서 다시 르완다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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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그리고 RPF를 이끈 투치족 폴 카가메는 후투계 파스퇴르 비지뭉구를 정부수반으로 하는 신정부를 출범시켰고, 2003년 대선에 출마해 9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4 정치

폴 카가메는 인종, 민족, 종교에 대한 차별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치안을 엄청나게 개선시켜 콩고민주공화국 접경 지역을 제외하면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양호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도 상당히 높아 연평균 7%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부패가 심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정부의 부패 척결 의지로 보았을때 아프리카에선 가장 깨끗한 편이어서 부패인식지수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5점을 받고 있다. 교육 수준 또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게다가 정부 효율성 항목에서 세계 7위를 달성했다! 카타르, 싱가포르, 핀란드, 홍콩, 아랍에미리트, 뉴질랜드 다음이 르완다인데 이 나라들과 르완다의 경제 규모 차이를 생각하면... 좋은 쪽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폴 카가메는 철권통치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경쟁자 정치인인 빅투아르 잉가비레를 콩고민주공화국 후투 게릴라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시키거나 여러 신문들을 폐간시키고 있고, 심지어 몇몇 정치인들이 실종되기도 했다. 르완다의 언론자유지수는 2013년 179개 국 중 161위를 기록하고 있다. [10] 참고로 르완다는 벨기에의 지배를 받았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추가시키고 프랑스어 배제정책을 취하는 등 언어다양성에도 역행하고 있다.[11]

최근 헌법을 개헌하여 폴 카가메는 3선 개헌처럼 장기 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조선일보 기사 이런 건 안 배워도 되는데

5 경제

커피가 많이 나는 곳이다. 르완다 커피는 아라비카 품종을 100% 재배하고 있으며, 주로 독일, 일본 등 선진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르완다 커피를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2]
2014년에는 경제 성장률이 7%를 달성하는등 상당한 호경기다.

6 상징물

6.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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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는 범(凡) 아프리카의 전통색깔인 3색(빨강, 노랑, 초록)이 왼쪽부터 늘어선 바탕에 르완다의 영문 머릿글자인 'R'자(字)가 들어갔던 국기[13]를 사용했는데 그 중 빨강이 유혈참사를 부르고 분노를 조장한다는 지적 때문에 빨간색을 아예 빼버리고 파란색을 채택하여 새로 디자인해서 쓰기 시작, 새로 변경된 국기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르완다의 초딩들은 국기 그리기 난이도가 상승하자 멘붕했다 카더라 참고로 이 도안은 르완다의 화가가 직접 고안하였다고 한다.

7 외교 관계

7.1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1963년에 수교하였고 북한과는 1975년에 수교하였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는 선수단을 서울에 파견하기도 했다. 주 르완다 한국 대사관은 2010년에 개설되었고, 주 한국 르완다 대사관은 2008년에 개설되었다. 현재 르완다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200여명 수준.
  1. 황색경보 발령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2. 콩고민주공화국ㆍ부룬디 접경지역
  3. #
  4. 르완다어. 프랑스어로는 République du Rwanda, 영어로는 Republic of Rwanda라고 한다.
  5. 이웃나라와 비교해 보면 부룬디의 1.4배, 우간다의 3배 ㅡ 이 두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ㅡ 탄자니아의 9.0배, 콩고민주공화국의 14.4배에 달한다. 그러나 남한보다는 인구밀도가 낮다.
  6. 그런데 이 기사 윗부분을 보면 '루안다 2년 연속 1위'라고 잘 적어 놨다.
  7. 나머지 세개 국가는 순서대로 방글라데시, 타이완, 대한민국
  8. 근데 폴 카가메의 독재정치와 프랑스어 배제정책때문에 프랑스어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9. 그래서 당시에 일부 투치족들이 중산층에 진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사회적인 시선은 영 곱지 않았긴 했지만...
  10. 2010년에는 16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1. 예를 들자면 정부홈페이지에는 영어와 키냐르완다어로만 설정하게 해놓는 것 등. 의회홈페이지에 프랑스어가 포함되어 있는 점이 있다면 대조적이다.
  12. 이 기사
  13. 범(凡) 아프리카의 주색(主色)인 삼색에 르완다의 영문머릿글자인 'R'을 표기하여 넣었는데 'R'은 '혁명(revolution)'의 머릿글자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