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통화 | |||
동카리브 달러(Organisation of Eastern Caribbean States)[1] | |||
바하마 달러 | 자메이카 달러 | 바베이도스 달러 | 트리니다드 토바고 달러 |
쿠바 페소 | 도미니카 페소 | 아이티 구르드 | |
캐리비안 길더 | 아루바 플로린 | 케이먼 달러 | 버뮤다 달러 |
Cuban Peso
당연하겠지만 쿠바를 패달라고 반말하는게 아니다.
목차
쿠바의 페소계 통화로, 내국인용(CUP)과 외국인용(CUC)이 따로 있는게 특징이다. 외국인용인 쿡은 태환권의 일종으로, 사회주의국가체제라면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요소이긴 하나.., 쿠바만큼 특별하게 취급되는 경우도 꽤나 드문 경우에 속한다.
1 내국인용 - 쿠바 페소
ISO 4217 코드는 CUP. 그래서 흔히 "쿱", "컵" 혹은 "쎄유뻬"라고 한다. 현지어로 정식명칭은 모네다 나씨오날(Moneda Nacional), 기호는 $(타 통화와 구분할때는 $MN)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쿱이고 컵이고 다 못 알아듣고 모네다 나씨오날이라고 불러야만 알아들으니 주의.
그래도 내국인용이라고 해서 외국인이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며, CUC에서 CUP으로의 환전도 가능하다. 다만 CUP을 CUC이나 다른 외화로 환전 안 해주니까 문제지...[2] 환율은 대략 미국 1/24달러(그러니까 "4센트/쿱" 정도)보다 좀 못하는 정도인데, 어차피 직접환전이 안되니 참고로만 알아두자. 한국돈으로 치면 대략 40원/쿱 정도이다. 인플레는 약 4%대(2008) 수준으로 의외로 무난하다.
외국인용인 쿡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다양한(?) 도안을 갖고 있기는 하나... 세밀하게는 좀 대충 만든듯한 퀄리티가 특징...이라면 특징. 체 게바라가 그려진 3페소짜리 지폐나 동전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유달리 유명하다. 때문에 일부 몇몇 쿠바인이 이런 유명세를 이용해 호갱님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이랍시며 비싸게 팔아넘기려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은행에 가면 잔뜩 쌓여있는게 그거다. 그냥 은행가서 그걸로 바꿔달라고 하면 준다.
첫 등장은 사실상 1905년(Banco Nacional de Cuba)시리즈[3]지만 인쇄되지 않았고, 이후 은본위제로 쭉 가다가 1949년에서야 현대식 시리즈를 발행하였다.
1.1 1기 (1차)
1949~1950년에 걸쳐 도입된 시리즈로, 초기 4종류, 후기 5종류해서 총 9종이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1:100으로 디노미네이션을 당했다. 그리고 소액권을 발행하지 않아서 100페소 이하는 그대로 삭제+폐기크리.
앞면 | ||
$1 | ||
$5 | ||
$10 | ||
$20 | ||
$50 | ||
$100 | ||
$500 | ||
$1,000 | ||
$10,000 |
1.2 2기 (2차)
1953~1958년에 걸쳐발행한 시리즈...인데, 사실상 61년 시리즈의 선행정도로 쳐준다.
특이점이라면 체 게바라가 당시 쿠바 은행의 총재로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그의 사인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원체 돈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냥 "체(Che)"라고 휘갈겨 쓴 것이 전부다.
앞면 | 뒷면 | ||
$1 | |||
$5 | |||
$10 |
1.3 2기 (3차)
1961년에 도입된 시리즈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산주의체제로 돌아서버려 정세가 진정되어(?!) 장수할 수 있었다. 참고로 체코슬로바키아 생산.
종류는 기존 3종에 고액 3종이 추가되었고, 뒤늦은 1983년에 그 유명한 체게바라 3페소가 추가되어 모두 7종류가 되었다. 다만 고액 2종인 50페소와 100페소는 단위가 너무 큰 탓인지 거의 쓰여지질 않아 통용권보다 견양권이 더 흔해져버린 이상한 희귀품이 되어버렸다. 사실 견양권을 외화벌이용 수출품으로 써먹은 탓도 있지만.
뒷면 도안이 어떤 면으로는 공포스러운 시리즈이기도 하다. 모든 그림들이 쿠바 혁명에 관련된 정치, 전쟁, 군인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 일부러 뒷면만 올린건 눈의 착각입니다..
앞면 | 뒷면 | ||
200px | $1 | 현행권 참고 (동일인물) | 피델 카스트로의 아바나 행진 |
200px | $3 | 체 게바라가 사탕수수를 베는 장면 | |
200px | $5 | 쿠바 침범 (1958년 9 ~ 10월) | |
200px | $10 | 아바나 선언 (1960년 9월 2일) | |
200px | $20 | 그란마(Granma)[4] 양륙 (1956년 10월 2일) | |
200px | $50 | 외국인 보유 산업시설[5]의 국유화 | |
200px | $100 | 산티아고 소재 몬카다 병영 습격[6] |
페소 동전도 사실상 이때 처음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은본위때 만들어진 것 뿐.)
1962년 20, 40센타보 니켈동화가 출시되고, 이듬해 1, 5센타보 알루미늄화가 나왔다. 그러다 69년에 20센타보가 알루미늄으로 바뀌었고, 1983년에 2센타보와 1페소가 새로 나왔다. 이것도 알루미늄. 알루미늄 비싼 건 알아가지고...
1.4 2기 (4차)
1991년에 도입된 시리즈. 무려 30년만에 바뀌었다.[7] 믿었던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본격적인 봉쇄조치가 본격적으로 위압감을 불러일으키며 인플레를 걱정한 것이 교체원인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취급은 95년 시리즈의 선행판. 하지만 이쪽이 더 색감이 화려하다. (...어?) 전작의 삭막하고 흠좀무스러운 분위기의 일부도안이 그나마 화사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만 사용량이 너무 적었던 100페소는 나오지 않았다.
동전 부문에선 3페소짜리 체게바라 동전이 1990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재질은 니켈동화. 그 2년후에 니켈과 철재로 전면적인 소재변혁을 일으켰고, 2004년에 40센타보의 통용을 중지시켰다.
1.5 2기 (5차, 현행권)
1995년부터 2001년에 걸쳐 도입되었는데 전판과 디자인 자체는 동일하나 색감등이 달라졌다. 다시 추가된 100페소는 은행발족 50주년 기념권으로 처음 등장했다가 이듬해부터 통용권으로 정착한 사례. 지폐 중 1페소화와 3페소화는 컬러판이 먼저 나왔다가 모노톤으로 다시 바뀌었다.
현행권 | 앞면 | 뒷면 | |
width=100% | $1 | 호세 마르티 (독립운동가 겸 문인.)[8] | 피델 카스트로의 아바나(Havana) 입성 행진 |
width=100% | $3 | 체 게바라[9] | 체 게바라가 사탕수수를 베며 지나가는 장면 |
width=100% | $5 | 안토니오 마세오 | 만고스 데 바라구아(Mangos de Baragua)에서의 안토니오 마세오(쿠바측)와 마르티네즈 캄포스(스페인측)의 협정장면 |
width=100% | $10 | 막시모 고메즈 | 만인의 전쟁(...)[10] |
width=100% | $20 | 카밀로 시엔후에고즈 | 농업의 발전 (이라 쓰고 바나나 수확이라 읽는다.) |
width=100% | $50 | 칼릭스토 가르시아 이니구에즈 | 유전-생명공학 센터 |
width=100% | $100 | 카를로스 마뉴엘 데 세스페데스 (독립운동가 - 1차 독립전쟁(일명, 10년 전쟁)의 실질 주도자.) | 반제국주의 호민관, 호세 마르티와 건설중인 아바나 |
width=100% | $200 (2015.1.2) | 프랭크 파이스 | 학교 |
width=100% | $500 (2015.1.2) |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 (독립운동가 - 1차 독립전쟁의 리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 아바나 공항이나 광장에도 이그나시오의 이름이 붙었다.) | 과이마로 헌법 제정 |
width=100% | $1,000 (2015.1.2) |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 (미국을 빽으로 삼아 독재정을 펼치던 마차도 정권에게 반기를 든 대학생 운동가의 리더. 26세때 마차도 정계에게 암살당했기에 지폐에도 젊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 아바나 대학 |
2 외국인용 - 쿠바 교환페소 (Convertible Peso)
ISO 4217 코드는 CUC. 그래서 흔히 "쿡", "쎄유쎄"라고 한다. 실질적 가치는 1쿡은 24쿱 정도인데, 막장경제 앞에서 그런 거 없다는게 일상인 점이 개그. 쿠바 현지인들에겐 CUC나 CUP나 사실상 가치가 똑같게 적용되어 의미가 없다. 다만 쓰임새의 차이는 있기는 한데 페소는 보통 생필품을 값싸게 구입하거나[11] 길거리나 국영식당에서 음식을 사먹을때, 혹은 공납금을 낼때[12] 쓰고 쿡은 고급 슈퍼마켓과 암시장에서 외제품을 사거나 인터넷 사용, 고급 레스토랑 출입 같은 고급 유희생활(?)을 즐기는데 사용한다.[13] 외국인 입장에서 CUC를 사용할 일은 주로 숙박비나 어디 입장료 내는 경우. 그 외에 길거리에서 주스 사먹거나 할 때 CUC를 내밀면 CUP로 잔돈을 주긴 주는데 이때는 거의 1CUC=20CUP로 쳐서 주니까 주의. 사실 쿠바 정부차원에서도 빈부격차 확대를 부채질하고 쿠바인들의 월급이 미화 기준으로 꼴랑 몇십달러 정도에 머물게 만들어[14] 젊은 노동력의 이탈을 가속화 시킨다는 점때문에 이중환율제도를 폐지한다고 검토해본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쿠바 경제가 그리 탄탄한 상태가 아닌지라 이중환율 제도를 폐지했다가 공공물가와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는 참사가 벌어질수있기때문에(...) 현재까지 폐지가 미뤄지고 있다.
페그가 걸려있어 무조건 미국 1달러와 같은 환율이지만, 수수료를 왕창 떼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비싸다고 봐야 한다. 행여나 쿠바로 여행가게 된다면 환전할 때 미국 달러로 환전하면 저어어어얼대로 안된다!라고 단언이 가능할 정도로 세다. 무조건 캐나다 달러나 유로를 챙겨가서 현지에서 환전하자.
2.1 A, B, C, D 시리즈
굳이 네 시리즈를 모두 모아놓은 이유가... 추후에 설명할 예정이다..
2.2 E 시리즈
특별히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D시리즈 이후에 나왔으니 E시리즈라 명명하고 있기는 하다.
앞면 | 뒷면 | ||
$1 | 갑자기 튀어나와 나라를 구한 바로 그 외쿡인 | ||
$3 | |||
$5 | |||
$10 | 현대중공업 발전기[15] | ||
$20 | |||
$50 | |||
$100 |
동전의 경우 종류는 내국인용과 거의 동일해도 좀 더 다양한 편이다. 대신 20센타보와 3페소짜리 동전은 없다. (1센타보, 10센타보, 25센타보, 50센타보, 5페소 추가.) 하지만 쿱과 쿡은 서로 도안이 다르니 동전을 서로 헷갈리지 않도록 분별을 잘 해두는 것이 좋다. (행여나 쿱을 줘야하는데 쿡을 줘버렸다면... 아, 망했어요.)
3 이야기거리
세계대전Z에서는 쿠바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는 바람에 이 돈이 기축통화가 된다.- ↑ 세인트크로이스, 세인트키츠네비스, 안티구아바부다, 과델루프, 도미니카 연방, 마르티니크,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다에서 사용한다.
- ↑ 쿠바 사람은 가능하다.
뭐야 이거.. - ↑ 이것 이전에도 물건이 있었지만, 그땐 식민지시절이었다. 그래서 발행명도 에스파냐 은행 아바나 지점(Banco Espanol de la Habana)
- ↑ 피델 카스트로가 멕시코에서 이끌고온 병력을 태운 배 이름이다. 지폐의 모습은 시에라 마에스트라 기지에 상륙했을때의 모습을 묘사.
- ↑ 그 외국인이라 함은 바로 미국이다.
- ↑ 1953년 7월 26일에 일어났으며, 쿠바 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
- ↑ 대개 10~15년 주기로 바꾼다.
- ↑ 원래 문인을 목표로 했지만 막장으로 돌아가는 쿠바를 쥐어잡는 스페인에게 불만을 품게 되어
악플러이를 표현한 작품을 다수 내놓게 된다. 이 과정에서 2번이나 감옥에 갔는데 처음 입창되었을때 그의 나이는 고작 17세였다(...)청소년보호법 따위는 없다이 경험으로 완전히 불타올라 결국 혁명당을 세우고 제 2차 쿠바독립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때 자신도 참가했다가 전사하고 만다. 아이러니한 일은 그가 스페인을 피해 망명한 미국에 의해 독립에 성공했지만, 그걸 빌미로 미국은 쿠바를 사실상 식민지배로 놓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쿠바가 미국을 증오했던건 이런 이유. - ↑ 이 사람이 유명한 이유는... 1900년대 초중반 쿠바 역사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간단한 정리.
- ↑ 지폐 하단에 쓰여있는 정식 명칭이다. (Guerra de todo el Pueblo)
- ↑ 예를 들면 빵이나 휴지, 기저귀, 분유 등
- ↑ 물론 민간숙박업소에서는 외국인 손님을 받기 때문에 공납금을 쿡으로 낸다.
- ↑ 쿠바는 인터넷 이용비용이 비싸기 때문에(1시간 사용에 2쿡) 인터넷 사용이 엄연한 고급 유희문화에 속한다(...)
- ↑ 이중환율제도를 적용하기 이전에는 쿠바인들의 월급이 미화로 칠 경우에는 여타 중남미 국가들가운데서 앞도적으로 잘산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빈부격차가 적었다는걸 감안한다면 평균적으로는 그럭저럭 잘산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의 경제난과 그 이후의 이중환율 정책때문에 실질임금이 많이 까이게 되었고 현재도 이중환율정책의 영향으로 쿠바인들의 봉급은 미화로 30-50달러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다.
- ↑ 2005년 에너지 혁명 사업때 지어졌다. 빠른 A/S가 훌륭해서 정부가 감동먹어 도안에 넣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