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이 후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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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이 후세인(아랍어: قصي صدام حسين‎ 쿠사이 사담 후세인 알-티크리티, 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

1 개요

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

사담 후세인차남. 사담 정권 시절에는 우다이 후세인이 워낙 천하의 개쌍놈이였는지라 이라크의 제 2인자자리를 박탈당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면전을 벌이자 미군과 맞서 싸우다가 2003년 7월 22일에 형 우다이, 아들 무스타파와 같이 전사했다. 키는 사담 후세인과 비슷한 장신이였다.

2 생애

사담 후세인과 사자디 탈파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인 우다이가 천재인 동시에 천하의 개쌍놈인지라 사담 후세인조차 도저히 감당이 안되서 결국 자신의 후계자 자격을 박탈하고 쿠사이를 사담의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형만큼 잔악무도하지는 않았으나 쿠사이 역시 한성깔 했다. 1991년에는 이라크 남부지방을 독식하기 위해 일부러 이라크 남부지방에 있는 을 파괴했는데, 쿠사이는 그 늪을 죄다 농지로 개간하기 위해 그렇게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아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때 늪지대와 습지생태계 파괴로 인해 이 지역에 기반을 잡고 있던 어촌들과 각종 부족문화가 붕괴되기도 했으며, 후세인 축출 및 사형 이후 UN유럽미국 생태학자들이 이 지역 환경의 복원을 위해 노력 중이기도 하다.

이라크 내부에서 쿠사이는 사담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주도했으며, 이로 인하여 아버지에게 신임을 얻어가고 있었다.

미군의 침공이 개시되자 사담은 쿠사이에게 자기가 원하는 곳 중 한곳의 방어를 책임지도록 조치했다.

3 최후

2003년 전쟁이 시작되고 이라크군이 연패를 거듭하며 불과 1개월여 만에 무너지자 쿠사이는 형 우다이, 아들 무스타파와 같이 모술에 틀어박혀 농성전을 벌였다. 이때 쿠사이 형제가 상대한 부대는 미 육군 제101공중강습사단 병력 200여 명이었고, 결국 중과부적으로 4시간여의 전투 끝에 전원 전사했다. 대전차미사일 등 사람 잡는 것 치곤(?) 무식한 화력을 동원한 탓에, 형 우다이와 함께 시체가 처참하게 조각나 공개하기 전 짜맞추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이후 티크리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4 기타

하우스 오브 사담에서는 후세인의 가족 중 그나마 멀쩡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데빌스 더블에선 꽤 멀끔하게 나오는데 큰 비중은 없는 진중한 사람으로 나온다.

5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