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lash
과거 (왼쪽부터 니키 '토퍼' 히든, 믹 존스, 조 스트러머, 폴 시머넌) | 현재(왼쪽푸터 폴 시머넌, 니키 '토퍼' 히든, ?, 믹 존스. 조 스트러머는 2002년 타계하였다. |
섹스 피스톨즈와 함께 영국 펑크의 신화이자 전설
펑크 록이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후대에 큰 영향력을 끼친 밴드
영국출신의 펑크 록밴드. 영국의 펑크씬에서는 그 후배이지만[1] 섹스 피스톨즈와 함께 양대산맥의 부류로 취급받을 정도로 이미 그들은 영국 펑크계의 전설이기도 하다.[2]
영국 펑크씬에서는 굉장히 저항적인 가사와 과격한 밴드로써도 유명하다. 조 스트러머(보컬), 믹 존스(기타), 테리 차임즈(드럼)[3]', 폴 시모넌(베이스)의 4인조로 결성되었다.[4] 1집을 발매한 뒤에 테리 차임즈가 탈퇴하고 니키 히든이 드러머로 가입한다.
탄생 배경만 섹스 피스톨즈와 같은 연장선상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클래시의 출발 자체가 섹스 피스톨즈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리더인 조 스트러머가 런던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을 구경하고 그만 ‘감동하여’ 펑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그때까지 몸담고 있던 퍼브록 밴드 101'ers를 탈퇴하여 믹 존스[5]와 함께 클래시를 결성했다. 그리고 1976년 12월에는 섹스 피스톨즈의 ‘대영제국의 무정부 상태’ 순회공연에 오프닝으로 참가, 펑크 물결 확산에 나섰다.
섹스 피스톨즈의 바톤을 이어잡았으나 단순한 워너비 피스톨즈를 넘어 본인들만의 오리지너리티를 가졌으며, 현재는 섹스 피스톨즈와 동격으로 대우 받을 정도. 혹자는 섹스 피스톨즈가 무정부주의에만 그쳤던 펑크씬의 정신을 선동적인 가사와 과격한 사운드로 저항정신을 내뿜었다는 것으로 영국 펑크씬의 발전형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DIY정신에만 입각하여 단순한 구조만을 고집했던 섹스 피스톨즈와 달리, 프로그래시브한 구조나, 헤비메탈을 연상시킬 정도의 강력한 사운드, 심지어는 레게리듬까지 도입하는 등 펑크 록의 음악적 저변을 엄청나게 확장시킨 밴드이다.[6] [7]사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에 각설탕 하나를 타면 이들의 음악이 된다. 물론 느끼하다는게 아니라 감미롭다라는 뜻에서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면 안 되는것이, 애초부터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쉬의 음악적 기반이 다르다. 섹스 피스톨즈는 호크윈드Hawkwind[8]나 씬 리지Thin Lizzy의 영향을 받은 데다가, 하드록의 영향이 강했다. 스티브 존스는 글램록부터 하드록까지 다양한 음악의 영향을 받았고[9], 쟈니 로튼은 심지어 캔이나 캡틴 비프하트같은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도 즐겨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클래쉬는 애초부터 믹 존스는 미국 남부 리듬 앤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었고, 조 스트러머는 포크와 백인 R&B[10] 의 영향을 받았다. 뿌리부터가 다른 것이다. 섹피와는 다르다 섹피와는
지금도 그들의 저항정신을 그대로 담아 수많은 밴드가 그들을 동경하고 펑크계로 뛰어들기도 했다. 리버틴즈가 대표적인 경우다.[11]
1986년 믹 존스와 조 스트러머의 불화로 해산을 맞았으나 2년 후 다시 화해를 하고 현재도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고, 공연을 하는 등 활동을 하고있다.[12] 2002년 조 스트러머가 심장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최근에는 폴 시머넌이 블러의 데이먼 알반과 The good, the bad and the queen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믹 존스도 고릴라즈의 라이브 세션에 참가하고 데이먼 알반이 클래시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을 볼때 친분이 있는것으로 보인다.[13] 참고로 시머넌은 뮤지션인데 지나치게 잘생겨서 클래시 활동당시 별명이 '런던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 '미스터 핸섬'이었다. 미술에도 재능이 있어 화가로도 활동했다.몰빵 아들이 둘 있는데 역시 대단한 미남들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밴드 중 이들의 음반을 국내 밴드 크래쉬의 음반인 줄 알고 사서 들었다가 펑크 밴드를 하기로 마음먹은 밴드도 있다고 한다.
영화 007 시리즈 어나더데이에서 'London Calling'이 삽입곡으로 쓰였다. 제임스 본드가 쿠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과 악당 구스타프 글레이브스가 기사작위를 받기위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에 나온다.
영화 아이언맨 2편에서 이들의 곡인 'Should I Stay Or Should I Go'가 쓰이기도 했다. 토니 스타크가 차고에서 작업하는 장면. 비디오 게임 파 크라이 4가 똑같은 곡을 오프닝과 트레일러에 쓰기도 했다.
참고로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스탠드 클래시는 여기서 모티브를 따 왔다.
초기 대표곡 White Riot[14]
대표곡 London Calling[15]
또다른 대표곡 Should I Stay Or Should I Go
심지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한국에 보도가 됐을 정도의 파급력
- ↑ 밴드 결성시기만 늦었다 뿐이지 조 스트러머는 이미 101'ers라는 펍 록 밴드를 이끌고 있었다. 이때는 정통 백인 R&B, 로큰롤 사운드를 표방했다
- ↑ 실제로 섹스 피스톨즈가 앨범 1장으로 단명한데 비해 이들은 6개의 앨범과 다수의 EP로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섹스 피스톨즈가 "펑크란 이런것이다"를 보여줬다면, 클래쉬는 "펑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준 셈.
- ↑ Terry Chimes. 1집 앨범에 '토리 크라임즈(Torry Crimes)로 표기되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
- ↑ 초기에는 기타가 3명(!)이었다. 키쓰 리바인이 있었는데, 몇가지 문제로 탈퇴했다. 키쓰 리바인은 훗날 쟈니 로튼의 포스트펑크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 약칭 PIL)에 참여한다.
- ↑ 당시 미대생이었던 폴 시머넌과 London SS(...)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다. 믹 존스에게서 이미 밴드 가입 제안("니 목소리랑 기타치는건 참 좋은데, 니 밴드는 구려."가 믹 존스가 조 스트러머에게 한 제안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초면에...)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섹스피스톨즈 공연을 본 뒤 큰 충격을 받고 101'ers를 때려 치우고 믹 존스를 찾아간다.
- ↑ "조 스트러머는 위대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에 레게를 가르쳤다" - 존 라이든(쟈니 로튼). 1978년 일본 뮤직라인과의 인터뷰에서
- ↑ 이 때문에 펑크 록을 음악성없다고 까는 평론가들도 더 클래시는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 ↑ 모터헤드의 레미(!)가 참여했던 전설적인 글램/하드록 밴드이다.
- ↑ 이래놓고 잡지 인터뷰에서는 영향받은 뮤지션에 대해 "모르겠다... 집에 레코드 플레이어가 없어서 음악을 별로 안 들었다..."라고 했다.
쿨가이 - ↑ 초기 롤링스톤즈와 트래픽, 50년대 초중반의 대니 앤 더 주니어스가 이에 해당한다.
보이즈 투 멘 같은 흑형사운드가 아님 - ↑ 믹 존스는 이들의 1집앨범 Up the Bracket을 프로듀스 하기도 하였다.
- ↑ 이 시기 조 스트러머는 믹 존스 없이 클래쉬를 건사하며 Cut the Crap이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그러나 이 앨범은 사운드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당시 클래쉬 팬들에게서 클래쉬 앨범으로 안 쳐주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지못미요즘에는 조금씩 재조명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같은 시기, 믹 존스는 레게 디제이이자 초기 펑크 확산 및 레게-펑크 하이브리드의 혁혁한 공을 세운 돈 레츠같은 디제이흑형과 Big Audio Dynamite를 결성한다. 근데.. 평가가 막장에서 압권까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이유는 완전히 랩과 댄스뮤직으로 선회했기 때문에.클래쉬 후기에서 이런 조짐이 보이긴 했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멀리갔다 싶다 - ↑ 여담이지만 두 밴드를 매니지먼트하는 회사가 같다.
- ↑ 클래쉬 멤버들은 1976년의 노팅 힐 폭동에 어쩌다 참여했었는데, 그때 조 스트러머가 든 생각은 흑횽들은 이렇게 열받으면 폭동도 일으키고 그러는데 백인들은 찌질하게 아무것도 안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사가 섬뜩하다. "모든 권력은 돈있는 놈들에게 있고 거리에 쏘다니는 우리는 가진게 없네. 난 백인들의 폭동을 원한다!" ㅎㄷㄷ
- ↑ 한국 밴드인 크라잉 넛이 'OK목장의 젓소' 앨범에서 '명동콜링'이라는 곡을 넣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도바츠텐이라는 밴드는 노동 CALLING이라는 곡을 이 곡의 제목에서 차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