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래

(타샤니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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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윤미래(尹美來)
생년월일1981년 5월 31일
신체162cm, 46kg
가족배우자 타이거 JK, 아들 서조단
소속 그룹MFBTY
소속 레이블필굿뮤직
공식 사이트트위터
종교개신교

1 개요

미국 텍사스 출생.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던 미국인 흑인 아버지 토머스 J. 리드(Thomas J. Reid)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윤미래는 한국 이름이고, 너태샤 섄타 리드(Natasha Shanta Reid)라는 영어식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T, 타샤, GEMINI 등의 다른 네임으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2 약력

DJ를 했던 아버지[1] 덕분에 음악을 많이 접하며 성장했다.[2]

1995년 업타운의 멤버를 모집하던 정연준에 눈에 띄어 1997년에 한국에서 데뷔. 당시 만 15세에 데뷔했지만 19살이라고 속여서 활동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 알앤비를 동시에 소화시킬 수 있는 보컬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다.[3]

업타운을 잠시 떠나 이상민의 밑으로 들어가 애니와 함께 타샤니라는 2인조 여성 듀오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이 시절에 부른 노래로는 '하루하루', '경고' 등이 유명하다. 이후 다시 업타운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중 2000년 대마초 파문에 휘말린 업타운이 2001년 해체수순을 받자 솔로로 전향. 2001년에 1집인 'As Time Goes By'를 내놓아 큰 히트를 치며 솔로로 자리매김했다.

타이거 JK와는 업타운 시절부터 친해졌으며 2007년에 결혼하여 2008년 3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들 조단을 낳았다.

타이거 JK가 인터뷰에서 한 말에 따르면, 흠 잡으려고 해도 흠 잡을 데가 없어서 어지간히 기가 센 남성 랩퍼들도 윤미래한테는 음악적으로 아무런 찍 소리를 못한다고. #

슈퍼스타K3의 심사위원을 맡았지만 음악적 감수성이 높은 때문인지 다른 심사위원에 비해 냉철한 평가 멘트가 부족하여 심사위원으로서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2011년 9월 미국의 MTV의 뮤직 웹사이트 MTV Iggy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해외 여자 래퍼 12에 선정되었다. # 윤미래를 소개하기를 한국 힙합계의 여왕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4] 다만 국내에선 세계 12대 여성 랩퍼로 선정됐다는 보도자료가 널리 퍼져있는데 원문 기사를 봐도 세계 최고의 12대 여성 랩퍼라는 문구는 없다. 오히려 순위 기사라기 보다는 그저 다른 나라에 이러한 랩퍼도 있다고 알려주는 기사에 가깝다.

2011년 12월 타이거 JK와 함께 MBC 로고송을 불렀다. MBC 50주년 로고송 조단 & 타이거JK & T.

카투사들 중 의정부시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서 복무하는 인원들은 가끔 볼 수 있다. 부대 후문으로 나오면 보이는 제법 큰 마트가 있는데, 여기에 윤미래와 타이거 JK가 가끔 나타난다. 조단을 데리고 나올 경우도 있다. 가끔 여기 없는 물건을 사러 홈플러스에 들른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담도 있다.

2010년 즈음부터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012년 6월 발매 될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새 앨범 타이틀곡에 저스틴 비버와 함께 피처링 참여한 것이 발표되었다. #

2014년 12월 25일 개봉한 북한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다룬 영화 더 인터뷰 OST에 참여인 줄 알았으나 소니측에게 무단 도용당했다. OST 사용 합의를 보는 과정에서 합의가 중단되어서 없던 일이 되었던 건인데 결국 정작 영화에서는 쓰인 것. 정작 더 인터뷰는 한국에선 개봉되지도 않았고 정식적으로 볼 수 있는 루트는 전부 막혀 있었지만... 볼 사람들은 알아서 다 본다 곡명은 'Pay Day'. 관련 기사. 윤미래 측은 그래서 현재 소니 픽처스를 상대로 소송 준비 중. 소니가 남북한 전부 쌈싸먹네... 2015년 5월 13일 소니 픽처스는 윤미래와 합의했다. 관련 기사.

2015년 7월 30일 한화 이글스 응원가인 "이글거려"를 발표했다. 니글니글 오글오글

최근 짝퉁이 활동하고 있다 한다

3 거품논란

'대한민국 5대 여성 랩퍼는 윤미래, T, 타샤, GEMINI, 그리고 조단 엄마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힙합 리스너들에게도, 일반 대중들에게도 윤미래는 '한국 최고의 여성 랩퍼'라고 불리우고 있다. 한국의 힙합 음악은 역사가 짧기도 하고 대중들에게 여전히 생소하기도 하여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음악 세계가 아주 작은 편인데, 거기다가 여성 랩퍼는 힙합의 본토 미국에서조차 전설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Da Brat, Lauryn Hill, 그리고 미시 엘리엇 정도일 정도로 결코 넓은 저변을 지니고 있지 않다.

힙합 1세대 랩퍼라는 점과 한국 최초의 여성 랩퍼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높다. 또한 대중적으로 성공한 랩퍼도 적었던 시기에 나온 랩퍼다 보니 한국의 모든 여성 랩퍼들은 좋든 싫든 윤미래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여성 랩퍼는 윤미래 뿐이다보니 잘하냐 못하냐의 기준도 윤미래를 두고 논해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했던 치타, 타이미, 릴샴 역시 이러한 풍토는 옳지 않다고 인터뷰에서 직접 비판한 적도 있다. 몇몇 리스너들은 윤미래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힙합계에서 인정받은 리미가 진정한 한국 여랩 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이 분은 이제 래퍼로서의 활동을 접은지 오래라...[5]

윤미래는 커리어를 오래 이어왔으니만큼 절대적인 넘사벽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편 거품이라는 의혹 역시 끊이지 않는다.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으로 한국어 가사를 직접 쓰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6] 그래서 업타운 시절에는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한국어 랩 가사로 인해 온갖 음악 관련 웹진에서 혹평을 들은 적도 많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랩퍼가 자신의 가사를 못 쓴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외국이었다면 고스트라이터로 찍혀 묻혔을 것이다. 랩 자체는 준수하지만 자신이 가사를 못 쓴다는 사실 때문에 MC가 아닌 프로듀서로 여겨지는 Dr. Dre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변변한 히트곡이 없다는 것도 문제. 정확히는 순수하게 랩으로 승부를 낸 히트곡이 없다는 점도 지적받는 사항.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여성 래퍼로 생각하지만 윤미래의 힙합 솔로곡을 한 곡이라도 외우는 사람은 많지 않을 뿐더러 힙합 솔로 음반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앨범이다.[7] 대표곡이라고 꼽히는 '검은 행복', 'Memories', '삶의 향기들'은 대부분 후렴부 보컬 훅에 무게가 더 실린 노래들이라 순수 랩으로만 승부를 보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몇몇 이들은 미국 데뷔하면 성공할 랩퍼 1순위로 윤미래를 꼽기도 한다. 그러나 윤미래 스타일은 이미 오래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에 정박 위주의 랩이라 요즘 미국의 주류 스타일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이때문에 윤미래가 미국에 진출해도 더 현란한 플로우와 랩핑을 구사하는 랩퍼들이 즐비한 본토에서 굳이 윤미래의 랩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리스너들도 많다. 또한 이는 바꿔 말하면 윤미래가 기존에 안주하고 트렌드 연구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8]

참고로 윤미래가 세계 12대 '여성' 랩퍼라고 간혹 언급되는 기사는 정확히 말하면 '나라별 주목해야 할 새로운 여성 래퍼 12명'을 나열한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순위와는 관련 없다. 본 기사에는 요즘 여랩 탑으로 꼽히는 니키 미나즈도 전설적인 여랩퍼인 미시 엘리엇도 없다(...) 즉 애당초 각국에서 유명한 여성 랩퍼를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링크.

이런 랩퍼로써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도 어떻게 한국 최고의 여성 랩퍼로써 각인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혼자 살아남았기에 1위로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살아남았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자면 애초에 시작이 랩퍼가 아닌 댄스 그룹 멤버였을 뿐더러, 업타운이나 타샤니 활동을 비롯해 R&B 위주 솔로 앨범의 히트로 기반을 착실히 다져놓은 상태였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덜어놓은 상태에서 '여성 랩퍼로써의 솔로 앨범'이라는, 한국 음악계에서 보기 힘든 동시에 상업적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시도를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말 그대로 맨땅에 랩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렉시어차피 렉시도 랩으로 뜬 건 아니잖아 Foxy, MC 혼, 예솔, Steady B를 비롯한 동시기 여성 랩퍼들의 경우 저런 시도를 할 상황 자체를 만들 수 없었다. 끽해야 MC 혼이나 예솔처럼 그룹에 묻어가거나 인디 레이블에서 소규모로 EP 찍어내는 정도. 스테디 B의 경우에도 1집을 낸 게 이름 알리고 거의 10년 후인 2009년이었으니 말 다 했다. MC 혼[9]은 DICE라는 인디 밴드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본업은 아니고, 랩하던 시절 인지도가 낮다가 댄스 가수로 전향한 1집에서 '애송이'가 히트치며 엄청나게 이름을 알린 렉시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여성 솔로 랩퍼'는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도박이나 다름없다. 실력 논란이 있긴 했지만 온갖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도 욕만 한 바가지 먹고 실패를 맛본 타이미를 보면 자명. 웬만큼 간 큰 기획사 사장이 아닌 이상 아무리 인디에서 찬양받던 이라고 해도 '여성 솔로 랩퍼'라는 카드에 섣불리 지원해줄 엄두를 못 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G-BUS TV 청기백기녀로 은근히 관심을 모으더니 정작 곡은 파묻혀버린 경기도의 딸 키썸도 있고 비트와 밀당하신 힙합밀당녀도 있고

이 외의 윤미래의 성공 요인을 꼽아보자면 음악적인 지원이다. 즉, 노래나 랩을 아무리 잘 한다 한들 좋은 곡을 만들어줄 이가 없으면 말짱 황이라는 것인데, 윤미래에게는 업타운에서 같이 활동했던 정연준을 비롯해 박근태, 방시혁 같은 강력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손에서 '하루하루', '참을 수 없어', '경고', '시간이 흐른 뒤 (As Time Goes By)[10]', '메모리즈' 같은 명곡들이 쏟아져나왔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들이 만들어낸 숱한 히트곡들을 생각하면 그 위상이 얼마나 후덜덜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정작 윤미래의 최근 행보는 OST 팝 발라드 위주의 디스코그래피로 힙합과는 꽤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이며 간간히 힙합이라고 나오는 노래들은 오히려 후렴 부분 훅에 무게가 실리는지라 일부에서는 순수하게 랩으로 승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최고의 여랩퍼라고 일컬어지는 상황.

이렇듯 비판도 많이 받고, 그 비판에 타당한 부분도 많지만, 어찌되었든 윤미래가 한국에서 독보적인 여성 랩퍼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일단 기량적인 측면에서 흑인 특유의 하드웨어에서 뿜어져나오는 성량. 소위 말하는 땜삥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사운드를 때리는 파워가 아득히 다른 랩퍼들은 따돌리고도 남는 수준이며 이 때문에 화려한 플로우나 랩 스킬을 보여주지 않아도 청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는 점은 호평받는 부분.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좋다는 평도 있을 정도다. 다만 위치에 대한 평가와 능력에 따른 평가는 엄연히 달리 이루어져야 하는데, 윤미래는 전자가 후자에 대한 평가마저 뒤덮고 있는 상황이라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다.

4 관련 항목

  1. 미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부대 내 클럽에서 DJ를 했을 정도로 내공이 꽤 있었다고 한다.
  2. 이는 윤미래의 검은 행복이라는 곡에도 언급이 된다.
  3.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에서 느낀 설움과 기쁨을 다룬 곡이 '검은 행복'인데, 이 곡은 특히 그녀의 음악 커리어에서도 명곡으로 꼽힌다. 중간에 흐르는 나레이션은 아버지가 직접 해주신 거라고.
  4. 다만 여기는 이상하게 한국 음악을 밀어주기로 유명한 곳. 그래서 농담으로 '인기가요'의 이니셜(...)이라고 하기도 한다.
  5. 그런데 래퍼활동을 접은 줄 알았으나.. 최근 같은 크루의 비솝의 앨범 수록곡인 딱히 그다지 너따위에서 짧지만 랩을 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중순 오피셜 인스타그램에서 #부활 이라는 내용의 글을 개시하며 복귀 소식을 알렸다. 28일 '관을 걸어나오며'라는 신곡을 냈다. 이때 이후로 예명을 남수림이 아닌 래퍼시절 예명인 'RIMI로 바꾸었다. '관을 걸어나오며'에선 은퇴 이전 냈던 음악 스타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는데, 팬들의 반응은 '오랫동안 쉬다가 감 덜잡은게 이 정도냐.역시 리미다.하지만 그 전의 찹쌀떡 같던 랩이 더 좋다.'는 게 지배적이다.
  6. 일단 먼저 자신이 영어로 가사를 쓰고 남편인 JK가 번역해 라임을 맞춰준다고 한다.
  7. 사실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힙합, 랩으로 채운 음반을 낸 적도 없다. 그나마 EP 앨범인 'gemini'가 힙합의 비중이 높긴 했지만...
  8. 가리온의 MC 메타가 말했듯 음악 트렌드에 영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이는 랩퍼로서 자기 관리에 소홀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9. 그래도 2000년대 초반에는 에이스로 손꼽히며 케이블 음악 채널에도 종종 등장했었다.
  10. 참고로 이 곡의 코드 진행은 당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알 켈리의 'I believe i can fly'의 코드 진행과 똑같다고 한다. 멜로디가 달라서 표절은 아니고, 당시엔 알앤비 장르 자체가 익숙하지 않던 상황이다 보니 레퍼런스로 삼은 걸로 보인다. 성시경이 자신의 라디오에서 알 켈리 관련 이야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