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겐 셋사이

太原雪齋
(1496 ~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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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인물.이마가와 가문의 가신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군사.

1496년에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부하로 이하라 마사모리 사에몬노죠오카츠 마사노부의 딸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이마가와 가문의 중신인 세력들이다.

스루가의 젠토쿠지(善得寺)에 들어가 승려로 지내다가 1509년에 교토로 올라가 겐닌지(建仁寺)로 들어갔다. 겐닌지에서 스승인 죠안 류스우(常庵龍崇)를 통해 득도의 의식을 하여 큐에이쇼기쿠(九英承菊)라는 법명을 가지게 되었다.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요청으로 다섯째 아들인 호키쿠마루의 교육을 맡았으며, 우지치카에게 허락을 맡아 1530년에 호키쿠마루를 데리고 겐닌지로 들어가 수행했다고 한다. 이후 득도의 의식을 하면서 바이가쿠쇼호(梅岳承芳)라는 법명을 가지게 된 호키쿠마루와 함께 수행을 하면서 소후(崇孚)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1535년에 젠토쿠지의 주지인 킨케이 쇼슌의 7주기 법요 때문에 스루가로 내려갔다가 젠토쿠지에 들어갔다고 하며, 1536년에 우지치카의 장남인 이마가와 우지테루와 차남인 이마가와 겐고로와 급사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넷째 아들인 이마가와 쇼니세쇼는 스스로 가독쟁탈에서 물러났으며, 측실 소생인 셋째 아들인 이마가와 겐코에탄과 가독쟁탈로 대립하면서 바이가쿠쇼호의 어머니이자 우지치카의 정실인 쥬케이니와 손을 잡았다. 결국 후계자 다툼인 하나쿠라의 난으로 바이가쿠쇼호의 세력이 승리하면서 바이가쿠쇼호가 이마가와 요시모토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요시모토가 이마가와 가문을 계승하면서 사망한 형인 우지테루의 보제사로 린자이지(臨済寺)라는 절을 짓자 린자이지의 주지가 되었으며, 린자이자 안에 지어진 건물의 이름인 셋사이(雪齋)에서 살았기 때문에 셋사이라는 호가 붙여진다. 요시모토의 신뢰로 정치, 군사, 외교 등 최고 고문으로 중용받아서 요시모토와 모든 일을 상담하였으며, 종교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여 그를 가리켜 집권(執權) 또는 흑의재상(黑衣宰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537년에 다케다와 혼인 동맹을 체결하면서 슨토에서 호죠씨와 절충하여 동쪽 국경을 안정화시켰으며, 1546년에 미카와에 침공할 때 군사 지휘권을 행사하여 1547년에는 다하라성을 공략하였다. 1548년에는 아즈키자카 전투에서 총대장으로 출정하여 오다군을 상대로 우위를 차지했으며, 1549년 11월에 스루가, 토오토우미, 미카와의 7천여기를 이끌어 안쇼성(安祥城)을 공격하여 오다 노부히로[1]를 붙잡아서 1548년에 오다 가의 공격으로 빼앗긴 인질인 마츠다이라 다케치요와 교환하였다.

1553년에 이마가와 가문의 분국법인 이마가와 가명목록 추가 21개조를 제정하고, 1554년에는 다케다, 후호죠 등과 코소슨 삼국동맹(甲相駿三国同盟)을 체결하였다. 그 밖에 임제종(臨濟宗)을 중심으로 영 내의 신사, 종교의 통제, 재래상인을 보호하는 상업 정책을 시행하여 이마가와 가문의 전성기에 공헌하였으며, 중국의 사서인 역대서략을 인쇄했다고 한다.

1555년에 쵸케이지(長慶寺)에서 향년 60세로 10월 10일에 입적하였으며, 여러 문헌에서 그가 오케하자마 전투까지 살아있었다면 이마가와는 오다에게 토벌되지 않거나 그의 죽음으로 이마가와의 쇠퇴가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이루어졌다.

창작물에서

소설 대망에서는 주인공 이에야스의 어릴 적 스승처럼 등장하며, 인질로 잡혀 있던 어린 이에야스의 비범함을 알아채는 인물로 그려졌다. 소설 속 이야기 뿐 아니라 실제로 셋사이가 이에야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셋사이가 이마가와씨의 본거지인 슨푸를 떠나 있었던 기간과 이에야스가 이마가와씨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기간이 겹치므로 반론의 여지가 많다.

풍림화산(드라마)에서는 이부 마사토[2] 분. 성우 경력이 있는 배우답게 포스가 뚝뚝 흘러넘치는 저음의 목소리와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참모 역할을 능숙히 수행한다. 연줄이 의외로 넓어서 다케다 가신인 오야마다 노부아리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이고 주인공 야마모토 간스케에게는 먼 숙부 격이기도 하다.[3] 승려인데다가 요시모토의 학문 스승인 만큼 고전을 인용하는 등 학식이 풍부한 측면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도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가르치고 있다는 설정인데, 이마가와, 호조, 다케다의 3국동맹이 성사되자 만족스런 기분에 모토야스에게 술을 가져오라 시키고, 모토야스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다가 뇌출혈로 보이는 급사를 당한다. 이때 드라마에선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스승이자 참모인 셋사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셋사이 놈 술을 그렇게 좋아하더니..."라며 셋사이도 깠다.

전국컬렉션에서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군사로 출연. 자세한 것은 전국컬렉션/등장인물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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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시리즈에선 무력을 제외하면 본좌급. 무력이 바닥임에도 총 능력치합은 항상 순위권에 드는 먼치킨이다. 특히 통솔, 지력이 높다. 무력이 통솔에 통합되었던 창천록에선 야전에서도 두각을 보여주는 에이스급 캐릭터(대신 통솔이 조금 낮아졌다). 혁신천도에서는 그가 살아 있으면 오케하자마에서 위기에 빠진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살리고 기습을 건 노부나가를 역관광시킬 수 있다.


태합입지전에서도 등장. 노부나가의 야망과 비슷하게 좋고 5탄에서는 다케다와 혼인 동맹을 체결한걸 반영하였는지 다케다와 딱히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개사기 특기 NO.1인 풍림화산을 들고 있다. 태합입지전이 히데요시가 주인공인 게임인만큼 활약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적은게 단점. 1560년 일륜의 장으로 시작하면 이미 죽어서 안나오고 1554년 란마의 장에서만 써볼 수 있는데[4] 1555년에 죽는데다가 사인도 전사가 아니고 병사라 수명이 짧아서 툭하면 사망한다.

그러나 그가 빛을 발하는 것은 이벤트 제작시. 특정 이벤트 발생 후 특정 기간 안에 발생하는 이벤트나 특정 이벤트가 몇 회 일어나야 발생하는 이벤트 등을 만들 때, 제작 툴 자체에는 이 기능이 없기 때문에[5] 대부분의 경우 이미 죽어서 조작해도 게임 진행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타이겐 셋사이의 명성치를 이용한다. 하루가 지나거나 이벤트가 한 번 일어날 때마다 타이겐 셋사이의 명성치를 가산해서 특정 수치의 명성치를 이벤트 발생 조건으로 하는 방식. 이벤트 제작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꼼수다. 따라서 여러 개의 유저 제작 이벤트를 동시에 게임에 적용할 때는 스크립트를 확인해서 타이겐 셋사이의 명성치를 이용하는 이벤트가 복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1. 당시 오와리 영주 오다 노부히데의 서장자(庶長者)로 오다 노부나가의 이복형이다. 뒷날 노부나가가 이세 나가시마 일향종을 토벌할 때 종군했다가 전사한다.
  2. 대하드라마에서는 센노 리큐, 구로다 간베에등의 역할을 맡은 적이 있고, 국내 영화안 YMCA 야구단에도 출연했다.
  3. 정확히 말하자면 간스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간스케의 숙부 이하라 타다타네의 배다른 동생이며, 간스케와 개인적인 친분은 별로 없다.
  4. PC버전 기준. PS2판에선 1548년 유랑의 장 시나리오도 있다.
  5.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긴 한데 번거롭고 스크립트가 지저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