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가와 요시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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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요시모토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만, 이쪽이 진짜 요시모토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今川義元(いまがわ よしもと)

(1519 ~ 1560.06.12)

1 개요

歴史秘話ヒストリア 2015年5月27日 150527 【師匠、オレは戦国大名になる!やられ役 今川義元の真実】
その時歴史が動いた 「天才信長をつくった男 今川」

도카이도 제일의 무사(東海一の弓取り).[1]

일본 전국시대 당시 이마가와 가문의 제9대 당주로,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5남이다. 다케다 신겐의 매부이자 호조 우지야스의 매제.

아버지 이마가와 우지치카의 5남(정실의 셋째아들)으로 태어났는데, 가문 내의 계승권 순위에서 밀리는 탓에 5살에 절에 맡겨져, 이마가와 가의 중신 출신의 승려 타이겐 셋사이(大原雪斎)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센가쿠쇼호(栴岳承芳)'라는 법명을 사용했다. 스승과 함께 자주 쿄(교토)에 들려, 유력자들과도 친분을 맺고, 이마가와 집안의 외교관 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의 나이 18살 때, 아버지를 이어 가문의 당주가 된 큰형 이마가와 우지테루와 둘째형 히코고로가 같은 날에 원인불명의 급사[2]하고, 정실의 아들로 적통을 가진 그가 후계자 후보에 서게 된다. 이때 벌어진 후계자 다툼인 '하나구라(花倉)의 난'에서 마찬가지로 중이 되어 있던 서형 겐코 에탄(玄広恵探)측을 격파하여 승리했다. 이후 환속해 '요시모토'를 칭하여 당주 자리를 얻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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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주가 된 후에는 선정을 베풀고 주변국들과의 외교관계나 세력확장에 힘을 쓴 결과 토토우미, 스루가, 미카와 3국을 가진 대영주가 되어 이마가와 가문의 최전성기를 이끌어냈다. 본래 오와리의 영주로 무력이 뛰어났던 오다 노부히데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으나, 마쓰다이라 히로타다[4]가 가신에게 살해당한 틈을 타 전격적으로 미카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여 우위에 선다.
적대 관계였던 다케다 가문과도 동맹을 맺고 다케다 신겐의 누나인 죠케이인을 아내로 맞이하는데, 이것이 함께 다케다 가문과 맞서던 호조 가문과의 동맹을 깬 것으로 간주되어 호조 우지츠나와는 전쟁상태로 돌입, 후지산 근방의 영지를 두고 '제 1차 카토(河東)의 난'이다. 결과, 이마가와 측은 참패, 영지의 4분의 1을 잃는다.

하지만 우지츠나가 죽은 뒤 호조 우지야스가 가독을 승계했으며 관동을 지켜내는 데 여념이 없던 호조씨의 사정상 자연히 이마가와씨와의 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호조는 다케다와 동맹을 맺었다. 다케다-호조, 다케다-이마가와 동맹이 맺어진 상태에서 다시 카토의 난이 재발하자, 두 가문과 친분이 있던 다케다 신겐의 중개로 호조-다케다-이마가와 세 가문은 전격적인 삼국동맹을 맺게 된다.[5] 이 때가 이마가와 가문의 최전성기로, 이마가와 가문이 아무것도 신경쓸 것이 없이 오직 서진해서 오와리와 미노, 나아가서는 교토까지 차지해 천하를 노릴 수 있는 구도가 성립된 것.[6]

요시모토는 1560년 대대적으로 수 만의 군사를 일으켜 오와리를 침공하는데,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패하여 괴멸적 타격을 입고 오다 노부나가에게 살해당하였다.[7]

강성하던 가문은 대부분의 장수를 잃었으며 후계자인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무능함과 다케다 신겐의 귀신같은 통수(...)[8]에 힘입어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이마가와 가문은 요시모토 사후 불과 수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타이겐 셋사이에게 사사하여 5산[9]에서 수행한 만큼 학식과 지략이 뛰어났고, 완력도 세서 세명이 힘을 합쳐야 겨우 드는 칼을 혼자 들 수 있었다고 하며, 신장공기의 묘사에 의하면 최후의 순간에도 자신을 급습한 오다의 무사 핫토리 고헤이타에게 허벅지를 칼로 베어 중상을 입혀 쓰러뜨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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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저평가와 실체

후세에는 오와리 침공시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는 것으로 인해 정말 여러 매체에서 두루두루 갈굼받는다. '비만에 다리까지 짧아서 말에 오르지 못해 가마를 타고 다녔다', '쿄토의 귀족 문화를 동경한 나머지, 얼굴에 새하얀 화장을 하고 이도 검게 물들였다'는 등 외모부터 성격에 능력까지 전반적으로 비하가 심하다.

이러한 설의 근원은 메이지 정부라고 하는데, 에도 막부를 쓰러뜨리고 황실 중심의 국가 체제를 굳히기 위해 무가(武家)에 대한 비하거리를 찾던 중 눈에 띄인 것이 요시모토라는 설이다. 이마가와 가는 무로마치 막부쇼군인 아시카가(足利) 가의 친족이었고 아시카가 가문에서 후계자가 나지 않을 경우 키라 가문, 키라 가문에서 후계자가 나지 않을 경우 이마가와 가문이 이어받아 합법적으로 쇼군을 배출할 수도 있는 명가였으며, 그 아시카가 가는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인 미나모토 가~겐지(源氏)의 혈통이었다. 이렇듯이 당대의 대영주가 지방의 애송이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좋은 얘기거리가 되었고, 하는 참에 아예 외모를 포함한 능력 전반에 대한 과장된 비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귀족 문화 동경을 포함한 높은 교양을 갖고자 하는 열망은 당시 거의 모든 다이묘들의 공통된 성향으로, 이는 영지 지배를 위한 필수 요소였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중앙인 긴키 지역[10]에서 멀리 떨어진 후진 지역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했는데, 지적 수준이 터무니 없이 낮은 지역의 특성상 합리주의적인 행동보다는 권위나 교양을 과시해서 가신들과 영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통치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11] 단, 요시모토나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의 경우가 특히 과장되게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역사의 패자에 대한 억울한 비판이 아닐까[12]. 게다가 실제 요시모토의 교양수준을 분석한 연구가들에 의하면 당대의 유명 시인에게 와카를 직접 전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를 짓는 실력은 처참했다고 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요시모토의 진짜 모습은 센고쿠 다이묘의 역할에 충실한 명군이며,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교양이나 귀족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귀족취미에 빠져서 몸을 망쳤다는 평가는 완전한 창작이거나 축국 등 취미에만 몰두한 암군인 아들 우지자네의 일화에서 옮아온 이야기.

이마가와 삽질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오케하자마의 기습조차 실제로는 우연히 본진 기습에 성공한 오다의 운빨[13]이었을 뿐,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잘못한 점은 딱히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14] 그저 운이 나빴을 뿐.

과소평가 받은 센고쿠 다이묘를 들 때 미요시 나가요시와 함께 항상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 하지만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들을 보면 미요시 나가요시는 통솔, 지략, 정치가 90이 넘어 어느 진영에 가더라도 에이스 급이 될수 있고 일러스트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효웅 이미지로 제법 멋지게 바뀌었다. 요시모토는 혁신에서도 별로더니 천도에선 더 이상하게 바뀌고. 하지만 천도 파워업 키트에서는 얼굴이 훈훈하게 꽤나 훈훈한 이미지로 교체되었다. 심지어 창조에서는 아예 꽃미남으로 탈바꿈. 후술한 NHK 드라마의 영향이다.

이렇듯, 구체제의 심볼이나 거만하고 우둔한 귀족 쯤으로 격하되기 일쑤인 요시모토는 사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국력을 강화시킨 전형적 센고쿠 다이묘다. 가문 자체는 명가였다지만 이름에서부터 이마가와 가문의 적장자에게 주어지는 '우지'라는 글자를 받지 못하고 승려가 되어 권력구도에서 내쳐졌을 만큼 가문 내의 지위가 낮은 편이었고, 갑작스럽게 적장자와 당주가 원인불명으로 급사한 상황에서 재빠르게 환속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여서, 이마가와 가문의 당주 자리를 놓고 벌어진 권력다툼인 '하나구라의 난'에서 승리해 가문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만만찮은 능력을 선보였다.[15] 이후에도 자체적인 가법을 제정하거나 고소슨 3국 동맹을 맺고 미카와의 무력화된 마츠다이라 가문을 세력 내로 포섭, 신흥 강호 오다 가문과 치열하게 싸우는 등 상당한 국력성장을 이뤘는데다 개인적인 무예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거기에 더해 국력신장과 상관없는 문화적 유희에 열중했다고 오해를 받을 만큼, 문화적 교양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전방면의 먼치킨적 군주였다. 여러 기적적인 우연적 요인들이 겹치고 겹쳐 어이없이 전사했을 뿐. 위인을 만드는 데는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 외에도 천운을 빼놓을 수 없다는 좋은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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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에, 오케하자마 전투 450주년을 기념하여 동상이 세워졌다. 옆에는 당연히도 오다 노부나가가 서 있다. 요시모토 입장에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후일 터인데.


조형은 당연히도 정상인.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사용하던 명검인 소우자 사몬지(宗三左文字)가 현존하며, 일본의 중요문화재이다. 요시모토 사몬지(義元左文字)로도 불린다. 키나이의 무장 미요시 소조(미요시 마사나가)가 다케다 신겐의 아버지인 다케다 노부토라에게 선물한 것을 노부토라가 요시모토와 결혼한 딸의 혼수로 함께 보냈고, 요시모토가 이것을 몹시 애용했다고 한다. 요시모토가 끔살당한 이후 오다 노부나가에게 넘어갔고, 혼노지의 변 이후에는 혼노지 폐허에서 검을 발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그리고 오사카 공성전 이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가 쇼군 가문에 대대로 내려와 지금에 이르는 복잡한 이력을 지녔다. 이마가와 요시모토 이후로는 쭉 일본을 호령하는 패자의 손에 있었던, 그야말로 게임이나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이력을 지닌 명검으로 유명.

이외에 오케하자마 전투 직후 이마가와의 가신이 오다 가문과 교섭을 해서 잘린 목을 되찾아왔는데, 이 때 쓰고 있던 투구도 되찾았다. 이 투구는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2 대중 매체의 등장

2.1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원래는 노부나가의 경험치 셔틀 역할을 하는 우둔하고 오만하며 유희에나 탐닉하는 쿠게풍 귀족 이미지로 굳어있었는데, 1988년의 <다케다 신겐>에서 오만하기는 해도 잘생긴 얼굴에다가 상당히 지능적이고 노련미가 있는 전략가, 정치가로 등장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나쁘게만 각인되어 있던 요시모토의 이미지가 대폭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16] 이런 요시모토 버프 풍조는 2007년의 <풍림화산>에서 엄청난 미남에 사기급 동안을 자랑하는 배우 타니하라 쇼스케가 (비교적 멋진 의미에서) 오만한 명군주로 요시모토를 연기하면서 노부나가의 야망 등 여타 창작물의 요시모토가 그 영향을 받아 꽃미남으로 묘사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17] 과거의 무능하고 수구보수적인 쿠게풍 캐릭터에서, 오만한 귀족적 권모가로 묘사되는 편. 물론 죽음에 대해서는 그 긍지나 오만함에 발목을 잡히는 식으로 묘사되는 일이 많다.

보수적인 편인 NHK의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혁신적인 묘사를 주도하는 셈인데, 사학계의 요시모토에 대한 평가가 '무능해서 죽은' 것에서 '능력은 엄청났고 큰 실책이 없었는데 순전히 불운해서 죽은' 것으로 바뀌면서 그런 학설들을 반영한 결과다. 국민적 영웅인 삼영걸 노부나가에게 희생된 탓에 억울하게 폄하당해 온 요시모토 입장에선 뒤늦게나마 일부 명예회복을 한 셈. 창작의 비중이 크거나 시리어스하지 않은 창작물들에서는 여전히 옛날의 바보 이미지로 묘사되곤 하지만, 노부나가의 야망처럼 실제 사실의 비중이 큰 작품들에서는 NHK의 영향을 받아서 능력이 상향평가되고 생김새도 점점 멋지게 묘사되는 추세다.

<다케다 신겐>의 요시모토는 겉보기엔 늘상 헤실대는 다소 실없는 인물인 것 같지만 가끔씩 섬뜩한 본색을 드러내는 무서운 남자다. 개그 캐릭터로 전락한 노부토라를 장인어른이라고 높이는 척 하다가 노부토라가 느물거리는 요시모토의 태도에 화가 나 어머니인 쥬케이니에게 막말을 하자 본색을 드러내어 '노부토라, 물러가라'라고 반말로 조용히 위압하거나, 야마모토 칸스케를 가이로 보내면서 슬쩍 지나가는 이야기인 척 '네 처자식은 인질로 잡아두겠다'라고 말하는 등, 허허거리는 이면에는 냉혹함을 감춘 인물. 하지만 주변 다이묘를 초개처럼 여기는 거만함이 단점이어서, 오다 노부히데는 하극상을 일으키는 등 유능하고 무서운 인물이라며 경계하는 타이겐 셋사이에게 '오다 따위는 조약돌에 불과하다. 셋사이 자네가 가서 쓱 밟아 뭉개고 오게'하면서 낄낄거리기도 할 정도. 결국 오케하자마 전투 즈음해서는 이 오만함이 너무 심해져서, 자기 나름대로 경계를 한다고 했지만 다케다의 배신공작을 완전히 간파하지 못한 탓에 비참하게 오다 군에게 집단으로 난자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진흙탕 속에 머리를 박고 처참하게 죽는다.

풍림화산(드라마)의 요시모토는 느끼하고 음흉한 아저씨 인상이었던 <다케다 신겐>의 요시모토에 비해서 엄청난 꽃미남으로 화려한 외모를 자랑한다. 배우가 타니하라 쇼스케인 시점에서(...) 성격도 계략에 능하기는 하지만 음흉하다기보다는 자존심 때문에 화를 잘 내는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묘사됐다. 후계자 다툼인 하나구라의 난에서 못생긴 서형인 겐코 에탄을 꺾고, 겐코 에탄측에 호응했으며 뒤로는 다케다 가문과도 내통하고 있던 배신자인 쿠시마 일족을 숙청하며 화려하게 등장한다. 작중에서 특별히 단점으로 나오는 점은 없고 오만한 성격이기는 해도 그것 때문에 특별히 치명타를 입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능력이 좋게 묘사되지만, 주인공인 야마모토 칸스케를 추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심하게 박대하고 모욕을 주는 게 문제. 자기에 대한 모욕이나 박대까지는 참아내던 칸스케였지만 이마가와 가문이 다케다 신겐이 죽인 스와 요리시게의 아들을 조종해서 주군인 신겐의 암살을 시도하자 완전히 폭발해버려서,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일부러 자신을 싫어하는 요시모토에게 아니꼬운 태도로 노부나가의 기습을 경계하라고 조언해서 요시모토가 오기를 부리게 만들고, 요시모토는 칸스케의 올바른 조언을 무시하고 일부러 오케하자마 루트를 택해서 진군하다가 죽는다.[18] 자존심 하나로 살던 캐릭터가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당황해서 죽는 것이 허무감을 자아낸다.

전투를 앞둔 요시모토가 사소한 일로 부들부들 화를 내자 쥬케이니가 '그런 얼굴을 하지 말거라'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오다가 잘라 간 요시모토의 목이 협상으로 스루가에 돌아오자 쥬케이니는 굳은 표정으로 자식의 잘린 머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분한가?...그런 얼굴을 하지 말거라'라고 한다. '이후 다케다와 도쿠가와의 협공으로 다이묘로서의 이마가와 가문은 멸망하였다'라는 나레이션이 흐른다.

후계자 다툼 '하나구라의 난'에서 승리한 원인 중 하나가 경쟁자인 겐코 에탄은 서자인데 비해 요시모토 측이 정실인 쥬케이니의 아들이어서 계승순위가 높았다는 점 때문이고, 쥬케이니는 공가 출신으로 교토의 중앙정계에도 연줄이 있음은 물론 냉혹한 현실정치에도 오랜 기간 참여한 가문 내의 원로이자 명실상부한 여성 정치가였다. 이 점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쥬케이니가 단순히 당주의 어머니라는 포지션에 머무르지 않고 가문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참모격으로, 요시모토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존심이 강한 요시모토 측에서 '엄마, 나 어른이라구요.' 하면서 화를 내는 장면도(...) 그리고 신겐의 통수로 부들거리면서 비참하게 죽어간다 <다케다 신겐>에서는 정말 귀기 돋는 광기를 보여주는데, 사위가 아들을 통수쳐 죽이고 공격해오자 정신착란에 빠져서 책임을 서로 미루는 신하들을 가리키며 섬뜩한 눈빛으로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 놈의 목을 잘라서 그 잘린 머리에게 물어보면 진실을 말할 것이야!!!'라고 외치다가 쓰러지는 장면은 지금 봐도 섬찟하다.

2.2 센고쿠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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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1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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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훈남으로 그린 게임. 1 때는 대충 그린 듯한 일러였으나 2 때부터 변신하여 미중년. 거기다 능력치도 우수하고 성격도 좋은 엄친아. 단점이라고는 사치가 심하고 딸내미 바보라는 것 정도. 다만 오다 노부나가 루트에서는 역사대로 광속퇴갤한다.

2.3 전국 바사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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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모티브는 화투의 비광. 그래서인지 개그 무기 중에도 화투장이 있다(...). 호모스러운 화장을 하고 있으며 부하들도 죄다 같은 화장을 하고 있다. 궁병과 카게무샤[19]를 주로 사용하며 도주의 달인. 부하들의 감탄사도 "과연 요시모토 님 도망치는건 세계 제일!" 호칭도 '허장성세(虚張声勢, 실속은 없으면서 큰소리만 친다)'.

성우자비와 동일한 시오야 코조.

바사라 시리즈 자체가 역사왜곡에 충실하기는 하지만 이마가와는 그 중에서도 왜곡이 유별나게 심한 케이스 중 하나. 그나마도 어느 쪽이냐면 실제 역사상에서 '도카이도 제일의 무사'라고 불렸던 면모는 싹 갖다 버리고 안 좋은 쪽으로만 왜곡된 편이다(...). 지독한 마이페이스에다가 쓸데없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앞서 언급되었듯 도주의 달인답게 자기 신변이 위험해진다 싶으면 닥치고 도망부터 가는 바람에 부하들에게조차도 그다지 신뢰받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인질 구출 미션에서 아군 병사 구출 성공시 나오는 대사가 "이걸 어쩌지...요시모토님이 믿음직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무훈에 있어서도 다른 무장들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으며, 1탄에서는 아예 대놓고 작중에서 해설하기를 '본인이 천하를 얻을 만한 실력이 없다는 점을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마이페이스에다 쓸데없이 만사에 고자세인 태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에 끼치는 민폐도 심각한 수준.[20]
자기 딴에는 본인이 유행의 선두주자라고 믿고는 있으나 정작 특유의 화장이며 말투[21] 등등 하는 행색은 오히려 몇백년 전에나 유행하던 모습이다. 이렇다보니 호죠 우지마사같은 캐릭터와는 의외로 잘 맞는지 배틀 히어로즈의 카스가 스토리 모드에서는 호죠와 바둑을 둔다거나 하는 모습이 보인다. 반면 다테 마사무네에게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대놓고 디스당했고, 모리 모토나리에게는 '얼빠진 낯짝'이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22] 여담으로 이마가와와 대면했을 때 다테 마사무네의 대사 중 "요즘 이 검게 물들이는 거 유행 지난지 오래 됐거든?"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있는데, 이로 미루어 봐서는 오하구로도 한 모양.[23]

이렇다보니 원작에서도 대우가 썩 좋다고 보기는 애매한데 애니판에서는 취급이 한층 더 나빠지는 안습한 꼴을 당했다. 먼저 다테군의 습격에 탈탈 털리더니 그 목을 걸고 다테 마사무네사나다 유키무라가 맞짱을 뜨는 걸 코앞에서 봐야 했고,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틈에 카게무샤 둘을 풀어 도망치나 했지만 도주 중간에 끼어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발각되어(카게무샤는 도중에 노히메모리 란마루가 죽였다) 낫에 꿰인 채 끌려가 오다 노부나가의 총에 맞아 사망.

배틀 히어로즈 스토리 모드는 그야말로 이마가와의 인생역정. 수도에 상경하겠다는 꿈을 안고 기세좋게 나섰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어쨌는지 전국 각지의 라이벌 대결[24]에 난입하게 되는데, 덕분에 문자 그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 중간중간 어부 행세라든지 병사 행세 등을 하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하지만 그 튀는 행색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 샌드백 신세가 되고 만다. 어찌어찌 겨우 도망쳐 최종장에서 한숨 돌리려 혼노지에 도착했으나 거기에는....엔딩에서도 결국 혼노지 방화범으로 몰려 체포명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도망자 신세가 되는 안습을 겪고 만다(...).

2.4 전국란스

하니들이 사는 지역을 지나가기 위해 직접 제작한 인형 옷을 뒤집어쓰고 가는데 갑자기 하니들이 출몰해서 하니킹 님이 납셨다!!!! 라며 그대로 납치당해 하니들의 추종을 받는 뭔가 미묘한 아저씨.

이마가와야끼 장인이라서 그가 만든 이마가와야끼는 일품.

2.5 전국무쌍

이마가와 요시모토(전국무쌍) 참조.

2.6 노부나가의 야망

이마가와 요시모토(노부나가의 야망) 참조.

2.7 태합입지전 5

무력이 바닥인 걸 제외하면 능력치 자체는 준수하지만 문제는 시나리오 시작 시점에서 한 달만 지나면 오케하자마 전투 이벤트로 전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사망한다.[25] 한데 궁명인 칭호까지 달고나오면서 무력이 왜 바닥인지는 의문. 요시모토로 직접 플레이시 상락을 하지 않으면 오케하자마 전투를 피할 수 있으며, 상락을 할 경우 오케하자마 전투가 벌어지는데 에딧없이는 정말 운이 많이 따라야 이길 수 있다. 노부나가가 마침 병에 걸려있길 바란다거나...자세한 내용은 오케하자마 전투 항목에서 서술. 승리만 한다면 노부나가는 전사하고 노부나가의 모든 가신을 휘하로 두게 되어 순식간에 통일로 치달을 수 있다.

2.8 쓰론 오브 다크니스

어차피 고증 같은 거 안 따지는 게임이지만 오다 가문의 부하로 등장한다.

2.9 바람의 닌자

작품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는데 외모는 흔히 묘사되는 하얀 화장의 비만으로 나오지만 무능력한 모습보다는 날카롭고 지혜롭게 묘사된다. 심지어 인질이었던 도쿠가와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보다 요시모토를 조금 무서운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고 요시모토도 자기 자식인 우지자네앞에서 노부나가를 이기면 도쿠가와한테 가문을 물려줄것이라고 결심한다.(...) 하지만 그후 이미 이긴 싸움이라고 축제기분으로 방심하다 사망한다.

2.10 오다 노부나의 야망

시대에 안 어울리게 쥬니히토에를 입는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 분위기로 등장. 오케하자마 합전에서 주인공과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대패한다. 그래도 여자라서 죽지는 않고 포로로 붙잡혀 후지산에 출가하는 조건으로 살아남는다. 근데 출가 안하고 계속 식객으로 들러붙어 놀고 먹는다 이후 한동안 출연이 뜸하다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남매가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습격을 받아 명나라로 도망치자 노부나에 의해 이마가와 막부가 성립되어 허수아비 쇼군이 된다.

2.11 전국 컬렉션

호조 소운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오다 노부나가를 치려고 한다. 성우는 시미즈 아이. 자세한 것은 전국 컬렉션/등장인물 항목 참조.

2.12 결전 3

2에서 이상하게 삼국지로 외도했던, 결전 시리즈가 3에서 다시 일본역사로 회귀해서 전국시대를 다루면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도 등장. 2만 아니면 나름대로 역사를 따라가는 KOEI의 결전시리즈라서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코에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이미지에 약간 무장 냄세를 더한 정도.

2.13 전국아라시

사실 일본에 나름대로 날리던 다이묘다 보니 미화쩌는 물건들도 많다. 마이너라서 그렇지. 대표적으로 멋지게 나온 것이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파칭코 전국아라시이다.

2.14 토탈 워: 쇼군2

중립 가문이어서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초반 오다 가문의 주적이자 난관. 원래는 시작연도인 1545년이라면 오다 가문도 팔팔하게 잘 나가고 있던 시절이라서 크게 꿀릴 게 없어야 정상이건만, 시작시 파워밸런스는 마츠다이라 가문[26]을 완전히 종속 하에 두고 있으며 보유한 지방도 2곳이나 되는 게임 내 최강급의 강자가 되어 있다. 즉, 시작이 곧 이마가와 가문 최대판도(...).

하지만 그 공포스러운 풀스택 군단 러쉬를 그대로 재현하면 플레이어의 의욕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지, 연도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아서, 플레이어가 최대한 빠르게 사이토와 도쿠가와를 격파하면 이마가와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원래 이마가와씨는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일족이어서 문장도 그대로 아시카가의 동그라미에 줄 두개 가문을 사용해야 맞지만, 어째서인지 무로마치 막부는 일장기(...)가 가문으로 되어 있고 이마가와씨는 요시모토의 개인 문장인 우산 문장을 가문으로 쓰고 있다. 이걸 수정하는 모드도 있고 나름 인기있는 무장답게 플레이어블 가문으로 만드는 모드도 있다. 이 모드의 모델은 문화인스럽게 갑옷에 관을 쓴 복장. 위의 결전 3과 흡사하다.

2.15 노부나가의 시노비

시게노 나오키가 2008년부터 연재중인 4컷 역사개그 만화인 노부나가의 시노비는 분명히 4컷 개그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역사적 고증이나 학계의 신 학설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데,[27] 요시모토에 대한 해석도 최신의 주류를 따르고 있다.

특히 오케하자마에서 사망시에 "후세에는 날 오와리의 얼간이를 상대로 방심하다 당한 멍청이로 생각하겠지만 방심따윈 하지 않았어! 단지 하늘이 날 버렸을 뿐이다!"라며 절규하는 장면은 그간의 저평가 당하던 요시모토의 절실한 심정이 담겨있는 느낌까지 든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먼치킨 치트키인 치도리[28]가 없었으면 승산이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으니, 요시모토 입장에서도 억울한 건 사실일 듯.
  1. 弓取り의 뜻 자체는 직역하면 '궁수'지만 실제로는 '무사'로 번역하는게 맞다. 센고쿠 시대에 와서는 좀 시들했지만, 헤이안 시대의 무사들의 주 무기이자 상징이 이었기 때문에 '궁수'가 '무사'라는 일반 명사 취급을 받은 듯 하다.
  2. 상세한 기록이 없어서 독살설, 내분설, 암살설 등 온갖 설이 난무하는데 진실은 알 수 없다.
  3. 아버지인 '우지치카'나 아들인 '우지자네'의 이름에서도 보이듯이, 이마가와 가문의 후계자에게 주어지는 통자(通字)는 '우지(氏)'이다. 요시모토의 계승 서열이 밀렸다는 것이 이름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대신 '요시(義)'의 자는 쇼군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정통성을 막부에서 공인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버지.
  5. 이마가와는 미카와, 오와리의 서쪽 방향으로 진출하고 싶어했으며, 다케다는 시나노와 에치고의 우에스기 가문 상대로 전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었고, 호조 가문은 당장 관동의 오기가야츠 우에스기씨와 코가쿠보(古河公方) 아시카가씨에 몰려 엄청난 열세였다. 즉 서로 싸워서 이득일 게 없었기 때문에 동맹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
  6. 이라곤 하지만 실상은 오와리에 오다, 미노에 사이토, 남 오우미에 롯카쿠가 버티고 있었으며, 교토 근방인 키나이 지역엔 미요시 가문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명문가인 이마가와 가문이라도 천하를 노리기엔 많이 힘들었다.
  7. 이때 얼마나 양쪽 가문의 세력차가 컸냐면, 노부나가측은 당주인 요시모토와 수뇌진을 몰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서 이마가와측에 정중하게 요시모토의 수급을 반환했을 정도.
  8. 당시 기준으로도 이게 문제가 된 것은, 요시모토의 부인이 되어 있던 신겐의 누나가 죽자 신겐은 동맹을 갱신하기 위해 요시모토의 딸을 자기 아들이자 후계자인 요시노부의 처로 새로 들이기까지 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돈독한 동맹을 정통으로 배신한 것이라 이 사건은 신겐의 신용을 무지하게 깎아먹었음은 물론 가문 내에 반란사건이 일어나 후계자인 다케다 요시노부가 죽는 원인이 된다.
  9. 교토의 5대 사찰. 당시의 사찰은 고급 학문의 중심지였다.
  10. 이 지역은 전국시대 내내 워낙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 있어서 야심가가 써먹을 권위나 교양 따위는 진작에 무시당하고 있었다.
  11. 이를 정치학에선 찰스 에드워드 메리엄이 주창한 '미란다'라고 한다. 이 미란다는 미란다 원칙과는 다른 것으로, 피치자의 이성적 면에 호소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호소해 통치에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가 이렇게 교양도 높고 권위도 있으니 무지한 너희는 따를 수밖에 없다.'가 된다. 쇼비니즘 등으로 현대 국가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권력 창출의 방법이다. 다만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 미란다는 비웃음을 받고 오히려 권위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이성적 면에 호소하는(합리주의) '크레덴다'를 사용하게 된다.
  12. 그러나 귀족적 교양에의 과도한 집착이 자신과 가문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역사가인 아이다 유지가 <<패자의 조건>>이라는 저서에서 다케다, 호죠, 우에스기 모두 그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중앙 진출을 이루지 못한 이유로 후진 지역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당주는 합리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있어도 가신단은 권위와 교양에 너무 얽매어 있어서 가신단을 자신의 의사대로 통솔하려면 전쟁과 행정에서는 별 필요도 없는 귀족적 교양을 숙련하는데 상당한 정력을 소모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13. 여기서 노부나가가 정보를 가져온 자를 최고로 포상했다며 정보에 주목한 노부나가를 논하곤 하는데, 막상 노부나가는 요시모토 본대를 기습하기 전 군을 격려하는 연설에서도 그 부대가 요시모토 본대가 아니라 군량 수송대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여튼 오케하자마 전투에 대해서는 '어쩌다 이겼다'는 쪽으로 굳혀져 가고 있다.
  14. 이 기습에 대해 흔히 알려지기론 '낮은 분지에서 밥먹던 이마가와 군을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오다 군이 덮쳤습니다'인데, 실제론 높은 산에 올라가서 오다 군이 다가오는 것을 다 보고 있었는데도 발렸다는 고증이 나오고 있다. 현재의 대세인 정면공격설에 따르면, 오다 군과 이마가와 군이 붙었을 때 우연히 미칠듯한 비바람이 불어서 전장이 혼란에 빠지고, 그 틈에 순식간에 이마가와 군의 본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운빨 덕분에 정면공격이 어쩌다 기습으로 변했다는 것
  15. 기존 막부의 체제에서는 명가였지만 여러 사정으로 실추된 그 권위를 재회복한 것은 동맹이자 경쟁자이던 다케다 신겐과 비슷하다.
  16. 지금 보면 드라마 내에서는 다소 처지는 인상이긴 한데,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이었고 교과서에서 요시모토를 접한 일본인들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였다.
  17. 특히 풍림화산에서는 가문 계승순위가 낮았던 요시모토가 갑작스럽게 당주 이마가와 우지테루가 급사하면서 빚어진 권력투쟁 '하나구라의 난'에서 권모술수로 승리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죽기 전까지의 활약상도 일부 그려져서 요시모토의 평가가 더한층 올라가는 데 기여했다. 머리를 빡빡 민 타니하라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여기선 아들인 이마가와 우지자네도 나름 외모 버프 받았지만 지능은 그대로라 아버지와 할머니한테 바보 소리 듣고,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모토야스가 전공을 세우자 요시모토가 ""모토야스가 내 아들이었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정도로 답이 없게 나온다.
  18. 고증오류가 있는데, 어이없게도 장대비 속에서 오다의 부대가 요시모토를 향해 조총을 난사한다(...)
  19. 문제는 이 카게무샤가 딱 봐도 '나 가짜요'라고 온몸으로 말하듯 전혀 안 닮은 녀석들뿐이다(...).
  20. 민폐의 피해자 중 한 명이 아자이 나가마사. 스토리 모드 1장이 오이치와의 혼례 도중 이마가와가 난입해서 온갖 민폐를 끼치는 내용이다(...). 덧붙이면 이마가와가 아자이 부부의 결혼식에서 깽판을 부린 이유가 가관인데, 혼례에 초대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라고(...).
  21. 항상 'おぢゃる(오쟈루)' 어미를 사용한다거나 1인칭이 '마로(성별에 관계 없이 사용된 헤이안 시대 인칭대명사)'라거나.
  22. 세토우치 콤비가 적으로 나오는 배틀 히어로즈 스토리 2장에서 대결 도중 길을 잘못 들어서난입한 이마가와를 본 쵸소카베가 모리에게 저거 니네 병사냐고 묻자 되돌아온 모리의 대답 "우리 군엔 저렇게 얼빠진 낯짝을 가진 병사따윈 없다"
  23. 실제로 오하구로는 주로 신분이 높은 여성들이 많이 했지만, 드물게 남성들 중에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24. 세토우치 콤비, 창홍 등.
  25. 사실 이벤트로 강제사망년도만 보면 사이토 도산, 스에 하루카타, 오다 노부유키등이 먼저이지만, 태합입지전5는 히데요시가 주인공인 관계로, 이들이 죽는 란마의 장(1554년)은 시작부터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고, 한번 게임을 클리어해야 플레이 할수가 있다. 초기부터 플레이 할수 있는 시나리오는 일륜의 장(1560년) 하나 뿐이며, 기본 이벤트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초기 주인공중 누구로 플레이를 해도 이벤트로 제일 먼저 죽게 된다.
  26. 어째서인지 고증을 씹어먹고 '도쿠가와'로 나와 있는데, 일본사를 잘 모르는 양덕 유저들이 주 고객층인데 마츠다이라라고 해놓으면 이게 후일의 그 유명한 도쿠가와 가문이라고 알아보지 못할까봐 배려한 것일지도. 같은 이유로 이때는 나가오 카게토라라는 이름을 쓰고 있던 켄신도 우에스기 켄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27. 근본이 개그만화인지라 과장되고 코믹한 묘사가 많지만, 실제 역사학자가 추천도서로 꼽을만큼 신학설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정설을 상당히 많이 도입한 편이다
  28. 이 만화의 주인공. 제목 그대로 노부나가 휘하의 여성 닌자인데... 행동은 천연계 얼빵소녀지만 닌자로서의 실력은 확실하며, 특히 그 전투력은 웃으면서 1개 대대병력을 난도질하고도 숨결하나 거칠어지지 않는 살륙머신이다. 작중에서도 치도리와 일대일로 싸워서 압도한 무장은 아사쿠라 요시카게 휘하의 마가라 나오타카와 다케다 신겐 휘하의 모치즈키 치요메의 두명 뿐인데, 그나마 치요메의 경우 성격상 명령이 없으면 살상은 자제하는 특성상 마음대로 살수를 펼치는 상대에게 밀린것이고 실제로 전력으로 붙어서 밀린것은 마가라 나오타카 한명 뿐. 카네가사키 탈출전에서도 후위를 맡으라는 명령에 죽을상을 짓던 하시바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치도리를 붙여준다니까 승산이 생겼다며 좋아할 정도로 오다가 최강전력취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