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암 103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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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4개월 전인 1988년 8월 독일 프랑크프루트 암 마인 국제공항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1988년 12월 21일
유형폭탄 테러
발생 위치스코틀랜드 로커비
탑승인원승객 : 243명
승무원 : 16명
사망자승객 : 243명
승무원 : 16명
지상 주민 : 11명
생존자승객 : -
승무원 : -
기종Boeing 747–121
항공사팬 아메리칸 항공
기체 등록번호N739PA
출발지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도착지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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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다룬 항공 사고 수사대 영상 영문 국내방영본

1988년 12월 21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보잉 747 여객기가 리비아의 테러 집단에 의해 비행 도중 폭파된 사건. 사건 장소의 이름을 따 로커비 테러(Lockerbie Bombing)로도 불린다.

1 사건 개요

먼저 이 테러를 제대로 알려면 카다피 원수의 행보를 알 필요가 있다. 1969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어엎은 카다피는 강대국들이 테러라고 부르는 행위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무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에서부터 필리핀에 이르는 세계 전역에서 테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리비아의 비밀 문서에 따르면 카다피USS 빈센스 함 사건에 대한 서방 세계로의 보복으로 팬암 103편을 택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지만 힘을 얻고 있는 주장은 리비아에 1986년 폭격을 한 것(리비아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이다.

팬암 103편은 대서양 횡단 노선으로, 독일 헤센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영국 런던히드로 공항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미시간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으로 가는 황금 노선을 운행하는 비행기였다. 항공기는 약 243명과 16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있었다. 1988년 12월 21일 비행기가 남부 스코틀랜드로커비 상공을 지나고 있을 때 로커비에선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파편들이 하나 둘 씩 떨어지더니 종국에는 거대한 불덩이가 마을 중심부를 덮치면서 11명이 사망했다. 마을 경찰관은 파편을 조사하면서 비행기 티켓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팬암 항공사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뉴욕 JFK라고 써져 있었다.

아침이 되자 마을이 입은 피해가 정확히 드러났고 마을 중심부에 떨어진 불덩이에 휩싸였던 거대한 파편은 보잉 747기의 날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날개는 91,000kg(200,000 파운드)의 등유를 싣고 있었고 마을과 부딪힌 즉시 점화되어 부딪힌 집들을 말그대로 태워버렸던 것이다.

2 사보타주? 테러?

팬암 103편이 추락한 1988년은 인도항공 182편이 테러로 대서양에서 공중분해 된지 3년이 지난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테러가 주 원인으로 의심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팬암기의 잔해는 마을 중심부를 덮친 날개로부터 비행기의 부서진 콕핏이 발견된 동쪽으로 2km떨어진 들판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승객들의 사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는 공중분해 됐다는 사실이 확실했다. 또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비행기와의 교신이 아무 경고도 없이 두절되었다.

팬암 103편의 기체 내력은 보잉사에서 15번째로 만들어진 보잉 747기 였으며 1970년 팬암에게 인도되었다. 등록번호는 N739PA였다. 팬암은 이 비행기에 이름도 붙였으며 Clipper Maid of the Seas라고 불렸다. 비행기는 1988년 오버홀(overhaul 분해점검)을 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오래된 비행기 였다는 것이다.

3 조사

AAIB는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하여 10000개가 넘는 부품에 일일이 태그를 붙이고 컴퓨터 추적 시스템에 입력했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인도항공 182편은 대서양 속에 가라 앉아있기 때문에 만족할만한 자료가 모이지 않았기에 비슷한 이 사건 조사는 상당히 신중하게 임했다. AAIB는 또한 그렇게 모은 부품들을 가지고 보잉 747을 재조립 했으며 결국 조사관들은 비행기의 앞부분 화물 적재실에 450g 짜리 폭탄이 폭발하면서 남긴 20인치(51cm=510mm)짜리 구멍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 폭탄은 시한폭탄이었으므로 원래 증거가 남지 않도록 바다에서 폭발하게 시간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팬암 103편의 출발지연으로 인하여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조사관들은 수상한 라디오 칩을 발견하면서 이 제품이 도시바의 라디오였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라디오는 아이러니하게도 폭발적인 사운드의 라디오[1]라고 홍보하는 제품이었다. 라디오와 같이 담겨있었던 옷은 아무 옷이나 몰타에서 한 상인에게 산 옷이며 담았던 여행가방이 팔레스타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는 샘소나이트 가방이란 것도 알아내었다.

폭탄이 최초 출발지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실렸다는 것이 확인되어, 공항의 허술한 수하물 검사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테러범은 알 메그리히로 스코틀랜드 법원에서 팬암 103편의 폭파 용의자로 기소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으로 유일하게 유죄가 선고된 인물이였다. 그는 8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그리녹 감옥에서 복역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2009년 8월 20일 석방되었지만 2012년 5월 21일 사망했다.

4 보상

4.1 리비아

리비아는 2002년 5월 29일 팬암 103편의 폭탄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고 270명의 팬암 103편의 희생자들에게 27억 달러를 배상했다.

4.2 팬암

1992년 미국 연방법원은 수하물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팬 아메리칸 항공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팬암 103편의 폭발은 안 그래도 무너져가는 팬암에게 거대한 타격을 입혔고 결국 199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노선은 유나이티드 항공에 대서양 노선은 델타 항공에 넘어갔다.

5 사고 후 조치

1985년에 329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항공 182편 폭파 사건과 1989년 발생한 팬암 103편의 사고는 항공 업계에 폭탄테러의 심각성을 일께워주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연결 항공편의 짐을 싣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항공업계는 승객과 수하물이 일치해야 비행기가 출발하는 규칙을 만들게 되었다.[2] 또한 승객의 짐과 승객이 같이 탑승하지 않을 경우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규칙은 1996년 TWA 800편 추락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좀 더 자세한 사고 후 조치는 아래와 같다.

5.1 영국

비록 미국 국적 항공기였지만 실질적인 사고가 일어난 영국은 특이하게도 별로 달라진것이 없다.
Aviation and Maritime security Act 1990 (항공 및 해양 보안 법률 1990)이란것이 생겼지만 매우 짧은 Air Cargo Agent 항목이 추가된것을 제외하고는 동종의 사고를 미래엔 어떻게 막을것인지에 대한 법률이 거의 전무하다.
이 법률을 간략하게 하자면

* 수하물 추적 및 검사 능력 보완
  • 테러범들을 단죄할 수 있는 법 추가

이 두개의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당연히 백번 낫지만 최단시간 내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 미국과는 달리 수하물 추적이나 엑스레이 기기 통과와 승객과 수하물이 같이 항공기에 올라야 한다는 법 두 가지는 1995년이 되서야 필수가 되었다. 물론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드는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1988년의 사고를 일으킨 간접적인 원인과 직접적인 원인을 1995년이 되서야 막으려 했다는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

5.2 미국

9/11 당일까지만해도 미국의 항공 보안법은 물러터졌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사실 이 사고를 통해 미국은 상당한 보안 법률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법률은 Aviation Security improvement Act 1990 (항공 보안 개선 법률 1990) 이라고 불리는데 미국 본토에 미치는 영향들 중 일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FAA에 민간 보안부서가 생김
  • 수하물을 자체적으로 검사 할 수 있음
  • 항공기에 다가갈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김
  • 엑스레이 기기 도입
  • 탑승 전 승객들을 검사하는것이 필수가 됨
  • 승객들과 승무원/조종사들을 위한 테러 위협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짐
  • 보안을 최대화하기 위해 공항 디자인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구축됨
  • 보안이 필요한 미국 공항들에 연방 보안 요원이 파견됨 (비슷하게 아마 동의나 요청에 따라 해외 공항에도 파견될 수 있음)
  • 모든 공항 직원들의 뒷조사 (범죄 경력)를 실시함
  • 매년 한번씩 연방 의회에 항공 보안에 대해서 리포트를 올려야함
  • 미국 국내 항공기에 위협이 가해질 만한 낌새가 보이면 FBI가 개입할 수 있음
  • 보안 시스템 개선에 더 투자함
  • 폭발물 탐지기들의 구매와 설치를 법으로 제재함 (법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 구매나 설치를 못한다는 뜻[3])
  • 테러 위협을 받을 경우 항공편을 취소할 권한
  • FBI, CIA, FAA 그리고 미국 운수부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사이에 원활한 자료 및 정보 공유
  • 항공기에 실리는 모든 수하물 (우편, 화물 등등)을 검사할 보안 방법 연구

이외에도 국외에 나가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고 팬암 103편의 미국인 사망자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질것인지 대략적으로 쓰여있는데

* 미국인들이 관련되어있는 사고엔 연방정부 요원 두명을 해당 사고 지점으로 파견한다.
  • 연방정부는 미국인 탑승객들의 시신 수습 의무를 진다.
  • 대통령을 설득하여 테러의 피해자들에게 감세로 보상이 가능하게끔 한다.

등등이 있다. 더 자세한 건 위의 링크를 타면 된다.

영국과 비교하면 1990년 10월에 법률이 상정되고 같은 해 11월에 법률이 통과되었다. 실질적으로 1995년에 발효된 영국의 법과는 조금 대조적인 부분. 물론 이 법이 선언되고 11년 후에 생긴 사건을 보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6 기타

  • 김진명의 소설 '한반도'(현재는 10.26으로 개칭)에서는 이 사건을 또다른 음모론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CIA가 다량의 미국제 무기를 이란에 반입되도록 하고, 헤로인을 뉴욕으로 반입하는 시리아 테러범을 비호하고 있었는데, 이를 알게 된 CIA요원들의 귀국과 폭로를 막기 위해 미국이 시리아 테러범을 통해 팬암 103편을 폭파했으며, 걸프전 때 미국에게 도움을 준 시리아 대신 리비아를 그 배후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 내용.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 이는 잘못된 것이다. 김진명은 리비아 폭격이 팬암 103편 폭파 사건 이후인 것 처럼 서술하였으나, 리비아 폭격은 팬암 103편 폭파 사건보다 2년 앞서기 때문이다.
  1. BomBeat. 당시 도시바 라지카세 상품명이다.
  2. 보딩패스를 확인하여 승객이 탑승하지 않았다면 짐을 죄다 내려서 안 탄 사람의 수하물은 빼고 출발해야 한다.
  3. 테러리스트들이나 각종 범죄자들이 기기를 구입해서 우회방법을 찾아내는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