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코믹스의 캐릭터를 찾는다면 케이틀린 페어차일드 항목으로. |
1 페어차일드
풀네임은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Fairchild Semiconductor)이며 세계최초로 집적회로를 상용화한 기업이다. IT 업계에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이 일어나게 한 한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기업이다.[1] 1957년도에 창업해서 1960년대에 미국 IT의 상징인 실리콘 밸리의 혁신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IC 분야로는 꽤 알아주는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이다.
1.1 창업초기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라는 회사는 페어차일드 카메라 & 인스트루먼트(Fairchild Camera and Instrument)라는, 1927년에 설립된 카메라 기기 생산회사의 자회사인데,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2]가 설립한 쇼클리 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에서 1958년, 윌리엄 쇼클리와 의견 불일치로 갈등을 겪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를 영입하면서 설립된 회사이다. IT 업계의 경영공부를 하면서 한번쯤 듣게 되는 유명한 이야기인 배신자 8인이 바로 이들이다. 배신자 8인은 줄리어스 블랭크, 빅터 그리니치, 진 호에니, 유진 클라이너, 제이 라스트,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와, 셸던 로버츠이다.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는 1957년에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용한 저마늄은 반도체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재료가 되었다.
이후 페어차일드는 트랜지스터 제조를 플래너 공정으로 하면서 업계의 선두기업으로 부상했다. 플래너 트랜지스터는 다른 업체에 비해 값도 싸고 성능은 크게 향상시키면서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2N697 모델은 IBM에 개당 150 달러로 납품했다. 2년후에 배신자 8인은 4개 트랜지스터 회로를 하나의 실리콘웨이퍼에 집적한 반도체를 설계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실리콘 집적회로가 탄생했다.[3]
1.2 잇다른 퇴사
아날로그 집적회로 시장에 시장적으로 선점을 하고 있었지만 디지털 집적회로 시장에는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NASA에 마이크로로직RTL 제품군을 납품하면서 디지털 집적회로의 첫 번째 제품을 만들어냈다.[4] 그러나 RTL 소자군은 상업용으로 한계가 있어서 제조상에 많은 결점이 있었고, 국방산업용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베신자 8인중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MOS 트랜지스터 개발방법을 두고 첨예한 다툼을 벌였는데,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Sillicon Gate MOS를 이용한 새로운 공정을 주장했으나 회사에서는 당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왔던 Bipolar 기술을 사용한 공정기술을 주장했다. 이러한 갈등으로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를 퇴사하고 다시 창립한 기업이 바로 전설적인 외계인 납치회사 인텔이다. 그들이 세운 인텔에는 1969년 앤드류 그로브를 비롯한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의 중역들이 대거 합류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가 7명의 이사를 데리고 나와 5월 1일에 외계인 납치회사 추격자 AMD를 만들었다. 다른 기업으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을 "페어차일드 런"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페어차일드를 뛰쳐나온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IT 업계의 중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3 이후 몰락의 길
1970년대에는 벨 연구소 다음으로 상업용 CCD를 생산하였다. 디지털 영상 센서는 페어차일드의 자회사인 페어차일드 이머징에서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특이하게도 비디오 게임 시장에도 뛰어들어 페어차일드 채널F라는 비디오 콘솔을 출시했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ROM카트리지를 사용하는 콘솔 게임기였다.
- 채널F의 사진 -
하지만 이후로 연속되는 삽질과 경쟁업체들의 호조로 인해서 시장에서 점점 더 멀어졌고 1979년도에 석유업체인 슐룸베르거 사에 인수되었다.
1987년 슐룸베르거 사는 일본의 후지쯔에 3억 달러에 매각될 뻔 했지만 미국 정부의 군사관련 유출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고 결국에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 인수되었다. 이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 1997년도에 독립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4 페어차일드 코리아
페어차일드의 한국에서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1967년에 구로공단에서 처음 공장을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1만 명의 직원이 한 달에 2천만 개의 반도체를 만들었다.[5] 수출액은 1973년에 2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참고로 당시 노동자의 월급이 2만2천 원이던 시대였다.[6] 하지만 본사의 매출감소와 2년 연속 적자, 당시 한국에서 불고 있는 노사문제가 불거지는 등 문제가 생긴데다 점차 한국의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1989년에 철수했다. [7]
하지만 1998년도에 삼성전자의 전력용 반도체 부문을 4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함으로써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전력용 반도체 전문 회사이다. 당시 삼성에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매각한 사업을 잽싸게 사들였는데 이것이 페어차일드의 부활을 촉발했다. 페어차일드는 이후 전력용 반도체 부문에서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5억 5,000만 달러와 5억 8,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는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며 계열사 중 최대 규모에 속한다. 그래서 아직도 삼성전자는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연구소와 생산공장이 함께 있으며, 약 1,8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경상북도 구미시에 영업사무소, 경기도 화성시에 자동화 물류센터가 있다.
여담으로 생산직을 뽑을 때 경기도 내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와 함께 고졸들을 가장 많이 뽑는 기업 중 하나이다. 다만 현재에 들어 실업계고에서도 진학을 하는 곳이 많아졌지만 까다로운 면접은 그대로여서 대학보다 합격이 더 힘든 곳이라는 말이 생겼다. 또한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의 취업율이 높았는데[8]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남녀고용평등상 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된 노동 때문에 여성들의 잦은 퇴사로 인해서 지금은 얼떨결에 남녀평준화가 되었다.(...)
2 동명의 항공기 회사
유명한 A-10 썬더볼트2 공격기의 제작회사로, 페어차일드 사의 자회사이다. A-10 외에도 C-123 수송기와 그 외 여러 민수용 항공기를 제작했다. 참고로 2003년 M7 에어로 스페이스 사에 인수되었는데, 이 M7 에어로 스페이스 사는 이스라엘의 유명 방위산업체인 엘빗 사에 인수되었다.
M-16을 처음 만들었던 아말라이트가 한때 페어차일드의 자회사였다.- ↑ 왜냐하면 이들의 혁신이 없었다면 반도체로 먹고 사는 한국에게도 답이 없었을 수밖에...
- ↑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사람으로 반도체의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다.
- ↑ 하지만 IC 관련 특허는 이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던 잭 킬비가 취득하였다.
- ↑ 아폴로 유도 컴퓨터에 사용되었다.
- ↑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반도체는 많은 노동이 필요한 노동 집약적 산업 중 하나였다.
- ↑ 1974년 10월 5일 경향신문 3페이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참고.
- ↑ 이때 노동자들이 23.6% 임금인상을 요구했으니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밖에...
- ↑ 남자는 군대문제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