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Philadelphia Orchestra
미국의 필라델피아를 거점으로 하는 관현악단. 미국 상위권 악단을 칭하는 '빅 파이브' 에 드는 악단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홈페이지
목차
1 연혁
1900년에 독일 출신 지휘자인 프리츠 셸에 의해 창단되었는데, 셸은 1907년에 사망할 때까지 초대 음악 감독으로 재임하며 악단을 이끌었다. 다만 셸은 워낙 유럽, 특히 독일 중심의 사고관을 갖고 있어서, 미국인 단원들이 연주 못한다고 대거 짤라버리고 리허설도 독일어 만으로 진행하는 등 유럽 관현악단 2중대 만든다고 디스 당하기도 했다.
셸의 사후 역시 독일 출신인 칼 폴리히가 뒤를 이어 1912년까지 음악 감독으로 재직했고, 같은 해 폴란드계 영국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스토코프스키 재임 중 악단은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고, 악단의 합주력은 물론이고 광대한 연주 곡목의 소화와 화려하고 극적인 음향으로 '필라델피아 사운드' 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다.
하지만 스토코프스키는 재임 후기에 악단 경영진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고, 1936년에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유진 오먼디가 수석 지휘자 자격으로 영입되어 업무 인계에 들어갔다. 오먼디는 스토코프스키가 1938년 사임한 뒤 음악 감독 직책을 이어받아 무려 42년 동안이나 유임해 창단 후 최장기 연임 지휘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오먼디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답게 현악 파트의 소리를 매끈하게 다듬었고, 스토코프스키 시절과는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악단과의 궁합도 매우 좋았고, 전임자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했던 녹음 활동도 계속 이어갔다. 1973년에는 중국 순회공연을 개최했는데, 건국 이래 최초로 중국 본토에서 연주한 미국 관현악단이자 문화대혁명 후 최초로 방중한 해외 관현악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80년에 오먼디가 고령을 이유로 퇴임한 뒤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무티가 뒤를 이었고, 무티는 1992년까지 재임했다. 이어 독일의 볼프강 자발리슈가 제6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다. 자발리슈 부임 초기에는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1996년에 무티 이래로 10년 넘게 이어오던 EMI와의 녹음 계약 갱신이 중단되면서 악단이 두 달 넘게 파업에 들어가는 흑역사가 연출되기도 했다.
자발리슈가 2003년에 사임한 뒤 역시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영입되었는데, 에셴바흐는 부임 초기부터 지휘자로서의 역량 문제와 단원들과의 소통 문제 등을 의심받아 활동이 순탄치 못했다. 비록 온딘과 음반 녹음 계약을 체결해 악단의 재정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도 부담이 되는 직책이라고 느꼈는지 거의 5년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에셴바흐 사임 후 악단 측은 후임으로 프랑스계 스위스 지휘자인 샤를 뒤투아를 상임 지휘자 겸 예술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영입해 완충기를 갖기로 했고, 2010년에는 객원으로 초빙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프랑스계 캐나다 지휘자인 야닉 네즈-세갱이 2012년부터 음악 감독으로 활동한다고 발표했고, 네즈-세갱은 발표대로 2012년 시즌 후반부터 재임 중이다.
2 역대 음악 감독
음악 감독 직책으로 활동하지 않은 지휘자는 기울임체로 표기했다.
- 프리츠 셸 (Fritz Scheel, 재임 기간 1900-1907)
- 칼 폴리히 (Karl Pohlig, 재임 기간 1908-1912)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Leopold Stokowski, 재임 기간 1912-1938)
- 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 재임 기간 1938-1980. 퇴임 후 계관 지휘자 호칭 수여)
-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재임 기간 1980-1992)
- 볼프강 자발리슈 (Wolfgang Sawallisch, 재임 기간 1993-2003. 퇴임 후 계관 지휘자 호칭 수여)
-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Christoph Eschenbach, 재임 기간 2003-2008)
- 샤를 뒤투아 (Charles Dutoit, 재임 기간 2008–. 상임 지휘자 겸 음악 고문)
- 야닉 네즈-세갱 (Yannick Nézet-Séguin, 재임 기간 2012–)
3 특징
초기에는 독일 지휘자들이 하도 고향 색을 많이 입혀놓으려고 해서 문제가 많았지만, 스토코프스키 재임기에 소위 '미국 관현악단의 음향' 이라는 관념이 된 화려한 소리를 뽑아내면서 일약 미국 최강 악단 반열에 들었다. 그 뒤로도 음악 감독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여전히 음향 면에서는 미국 악단들 중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축에 속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스토코프스키는 악단의 체질 개선 외에도 라디오와 음반이라는 매체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 지휘자로 유명하며, 필라델피아 시절에도 전속사인 RCA에 대량의 녹음을 취입했다. 1917년에 첫 녹음을 시작한 이래로 음반 녹음은 악단의 중요한 수입원이자 명성의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25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기 녹음 방식에 의한 레코드를 제작한 관현악단으로, 1932년에는 세계 최초로 스테레오 녹음을 시도한 관현악단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1940년에 발표된 월트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판타지아(Fantasia)에서는 OST로 쓰인 클래식 작품들의 연주를 맡아, 클래식 관현악단으로서는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에 진출한 악단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스토코프스키 사임 후인 1942년에는 미국 음악가 조합의 녹음 인세를 둘러싼 장기 파업으로 녹음이 거의 없었지만, 1944년에 파업이 해소되면서 컬럼비아(현 소니 클래시컬)로 옮겨가 오먼디의 지휘로 녹음을 재개했다. 1968년에는 다시 RCA와 계약해 계속 녹음을 진행했고, 무티와 자발리슈 재임기에는 주로 EMI에서 녹음을 했다. 하지만 자발리슈 재임기의 파업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음반사들과의 밀약도 클래식 음반 매출의 지속적인 감소와 더불어 계속 흔들리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인지 악단 측은 2006년부터 미국 관현악단으로서는 최초로 자신들의 연주를 담은 디지털 다운로드 음원을 인터넷을 통해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대행사를 지정해 아마존과 아이튠즈 등의 웹사이트에 계속 음원을 판매하고 있다. 아직 악단 자체 음반사나 유통사의 설립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상주 공연장으로는 창단 이래로 100년 넘게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홀을 쓰고 있었는데, 오페라극장에 가깝게 지어진 탓에 관현악단의 연주회에는 공간이나 음향 모두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오고 있었다. 결국 2001년에 새로이 콘서트 전문 공연장으로 건립된 킴멜 공연예술 센터의 버라이즌 홀로 옮겨갔는데, 다만 아카데미 오브 뮤직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고 특별 음악회 때 종종 사용하고 있다.
비시즌기인 여름에는 페어마운트 공원의 실내/실외 겸용 대규모 극장인 만 공연예술 센터[1]와 뉴욕 주 새러토가의 야외 공연장인 새러토가 공연예술 센터 등지에서 대중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합창 붙는 작품의 공연 때는 필라델피아 싱어즈(Philadelphia Singers)라는 합창단이 악단 상주 합창단 자격으로 협연하고 있다.
- ↑ 1978년 이전까지는 '로빈 훗 델 웨스트'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