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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허유강(許裕康 |
생년월일 | 1986년 11월 16일 |
출신지 | 충청북도 옥천군 |
출신학교 | 둔촌초-잠신중-경기고-성균관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언우타 |
프로입단 | 2009년 한화 이글스 2차 2순위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2009~2015) 연천 미라클(2016)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6번 | |||||
정민혁(2007~2008) | → | 허유강(2009~2011) | → | 이영기(2012)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9번 | |||||
정대훈(2013) | → | 허유강(2014~2015 ) | → | 송신영(2016) |
1 소개
대학야구 최강 팀인 성균관대학교에서 동기인 황재규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던 언더핸드 투수로 성균관대의 2관왕을 만드는데 기여했으며, 체코에서 열린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에서 이후 MLB 전체 1차로 지명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선발로 세운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7이닝 1실점 7삼진이라는 호투를 할 정도로 유망한 유망주였다.
당시의 허유강은 지저분한 구위와 쓸만한 싱커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제 2의 정대현"이라는 칭송을 받았었다.
한화 스카우터진은 대졸 즉전감 투수를 원한 당시 감독인 김인식의 의향에 따라 2차 1지명으로 구본범을 지명한데 이어 2차지명으로 허유강을 지명한다.
2 시즌
2.1 데뷔 후 군복무 전까지
그러나 큰 기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시즌 초반 1군 2경기에서 잠깐 선을 보였던 허유강은 2군으로 내려가고, 이후 킬인식에게 미친듯이 굴려진 양훈을 대신해 동기이자 5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황재규가 노예로 자리를 잡는다.
결국 양훈과 황재규 두 사람이 모두 동시에 혹사당해서 망가지자 1군으로 콜업되 새로운 2009년 후반기 한화의 새로운 노예 역할를 맡았으며 당시 승리 투수가 된 뒤 인터뷰에서 정대현을 연상시킨다고 하자 "제 2의 정대현 대신 제 1의 허유강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고, 이 덕분에 이후 허유강에게 여왕매미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왜 하필 매미였냐면, 인터뷰하기 며칠 전 경기에서 등판했을때 유니폼 뒤에 매미 한마리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평균자책점도 준수한 편에 속했으며 세부스탯도 괜찮은 수준이었던 허유강은 다음 시즌인 2010년에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내려갔던 허유강은 이후의 경기에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방어율을 꾸준히 내리기 시작했으며 나름대로 호투를 하고 있었던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4월 18일.넥센 히어로즈의 금민철이 한화 타선을 완전히 틀어막고 회는 9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며 선발 김혁민이 털리면서 빠르게 내려가고 이후에 나온 투수들도 차례로 털리는 바람에 많은 투수들을 소모했던 한대화 감독은 이닝만 끝내달라는 생각이었는지 허유강을 올렸다. 그리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처참한 결과가 나와버렸다.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있던 막장 수비에 힘입어서 빗맞은 안타가 7연타로 나왔고, 병살로 2아웃을 잡았지만 바로 2안타를 더 맞아 9회초 2/3이닝 동안 무려 9피안타 6실점을 하였고 상대인 넥센은 타자 일순을 하였다. 중간에 투수코치가 올라가서 다독이기도 했으나 효과는 없었으니... 결국 하는 수 없이 허유강은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데폴라가 등판하여 1구만 던지고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으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강판된 허유강은 벤치에서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이 경기 이전에도 멘탈이 그다지 좋은 선수는 아니였지만 이 경기에서 멘탈이 완전히 박살나버렸고, 이후 전년도의 좋은 모습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며 패전처리로 나왔다.
2011년에는 3명의 사이드/언더 투수가 갑툭튀하면서 완전히 버로우하고 말았다. 일단 황재규처럼 군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고 결국 2011년 11월 1일 경찰청 야구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경찰청에 입대하여 군 문제를 해결하였다.
2.2 2014, 15년
2군에서 괜찮게 던지던 중 작년의 혹사 여파로 부진한 송창식을 대신해 6월 23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하지만 6월 25일 경기에 등판해서 황재균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았다. 결국 다음 날 정대훈과 함께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그대로 2군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2015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서 제외되었다. 부상으로 인해 육성선수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술하는 이유로 인해 2016년 1월 18일 개편된 선수 정보에서 사라졌다. 2016년 2월 19일에 시행하는 연천 미라클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며 3월 25일 최종 합격했다. 연천 미라클에서 뛰게 된 후 인터뷰를 했다.인터뷰기사
8월 중 연천 미라클에서 퇴단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9 | 한화 이글스 | 27 | 28⅓ | 1 | 0 | 0 | 2 | 1.000 | 3.49 | 23 | 1 | 22 | 10 | 16 | 11 | 1.341 |
2010 | 42 | 46⅓ | 1 | 2 | 0 | 2 | 0.333 | 7.58 | 65 | 5 | 28 | 25 | 45 | 39 | 1.835 | |
2011 | 1군 기록 없음 | |||||||||||||||
2012 | 경찰 야구단에서 복무 | |||||||||||||||
2013 | ||||||||||||||||
2014 | 1 | ⅔ | 0 | 0 | 0 | 0 | 0.000 | 13.50 | 2 | 1 | 0 | 0 | 1 | 1 | 3.000 | |
2015 | 5 | 2⅔ | 0 | 0 | 0 | 0 | 0.000 | 10.13 | 1 | 0 | 4 | 1 | 3 | 3 | 1.125 | |
KBO 통산(5시즌) | 75 | 78 | 2 | 2 | 0 | 4 | 0.500 | 6.23 | 91 | 7 | 54 | 36 | 65 | 54 | 1.641 |
4 이야깃거리
- 성균관대학교 시절 방황하다 팀을 이탈하고 야구를 접을 생각까지 했는데 예기치않게 만난 김성근 감독의 설득에 멘탈을 고쳐잡은 일화가 있다.# 김성근 감독이 2015년부터 한화의 사령탑으로 부임함에 따라 야구 인생의 은인과 만나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로울 듯.
하지만 와이프가 김성근을 저격하는 인스타를 올리면서 그 감회는 분노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이거 때문에 팀을 완전히 떠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