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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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No.28
정대현 (鄭大炫 / Tae-Hyon Chong )
생년월일1978년 11월 10일
출신지전라북도 군산시
학력군산중앙초-군산중-군산상고-경희대
포지션투수
투타우언우타
프로입단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 고졸우선지명
2001년 SK 와이번스 지명권 인수
소속팀SK 와이번스 (2001~2011)
롯데 자이언츠 (2012~)
등장곡Where you have you gone dj myno remix
1996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박명환 (충암고등학교)정대현(군산상업고등학교)강서현(신일고등학교)
2012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정근우(SK 와이번스)정대현(롯데 자이언츠)최준석(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 등번호 1번
강병규(2000)정대현(2001)제춘모(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조규제(2001)정대현(2002~2011)백인식(201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김근호(2010~2011)정대현(2012~2016.5.30)노경은(2016.5.3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8번
고원준(2016~2016.5.30)정대현(2016.5.31~)현역

1 소개

여왕벌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산 증인, 국제대회 최종병기
KBO 통산 블론세이브 1위[1]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롯데 자이언츠투수. 구원 투수로 주로 활약하였으며 임창용, 오승환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마무리 투수 중 하나. 영문명은 Chong Tae-Hyon.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맞춰 적은것으로(반달점 bréve 는 빠졌지만), 2000년 개정이전 당시 표기법에 맞게적은 경우이나 오히려 표기법에 맞춰 쓰는사람이 적었기에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 중 하나이다.

SK 와이번스 벌떼 불펜의 핵심이었으나 롯데에서는 기대치만큼은 못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어찌보면 30대 중후반의 나이라 못해도 이상하진 않을 나이이긴하다. 국가대표에서는 김현수와 함께 오랜 기간동안 투타를 이끌고 있다.

2 플레이 스타일

입단 초기엔 '패스트볼이 너무 느리다.', '언더 보기가 귀한 국제 무대에서나 통하지 국내에서의 경쟁력은 없다 왠지 사실같지만....', '선발로 뛰기에는 너무 단조롭다.'는 평도 많았고 출전 기회도 적었지만, 투구시의 팔각도누군가생각난다를 조금 위로 올려 고치는 등 피나는 노력 끝에 조범현 감독 시절부터 중간계투 위치에서 제 몫을 하기 시작한다. 타이밍을 맞히기 어려운 무브먼트가 심한 투구가 특징. 플라이볼에 비해 땅볼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며 이 덕분에 적은 이닝을 깔끔하게 막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 내구력이 약한 편으로 예전에도 그렇게 좋은 타입은 아니었으나 근래에 들어서 더욱 안좋아지고 있다.[2]

완벽한 정통 언더 투수로써 고창성등은 언더인가 사이드인가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정대현은 사이드암으로 분류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구속은 상당히 느려 보통 130km대 초반의 속구를 던지지만 제구력이 좋은데다가 무브먼트가 상당히 좋다. 패스트볼이 미칠듯이 가라앉으며 던지며 상대를 농락한다.

타석에서 보면 정대현 선수 공이 얼마나 많이 움직이는지 말을 못합니다. 이선수가 컨디션이 좋은 날 구속이 135km까지 나가는 날이 있는데, 그때는 진짜 정대현 선수의 공은 건드릴 수가 없어요."

마해영.

정지원 : "선수시절에 정대현 선수와 상대했을때 어땠습니까?"

마해영 : "그냥 마운드에 정대현 선수가 있으면 대타로 바꿔줬으면 했어요"(…)


2009 WBC에서 해설을 맡은 정지원과 마해영의 대담 중에서

볼 끝이 더러우며[3] 베이징 올림픽 야구때 정대현과 불펜에서 호흡을 맞춰 본 강민호는 "정대현 선배가 말하길, '형은 똑바로 가는 공이 없다. 직구 사인이 나면 공이 약간 휠거다'라고 했다"라고 했을 정도로 타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으며, 끝에서 살짝 떨어져서 치기가 까다롭다.

정대현의 공을 받아본지 얼마 안된 포수들은 절대로 미트질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공 끝이 몹시 더러워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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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썩을체인지업 근데 정작 구종은 싱커

최고 무기는 단연 씽카볼씽킹 패스트볼. 궁내 채고의 싱카볼 투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싱커와 반대의 무브먼트를 가진 일반 커브와, 110km후반대의 마지막에 솟아오르는 업슛성 커브도 던지며[4], 슬라이더에도 능하여,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서 안쪽 코너로 절묘하게 걸치는 백도어성 슬라이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 완급 조절의 달인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 정대현을 상대했던 쿠바 야구 선수들이 나중에는 정대현을 놓고 거의 알레르기 수준으로 치를 떨게 되었다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치기가 굉장히 까다롭기도 하고 이런 식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중남미에선 그리 흔하지 않으니.[5]

언더핸드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좌타자에게 약하지도 않다.

프로로 15년 넘게 뛰면서 보크를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다. 나름 능력일지도.[6]

3 아마추어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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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선수 시절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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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시절 (출처 : 포토로)

전라북도 군산 출신으로 본인의 말로는 중학교 시절엔 불같은 강속구 투수였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사이드암으로 바꿨다고 한다. 군산상고 재학중이던 1996년에 봉황대기에서 백차승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결승에 올라온 김수경의 인천고를 꺾고 군산상고를 우승시켰다. 그리고 2000년 경희대학교 재학시절 아마추어 신분으로 시드니 올림픽 드림팀에 합류하여 미국전 2게임에 선발로 등판, 비록 편파 판정으로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각각 7이닝 무실점과 6⅔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여 '미국 킬러'란 별명이 붙었으며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7]

4 프로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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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로 전성기를 보냈던 SK 와이번스 시절

SK 와이번스에서는 국가대표 언더핸드의 계보를 잇는 KBO 역사상 최고의 불펜투수 중 한 명

4.1 SK 와이번스 시절

4.1.1 2001~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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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입단 후 (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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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볼수 없을 SK 와이번스시절.

대학졸업 후 2001년 계약금 4억 7000만원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주로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원래는 옛 연고지역 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고졸 2차 우선지명된 것으로, 쌍방울 해체 후 선수단과 지명권을 인수한 SK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8]

2004년부터 불펜중간계투 보직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에 팀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김성근 감독은 많은 불펜 투수들 가운데 정대현을 주전 마무리 투수로 세우고 용병을 선발투수(레이번, 로마노)로만 뽑는 결단을 내렸고, 이는 대성공을 거두어 78⅓이닝동안 평균자책점 0.92에 27세이브를 세우며 SK의 수호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참고로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서 0점대 평균자책20세이브 이상을 한 시즌에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선동열과 정대현, 유동훈, 오승환까지 네 명뿐이다. 2007년 이래 SK의 불펜진 운용을 벌떼야구라고 지칭한 데에서 나온 별명이 바로 여왕벌.

4.1.2 2008 시즌

그러나 2008년에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언더의 특성 탓인지 몸 상태가 나빠진 까닭에 블론세이브 수도 치솟고 특히 올림픽 직전인 7월에는 7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망가진' 상태였지만, 우려 속에서도 미국전 등을 의식해 베이징 올림픽 대표로 뽑혔다. 그리고 맞이한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경기에서는 원래 주력 마무리로 낙점됐으나 불안한 모습을 보인 불기주한기주와, 배탈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던 오승환을 대신하여 중요한 고비에서 상대팀의 추격을 끊고 승기를 되돌리는 모습을 선보여 국제전에 강한 면모를 다시금 선보였다. 특히 아마 최강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류현진을 구원하여 등판[9], 9회 1사 만루의 절체절명의 상황이고, 상대팀의 타자는 쿠바 타선의 핵심 타자인 율리에스키 구리엘이었지만, 아악~! 따불푸레이! 따불푸레이! 병살로 경기를 매조지하여 한국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그 후 귀국해서 다시 프로에서 고전한 걸 보면 정말로 국제전에선 남다른 면모를 보이는 투수인 듯.

당시 병살을 잡아내는 장면.
본격 애국자 모드 발동

허구연 : "고의 싱볼 투순데"[10]

한광섭 :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주면 좋은데요" 자 투나씽 딱! 앍! (유격수!) 따불푸레이! 따불푸레이! 고앵민! 고앵민! 아아아아앍! 우승이에요! 증대횬! 와아아아아아아~

등의 멘트 때문에 DC 야구 갤러리에서는 고의 싱볼러, 직각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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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와의 올림픽 결승전 등판하여 던진 두 개의 공이 연달아 스트라이크. 근데 그 공들이 둘 다 가운데로 몰린 공들이라 한국에서 야구 좀 봤다 하는 사람들 99%는 식겁했다. 허구연 해설도 순간 긴장. 그러나 SK 와이번스 구단 관계자들 만큼은 심드렁했는데, 훗날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대현이는 모든 공이 다 실투예요." 마무리 투수로서 절대 뛰어난 제구가 아님에도 대담한 승부를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올린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

2008 시즌 성적은 방어율 2.67에 4승 3패 20세이브, 블론세이브가 7개나 되는 부진한 성적이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올림픽 당시로 돌아간 듯이 맹활약했다. 특히 3차전에서 역시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9회 1사 만루의 상황에 등판, 그 해 타율, 출루율 1위, 최다 안타를 기록한 김현수를 상대로 그 또한 병살을 잡고 승리를 따내어 당시 언론에서는 올림픽에서 중요한 찬스에서 활약한 두 선수가 명암이 엇갈렸다고 평했다[11].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 후에 맞은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그렸고 팀은 아시아시리즈 등정에 실패한다. 이건 대만 퉁이 전에서 앞서 선발로 나왔다가 난타당하며 회생불능으로 불을 질러놓은 채병용의 탓이 크지만, 정대현의 구위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던 것도 사실.

4.1.3 2009 시즌

2009년 각 구단 감독들의 새해 덕담을 다룬 기사에서 김성근 감독이 "올해는 정대현이 세이브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판세 흐름에 정통한 김성근 감독이라 다시금 감독의 예언이 실현될지의 여부에 관심이 모여졌지만, 팔꿈치 부상이란 악재로 거의 시즌을 말아먹었다.

4.1.4 2010 시즌

2009 시즌 종료 후 무릎수술에 들어갔고 재활에 전념하다가 2010년 5월 7일 부로 1군에 복귀한다. 6월 10일, 김광현이 대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남겨놓고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안타 때문에 이루지 못한 후 인터뷰에 "오늘 너무 수고했다. 개인적인 소견은 신명철에게 힘을 빼고 승부했어야 했다. 다음 기회에 꼭 이루길 바란다. 수고했고 덕분에 잘 쉬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2010년 7월 20일, 복귀 이후 이어졌던 26경기 무실점 기록이 송지만에게 3루 강습 안타를 맞고 깨졌다. 이후 송지만에게 교회오빠라는 별명이 생겼다. 부상 위험 때문에 작은 이승호가 마무리를 맡았기 때문에 이 해에는 주로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1피홈런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5.4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4.1.5 2011 시즌

정대현/2011년 항목으로.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성사되지는 못하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4.2 롯데 자이언츠 시절

4.2.1 2012 시즌

롯데 시절 한줄 요약 :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정대현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른다 카더라.
배팅볼 투수 돈 내놔라 먹튀야 !!

정대현/2012년 항목으로.

4.2.2 2013 시즌

정대현/2013년 항목으로.

4.2.3 2014 시즌

정대현/2014년 항목으로. 2014년 5월 3일 SK전에서 100홀드를 기록하면서 한국 프로야구 최초 100홀드-10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4.2.4 2015 시즌

부상 때문에 많이 던지지 못했지만 클래스는 보여 준 시즌

2014 시즌 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했는데, 재활 속도가 느린지 본래 5월 초에 복귀 예정이었으나 전반기 종료 직전까지도 소식이 없다.

6월 24일 화성 히어로즈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첫 실전 투구를 한 뒤 7월 26일 상무전까지 총 9경기 9 1/3이닝 탈삼진 6개 1실점을 기록했다.

7월 28일 1군 엔트리에 복귀하였다. 롯데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
같은 날 사직 LG전에서는 7회 초 무사 1루 상황에 강영식 다음으로 등판하여 2K 퍼펙트로 이닝을 마무리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하지만 8월 2일 홈런 포함 3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8월 8일 한화전 더 큰 일을 치뤘다. 8회 등판 1볼넷 2홈런 3실점(승계주자-홍성민 2점 제외) 아웃 카운트 하나 잡고 강판. 롯데시네마 개관. 조인성에게 쓰리런 홈런을 얻어맞으며 BS를 기록한게 이날 재앙의 시초였다.

광복절날 첫 승을 거두었다.세이브는 홍성민.

9월 1일 시즌 2승째를 거두었다.그것도 깔끔하게 무실점으로.

8월 13일부터 9월 27일 경기까지 한 달이 넘게 무실점 호투를 이어가고 있어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야구에 한 줄기 희망이 되었다.
롯데 야구 인기가 떨어져서 그런지 항목 업데이트도 늦다

롯데 팬들의 심정은 제발 이대로 2012년 정규시즌 후반기와 준플레이오프 때의 정대현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롯데로서도 극적인 가을야구 막차 티켓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었지만, 9월 중순부터 델동님의 신묘한 운용으로 DTD 6연패를 당하면서 사실상 가을야구는 물건너갔다.

그 와중에도 방어율은 꾸준히 떨어져 2.6이 되었다. 시즌 초부터 꾸준하게 마무리를 맡아줬다면 올 시즌 롯데 시네마라는 말이 생기지는 않았을텐데 내년엔 제발 풀타임으로 밥값 좀 해주길 롯데 팬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내년에는 39살인데

2015년 최종 성적은 ERA 2.95 19경기 2승 1패 3홀드 3세이브 18 1/3이닝 WHIP 1.25로 경기를 많이 뛰지는 못했으나 클래스는 아직 여전함을 보여준 시즌이었다고 할 수 있다.

10월 7일 발표된 프리미어 12 대표팀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선발된 투수중에서 유일하게 20이닝 이하의 활약만으로 선발 되었다. 프리미어 12 직전의 평가전인 2015 서울 슈퍼시리즈 2차전 8회말에 등장하여 공 여덟개로 쿠바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자신이 국제용 투수라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여담으로 정대현의 최대 피해자였던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덕아웃에서 후배들이 삼진 당하는 장면을 보며 어이가 없었는지 웃기만 했다.(…)

11월 16일에 이루어진 프리미어 12 8강전에서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2구만에 유격수 땅볼 베이징의 재현 로 7년 만의 해후는 막을 내렸다.

프리미어12에서는 마무리로 낙점된 이현승의 등판 이전에 셋업해 주는 역할을 했다.

4년 계약 기간이 끝났지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기간이 길었던 관계로 FA 재자격을 얻지 못해 시즌 후 1억 8,000만 원 삭감된 3억 2,000만 원에 연봉 계약을 했다.

4.2.5 2016 시즌

밑발놈 [12]
핵폐기물급 투수
후배들의 승을 강탈하고 롯데를 패배로 인도하는 조원우의 의형제 [13]
2016년 롯데 최악의 ,,중 한명. 한명은 그나마 트레이드로 보냈다
늦기전에 빨리 은퇴해야...
정대현은 국제대회에서만 보는 걸로

특별히 아프다는 이야기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롯빠들은 프리미어12에서 한 활약 반만 해줘도 좋겠다고 수근대던 중 개막.롯데예서 처음부터 1군에서 시즌을 시작한건 처음

4월 1일 개막전에서 2:0으로 팀이 앞선 7회 1사 1루에서 등판. 견제구가 빠지면서 1루 주자 서건창이 3루로 진루했고 이택근에게 희생 플라이를 내주면서 실점했다. 이후 강영식으로 교체되었다.

4월 2일에는 밀어내기 볼넷을 주면서 패배에 공헌했다.

4월 5일 사직 홈 개막전에서는 오랜만에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7회 1사까지 완벽한 투구를 보였던 박세웅이 강영식으로 교체되었고, 강영식은 박정권을 1루수 땅볼로 잡아내는 듯 했으나 베이스커버가 미묘하게 늦는 바람에 출루를 허용했다. 하지만 정대현이 올라와 이닝을 종료시켰다. 박세웅과 손승락의 호투에 가렸지만 팀 승리의 디딤돌이 되었다.

구위 하락이 가장 큰 원인 인듯하다. 예전과 같은 무브먼트가 없다보니 볼카운트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 하고 결국 볼질 하다가 볼넷을 주거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존에 집어넣다가 맞아나가는 경우가 늘어나는 중.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노쇠화와 연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언더 핸드 투수가 드물어서 "낯설음"이라는 큰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 대항전과는 달리 국내에서 정대현은 분석 당할대로 분석 당한 투수라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커리어와 클래스가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시즌을 치르면서 나아질 가능성도 있다. 롯데에 온 이후 시즌 출발이 좋았던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고. 하지만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를 감안할 때 나아질 가능성이 클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실제로 나아진 듯 는 분식회계로 인한 오해 5월 20일 현재 홀드 7개로 공동 4위다.[14]

5월 26일 LG전에서 선발투수 레일리의 뒤를 이어 7회 1사후 등판하여 잘 막고 내려갔고 이후 팀이 역전하면서 첫 승을 기록했다.

6월 3일 NC전에서 강영식이 남긴 두명의 승계주자에 점수를 허용하며 결국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결국 조원우 감독도 인내의 한계가 온 건지 다음날 바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명목은 골반부상이지만, 지금까지 기록한 성적만 보면 1군에 있는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 정도 수준의 구위이면 9월 1일 엔트리 확장적용 전까지 1군 마운드에서 볼 일을 없을 듯하다. 양아들 손용석은 그래도 아직 1군에 있는 중

7월 29일 예상을 깨고 한 달 일찍 이정민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조원우: 너는 나의~ 영원한 형제야!! 수원 KT전에 6회말 2아웃 1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역시나 분식회계를 하는 듯 보였으나 황재균의 호수비로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그 후 8회 2사까지 의외로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활약했다. 2군으로 내려가기 전에도 어쩌다 한 번 활약한 적이 있으므로, 과연 기량을 정비했는지는 지켜봐야할 듯.

8월 4일 넥센전에서 8회에 구원등판 하자마자, 김하성에게 시즌 15호 홈런을 허용했다.[15] 그리고 윤석민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단 공 4개만 던지고 강판당했다. kt 전은 뭐였던거지 제발 꺼져라 진짜 부탁이다 롯데 팬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8월 8일부로 다시 2군에 내려가게 됐다. 그러나 조원우의 성향상, 어린 선수가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금세 베테랑의 역할을 강조하며 다시 1군에 올라올 듯.
다행이(?) 53일째 1군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그 기간동안 정대현의 역할을 윤길현이 안좋은 쪽으로 물려받았다.

5 국가대표 경력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불펜 에이스

특이한 투구폼의 생소함과 불펜투수로서의 확실한 실력을 갖춘 정대현은 2006년 이후 선수 선발이 다른 곳에 방점이 찍혀있던 아시안 게임 두번을 제외하고, A급 국가대표팀이 참여하는 모든 국제대회에 선발되었다.

1999 14회 인터콘티넨탈컵, 2000 시드니 올림픽, 2002 15회 인터콘티넨탈컵,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7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5 WBSC 프리미어 12로서, 2015시즌까지 총 9개 대회이다. [16]

정대현이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된 것은 호주에서 열린 1999년 14회 인터콘티넨탈컵(대륙간컵)으로서, 1~3학년생들 위주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정대현은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8.2이닝 10탈삼진 무실점을 비롯해, IBAF 공인 경기[17]에서 역대 처음으로 쿠바를 이기는데[18] 중계로 2이닝을 던지면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총 성적은 18.1이닝 3실점 21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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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

이런 대륙간컵에서의 호투를 기반으로 정대현은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된 상태였지만, 아직 대학생 신분인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서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선발된다. 정대현은 미국과의 예선전과 준결승전 2경기에 모두 미국 선발 로이 오스왈트 상대로 선발로 등판해 7이닝 5탈삼진 6피안타 무실점, 6.1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자책을 기록하며 호투했으나, 두 경기 모두 결국 지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한국이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최종 성적은 13.1이닝 2실점 11탈삼진.

2002년, 정대현은 아마와 프로가 섞인[19] 15회 인터콘티넨탈컵 대표팀에 선발된다. 쿠바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정대현은 도미니카와의 예선전에서 9이닝 11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를 하기도 하면서 호투했으나, 아쉽게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7회 투런홈런을 맞아 6이닝 2실점을 함으로서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최종 성적은 20.2이닝 3실점 24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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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2006년 제 1회 WBC에 선발된 정대현은 예선 1라운드 중국전 1이닝 무실점 2탈삼진, 예선 2라운드 멕시코전 1이닝 무실점 3탈삼진, 미국전 1.1이닝 2실점 1탈삼진으로, 널널한 중국전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권 팀인 일본이나 대만전에서는 기용되지 않았다. 미국전에서는 9회초에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적시타,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희생 땅볼을 내주면서 2실점 하고 말았다. 최종 성적은 3.1이닝 2실점 6탈삼진.

2007년, 아시아 야구 연맹에 배정된 1장의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진출티켓이 걸려있었던 12월 대만에서 열린 2007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에 2007시즌 SK의 첫 우승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정대현은 국가대표 마무리로 선발되었다. 이전까지는 언더핸드의 낯섬을 무기로 미국이나 중남미팀을 상대로 등판하는데 역할이 한정되었지만, 리그에서도 인정받은 안정감으로 이 대회부터는 동아시아 팀과의 경기에도 등판하기 시작했다. 필리핀과의 경기는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대만전에서 9회말 0.2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매조지했고, 일본전에서 9회초 등판해 1.0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한국은 결국 2위로 올림픽 진출에 일단 실패했다. 최종 성적은 1.2이닝 무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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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2008년 3월초에 3장의 출전권을 두고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국가대표팀에도 팀의 마무리로서 참가하였다. 한때,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무릎 통증을 호소하면서 실전에 한동안 나서지 못해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었다. 하지만, 디미디어 티렉스싱농 불스와의 평가전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멕시코전에서 9회초 등판해 1.0이닝 무실점 삼자범퇴 마무리, 대만전에서 1점차 8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해 9회 2사 1,2루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팀의 마무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최종 성적은 2.1이닝 무실점.

2008년 시즌 중 전 시즌과 달리 부상등으로 인해 한참 부진하던 정대현이 과연 제대로 된 활약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나... 이 항목을 들어와서 볼 사람이라면 베이징 올림픽에서 정대현이 누구에게 무얼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당연히 알 것이다.링크가 하나 이상한데 되쓰요 경기별 성적은 예선 미국전 중계로 2.2이닝 1실점, 예선 일본전 0.2이닝 무실점 마무리, 결승전 쿠바전 0.2이닝 무실점 마무리로, 최종 성적은 4.0이닝 1실점 7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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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2009년 제 2회 WBC에도 출전한 정대현은 예선 1라운드 중국전 0.2이닝 무실점, 예선 2라운드 멕시코전에서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 준결승 베네수엘라전 0.1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불펜의 핵심요원중 하나로서 활약하였다. 최종 성적은 1.2이닝 무실점 2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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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KBO가 늘상 방점을 두던 선수 선발 기준을 소홀히 한건 아니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부진을 씻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고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으로도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던 선수들과 그 선발기준 대상자는 아니지만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을 선발하였고, 정대현 또한 포함되었다. 무릎 수술을 받고 7월에야 복귀한 정대현은, 공 8개로 타자들을 그야말로 농락하면서 파키스탄 전에서 1이닝 무실점했고, 준결승 중국전에 마무리로 등판해서 0.1이닝 무실점을 함으로서, 딱 두경기만 등판하고 금메달 포상금 2억과 함께 추가적인 연금포인트를 획득했다(...)[20] 최종 성적은 1.1이닝 무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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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2013년 제 3회 WBC에서는 본선 1라운드 네덜란드전에서 0.2이닝 무실점, 호주전에서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본선 1라운드 3경기 중 2경기에 나왔으나, 팀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더이상 등판 할 기회가 없었다. 최종 성적은 1.1이닝 무실점 1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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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프리미어 12 대표

2015년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에도 당연스럽게 선발된 정대현은 어느새 국가대표팀에서 최고참이 되었다. 팔꿈치 수술과 재활로 인해 시즌 중에는 딱히 큰 역할을 하진 못했지만, 국가대표 체질인지 평가전을 겸한 서울 슈퍼시리즈에서 베이징 기억이 남아있는 쿠바 대표팀을 괴롭히며(....) 건재함을 알렸다. 예선 도미니카전 8회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1탈삼진, 예선 멕시코전 8회말 1사에 등판해 1.1이닝 무실점, 8강전 쿠바전 8회말 1사에 등판해 율리에스키 구리엘로부터 베이징에서의 그 코스로 유격수 앞 땅볼을 유도한걸 포함해 1.1이닝 무실점 2탈삼진, 준결승전 일본전 9회말 등판해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 결승전 미국전 8회 1사에 등판해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최고참이자 불펜의 핵심 요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면서 우승에 이바지하였다. 최종 성적은 5이닝 무실점 5탈삼진.

최상급 선발진이 출전하지 않은 대륙간컵을 제외한 시드니 올림픽부터 1회 프리미어 12까지의 정대현의 성적은 34이닝 5실점로서 평균자책점 1.32이다. 내구도의 문제가 있기에 길게 던지지는 못하지만, 궁내 체고의 싱카볼 투수로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영광의 순간들에 크게 기여한 핵심 불펜 요원이였으며 전설이 되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정대현은 무적이 된다 카더라

6 연도별 주요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1SK 와이번스1816⅔00005.40191120
2002244210003.21371130
2003375143282.29332034
20045269⅓232162.34621950
20052024⅓10360.3710618
20065974⅓8415111.94552652
20076078.13227
(3위)
30.92503265
20084960⅔4320
(4위)
02.67512550
20095652⅔231013
(4위)
1.20402143
2010494541481.4031847
20115354⅔3316
(5위)
111.48432839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12롯데 자이언츠2428⅓20150.6412826
20135851⅓54116
(5위)
3.33562934
20146042422134.07401927
20151918⅓21332.9516917
KBO 통산
(15시즌)
63870945291061132.13555272552

7 별명

별명은 '여왕벌', 퀸비(Queen bee : 여왕벌), 머북이 '대현'[21] 잘못 들으면 여자 배구 전설의 센터 공격수가 된다 카더라., '직각갑', '고의 싱볼 투수', 이대호와의 상대전적으로 생긴 백정대현과 '돼지 도살자'(이대호 입장에서는 돼지도 살자), 그리고 국가대표 결전병기의 위엄을 보여주는 '국대현'.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자 그의 별명은 여왕벌 대신 여왕갈매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데+정대현을 합한 롯대현, 데+정대현을 합한 꼴대현 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어째 둘 다 어감이 착착 달라붙는다 롯데와의 fa계약 이후 부상으로 드러누워서 침대현이란 별명도 있다.
2012년부터는 꼴갤 한정으로 혀엉......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2].

물론 2013년 이후 먹튀화된 시점부터는 그딴거 없고 형발놈 혹은 정경완, 증경완, 불나방 등으로 불린다.

요즘은 머북이라고 불린다.

8 이대호 킬러

이대호의 최악의 천적. 중요한 상황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전담 투수로 나올 때가 있었다. 이 때문에 야갤에서 정대현을 부르는 별명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돼지 도살자 혹은 돼지도 살자. 2010년에도 어김없이 무안타로 막아냈으며, 6월 27일 사직경기 6회말 상황에서 김광현이 무사 1, 2루 상황을 자초하고 다음 타석에 이대호가 들어서자 어김없이 구원 등판, 깔끔한 6-4-3 병살타를 유도하고 결국 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8월 18일 경기야말로 백미. 1사 만루에 이대호 타석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정대현이 등판, 이대호 한 명 만을 잡아낸 후 내려갔다. 이쯤되면 불쌍할 지경. 이대호도 "대현이 형만 없으면 4할에 50홈런은 칠 수 있었다"라고 한탄하기도.[23]

2011년 6월 14일 경기에서는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호가 나오자 어김없이 등장. 그 결과는 초구 쳐서 투수 앞 땅볼…. 이대호:아 쫌!!! 야갤에서는 시구 드립이 흘러 넘쳤다.시구 정대현, 시타 이대호 시구 도축[24]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3년 9개월(…)만에 안타를 허용했다. 그래도 후속타자 강민호를 병살로 잡아내서 위기 탈출. 돼지야! 내가 안타를 내줬던건 병살타를 잡을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2루에서 돼지를 잡는 고급도살!! 이대호: "대현이 형이 마운드로 나올 땐 단 한번도 홈을 밟아보지 못했어요..."

2011년 7월 8일 문학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7회초 김주찬손아섭의 안타로 무사 1, 3루 상태에서 이대호가 등장하자 어김없이 정대현이 등판했다.. 결과는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1점 획득. 하지만 이미 6회말에 진명호가 불을 질러 7점을 내주면서 이미 승부가 기운 상태인데다 이대호 이후 강민호와 대타 홍성흔을 각각 우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잡아내며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이대호에게 안타를 허용하였다.

2013년 작가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한맺힌 모 롯데팬의 뉴스 댓글 曰
"정대현 이 새끼는 롯데랑 원수졌나 롯데에 없을때는 돼지 타율 다 깎아먹더니 롯데 와서는 경기 다 쳐말아먹고 진짜 롯데한테 무슨 원수를 졌냐" (...)

9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

  • 세계 최고의 우완 언더핸드 중에 하나. 82-84마일의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직구의 무브먼트와 제구력, '프리스비' 슬라이더와 스크루볼 타입의 체인지업이 느린 속도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한국의 오른손타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존재였다. 구원투수로만 기용된다. 좌타자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성적을 올렸다.
  • 채드 브래드포드형의 투구폼 스타일의 투구폼 때문에, 슬라이더가 떠오르면서 오른손타자의 바깥쪽으로 꺾인다. 좌타자에게도 백도어성으로 던진다. 체인지업은 좌타자에게만 던지는데 가장 약한 구질이다.
  • 높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센터 방면으로 타구를 보내려는 타자들이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 가장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선수 가운데 하나다. 무릎 수술을 받았고 움직임이 둔하다.

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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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싸움이 굉장이 능한편. 1루에 대주자 이인구가 나가있자 주자 견제를 할꺼라는 싸인을 준 후 견제. 결국 이인구는 견제사 당했다. 사인이 좀 티나는데 견제사 당한 이인구 또한 정상호 문서에도 있지만, '상호야 생각을 해 생각을' 짤방으로 유명하다.
  • 여담으로 오승환만큼이나 표정이 없다.
  • 프리미어 12 결승전 해설을 하던 역시나 국가대표 단골이었던 이승엽은 정대현이 극히 말수가 적다고 하면서, 나중에 하이라이트를 보고서야 정대현도 같이 WBC에 출전했던걸 알았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
  • 경희대 재학 시절, 선배 홍성흔의 방졸이었다. 자고 있는 정대현을 깨워서 라면을 끓어오게 했는데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였다고 극찬한 바 있다. 관련기사
  1. 단일시즌 블론세이브 1위라면 몰라도 통산1위는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라 볼수 없다. 그만큼 오랫동안 꾸준히 등판했다는 뜻이기도하고 KBO 통산 최다승인 송진우도 통산 다패왕이다. 참고로, 단일시즌 1위는 13블론을 시전했다.
  2. 팀 전체가 처지고 특히 불펜 사정이 상당히 급하게 돌아가던 2010년 여름에도 정대현만큼은 투구수와 이닝을 꼭 지켰었다. 물론 지켜준 만큼 잘 막았지만, 유리몸이란 시선에 대해 정대현은 스탭들의 관리 차원이지 공을 못 던질 정도의 몸은 아니라 인터뷰한 적이 있다.
  3.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투수에게 볼 끝이 더럽다는건 공의 무브먼트가 격렬해 치기 어렵다는걸 의미한다. 어찌보면 최고의 칭찬
  4. 이 구종또한 싱커와 마찬가지로 정대현의 필살기라 볼수 있다. 싱커가 땅볼유도용으로 쓰인다면 이 구종은 수많은 헛스윙을 양산해낸다. 정말로 솟아오르는 공이기 때문에 쳐봤자 내야 플라이(...)
  5.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 정대현을 상대했던 쿠바 선수는 결승전 그 장면의 율리에스키 구리엘 단 한 명 뿐이다. 자세한 출처 추가바람, 베이징 올림픽 출전 전에 국내에서 펼쳐진 평가전에서 쿠바선수들을 상대했을 것으로 추정
  6. 사실 사이드암이라 상당히 견제가 힘들기는 하다. 프리미어 12때 선동열이 굳이 김인식과 상의해서 좀 더 견제하기 편한 좌완 투수인 이현승으로 바꾼 것만 봐도...
  7. 정대현이 이 때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나온 기사가 몇 개 있으나 ## 다른 기사들에는 정대현이 아닌 박진만이 들어가 있다.##(같은 사람이 쓴 기사로 2008년 3월과 8월에 쓴 것인데, 앞 기사에서 이미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홍성흔, 원래 면제인 김수경을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넣었다가 지적을 받았는지 뒷 기사에서는 바로잡았다.) 참고로 박진만은 2000년 초에 아버지가 병역 면제를 브로커에게 청탁한 일로 인해 면제가 취소되었다가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정식으로 특례를 받았다.(박진만 자신은 고교 시절 유급의 원인이었던 무릎 부상 때문에 면제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고 있다.) 그리고 정대현이 병역특례를 받은 게 맞았다면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했다는 기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8. 현재 SK에 뛰고 있는 선수들 중 쌍방울의 유산으로 조동화, 박정권이 있다.
  9. 원래 코칭스탭에서는 윤석민에게 콜했는데 진갑용이 '감독님, 대현이가 좋습니다'라고 해서 올라왔다. 놀랍게도 실실 웃으면서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올라와서 야구팬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 아니 저 상황에서?! 김경문 감독도 놀랐다고 한다.
  10. 그러나 정대현이 던진 초구와 2구는 모두 슬라이더였다. 그리고 2구가 실투였다는건 함정
  11.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야구 정대현이 병살 잡는 장면의 음성을 씌운 플짤이 나돌기도 했다. 완벽한 싱크로에 다들 감탄.
  12. 밑으로 던지는 X발놈이라는 뜻이다.옆발놈은 원래 팀으로 팔려갔다......
  13. 참고로 조원우 감독이랑 나이차는 고작 7살에다가, SK에서 함께 뛴 적이 있다.
  14. 그마저도 한두 타자 겨우 아웃카운트 잡고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허용한다음, 후속투수가 잘 막아서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다. 승계주자가 있는 등판에서 아웃카운트를 잡고 실점하지 않은 경기가 단 두 경기에 불과하다(...) 주자없을 때는 출루, 주자있을 때는 실점하고 시작한다. 참고로 6월 3일 현재 그의 평균자책점은 4.40, 승계주자 실점은 9점, 승계주자 실점률은 .600이다.
  15. 6월 19일 대전 한화전 이후 첫 홈런이라고 한다.
  16. 2007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와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는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과 관련된 대회라 베이징 올림픽 하나로 묶을수도 있을 것이나, 각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 텀이 있었으며, 대회마다 로스터 변경이 있었기에 별도로 기재한다.
  17. 올림픽, 세계야구선수권=야구 월드컵, 인터콘티넨탈컵. 당연히 이때는 WBC나 프리미어 12가 없었다.
  18. 모든 국제대회로 확대하면 1978년 할렘대회에서 승리한적이 있다.
  19. 프로 14명, 아마 10명. 1977년 니카라과 대회 이후 첫 우승을 노리던 대회였고, 프로선수는 채병용과 같은 신인부터 송지만과 같은 리그 최고급 선수나 장원진같은 고참급까지 골고루 선발되었다.
  20. 정대현은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20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90점)로 이미 최상한선을 채워 이를 일시불로 수령하지 않았다면 월정금 100만원을 받으며, 최상한선 110점을 초과한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10점) 포인트로는 일시 장려금으로 1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21. 줄여서 '증대'라고 하기도 한다
  22. 아마 정대현의 '현' 발음이 '혀엉' 발음이 되며 혀엉으로 굳어진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네이버 검색창에 혀엉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정대현 혀엉이 뜬다. 유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 추가바람
  23. 이대호 항목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이대호의 대 SK전 타율은 0.197이다. 그 다음은 대 넥센. 0.338.
  24. 이때 정대현이 등판하자 이대호 본인도 어이없었던지 SK 덕아웃 정확하게는 김성근 감독을 보고 허탈한듯 웃음을 지었다고. 김성근 감독도 마주 웃어줬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