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패

1 조선시대의 신분증

1.1 개요

號牌. 조선시대에 사용된 신분증이다. 호패술과는 이름 빼곤 무관하다.

나무로 만든 팻말에 이름과 출생년도[1] 같은 개인정보를 앞면에 썼고 뒷면에는 관인을 찍었다.

1.2 역사

원나라에서 시작되었다. 고려공민왕 치하에 도입하였으나 흐지부지되었고 조선에 들어서 태종에 의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16세[2] 이상의 남성은 의무적으로 호패를 지녀야 했다.

대부분의 호적 체계나 문자의 발생 이유와 동일하지만, 호패가 만들어진 이유는 군역과 요역[3]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1.3 종류

벼슬을 사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호패를 따로 발급해주었다. 품이 높아아먄 좋은 나무를 쓸 수 있었고, 서민들은 자작나무도 쓸 수 없어 소나무로 호패를 만들어야 했다.

정부는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인적관리를 할 목적으로 호패를 도입했으나 일반 민중들의 거부감은 상당했다. 왜냐면 결국 호패는 세금과 역(役) 때문에 생긴 거니까. 호패를 수시로 확인하고 호패 조사로 일만 시키니 서민들은 호패를 싫어하여, 일부러 호패를 두껍게 만든 다음에 관아에서 관인을 찍고 나면 호패를 깎아 위조하거나 호적상 양반의 노비로 옮겼다.[4] 세조는 호패청을 두고 위조자를 극형에 처하고 외출 시 휴대하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않았고, 숙종은 종이로 된 지패(紙牌)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2 웹툰작가

작가 블로그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활동했던 작가. 1983년 출생의 남성이다. 도전만화가에서 데스티니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어 정식 작가로 진출했다. 데스티니와 관련해서 총 3부작을 연재했는데 도전만화가 시절에 연재했던 내용과는 영 딴판인 평행세계를 다뤘다. 데스티니 3을 격주 연재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재 소식이 없더니 2014년에 데스티니 시리즈를 전부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뒤로 소식이 들리지 않더니 2015년 6월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엄재경 작가와 함께 마법스크롤상인 지오를 연재하고 있다.[5] 2014년 데스티니 시리즈가 내려간 비하인드에는, 2010년 데스티니 3부를 연재 끝내고 나서 차기작 대신에 일을 하고 3년만에 들어오니 이미 자신이 연재를 할만한 공간이란 것이 없어져서 자신이 너무 도태된 작가임을 느끼고 다음 연재를 끝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6]

작가의 블로그에 올라온 해명에 따르면 데스티니 연재가 힘에 부쳐 커리어를 쌓고 연재를 재개하려 했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한동안 웹툰을 그만두고 택배업을 했었다고 한다. 이후 스토리 작가를 구해 연재를 시도했으나 연재처를 구하지 못했다 한다. 용케 신작을 시작할 여건이 되었으니 다행인 셈.
  1. 서력기원이 아닌 간지를 썼다.
  2. 만 나이가 아닌 동아시아식 나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만 17세가 되는 해에 신분증을 만든다.
  3. 부역이라고도 하는데 병역 의무 외에 나라에서 공적인 일에 국민을 동원하는 걸 말한다.
  4. 천민은 병역이 면제됐다. 호패는 차야 했지만. 양반도 병역은 면제됐다. 만약에 21세기 한국에서 서민에게만 병역을 부과한다면 정부가 뒤집어지겠지만.
  5. 엄재경은 마이러브, 까꿍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6. 2014년 데스티니 카페에서 밝힌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