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쇄설성 밀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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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roclastic Density Currents (PDCs)

1 개요

중력에 이끌려 측면 방향으로 움직이는 화산쇄설물화산 가스의 혼합물 혹은 그러한 현상으로, 화산 분출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현상 중 하나이다. 화쇄밀도류, 화산밀도류 등으로도 불린다.

2 용어

화산쇄설성이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pyroclastic의 번역이다. 영어 단어 pyroclast는 불꽃(pyro-)과 파편(-clast)의 합성어이다. 화산 작용에 의해 파쇄된 마그마 조각을 의미하는데, 이 때문에 pyroclast는 화산쇄설물로 번역된다. 이런 화산쇄설물이 중력에 이끌려 흐르는 '밀도류(density current)'를 형성한 것이므로, 이를 화산쇄설성 밀도류라고 부르는 것이다. 1902년 펠레 화산 분출 당시 작열하는 화산쇄설류 때문에 프랑스어로 열운(nuee ardante)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열운이라는 것은 인상적인 이름이지만, 학술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이름은 아니다.

3 분류

화산쇄설성 밀도류는 개요의 정의처럼, 화산에 의해 발생되는 중력에 의한 밀도류를 총칭한다. 보통 두 극단이 있다고 받아들여지는데, 하나는 화산쇄설류(pyroclastic flow)이며, 하나는 화쇄난류(pyroclastic surge)이다.

10년 사이에 누적된 다양한 화산 분출 모니터링 연구에 따라, 오늘날 화쇄난류와 화산쇄설류가 쉽게 구별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강세를 얻고 있다. 비록 두 다른 "극단"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 화산학에서는 화산쇄설성 밀도류(PDCs)라는 단어를 세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3.1 화산쇄설류(pyroclastic 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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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쇄설류는 밀도류의 하부에 고밀도의 흐름이 동반되는 것을 말한다. 줄여서 화쇄류라고도 한다. 밀도가 높고 고속의 하부 흐름이 화산쇄설류를 주도하며 그 위에 뒤따르는 보다 저밀도층이 얹어져 있다. 이 특징 때문에, 사진에서 보듯이 보통 화산쇄설류는 최전선에 날카롭게 전진하는 하부 흐름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위로 전진하는 힘을 잃고 대류하며 상승하는 연속적인 분연주가 얹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화산쇄설류는 하부에 두꺼운 암편이 쌓이고 그 위에 화산재부석이 얹어지는 모습이 전형적인 퇴적상이다.

3.2 화쇄난류(pyroclastic su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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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쇄난류는 밀도류 하부에 고밀도층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비교적 희석된 흐름을 말한다. 밀도류가 여전히 공기보다 무거워 지면을 따라 흐르지만, 화산쇄설류와 달리 하층부의 속도가 더 빠르지 않다. 이렇게 하부에 고밀도층이 존재하지 않는 밀도류에 대한 인식은 사실 1946년 비키니 섬에서 실시된 해저 원자폭탄 실험에서 비롯됐다. 강력한 폭발이 수중에서 일어나면서 고밀도의 해수-폭발구름이 만들어졌는데, 이 덩어리가 너무 무거워 상승하지 못하고 폭발 지점에서 수평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베이스 서지(base surge)라고 한다. 화쇄난류는 기본적으로 이 베이스 서지와 물리적 행동 방식이 같으며, 화산 분출에 의해 발생되는 베이스 서지도 일종의 화쇄난류에 속한다. 수성분출(phreatomagmatism)이 일어나는 것도 비키니 섬 실험과 비슷한데, 이 때도 베이스 서지가 발생하게 된다(위 사진 참고). 이런 경우에는 물이 풍부한 서지(wet surge)라고 하는데 이런 흐름은 보통 밀도류의 온도가 100도를 넘지 않는다. 물이 조금 부족한 환경이거나 수성분출이 아닌 경우에도 화쇄난류가 발생할 수 있는데, 100도를 상회하는 고온의 화쇄난류를 특히 건조한 서지(dry surge)라고 한다.

설명만 들으면 화쇄난류의 규모가 더 작고, 화산쇄설류보다 덜 위험해보인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사실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화산쇄설성 밀도류도 화쇄난류의 일종이며, 크라카토아 화산의 대분출 당시 바다 건너(!) 해안가를 쓸어버렸던 폭풍도 사실 화쇄난류이다. 화산쇄설류는 바다나 호수를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화산쇄설류가 호수를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고온으로 물을 모조리 기화시키고, 엄청난 물질을 쏟아부어 호수 자체를 메워버리는 것이다.

4 메커니즘

일단 공통적으로는 화산쇄설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선행된다. 화산쇄설물은 마그마가 상승하면서, 그 안에 용해되어 있던 기체 성분이 상분리되어 강한 기체압을 가하게 될 때 만들어진다. 마그마는 단순히 녹은 암석이 아니라, 기체와 암석 파편들이 뒤섞인 복합적인 덩어리이다. 마그마는 주변보다 낮은 밀도를 가졌기 때문에 상승하게 되는데, 이 때 온도와 압력이 차츰 감소하게 된다. 고온 고압 상태에서 마그마에 기체[1]가 용해되어 있을 때는 마그마 내부의 압력이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온도와 압력이 강하하여 마그마가 더 이상 기체를 포용하지 못하고 상분리를 일으키게 되면, 분리된 기체가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마그마에서 분리되는 기체는 마치 콜라에 이산화탄소 방울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마그마에서 방울 방울 자라나게 된다. 그러나 상분리된 기체가 많아지면, 콜라 거품처럼 기체가 쌓이며 강력한 기체압을 가하게 된다. 이에 따라 마그마는 덩어리로 존재하지 못하고 산산조각나는데 이 과정을 마그마 파쇄(magma fragmentation)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진 파편, 즉 쇄설물은 화산쇄설물이 된다. 화산쇄설물의 크기는 제각각이며, 분출된 화산쇄설물은 그 크기에 따라 화산암괴, 화산탄, 화산라필리, 화산재 등 세분된다. 보통은 화산재가 분출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화산분출물은 마그마의 파편 뿐만 아니라 주변 암석의 뜯겨진 조각도 포함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화산쇄설물이 모든 화산 분출물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수성분출의 경우에는 마그마의 파쇄가 마그마에서 방출된 기체의 압력에 의한 게 아니라, 급격히 유입된 외부 물이 고온의 마그마에 의해 기화되면서 팽창하는 에너지에 의해 파쇄된다. 이 경우에는 파쇄된 마그마의 유리 조각 모습이 일반적인 마그마 파쇄와는 다르게 생겼다.

4.1 분연주의 붕괴에 의한 화산쇄설성 밀도류

분연주 붕괴에 따른 화산쇄설류(수프리에르힐즈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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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밀도 분연주가 붕괴하면서 만들어지는 화산쇄설성 밀도류가 수프리에르힐즈 산사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막대한 양의 고압 화산가스와 화산쇄설물이 섞인 마그마의 압력은 어마어마하다. 특히, 한번 상분리가 일어나면 밀도가 가벼워지면서 상승하려는 흐름이 빨라지기 때문에 상분리가 가속되고, 이에 따라 화도로 진입하는 마그마의 속력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 압력이 지각 최상부의 압력을 이겨내면서 지표를 뚫고 터져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폭발적인 화산 분출이 된다. 이 때 하부의 압력이 좁은 화도나 균열을 통해 방출되면서 분연주(eruption column)의 순간적인 속력은 음속을 넘어선다. 화산쇄설물의 대부분은 고온의 기체에 섞여 분연주를 구성하게 된다. 분연주는 주변 공기와 섞여들면서[2] 주변 공기의 상승류를 충분히 형성해줘야하지만, 종종 상승류가 충분치 못하여 분연주가 붕괴할 수 있다. 이 붕괴는 분연주의 대류 구조가 불안정해서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분연주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 붕괴한 화산쇄설물과 화산 가스는 중력에 이끌려 흐름(밀도류)을 만들어 사면이나 지면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이 메커니즘에 의한 화쇄난류는 핵폭탄에서 발생하는 베이스 서지와 일맥상통하는 전형적인 흐름으로 간주된다.[3]

수성분출에 의해 발생한 저온 베이스 서지의 동영상 예시

4.2 크립토돔의 붕괴에 의한 밀도류

크립토돔이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화산쇄설류의 예(운젠 화산, 동영상 초반부)
어떤 화산체는 하부에서 밀어올리는 압력에 따라 점성이 매우 높은 마그마가 천천히 상승하면서 돔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화산 항목을 같이 참고할 것.) 이 돔의 가파른 측면이 붕괴, 파쇄되면서 산사면을 따라 흘러내리고, 이를 통해 화쇄난류가 발생하게 된다. 위 동영상 링크에서 볼 수 있듯이, 1990년대 운젠화산의 분출이 가장 전형적인 예시를 제공해주었다.

4.3 측면 분출에 의한 밀도류


▲ 1980년 세인트 헬렌스 화산 측면 분출 모습. 해당 분출 사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세인트 헬렌스 화산에 의해 알려진 또 다른 메커니즘은 아얘 분연주가 옆으로 누워버리는 경우다. 즉 화산의 측면이 붕괴하면서 감압이 급작스럽게 일어나 화산 정상부에서 수직으로 분출하는 게 아니라, 화산 측면으로 압력이 방출되는 것이다.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경우, 끔찍하게 강력한 측면 폭풍이 지면을 쓸어버렸지만, 이 엄청난 고속의 흐름 속에 하부 고밀도층이 없었기 때문에 이 화산쇄설성 밀도류는 사실 화쇄난류에 속하게 된다.

5 파괴력

화산 분출 현상 중 가장 위험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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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화산의 화산쇄설류에 직격탄을 맞아 수 분 만에 완파된 마르띠니끄 섬 마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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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강력한 측면 폭발에 휩쓸린 국립공원 숲의 모습. 두껍고 높게 자란 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널부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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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과 같은 1980년 분출(세인트 헬렌즈 화산)에 의해 갈가리 찢긴 두꺼운 나무. 매우 큰 나무였지만 종잇장처럼 찢어발겨졌다.

화산쇄설성 밀도류 자체가 다양한 규모의 밀도류를 모두 포괄하는 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작은 규모로만 발생하여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산쇄설성 밀도류는 극도로 위험하며, 밀도류에 집어삼켜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보통 강력한 화산 폭발에 수반되는 현상으로, 수성분출에 의해 발생하는 소규모 밀도류는 100도 전후지만, 대부분의 성층화산에서 뿜어져나오는 화산쇄설성 밀도류의 온도는 약 1000도쯤 된다. 더군다나 측면 분출에 의한 것이나, 강력한 분연주의 붕괴에 의한 것은, 압축된 고온의 공기가 팽창하면서 전진하는 것으로 내부 압력이 무진장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때문에 최대 전진 속도가 초속 50~300미터에 달한다.[4] 특히 화산쇄설류는 위에서 말했듯이 고밀도의 흐름이 핵심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저 어마어마한 속도에 발맞추어 굴러가고 있다.[5] 이 화쇄난류나 화산쇄설류에 휩쓸려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없다.[6]

가까이 있기만 해도 심각하게 위험한데, 수프리에르 화산[7]의 한 계곡 근처에 살던 주민은, 그 계곡을 따라 질주하는 화산쇄설류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집에 화산쇄설류가 닿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화산쇄설류의 강력한 복사열과 대기압 때문에 숨을 쉬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화쇄난류의 경우 화쇄난류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나무가 고열로 죽어버리기도 했다.[8] 또한, 강력한 화쇄난류는 바다를 건너기도 하며 전설적인 1883년 크라카토아 화산 분출 당시에는 인도네시아 섬 사이의 수십 킬로미터로 펼쳐진 바다를 화쇄난류가 건너 맞은편 해안가를 강타했다.

화산쇄설류는 화산 분출로 인한 인명 재해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데,[9]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례가 1902년 펠레 화산의 분출이다. 해당 사건은 화산 항목 중 '화산쇄설류' 항목을 참고할 것.
  1. , 이산화탄소, , 염소 등이 포함된다.
  2. 이 때 전형적인 화산 분연주의 꽃양배추 모양이 만들어진다.
  3. 단, 화산쇄설류는 다른 현상이므로 베이스 서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4. 대충 시속 200 ~ 1000 km 정도 된다.
  5. 수프리에르 화산의 경우, 해안가 근처에 퇴적된 거대한 암괴 표면에 암석이 마찰열로 녹은 흔적이 있다(...). 화산쇄설류에 휩쓸려 내려오면서 다른 암석과 마찰을 일으키며 표면이 녹아버린 것이다.
  6. 화산에서 살아남기에선 화산쇄설류의 궤도에서 역방향으로 뚫린 동굴에 숨어서 입구를 돌과 바위 등으로 막아 유입을 막은 뒤 담요와 수건 등을 물을 적셔서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기적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것도 억수로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거지 보통은 죽는다.
  7. 이 화산이 계속 언급되는 것은, 화산쇄설류가 가장 잘 연구된 화산이기 때문이다.
  8. 물론 화쇄난류에 '휩쓸린' 나무는 새카맣게 타서 이쑤시개처럼 찢겨 널부러졌다.
  9. 기후변화에 따른 간접적인 사망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