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Mount Saint Helens
미국 워싱턴 주 스카마니아에 존재하는 활화산. 현재 높이는 2,550m로 한라산보단 높지만 백두산보다는 낮다. 시애틀로 부터 남쪽으로 154km 지점, 포틀랜드로 부터 북동쪽으로 80km 지점에 떨어져 있으며, 5,000㎢ 이상의 국유림이 있다. 산에 쌓인 눈이 녹아 내려오면서 계곡을 형성해 3개의 강으로 흘러들어갔고, 이러한 장관이 유명해 사진 엽서에도 쓰일정도로 유명했으며 해마다 5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이 때문에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산이라고도 불린다.
이름은 영국의 외교관 세인트 헬렌스 경으로 부터 따왔으며,[2] 케스케이드 산맥[3]에 위치해있고, 첫 등정은 1853년 토머스 드라이어였다.
활화산답게 폭발이 몇차례 있었는데 최근에 있었던것은 2005년이다. 그러나 아래에 설명된 1980년 분출 때문에 이 화산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산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사제지간이었던 Harry Glicken(1958~1991)과 David A. Johnston(1949~1980)의 일화는 미국 화산학계에서 아주 유명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2 지질학적 배경
세인트 헬렌즈 화산은 미국 서부 캐스캐이드 화산호(Cascade Volcanic Arc)의 대표적인 활화산 중 하나이다. 캐스캐이드 화산호는 미국 영토 내의 주요 화산 활동 지역 중 그 폭발성 때문에 악명이 높은 곳이다. 미국의 고위험군 성층화산(stratovolcanoes)이 이곳에 주로 분포해있다. 이 화산호는 후안 데 푸카 판이 섭입하면서 만들어진 섭입대 화산호로서, 마법사의 섬으로 유명한 '크레이터 레이크(Crater Lake)', 라센봉(Lassen Peak), 샤스타, 후드, 레이니어 화산 등 강력한 화산 분출을 기대할 수 있는 화산들이 즐비하다. 이 화산호는 3천 만 년도 더 전부터 활동을 보였던 오래된 화산호이며, 대부분의 높은 화산들은 10만 년 이내에 분출을 했었다. 이 화산들을 묶어서 관측하고 있는 관측소가 캐스케이드 화산 관측소(Cascade Volcanic Observatory)이며, USGS의 다섯 개의 화산 관측소 중 하나이다.[4][5]
세인트 헬렌즈 화산은 이 캐스케이드 화산호에서 가운데 쯤 위치해 있으며, 레이니어 화산과 가까이 있다. 세인트 헬렌즈 화산은 이 화산들 중에서도 젊은 화산이며, 약 4만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본격적으로 1980년 전(pre-1980) 화산돔(volcanic dome)을 구축한 건 약 2200년 전부터[6]이며 결과적으로 세인트 헬렌즈 화산은 캐스케이드 화산호 화산들 중 현재 가장 활발한 화산으로 알려져 있다. 화산호 화산 답게 현무암에서 안산암, 석영안산암질 용암과 화산재 등으로 구성된 활동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2200 년 전부터 누적된 하부 압력은 마그마의 천부로의 관입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인트 헬렌즈 화산으로 대표되는 크립토돔(cryptodome)이다. 이는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하는 대신에, (보통 점성이 상당히 높은) 마그마가 화산 바로 아래에 들어서면서 지표를 차차 들어올리는 형태의 돔 성장을 말한다. 일종의 내부성장형 돔(endogenous dome)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인트 헬렌즈 화산은 내부성장형 돔의 교과서적 사례를 보여주게 된다.
크립토돔이 우세하게 발달하면서 세인트헬렌즈 화산은 하부 압력이 올라가지만 이를 방출해줄 주-화도가 발달하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1980년 분출 직전까지 화산은 큰 분출을 일으키지 않은채 화산 자체가 부풀어올랐었다. 지진 빈도가 급증하고, 화산이 부풀어오르며, 가스 분출과 작은 수성 분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1970년대에 관찰되어 USGS는 이를 화산분출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예측은 (아래 기술한 대로) 제대로 적중하지 못했는데, 이는 이 당시 크립토돔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크립토돔은 하부의 압력을 증대시키면서 산체를 들어올리고, 이 때문에 불안정한 상부 암석층이 결국 사태를 일으키게 된다. 이는 재빠른 감압(decompression)을 일으키는 기작이 되며 마그마가 오랜 세월 누적한 에너지를 단숨에 내뿜는 활로를 열어주게 된다. 이것이 1980년 분출이었다.
이후 화산 상부에는 큰 규모의 분화구가 남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에너지가 충만한 하부의 마그마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화산 돔을 새롭게 성장시켜왔다. 고래등 모양이 전형적인 내부성장형 돔이 발달하였으며, 1980년 이후 지속된 화산 활동은 오늘날까지도 화산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해주고 있다.
3 1980년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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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폭발 전 상황
18세기 이후 세인트 헬렌스 화산은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지진계는 1970년 대에 와서야 설치됐다. 1980년 3월 15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화산성 지진 다발이 관찰되었는데, 이날 이후 지진활동은 급증했다. 1980년 3월 20일에는 4.2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 때 집중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미국지질조사국은 추가적인 지진 관측시설을 설치했다. 3월 말쯤에 이르러 지진활동이 확실하게 늘어남을 확인한 지질조사국과 연구팀은 화산 활동의 징조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3월 27일엔 수성분출(phreatic eruption)이 발생해서 2100 m정도의 분연주를 형성했다. 123년만의 첫 폭발이었고, 수천명의 구경꾼이 몰렸고, 구경꾼들을 노린 장사꾼들이 화산이 그려진 머그컵이나 티셔츠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 속에 미국 지질 조사국 과학자 데이빗 존스턴(David Johnston)을 비롯한 지질학자들은 앞으로 있을 분출의 징조라며 TV에 출연해 경고했고, 지역 보안관은 이를 받아들여 산 정상에서 11km내의 도로를 폐쇄하고 주민과 관광객들을 대피시켰다.
3월 29일엔 화산이 다시 잠잠해졌지만 정상의 눈이 녹고, 새로운 분화구가 생기는등 폭발의 징후는 여전히 보였다. 과학자들은 피해 예상지역을 조사했는데 수직폭발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자문기관인 지질조사국엔 지역 폐쇄 권한이 없어서 미국 산림 위원회가 지질 조사국의 정보를 바탕으로 2단계 출입 제한구역을 정해야 했다. 화산 정상에서 반경 11km 안쪽은 제일 위험한 구역으로 경찰과 과학자만 출입이 가능하게 했고, 반경 24km는 벌목회사 직원[7]이 출입 가능했다. 하지만 지질조사국이 화산지류(라하르)의 위험성이 있다 경고한 지역에는 여전히 일반인이 출입 가능했다. 지질조사국이 주지사에게 계곡에 가는걸 막아달라 요청했지만 주지사는 낚시철이 시작되는 때의 부담과 그에 따른 비용과 지역경제를 고려해 거부했기 때문이다.[8]
연구팀은 늘어나는 지진 활동과 지표 변위, 화산 가스 활동 감지 등을 종합한 결과 화산이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판단했다.[9] 그들은 재빨리 지표 변위 관측을 위한 반사판과 지진계를 설치한 관측시설 두 개[10]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USGS의 여러 연구진이 교대로 비번을 섰지만 주로 그곳에서 마지막 2주동안 주로 감시(monitoring)를 수행한 사람은 Harry Glicken이라는 젊은 대학원생이었다.[11]
지표 변위는 무척 특이했다. 정단층이 발달하고 산체가 부풀고 변형되어 하부에서 무언가가 밀어올리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특히 북쪽 사면은 크게 변형되어 이곳에서 사태가 발생하여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특히 산체 한면이 붕괴되면 측면폭발(lateral blast)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12] 세인트헬렌스 화산이 확실하게 발달한 화구가 없고,[13] 산체의 변형이 있기 때문에 측면 분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소수 의견인데다가 USGS 소속의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USGS에서는 보통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의 성층화산 분출은 상부에서 수직분출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세인트헬렌스 화산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근거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14] 그러나말거나 화산의 예고장은 수도없이 날아왔다. 산체의 변형 속도는 놀랄만했는데, 하루에도 1~2 m 씩 변형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성 분출활동도 이따금씩 일어났고, 화산 가스에 의한 현상도 종종 보고되었다.
1980년 5월 17일, 전국적으로 화산에 대한 뉴스가 나갔지만 화산은 여전히 잠잠한 듯했다. [15] 화산이 폭발할거라 본 사람들을 가지고 호들갑 떤거라 보는 사람들도 나오고[16], 날씨가 워낙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세인트 헬렌스 화산에 놀러갔다.
한편, 5월 16일 저녁에 Don Swanson은 David Johnston에게 찾아가 5월 18일에 콜드워터 II 기지의 비번을 서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유인 즉슨, 5월 10일부터 내리 관측을 하고 있었던 Harry Glicken이 5월 18일에 맘모스(Mammoth)에서 연구 관련으로 만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스턴은 내키지 않아했지만 승낙했다. 그리고 글리켄은 떠나기 전, 즉 5월 17일에 유명한 사진 두 장을 찍게 되는데, 하나는 분출하기 직전의 세인트 헬렌스 산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존스턴이 콜드워터 II 야외 간이의자에 앉아 글리켄을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17] 존스턴은 5월 17일부터 산을 돌아보고 콜드워터 II 기점에서 추가적인 변화를 살피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5월 18일 아침이 되도록 별다른 차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3.2 폭발
"Vancouver! Vancouver! This is it!"[18]
1980년 5월 18일,[19] 데이빗 존스턴은 북쪽 사면을 계속해서 관찰했고, 4시간 동안 관찰한후 지질 조사국 워싱턴 지국으로 자료를 전송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8시 22분, 부풀어 오른 북쪽 사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산사태가 발생했고, 산사태가 마그마를 막던 암반을 치우면서 32분엔 산이 폭발했다. 폭발은 존스턴이 예상했던대로 측면폭발이었고,[20] 존스턴은 밴쿠버 기지[21]에 폭발 사실을 알린뒤 측면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쇄설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그와 동시에 무전도 끊겼다.
측면폭발 산 정상부의 400m와 북쪽 측면 전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엄청난 양의 돌과 흙, 물이 화산쇄설류와 함께 터져나오는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대형 산사태가 일어났는데 이때 무너져 내린 양은 약 3,700,000,000㎡. 맨해튼섬 전체에 120m 높이로 쌓을수 있는 양이었다. 산사태는 북서쪽 20km를 시속 200km로 흘러가면서 노스포투톨강의 상류로 흘러간뒤 스피릿호수에서 길이 270m, 높이 60m의 초대형 파도를 만들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발달한 화쇄난류를 포함한 폭발은 USGS에서 수직폭발이라 예상했을때 정했던 안전구역을 재빠르게 넘어섰고[22] 산체 북쪽의 약 1150 km2 영역을 초토화시켰다. 대기로 뿜어져나오자마자 화쇄난류는 1080km/h까지 가속되었고[23] 그대로 북쪽을 휩쓸면서 잘 자란 나무들을 태우면서 이쑤시개 넘어뜨리듯이 쓰러뜨렸다.[24] 심지어 화쇄난류가 휩쓴 곳에서 수 킬로미터가 넘는 곳까지 그 열기 때문에 나무가 말라 죽었다.[25] 그 엄청난 고열의 화쇄난류가 대지를 휩쓸면서 호수와 강물은 순식간에 기화해 폭발해버렸고, 그 소리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26] 당시 폭발(blast)은 서울에 비유하자면 관악산(세인트헬렌즈화산)이 폭발해서 30초만에 (10km쯤 떨어져 있는) 남산타워(콜드워터 기지)를 지워버린 셈이다. 그리고 폭발이 미친 거리가 약 35 km 정도 되는데, 이는 하남시에서 일어난 폭발이 김포공항을 날려버린 것과 같다. 폭발로 인해 박살난 숲의 면적은 서울특별시 면적과 맞먹고, 폭발 자체가 덮은 면적은 그보다 거의 2배 넓다.
화산재는 더 멀리까지 퍼지기 마련. 화산재는 화산 주변에 50cm 두께로 쌓이고 9km거리에 있는 400m 높이의 산을 뒤덮은 것도 모자라 오클라호마, 와이오밍, 다코다, 아이다호, 몬태나를 뒤덮더니 이후 바람을 타고 15일 뒤엔 전세계를 뒤덮었다. 또한 화산 가스와 뒤따르는 연소 작용으로 인해 산소가 희박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5월 18일 10시엔 50km이상 떨어진 곳의 벌목회사의 나무들이 흔들리더니 라하르가 강을 따라 흘러들어오며 안전구역에서 낚시를 하던 이들을 시속 140km의 속도로 덮쳤다. 오전 10시 10분에는 570㎢가 화산재로 뒤덮였고, 잠시 잠잠해졌다. 이틈을 타서 산림청과 주 경찰, 주 방위군, 산악구조대 소속의 수백명이 생존자 수색에 나섰다.[27] 결국 57명의 사망자와 1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사망자중 53명은 안전지역에서 사망[28]했다. 또한 27개의 다리와 200여채의 집이 붕괴되었고, 31척의 배가 파괴되었다. 재산피해는 약 10억 달러였다.
충격량은 TNT로 환산하면 최소 20메가톤에서 최대 350 메가톤[29]으로 차르봄바 따위보다 7배 강력했다.
폭발이 잦아든 뒤, 해리 글리켄은 헬리콥터로 존스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인근 지역을 수색했지만 존스턴은 커녕 콜드워터II 기점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존스턴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머리를 잡아뜯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생겼다. 해리 글리켄은 그 일에 대한 충격으로 화산학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불안해보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일본에 있는 운젠 화산이 활동을 보이자, 프랑스의 유명한 화산학자 부부였던 크라프트 부부와 함께 화산 모니터링을 나서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존스턴과 운명을 바꿨던 해리 글리켄은 1991년 6월 운젠 화산에서 똑같은 현상[30]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누구도 운명을 속일 수는 없다는 말과 함께 미국의 화산학계에서 이 일화는 유명해졌다.또한 이 폭발로 무명 사진작가였던 로버트 랜스버그가 찍은 폭발 순간의 사진이 유명해지기도 했는데,안타깝게도 랜스버그 또한 현장에서 사망하고 만다.죽기 전 필름을 카메라에서 꺼내 비닐에 넣은 다음,옷으로 감싸 배낭에 넣어 약간의 손상을 제외하고 무사히 현상되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전달되었다.
이 이야기는 2016년 4월 10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되었다.
한편, USGS에서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데이빗 존스턴) 캐스캐이드 화산 관측소(CVO)를 설립했다.
4 폭발 이후의 화산
▲ 화산 분출 전 후 비교[31]
사진을 보면 산 위쪽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린 걸 확인할 수 있다. 사진으로 감이 안잡힐지도 모르겠지만 분출하기 전에 세인트헬렌스 화산은 2950 m 높이의 커다란 산이었다. 더군다나 저 사진은 산에서 10 km나 떨어진 곳[32]에서 찍은 것. 10 km가 별거 없어보이지만 남산타워와 관악산 사이의 거리 쯤 된다. 남산타워에서 관악산의 모습과 저 사진을 비교해보면 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화산은 폭발로 400m가 낮아졌고 안에는 다시 작은 화산이 생겨났다.
폭발 이후 생태계 복원과 교육적인 목적을 이유로 이 지역을 준 국립공원에 해당하는 국립기념지로 선정되었고,[33] 또한 연구지역으로도 선정되었으며, 지질학자 데이빗 존스턴이 숨진 곳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존스턴지리관측소가 설치되었고, 안에서는 화산 폭발을 다룬 30분짜리 안내영화를 상영해준다. 안내영화가 끝나면 스크린이 올라가면서 화산을 보게 해준다. 그 외에 공원 모형도가 관측소 안에 있는데, 모형도내에 LED를 설치해 화산폭발 당시의 상황을 알려준다. 관측소답게 지진계도 설치되어 있다.
산 남쪽에는 땅속으로 파고들어간 용암이 굳으면서 생긴 에이프 동굴이 존재한다. 2,000년전 폭발로 형성되었으며, 13,042피트로 북미 대륙에서 3번째로 긴 용암동굴이다. 구경하려면 조명기구를 직접 준비해야한다.
2004년와 2005년에도 각각 한 차례 폭발이 있었으나, 1980년때의 교훈을 얻으면서 이 때는 피해자가 없었다. 하지만 2개월 후 지구 반대편에서는.....#
5 기타
미국에서 있었던 유일한 화산 폭발 재해여서 미국에서 만든 화산 다큐에는 100% 나온다. 당시 관광객들이 많아 화산폭발 당시 상황을 캠코더에 생생하게 담아서 더더욱 자주 나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는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한번 다루었고, 그외에 각종 화산 다큐에서는 심심하면 다루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도 Raging Planet에서 다루었다.
화산 폭발을 주제로 한 재난 영화 단테스 피크는 이 사건을 많이 참조한 흔적이 보인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에서는 그리스 신들이 미국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괴물 티폰이 갇힌 게 에트나 화산에서 이 세인트 헬렌스 화산으로 바뀌었다는 설정이 되었는데 4권에서 퍼시가 와서 한바탕 싸운 덕에 화산은 폭발하게 된다.(...) 이 일로 티폰이 깨어나고, 결국 5권에서 티폰이 탈출하면서 화산은 다시 폭발.- ↑ 한 때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과학교과서에 이 사진이 화산이 분화하는 사진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실제 분화 장면은 아래에 나온 것처럼 격렬하며, 이 사진은 화산이 분화하고 몇 년이 지나 칼데라 안에 새로 생긴 작은 화산을 찍은 것이다. 작아 보여도 건물 80층(!)에 해당하는 높이이다.
- ↑ 세인트헬레나 산이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름이 St. Helens로 세인트헬렌스이다.
- ↑ 이 산맥에는 베이커, 글레이셔 피크, 레이니어, 후드, 클레이터호 등이 존재한다.
- ↑ 이 캐스캐이드 화산 관측소는 아래에 서술된 세인트헬렌스 화산 분출로 인해 희생된 존스턴을 기리며 만들어졌다. 또한 영화 단테스 피크에 등장하는 바로 그 지부이며, 단테스피크 자체가 세인트 헬렌즈 분출이 사실상 그 모델이다.
- ↑ 미국에는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캐스캐이드, 하와이 및 옐로스톤 화산 관측소가 존재한다.
- ↑ 주로 2200~1700년 전. Castle Creek 시기라고 함
- ↑ 근처에 벌목장이 있었다.
- ↑ 이때문에 훗날 주지사는 사람을 죽게 만든 혐의로 법정에 섰지만 1985년 기각됐다.
- ↑ Don Swanson이 책임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 콜드워터I, 콜드워터II. 특히 콜드워터II 기지는 산체 북쪽(!) 약 10 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 ↑ 그는 David Johnston의 제자로 있었다.
- ↑ David Johnston은 그런 주장을 한 지질학자 중 한명이었다.
- ↑ 수성 활동에 의한 소규모 화구는 있었다
- ↑ 세인트 헬렌스 화산은 과거 단 1번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직 폭발이었다. 다만 지질학자 데이빗 존스턴은 1956년 소련의 베지미앙 화산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측면 폭발이 일어날거라 예상했다. 베지미앙 화산도 분출당시 마찬가지로 측면이 부풀고, 증기가 분출되는 현상을 보였다.
- ↑ 5월 16-17일 즈음에 이르러서는 왠지 몰라도 수성 활동도 잠잠해졌다. 분기공의 활동은 특별히 관찰되지 않았으나, 화산의 지속적인 변형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대부분 산사태나 라하르에 대한 위험성을 고민하고 있었다.
- ↑ 물론 과학자들 입장에서 "언제" 터지는 지를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하루 단위의 예측은 불가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러 징후를 보건데,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화산이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데에는 거의 의심하지 않았다.
- ↑ 두 사진 모두 David Johnston을 검색하면 곧잘 나오는 대표적인 사진이다.
- ↑ 폭발 당시 지질학자 데이빗 존스턴이 알린 무전이자 그의 유언.
- ↑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다음날이다. 날짜 변경선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는 5월 19일이 된다.
- ↑ 마그마가 산체를 밀어올리다가 산이 변형되자, 북쪽 사면을 무너뜨리고 감압을 일으켜 터져나온 것이다.
- ↑ 캐나다의 밴쿠버가 아니라 워싱턴 주 밴쿠버에 있는 지질학 연구소이다.
- ↑ 수직폭발과 수평폭발의 화쇄난류 범위는 차원이 다르다.
- ↑ 지금까지 기록된 화산쇄설성 밀도류중 가장 (압도적으로) 빠른 것이다.
- ↑ 완파된 고목들의 모습이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참혹하기 그지없다. 미터 두께로 자란 고목들이 종잇장처럼 찢겨져나가있다.
- ↑ 온도가 거의 1000도에 가까운 거대한 열구름이니 말 다했다.
- ↑ 신기하게도 훨씬 가까운 지역 중에서는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은 곳도 있었는데, 이를 'quiet zone'이라고 하며, 지형과 주변 공기의 성질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경우라 한다.
- ↑ 구조대 중 한 명은 생존자를 구조한 뒤 헬기를 잠시 돌려 폭발한 화산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 ↑ 다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안전 지역에서 사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분화구 가까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 폭발에 이은 분출이 북쪽 위주로 진행되었기에 남쪽에 있었던 사람 중에 살아남은 사람도 있는 것.
- ↑ 폭발 이외에 라하르, 화산재 등으로 인한 피해를 모두 합쳤다는 얘기가 있다.
- ↑ 급작스러운 화산쇄설성 밀도류
- ↑ 두 사진은 해리 글리켄이 찍은 것이다. 특히 좌측의 사진은 5월 17일 콜드워터 II 기지에서 찍은 사진.
- ↑ 콜드워터 II 기지
- ↑ 관리는 국립공원 관리국이 아닌 산림국에서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