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헌에 실린 화창의 모습.*
가장 유명한 것은 이화창(梨花槍)이라 불리는 무기다(여기서는 火가 아닌 花다).
이화창의 모습.*
이화창은 길이 약 2미터 정도 되는 창이며, 그 끝에는 대나무등으로 만든 화약이 담긴 통이매달려있다. 화창을 다루는 병사가 이 통에 연결된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음 적을 향하면 화약통 안에서 화약이 폭발, 적을 향해 화염을 분사하게 된다. 화약통 안에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화약말고도 철부스러기나 유황, 비상등을 넣어 파편효과를 노리거나 연기와 가스를 통하여 상대편의 호흡곤란 등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다만 화약통은 보통 1개만 매달았으므로, 한 번 화약을 쓰고나면 이화창은 일반창이 되어버린다. 한편 이화창 이외에 화약통만 매단 화창도 있었던 듯 하다.
900년대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확실한 사용예가 남아 있는 최초의 시기는 남송시대인 1132년이다. 이 시기에 덕안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황의 군대가 성으로 공격해오자 수비를 하던 장군 진규는 이화창을 든 병사 60명을 배치, 공성용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성으로 기어오르려던 적을 패퇴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금나라시기에는 화약통을 종이를 여러겹 만 것을 사용하였으며, 명나라때는 철로된 화약통을 사용하였다. 사실 도화선을 사용하여 불을 붙여야 하므로 발사타이밍을 잡기 어렵고, 화염의 유효사거리도 3m정도여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운 무기였으며, 주로 공성전이나 수성전때 쓰인 것으로 보인다.
1233년, 금나라의 화창을 든 병사 450명이 몽고군 진지에 야습을 감행, 몽고군을 패퇴시킨 기록이 있으며 이때 몽고군은 3천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고 한다.
중국과학사의 대가 조지프 니덤은 화창에 대해 총의 시초라고 평했으며, 실제로 화창은 원시적인 총의 형태로 진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돌화창이다.
이 형태와 원리는 다시 유럽에 전래되어 현재의 총기의 핸드 캐논을 낳게 된다.
이후 돌화창은 무적죽장군으로 개량되어 근세에도 사용되었다.
화창은 화포를 일컫는 말로도 쓰였으며, 이탓에 현재도 중국은 기관총을 기관창, 소총을 수창(손 수 + 창)이라 부르고 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아마 누군가가 화창 발사시 화약에 의한 반동이 있다는 것에서 착안을 했거나, 아니면 화창의 화약통을 거꾸로 하면 화창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화전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