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씨네 21 인터뷰 촬영에서.
성룡 주연의 1978년작 <사형도수>에서.
2009년,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 미야모토 무사시로 출현한 모습.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포스가 넘친다.
黃正利
1944년에 일본의 오사카에서 재일 교포의 자녀로 출생했고, 해방 후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70년대에서 8,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홍콩을 넘나드며 액션 배우로 활약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국내에선 골수 액션 매니아가 아니고선 무척 생소하고 낯선 이름지만, 무협물을 즐기는 양덕들이나 그외 무협영화 팬들 사이에선 그야말로 지존 대우를 받는다. 그 인기는 무협 매니아라면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에도 따로 팬사이트가 존재한다고 할 정도.
서구권에서는 'Hwang Jang Lee'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남권북퇴에서 맡은 역인 'Silver Fox'가 별명으로 유명하여, 'King of Legfighters'라는 엄청난 숭배를 받는다.
양덕이 만든 숭배 매드영상.
가끔 '황태수'라는 이름이 본명이라고 하지만 이는 국내에서만 쓰던 예명이다. 황정리 본인도 인터뷰에서 이를 부정한 바 있다.
베트남전 당시에 태권도 교관으로 활약했다고 전한다. 이때에 베트남 칼잡이에게 도전을 받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결투를 하였다가 원치않았던 살인을 하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고 카더라.[1] 물론 이는 그냥 떠도는 이야기로 사실인지는 황정리 본인만 안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영어판 위키백과에는 이 일화가 버젓이 올라와있다...[2]
후에 이두용 감독[3]이 오디션을 열었을 때 액션 스타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나가서 솜씨를 보인 후 영화계에 진출했는데, 현실은 시궁창... 돌아온 배역은 결국 단역 뿐이었다.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할 무렵 마침 오사원 감독[4]이 한국-홍콩 합작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방한했고, 오사원 눈에 띄어 남권북퇴에 출연하게 된다.
이때 인연으로 홍콩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남권북퇴의 흥행성공과, 이어 출연한 사형도수와 취권에서 카리스마가 넘치는 킹왕짱 발차기 악역 '번개다리' 염철심을 분해 명성을 얻었다.
실제로도 태권도 고수로 이름이 있으며, 화려하고 강렬한 발차기 솜씨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과장이 아니라 고전적 쿵후 액션과 경극 스타일의 아크로바틱 액션에 익숙했던 70년대 관객들에게, 거의 컬쳐 쇼크나 다름없었다.
사제출마,용소야에서 합기도를 기반으로 한 신묘한 손기술을 보인 황인식이나, 공중에서 4번을 걷어차는 가위차기를 보인 왕호 등과 함께 이 시대 한국 액션 배우들이 홍콩 액션영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이 외에도 대만의 무협 드라마에도 출연하였고 이 중 몇몇 작품은 국내에서도 VHS로 출시되었으나(삼원프로덕션에서 출시한 천룡검협이라든가) 인지도는 거의 없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무술 감독을 지냈던 경력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여 제주도에서 사업에 전념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잊혀지는 듯 했으나 2008년, '돌아온 일지매'에 출연하여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소룡에게 척 노리스가 있다면 성룡에게는 황정리가 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실제로 성룡 영화(특히 취권 시리즈)에서 이소룡 영화의 척 노리스가 했던 포지션을 그대로 담당했다. 그만큼 성룡과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춰온 사이이다.
2010년 현재 서울현대전문학교 액션연기학과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2012년 지인의 생일잔치 현장에서.
사실 화려한 발차기 실력 외에도 무표정한 얼굴과 시니컬한 말투, 그리고 콧수염(...) 등도 트레이드 마크. 발차기와 함께 황정리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덕분에 영화에 출현할 때 왠지 캐릭터가 Bad Ass삘이 나는 경우가 많다.
외화 더빙판에서는 성우 임성표가 이 사람을 전담하는데 특히 90년대 중반에 명절 특집으로 방영되던 취권이나 예스 마담 3 - 중화전사 등에서는 원판을 초월하는 후덜덜한 악역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5]
참고로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타오파이파이의 모티브가 바로 황정리라는 추측도 있다. 직업이 암살객이라는 점은 취권에서, 특유의 복장과 헤어 스타일은 사형도수에서 따온 듯.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의 라우 첸 또한 황정리가 모티브인 듯.
그 외에도 여러 일화가 있다.
- 성룡과 취권을 촬영하던 중에 성룡이 황정리가 자신의 공격을 잘 받아치고 게다가 다음에 어떤 재스쳐를 취할 지 간파하자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본래 팬들 사이에서 떠돌던 일화였는데 황정리 본인도 인터뷰에서 과장되었지만 사실이라 밝힌 바 있다.
- 홍콩과 한국의 합작 영화를 촬영하던 중에 한국인 스탭들이 홍콩 스탭들과 불화가 생겨 촬영을 포기하고 모두 돌아갔는데 황정리는 영화를 끝마치지 못한 채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바람에 스탭들에게 찍혀서(...) 한동안 한국에서 영화를 촬영하지 못했다고...
- 한국에서 '황태수'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유독 홍콩으로 진출하여서는 본명인 황정리를 고집한 이유는 이름의 뜻(正利)도 좋고 무엇보다 홍콩말로 발음하면 황짱리!하며 이름 끝부분이 멋지게 올라가는게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본래 악역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실제 인상도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여 촬영 중에도 스탭들이 진짜 악인이라 착각하여 같이 어울리기를 피했다고 한다...
지못미일본 배우인 사나다 히로유키와 함께 용지닌자를 촬영할 적에도 그가 황정리와 사적으로 만나는 것을 피하였으며 후에 인상이 무서워서 함께 어울리지 못했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고... 안습
- 일본인 액션배우인 오오시마 유카리도 <부귀열차> 촬영당시 외모에서 풍기는 위압감과 강렬한 발차기 기술을 보이는 촬영장면에 압도되서 엄청 무서운 사람인 줄 알고 가까이 하지 않았다가, "난 지금 일본인 역할[6]이니까 가능하면 일본어를 잘 해야 한다"라며 일본어 교습을 해 달라고 청해서
항상 함께 나오는 배역이라 사나다 히로유키처럼 도망도 못치다 보니...어울리다가 겨우 외모와는 달리 속은 대단히 부드럽고 장난도 잘 치는 아저씨(...)라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 처음 홍콩 영화계에 진출하여 명성을 떨쳤을 적에는 영화 출연료를 현금으로 받았는데 당시에 홍콩에서 매니저도 없었고 은행에 계좌도 없는 형편인지라 방 한구석에 출연료로 받은 돈을 차곡차곡(...) 쌓아 모았다고 한다. 이는 실제 인터뷰에서도 본인이 언급하여 인증한 바 있다.
- 2011년 9월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의 일화를 소재로한 에피스드가 방영된적이 있다.
주요 작품
- 남권북퇴(1976)
- 사형도수(1978)
- 취권(1978)[7]
- 용지닌자(1980)[8] 그 당시는 유난히 닌자 라는 이름을 단 미국, 홍콩 영화가 비디오 많이 출시되던 시절이었다. 쇼 코스기 주연의 닌자물도 이 때 국내출시 됐다.
- 인무가인(1980)
- 부귀열차(1986)
- 홍금보의 대나팔(1986) - 악역으로 나와 홍금보를 실컷 두들겨 패줬다.그러다가 죽은 선배형사의 유령이 홍금보를 들어올리는데 그 전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라고 말하는데 황정리가 "경찰이잖아?", "아니,내가 수퍼맨이다!" 라며 날아올라서 맞던 악역으로 나온다..선배 유령 아니었다면 못 이겼을 상대.
- 예스 마담3 중화전사(1987)[9]
- 돌아온 일지매(2009)* 여기서는 미야모토 무사시로 분하였다. 흠좀무.
- ↑ 전해지는 바로는 칼잡이가 칼을 들고 달려들때 이를 피한 다음에 발로 머리를 찼는데 이때 쓰러지면서 섬돌에 머리를 박아 죽었다고 한다..흠좀무...
왠지 이것도 무술영화에 나올만한 내용이다 - ↑ 사실 위키백과에서도 이 결투에 관한 항목에 대해서는 citation need란 표딱지를 붙여 놓았다. 한마디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
- ↑ 여러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70년대에 재미교포 액션배우인 '한용철'을 주연으로 한 통칭 '외다리 시리즈'와 '돌아이' 시리즈로 한국 액션 영화계의 한 장을 장식했던 인물이다.
- ↑ 홍콩의 유명 감독이자 제작자이다. 성룡과 함께 사형도수,취권을 제작했고, 도성.신용문객잔.황비홍 시리즈 등 국내 팬들에게도 유명한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 ↑ 물론 두 작품 밖에 더빙을 안했지만 황정리가 출연한 영화가 국내에서 대부분을 방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메이저한 두 작품을 더빙한 것이므로 사실상 전담으로 볼 수 있다. 다만 SBS서 사형도수를 방영했을땐 신성호가 맡았다.
- ↑ 작중에서 보물지도를 수송하는 일본인 호위무사 3인방 중 리더역이었다
- ↑ 이 영화를 계기로 황정리가 큰 명성을 얻었다.
- ↑ 저예산 3류 영화로 무시당하지만,(89년에 벧엘 프로그램에서 비디오로 냈었는데,빌려보다가 도중에 때려친 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전설까지 있다!다만 국내 출시 비디오는 안 그래도 괴작급이라던 영화를 삭제,번역으로 더 엉망으로 만들었기에 당시 이걸 빌려보고 쌍욕하던 이들이 서구권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다는 것에 어이없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액션 팬에겐 좀 다른 의미로 유명하다. 일본 액션 스타 사나다 히로유키가 공동 주연으로 등장하는데다 최종보스가 황정리.
- ↑ 한국수입사의 고질병인 제목 함부로 붙이기에 희생된 작품이다. 예스 마담 시리즈가 아닌데도 양자경 주연이란 이유만으로 예스 마담이라고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