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현순황후 푸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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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1712년 3월 28일 ~ 1748년 4월 8일
시호효현성정돈목인혜휘공강순보천창성순황후
(孝賢誠正敦穆仁惠徽恭康順輔天昌聖純皇后)
배우자청고종 건륭제 아이신기오로 훙리
능묘유릉(裕陵)

1 개요

만주 양황기인, 찰합이 총관(차하르 총독) 이영보의 딸로 건륭제의 첫 황후. 성품이 너그럽고 미인이라 건륭제가 가장 사랑한 여자였다.

대단히 검소하여 보석이나 물총새의 깃털이 아닌 꽃으로 치장했고, 특히 밀짚과 비단으로 만든 조화를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그녀가 건륭제에게 직접 만들어 선물한 부싯돌 주머니 역시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수놓아 만든 것이었다고.

참고로 이 주머니는 그녀가 건륭제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되어(...) 건륭제는 이 주머니를 각별히 아껴 특별히 보관했고, 현재는 대만고궁박물원에 보관되어 있다.

2 사후 상황

건륭 13년에 남편을 따라 지방순행에 갔다가 뱃놀이 중에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 직전 그녀는 둘째 아들 영종(永琮)을 잃어 크게 상심했는데, 마침 궁궐 내 점술가들이 "황후가 황궁 안에서 은둔한다면 앞으로 또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하자, 건륭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떠나는 산동성 여행을 기획한 것. 이 여행 중 그녀의 건강은 좋아지는 듯 했으나, 갑자기 돌아오는 길에 상태가 악화되었고(...) 결국 그녀는 늦은 저녁 사망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그야말로 이성을 잃은(...) 건륭제는 지금 당장 황후 일행이 탔던 배를 통째로 자금성에 옮겨놓으라고 명령하는가 하면,[1] 그녀에게 조의를 제대로 표하지 않은 대신들을 강등, 파면했다. 그 중에는 참감후(사형 집행 유예)에 처해진 사람까지 있었으니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건륭제의 황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1황자 영황(永璜)과 3황자 영장(永璋)은 그녀에 대해 애석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음? 건륭제로부터 최악의 범죄자 라고 일갈을 들었고(...) 처벌을 받았으며 태자 후보에서도 제외되었다. 안습(...) 그녀의 죽음을 기점으로 건륭제는 성격까지 바뀌어 과연 정말 황후 때문에 성격이 '바뀐'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상당히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기질을 자주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아무튼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이후 건륭제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절절하게 그리워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 대한 추억에 스스로 더 깊이 빠져들어, 틈만 나면 그녀의 일화를 얘기하며 그녀를 칭송했으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를 수없이 썼다고.어 이거 왠지... 원래 청대 황제들은 한 여자한테 집착이 심하다

참고로, 건륭제가 그녀를 위해 쓴 시는 100편이 넘었다(...) 그 중에는 '그대 없이 홀로 장수한들 아무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 라고 말한 시도 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시를 읊고 바로 이듬해 1월 건륭제 역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하기가 힘들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으나, 고륜화경공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요절하였다. 그녀의 두 아들 중 영련(永璉)은 태자밀건법에 따라 건륭제가 직접 밀지에 써서 비밀리에 태자로 지목한 황자였지만 일찍 사망하여 단혜황태자로 추증되었고, 그 뒤 태어난 영종(永琮) 역시 건륭제가 일찍이 후계자로 염두에 두었으나 천연두에 걸려 요절하였다.

참고로 양백기 몽고 도통을 지낸 마사객(馬斯喀), 옹정제가 즉위 후 임명한 4명의 총리사무대신 중 하나였던 마제(馬齊)는 바로 그녀의 백부였고, 그녀의 동생 부항(傅恒)은 건륭의 오른팔로서 후일 군기대신에까지 올랐다. 이 부항의 아내가 건륭제와 불륜 관계에 있었다는 야사가 있긴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야사일 뿐이다.

3 창작물에서

  1.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기술자들이 고민 끝에 방법을 고안하여 결국 성공했다고 한다. 공밀레...공밀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