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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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자는 다름 아닌 후궁견환전 드라마에서 옹정제 역을 연기했던 진건빈이고, 여자는 진건빈의 실제 아내 장근근이다.
후궁견환전 방영 당시 장근근이 견환 역의 손려와 매우 닮았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고.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옹정제의 후궁일람
옹친왕부순원황후 황후 단비 화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흔상재
황제로 오른 뒤 첫 수녀선발황후 화비 단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부찰귀인 심귀인 완상재 박이제갈특귀인
흔상재 하상재 순상재 안답응 여답응 지답응
막수시절황후 단비 경비 제비 기빈 안빈 혜빈 흔귀인 녕귀인
환궁황후 단황귀비 경귀비 희귀비 리비 혜비 흔빈 녕빈 기귀인 영귀인 그 외 무수한 상재 답응들

1 소개

태후조카이고 황후 의수이복언니다. 무엇보다도 옹정제의 첫번째 황후이자 옹정제의 첫사랑. 원작과 관련된 모든 미디어믹스 중 만화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이라도 그녀가 직접적으로 등장한 매체가 없지만, 사실상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현지에선 순원황후를 大Boss(최종보스)라고 부른다.

본래 동생 의수가 먼저 옹정제와 혼인했지만, 임신한 동생을 돌보러 왕부에 갔다가 옹정제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는 바람에 결국 적복진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한지 3년 만에 2황자를 낳다가 난산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고, 옹정제는 즉위 후 그녀를 순원황후(純元皇后)로 추존했다. 원작에서는 곧바로 황후가 되었고 5년만에 죽었다.

애칭은 완완.[1] 순원은 옹정을 '4랑'이라고 불렀고, 옹정은 순원을 '완완'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애칭은 옹정이 평생동안 '완' 자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본명이 정확히 언급되지 않지만 원작에서 그녀의 본명은 주유칙(朱柔则)이라고 나온다. 드라마에선 시대가 청나라이기에 만주족인 오라나랍씨로 나오지만, 원작 속 가상의 국가는 한족 국가임으로 주씨였다. 그리고 원작에선 태후가 아유(阿柔)라고 부른다.

외모는 견환, 옥요, 견환과 옥요의 어머니와 매우 비슷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태후와 황제가 견환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랄 정도. 특히 눈매가 닮았던 것으로 보인다. 황제도 눈매가 닮았다고 얘기했다. 다만 황제의 태도를 보면 견환보다는 옥요와 좀 더 많이 닮았던 듯.

2 지고의 여인

그야말로 완벽한 여인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가문도 좋고, 미모도 출중하다. 게다가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경홍무는 그 중에서도 특기. 본래 당현종의 후궁 매비가 발명한 이나 순원황후가 이를 조금 수정해서 추었는데, 아름답기로 온 궁중에서 유명했던 것은 물론, 창시자인 매비보다도 더 나은 수준이었다고. 노래 실력도 발군이었다. 극중에서 굉장히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닌 것으로 나오는 안릉용조차도 그녀의 노래에 비하면 6~7할 정도밖에 안 될 정도라니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그런데 퉁소 연주에도 재능이 뛰어나서, 옹정의 말에 의하면 그녀 사후 그녀만큼 좋은 퉁소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심지어 바느질도 잘했다. 황후도 '언니의 바느질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고 인정했고, 황제는 총애하는 견환과 바느질 솜씨 좋은 릉용의 침의를 다 제껴두고 그녀가 만들어준 침의만을 고집한다. 화장 실력도 뛰어났던 것 같다. 먼 산을 그리듯 눈썹을 그리는 화장법인 원산대(遠山黛)를 특히 잘 소화했고, 방약 상궁은 한때 그녀를 모셔서 그 방식으로 눈썹을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견환 못지않게 를 읊는 것을 좋아했고, 황제와 깊은 대화도 곧잘 나눴던 듯.

하지만 그녀의 완벽함은 인품에서 절정을 달한다. 황제의 입에서 나온 여러 표현들을 종합해보면 '어질고 자애롭고 성정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 그야말로 순수함과 선량함 그 자체였던 듯. 오죽하면 태후는 그녀를 평하길 '지나치게 순하다'고 했고, 단비 역시 그녀를 정말 어진 사람이었다며 그리워한다. 근석 역시 그녀의 은덕을 입었던 인물로, 어린 근석이 처음 입궁했을 때 빨래를 하다가 동상을 심하게 입었는데 마침 궁에 들렀던 순원황후가 그녀의 손을 보고 가엾게 여겨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얼마나 감명받았는지 그녀에 대한 고마움이 이후 견환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여, 어의를 탓하지 말고 의수를 아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사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임종 때에서야 자신이 사산하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의수라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말하길 포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아껴주고 절대 버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긴 것. 이쯤 되면 보살이 따로 없다. 다만 자신에게 불경한 측복진들(원작의 현비 감씨와 덕비 묘씨)을 벌준 적이 있긴 하다. 화비가 임신한 견환에게 내렸던 벌은 사실 순원황후가 원조로, 화비는 반 시진이었지만 순원황후는 두 시진 동안 벌을 줬다. 말이 두 시진이지 두 시진이면 장장 4시간을 땅바닥에 무릎꿇려놓은 것. 다만 순원황후는 측복진이 회임한 상태였단 걸 몰랐다. 하지만 측복진이 유산하자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엄청나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황제가 사산의 주원인이 이 일로 인한 순원황후의 자책과 속앓이라고 한동안 믿었던 것을 보면, 아마 상상 이상으로 괴로워했던 모양. 번외편에서 의수는 순원에 대해 권모를 모르며 아둔하고 우둔하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완전무결과 팔방미인적인 재능 때문에 직접 등장한 적이 없음에도 여러 사람 불행하게 만들기에 망령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 작중 이미 고인이지만 그녀의 지나친 완벽함 때문에 옹정제가 헤어나오지 못한데다가 심지어 동생 의수를 밀어내고 정실 자리를 차지했고 그녀 사후 황제가 들인 후궁인 견환과 릉용 등의 수많은 후궁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닌 순원을 투영해서 사랑했기 때문에[2] 결국 본의 아니게 남편동생을 망가뜨리고 20년간 줄줄이 피해자들을 낳은 장본인이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고인인데도 불구하고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 과군왕과 더불어 안티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또한 너무 완벽해서 환상으로 느껴지기에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원작 팬들이 과군왕과 함께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이다.[3] 너무 완벽하고 부족한 점이 아예 전무하다 보니 공감할 수도 없고 그저 이질감만 느껴지는 것이다. 원작 서장에 항상 완벽한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이 책을 썼다고 했으니 작가가 고의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일 듯. 이것은 과군왕 역시 마찬가지지만 과군왕은 적어도 민폐 부분에선 순원보다 훨씬 낫고 여러모로 희생 보정도 있어서 순원황후보다는 덜 까인다. 하지만 순원황후는 그녀로 인해 셀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피해자를 낳았고 무엇보다 황제가 민폐다 보니

순원황후 본인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작중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라 더이상 암투에 휘말릴 수 없는 여인이기 때문에 황제의 기억에서 더욱 미화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게다가 후궁들이 황제의 사랑과 지위를 갈구하다 죽은 반면에 오히려 일찍 죽은 순원은 황제에게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여인으로 남았고 황제 사후엔 황태후로 추존, 황제와 합장되면서 남편의 옆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생전에 손 한번 더럽히지 않고도 최종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바라던 것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순원을 죽인 의수는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결국 악행이 밝혀져 사후에 따로 묻히고 역사서에까지 지워지는 인물이 된다.

비록 동생에 의해 죽었으나 자신이 손쓰지 않아도 그녀에 관한 일이 자연히 해결되고 제자리로 돌아간 점에서, 그간 후궁들의 암투 위에 있던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 비록 살아서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후궁은 가문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데다 최종승자인 견환조차 행복을 얻을 수는 없었으니, 너무 선해서 궁에 살아가기 적합하지 못했던 순원에게는 좋은 결말인듯 하다.

2.1 순원황후는 정말로 완벽한 인물인가?

이렇듯 지나치게 이상적이라서 실제로 그런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에 순원황후는 정말 완벽하게 선량한가?라는 의문도 자주 제기된다.

우선 황제와의 첫만남 때 회임한 동생을 돌봐주러 왔음에도 한껏 꽃단장을 하고 온 의도는 순원황후의 어머니가 황후 자리를 욕심내서 시킨 일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의수의 추측일 뿐이며 순원의 본심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문제는 옷이다. 당시 순원황후는 궁주의 예복으로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입궁하여 그 결과 제부 될 사람과 결혼했는데, 근석이 이 옷이 눈에 익다고 했으니 그녀가 살아생전에 자주 입었던 옷일 수도 있다. 즉, 황후의 격식에 맞을 정도의 옷이다. 다만 황후의 격식에도 맞다는 부분은 원작한정이며 드라마에서는 옹정제가 즉위하기전에 죽었으므로 황후로서 살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비 책봉식 예복으로 손색이 없다는 대목에서 최소한 고위 후궁의 격식에 맞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무대가 된 청나라는 의복이 신분마다 명확하고 엄격히 나눠져 있는데 미혼녀가 비의 길복으로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옷을 입는다는 건 아무리 명문가 여식이라도 주제 넘는 짓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미혼의 양반가 규수가 활옷을 일상복으로 입고다니는 것에 비할만하다. 그리고 순원황후는 당시에 처녀라 길복을 입을 수 없었고 길복으로 청색 이외의 다른 색을 입을 수 있는 것은 후비들뿐이다. 그런데도 당시의 순원황후는 분에 넘치는 호사스런 옷을 입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제와 혼인한 뒤에도 장남이자 자신의 조카인 의수의 아들이 아파서 죽어갈 때에도 남편인 황제를 동생에게 보내지 않은데다 하필이면 조카의 죽음 직후 회임소식을 알렸다. 그 때문에 의수는 자신의 아들이 죽자마자 언니의 회임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그 직후에 남편인 황제에게 당신의 아이가 죽은 대신 당신의 언니가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일 것이다란 말을 듣게 되었다. 황제의 그 말은 지금까지 언니와 대부인이 끼친 민폐를 참아왔던 의수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본의는 아니었다지만 후궁에게 2시진이나 무릎꿇는 벌을 줘서 유산시킨 점 등을 이유로 독자들이 순원황후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는데, 극단적인 해석으로는 그녀도 권세지향적인 인물일 뿐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한 독자가 작가에게 이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작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순원황후가 선량한 인물인지, 그리고 자기를 죽인게 누구인지 알았는가에 대한 질문 중 후자에 대해서만 답해주었다. 덕분에 중국 현지에선 이 논란이 만년 떡밥이다. 후궁이 유산한 일로 그리 자책했으면서 정작 뭔가를 베풀어 준 것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순원이 괴로워한 이유는 '자기때문에' 유산한 것이지 유산한 그 자체에 대해서는 미안함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마치 견환이 유산했을 때의 화비처럼 말이다.

그녀의 본성이 정말로 착하든 아니면 나쁘든지간에 자신이 동생 자리를 빼앗았으면서 그 동생한테 자기 음식 관리를 맡기거나 동생의 계략으로 몸이 나빠졌음에도 눈치를 못채고 있다가 결국 아이까지 잃고서 그 사실을 죽기 직전에야 깨달은 걸 보면 동생인 의수의 말처럼 맹하고 지략이 딸린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자아도취라고 볼 수도 있다. '세상에 날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라는 사고방식에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자신을 해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그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의수를 잘 돌봐주라는 유언을 남긴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의 영부인이 알고보니 이혼녀라는 사실만큼 결혼 당시나 그 후로도 두고두고 사회적 파장이 큰 일인데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었고 파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언플에 매우 능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3 원작에서

  • 번외편에서 의수가 언니는 가는 곳마다 주목을 끌고 찬양을 받고, 근석은 모습이 수선화 내지는 순결한 백합 같다고 묘사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천선(天仙)같은 용모의 절세미인이라고 말한다. 황후가 되기 전에도 재녀로 유명했다. 현청과 함께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든가 신선 같다든가 하는 묘사가 주구장창 나온다.
  • 태후가 순원은 너무 순한데다 예뻐서 현릉이 그녀에게 반해 서귀비에게 빠진 선제처럼 스스로를 망치게 될까봐 현릉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의수를 선택한다. 또한 순원황후는 무원장군의 막내아들과 약혼을 했기 때문에 늘 집안에 있었고 현릉과 친척이면서도 만나지 못했다. 이후 의수가 회임하자 순원의 생모가 일부러 순원이 황제의 눈길을 끌도록 단장시켜 궁으로 보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단장했다고. 태액지에서 현릉과 우연히 만나 현릉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고 순원의 약혼을 태후와 현릉이 파혼시키고 황후가 되었다.
  • 후궁 감씨와 묘씨가 순원황후에게 불손하게 대하고 도발했으며 순원황후는 순한 성격 때문에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의수는 두 후궁을 부추겼다. 의수에겐 별 말 없었던 거 보면 순원을 만만하게 본 듯하다.
  • 의수는 아들이 죽은 후 순원황후가 좋아하는 행인차를 올렸는데 복숭아씨를 섞었고 순원황후는 점점 쇠약해진다. 마지막엔 복숭아씨와 파초를 이용해 죽인다.
  • 견환의 어머니도 순원을 닮아 황제가 그녀를 보고 순원이 늙었으면 저렇게 됐겠구나 했다고 하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견환이 마격 칸의 왕비로 보내졌다가 견환의 여동생 옥요가 대신 왕비가 되어 견환이 다시 돌아왔을 때 황제가 과군왕이 견환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 것을 추궁하자 견환과 견환의 어머니, 옥요, 롱월 공주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데 순원과 닮은 여자들이 떼로 이러자 마음을 돌리는 일도 있었다.
  • 원작에선 비파 연주도 잘했다. 현릉의 말에 따르면 단비가 궁중에서 비파 연주가 제일인데, 사실 순원이 단비보다도 훨씬 잘했고 단비는 순원에게서 비파를 전수받았다.
  • 태후는 제희로 태어났다면 더 나았을 인생이라고 평했다.

4 기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도 죄다 최고급품들이었다고 한다. 황제가 인증한 사실로, 황후가 순원이 물려준 옥으로 홍염과 영서를 위해 옥패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자, "순원의 물건들은 다 최고급이니까ㅋ 아쉽지는 않음?"이라고 말했다. 왕부에 처음 입고 왔던 예복만 하더라도,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약간 낡아서 그렇지 예쁘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이를 보면 그다지 검소한 성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옥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 같다. 장신구들 중에서도 옹정제가 선물한 양지옥으로 만든 정교한 부용 목걸이[4]와 원앙 옥패[5]를 가장 아꼈다고. 동생 의수에게도 최고급 양지옥을 물려주었고 이는 나중에 홍염과 영서의 옥패를 만드는 데 쓰인다.

작가가 말하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호접몽(레베카의 중국 개봉명)의 레베카가 모티브라고 한다. 레베카는 주인공 남편의 전처로 이미 죽어 등장은 없으면서 극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다. 팬들사이에선 비슷한 인물로 동악비효현순황후, 민혜공화원비, 남당의 황제 이욱의 첫 황후인 주아황이 언급되기도 한다.

작가와의 대담에서 질문자가 "순원황후는 못하는 게 없는데 역사상 그런 여자가 있었나요?"라고 질문하자 작가는 "없다"고 대답했고, 뒤이어 "그래서 그녀를 이상화시킨 것인지?"라는 질문에는 "그렇기에 그녀를 죽은 채로 배치했다"고 답했다.

순원황후의 성이 오라나랍씨이고 왕부시절 적복진이였다는 정보를 보자면 실제 역사의 옹정제 왕부시절 적복진이자 옹정제가 황제가 되면서 황후가 되었고 1731년에 붕어한 효경헌황후 오라나랍(孝敬憲皇后 烏喇那拉氏)씨를 모태로 한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 황후였고 옹정제보다 일찍 죽었다는(1731년) 점에서 말이다. 옹정제는 1735년에 천거하였다. 차이라면 효경헌황후는 옹정제 즉위시 황후로 오래 살았고 4년 일찍 죽었지만 순원황후는 황후에도 오르지못하고 죽었으며 이미 작중 고인이다. 받은 봉호도 사후 추존된 것이다.[6] 어떻게 보면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에 대한 사실 중, 옹정제의 왕부시절 적복진이자 옹정제보다 먼저 죽었다는 점과 기록에 남은 황후라는 점은 순원황후에게 계승되었고, 옹정제의 생전 곁에 있었던 오라나랍씨 황후라는 점은 동생인 오라나랍 의수가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말 및 상상으로는 오라나랍 유칙과 오라나랍 의수가 하나가 되어서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로 다시 만들어졌고 의수의 공도 순원황후에게 빼앗기면서 아예 역사의 찌꺼기처럼 된 형식이라고 언급하였다.[7]

후궁견환전과 보보경심을 둘다 본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마이태 약희를 대입해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순원이 극중 단 한 번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보니, 그녀가 약희였다고 생각하고 보면 후궁견환전의 옹정제가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 더 쉽게 납득이 되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은근히 공통점도 많다. 둘 다 옹정제가 애틋하게 사랑한 여인이었으나 아이를 잃었고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 학식이 높고 옹정제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인이었다는 점, 아름다운 춤으로 옹정제의 기억 속에 남았다는 점, 옹정제로부터 양지옥 목걸이를 선물받았다는 점, 홍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 등.
  1. 아명은 아니고 현릉이 붙여주었다
  2. 원작 소설의 외전에서 의수가 한 말에 의하면 황제가 총애한 모든 후궁들 중 순원황후를 닮은 점이 전혀 없는 후궁은 화비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3. 다만 이는 작가의 말일 뿐, 실제 중국 현지에서 원작의 안티수는 견환>현릉>순원황후>=현청>완벽>안릉용>그 외 순이다. 원작에서 견환이 어째서 안티가 이리 많은 지를 잘 모르겠는 드라마만 본 시청자들은 견환 항목 참조.
  4. 이 목걸이는 롱월공주가 귀여움을 받게 해주려는 견환의 계략(?)에 의해 롱월공주 돌잔치 때 롱월공주의 것이 된다.
  5. 이 옥패는 황제가 늘 지니고 다니나 이후 옥요에게 작업을 걸려고 주는데 차여서 다시 돌려받았다.
  6. 후궁견환전만의 역사왜곡중 하나인데 옹정제의 생모인 인수황태후(효공인황후)는 이미 옹정 1년에 천거하여 강희제와 합장이 되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멀쩡히 살아있다. 즉 순원황후도 역사대로라면 이미 살아있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7. 앞서 말했듯이 실제 효경헌황후는 옹정제보다 4년 먼저 죽었는데 드라마에서 의수가 유폐된 시기는 옹정제가 죽기 4년전이다. 마지막화에서 견환과 소윤자가 "오라나랍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4년전입니다"라고 대화를 하고, 그 직후에 경인궁에서 최후의 대면을 했다가 다음 날 의수는 자살했다. (적어도 드라마 세계관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의수가 유폐된 시기가 순원이 죽은 시점으로 기록되었다는 설정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