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제 청어

(훈제청어에서 넘어옴)
이 문서는 준보호 상태입니다.

이 문서는 잦은 문서 훼손 및 수정 전쟁으로 인해 자동 인증된 사용자만 수정하도록 제한되었습니다.

1 요리 훈제 청어

580px
영어로는 smoked herring, 또는 Kipper.

말 그대로 청어훈제한 것이다. 영국,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북유럽권에선 상당히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인데, 타국인이 먹으면 처음 몇 번은 별미로 먹을만하지만 이내 질리게 된다고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소 조잡한 음식.

주로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이 검소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 를 짓지 않으려면 산해진미 폭식을 금하고 훈제 청어를 먹으라고 민중들에게 강요하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세 가톨릭 교회는 종교적인 날에는 육식을 금했는데, 7세기에 이르자 육식을 금하는 날이 급격히 증가했다. 4세기에 시작된 사순절 단식과 금육이 이때쯤 연중 40일로 늘어났고, 그에 더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금요일이 포함되었다. 모두 합하면 한 해의 절반에 해당하는 날들이 금육일로 지정되었고, 이런 날에는 육식 금지가 엄격히 실시되었다. 잉글랜드 법으로 금요일에 육식을 할 경우 교수형에 처해졌을 정도로 이 금육은 철저히 지켜졌다.[1]

단식/금육일에는 성생활도 금지되었고 식사는 한 끼로 제한되었다. 육류는 '뜨거운' 것이어서 검열삭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금지되었다. 그러나 물에 사는 동물들(비버, 해달, 돌고래, 고래의 몸통에서 꼬리까지 포함)은 차가운 것으로 간주되어 종교적인 날에도 먹을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훈제 청어와 훈제 대구 등은 금식일에 고래고기나 돌고래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절대 다수 서민층의 주식이 되었다. 그렇게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나트륨단백질 공급원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청어는 대구 등과 함께 대서양에서 많이 잡혔으며 독일 한자동맹 어부 및 상인들, 네덜란드 어부와 상인들은 이 청어교역이 큰 수입원이었다.

한마디로 훈제 생선류는 당시로서는 검소질박한 서민 음식의 대명사였다.[2]

만드는 과정이 과메기와 비슷하며 을 꿰거나 해서 주르륵 걸어놓은 것도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훈제 과정의 유무 정도.

2 비유로서의 훈제 청어

  1. 이 법은 영국에서는 16세기 헨리 8세가 로마 교황청과 단교할 때까지 성문화되었다.
  2. 훈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문헌에도 청어를 값싸고 맛이 있어 가난한 선비들이 잘 사먹는 물고기라며 '비유어(肥儒魚, 유학자(선비)를 살찌우는 물고기)'로 기록한 것을 보면 사람사는 건 어디나 비슷비슷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