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 사건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이 대거 참패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중국 마적단과 합세하여 일본 관공서를 고의로 습격하고 이를 빌미로 만주에 살고있던 조선인들을 마구 학살한 사건이자 일제의 자작극으로 알려졌던 사건이기도 하다.

1 일제의 자작극 개괄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에게 불의의 참패를 당하게 된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과 앙심을 품으며 중국 마적단 패거리 두목 장강호(長江好)에게 훈춘을 공격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

이에 마적단 두목 장강호가 동의함에 따라 동년 10월 마적단 패거리들이 훈춘성을 고의로 공격하여 약탈과 살육 등을 일삼아 중국만주인을 비롯해 조선인들을 살해하였고 훈춘에 있던 일본공사관을 습격하였는데 그 곳에 있던 일본인들은 이미 일제의 작전에 따라 미리 피신한 상태여서 일본인 여성 9명이 죽은 것을 빼고는,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1.1 일본군의 조선인 대거 학살

이 자작극을 꾸민 일제는 마침내 이를 구실삼아 함경북도 나남에 주둔한 일본군들을 만주로 출동시켜 만주에 살고있던 조선인 마을을 기습하여 조선인들을 마구 붙잡아 총살하거나 일본도로 학살하고 불태우는 광기를 저질렀다.

만주에 있던 조선인 인사들도 모조리 붙잡아 투옥시키기도 했으며 독립군이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추적과 색출도 강행했다.

메이지 천황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잔치를 연다는 명분하에 만주에 있던 조선인들을 대거 모아놓더니 결국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잔치에 오게 된 조선인들을 마구 잡아 사살하고 일부는 산 채로 땅에 묻는 만행을 저질렀다.

독립운동가인 김산은 자서전인 아리랑에서 자신을 아껴주던 목사와 그의 두 아들이 이 사건을 통해 몸뚱이가 토막나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한다. 또한 자신이 짝사랑하던 목사님의 딸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2 결과

일제의 이러한 자작극으로 인하여 만주에 살고있던 조선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3만명이 학살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불태워진 곳만 해도 엄청난 재산피해를 내는 등 수난을 당하였다. 이를 간도 참변, 혹은 경신년(1920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경신 참변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독립군과 독립운동가들은 항일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한 계기가 되기도 하여 곳곳에서 일제를 타도하려는 독립운동이 기세를 높여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결국 조선인 학살을 목적으로 한 일제의 자작극이었음이 드러났으며 이를 통해 일제의 자작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던 사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