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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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참담하였다. 이미 많은 스님들이 도착해 있었다. 옷을 늦게 갈아입는 스님에게 그들은 발길질과 쇠몽둥이질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퍽퍽 내려치는 소리와 고통의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떤 스님은 벌써 얼굴에 피멍이 들었고 어떤 스님은 고통스럽게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발길질과 쇠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내려치니 시멘트 바닥에 피와 울부짖음이 낭자했다. 그들은 나를 의자에 거꾸로 세워 콧구멍에 수건을 씌우고 고춧가루를 퍼 넣고 거기다 양동이의 물을 들어부었다. 이름 하여 고춧가루 물고문. 다짜고짜 고문을 강행하면서 나에게 몇 차례나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계속 잠을 재우지 않고 눈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고문을 가하면 정신이 몽롱해져 사뭇 헛소리를 했다. 혼몽 중에 나는 최면에 걸린 듯 까마득하게 잊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로 돌아가 있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생하게 앞에 다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절하여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버리면, 양동이 물을 냅다 끼얹는 바람에 정신이 들곤 했다. 정신이 드는가 싶으면 다시 일으켜 책상 앞에 앉히고 내게 볼펜과 메모지를 밀쳐놓으면서 다그쳤다.[#]

1980년 10월 27일에 벌어진 독재정권의 대규모 불교 탄압. 현대 한국 불교에 가해졌던 독재정권의 흑역사 중 하나이다.

1980년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신군부 세력은 사회 각계의 반대 세력을 탄압해서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는 신군부 세력에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신 체제 당시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체제에 저항한 것을 경험한 신군부에선 예방 차원에서 불교계 또한 '손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980년 10월 27일 새벽, 신군부가 조종하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산하 합동수사단의 주도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인 월주스님을 비롯한 관련 인사 153명을 강제 연행했다. 또한 전국 각지의 사찰 및 암자에 경찰 및 군부대를 동원해 수색에 나서서 승려 및 관련 인사 1776명을 추가로 연행했다. 당시 연행자들에게는 각종 폭행고문이 가해졌으며, 일부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했다. 고문과 고생의 후유증으로 몇몇 스님들은 풀려난 후 돌아가신 분들이 있었고 지금 생존해 계시는 스님들은 파킨스병과 후유증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사건 당시 계엄사령부는 “불교계가 사이비 승려와 폭력배들이 난동·발호하는 비리 지대로서 자력으로는 갱생의 힘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신군부의 강요로 조계종 측에서는 '정화중흥회의'를 열어서 13명의 승려의 도첩을 박탈하는 처분을 내렸다.

이후 재야 단체 및 불교계 인사를 중심으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해 오다가,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10.27 법난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여서 ‘국가권력 남용사건’으로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