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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하계아시안게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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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방콕 아시안 게임 | → |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 → |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 |
개최국가 : 태국
개최지역 : 방콕
개회식 : 1970년 12월 9일
폐회식 : 1970년 12월 20일
1 개요
1970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6회 하계 아시안 게임
2 유치과정
원래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가 유치 도시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북한의 군사 도발 위협 및 경제개발 우선의 이유로 재정상의 문제가 발생하여 유치권을 반납하였다. 사실 이때는 김현옥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때 고가도로 건설이나 시민아파트 건축, 세운상가 건설, 밤섬 폭파를 통한 여의도 확장, 한강 방조제 건설 등 각종 건설사업을 벌이는 통에 재정이 아슬아슬했고 지하철 건설하기에 삽을 뜨기 힘든터에 진짜로 아시안게임까지 유치했다가 서울시가 말 그대로 파산할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인천 아시안게임의 1970년 버전 거기에다가 김신조 사건까지 겹쳐버렸고 경호비용으로 상당한 돈을 써야되었기 때문에 진짜로 개최했다가 중앙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턱이었다. 그래서 유치를 포기해버렸고 따라서 이전 대회를 개최했던 태국 방콕이 억지로 떠안게 되었다. 원치도 않는데 한국의 유치권 반납으로 인해 억지로 한 도시가 아시안 게임을 두번 개최를 하게 된 특이한 케이스. 물론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10개국에서 개최비용을 보전해주기는 했지만 너무 모자라서 태국에서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짊어지게 되었다. 태국 지못미. 더 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이후에 방콕이 두번을 더 개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 대회의 유치 포기로 벌금 20만불을 지불하게 된다.[1]
대한민국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 가서야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된다. 이후로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등도 유치하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지만서도..
3 이모저모
-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걸고 삼민주의를 부를 수 있는 중화민국(화이트 차이나)이 마지막으로 참가한 아시안 게임이다. 이후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부터는 중국이 참가하게 되어 중화민국은 퇴출당한다. 지못미.
- 요트가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에 채택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18개, 은메달 13개, 동메달 23개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 이 대회로 인해 조오련이 수영 스타로 떠올랐다. 조오련은 수영 400미터 경기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뒤 남자 자유형 1500미터에서 17분 25초 7로 우승해 우리나라 최초의 수영 2관왕으로 올라섰다.
- 유치 과정의 문제때문에 태국에서는 대한민국 선수단이 들어올 때부터, 경기를 할 때마다 계속 야유를 해댔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야유 들어도 할 말 없지만 - 한국인들 특히 서울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원래 우리 땅에서 치뤘을 대회였는데라며 아쉬워하는 입장이 많았다.
그놈의 북한과 김일성때문에그러나 16년 후인 1986년에 가서야 이러한 아쉬움은 풀어졌다.
- ↑ 지금이야 별로 큰 금액이 아닌거처럼 보이지만 당대의 달러 가치와 소득수준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물론 개최비용에 비하면 쌌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