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문서 : 올림픽
역대 하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
20회 | → | 21회 | → | 22회 |
1972 뮌헨 올림픽 | →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 →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개최날짜 : 1976년 7월 17일 ~ 8월 1일
개최장소 : 캐나다 몬트리올[1]
1976년에 캐나다에서 열린 21회 하계올림픽. 모스크바를 제치고 캐나다에서 올림픽 개최권을 얻은 대회이다.
당시 CBC의 소개 영상
전 대회처럼 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많이 삐걱거린 대회이기도 하다.
1976년 하계올림픽 투표 결과 | |||
국가 | 도시 | 1차 | 2차 |
캐나다 | 몬트리올 | 25 | 41 |
소련 | 모스크바 | 28 | 28 |
미국 | 로스엔젤레스 | 17 | - |
기권 | - | 1 |
모스크바를 꺾고 개최권을 획득하였지만 이 뒤로도 그다지 순탄스럽지는 않았던 것이, 대회 경비조달 문제로 대회 개막일까지 주 경기장이 완공되지 못할 처지에 놓여졌었으며, 어찌저찌 조달해서 결국 건설은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전 대회인 1972 뮌헨 올림픽때 일어난 뮌헨 올림픽 참사 때문에 보안경비를 상당히 많이 투자하여[2] 사상 최대의 적자를 보았으며 이 후폭풍은 몬트리올시는 파산 직전까지 끌고 갔다.[3][4] 결국 캐나다는 특별세를 걷는 등의 조치를 통해 30년 후(2006년)에야 몬트리올 대회의 적자를 겨우 메울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2년 후 캘거리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 때 어쩌다 흑자를 봤던 적도 있었긴 하였으나....
...34년뒤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때도 10억달러의 부채가 있다고 하여[5] 캐나다 국민들은 그저 한숨만 쉬고있는 상황...
그래도 나라라도 많이 참가하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뉴질랜드가 인종차별정책으로 올림픽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친선럭비경기를 개최하였고, 그덕분에 다른 아프리카국가들은 뉴질랜드에 대한 제제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하였지만 IOC에서는 뉴질랜드의 참가를 허락하였다. 이덕분에 아프리카의 26개 국가에서 보이콧을 실시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대부분 참가하지 않은 희대의 막장 올림픽이 시작이 되었다. 그 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소련이 상대국가에서 열리는 대회를 보이콧하여 1988 서울 올림픽이 되어서야 대규모의 보이콧이 중단된다.[6]
게다가 이때까지도 중국과 대만의 국호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이미 중국의 중화인민공화국 사용을 승인한 캐나다는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참가하는것을 거부하였다. 물론 IOC의 제제가 있을것 같긴 하였지만 캐나다는 완강히 거부하였고 결국 대만은 이 대회 참가를 포기하게 된다. 3년 뒤의 결정사항을 보자면 캐나다의 이 정책은 나름대로 선견지명일지도.
이 대회부터 올림픽 성화가 아테네에서 개최지로 옮겨졌다. 하지만 처음한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 불이 꺼진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였다.[7]
대개 대통령이라든가 하는 개최국에서 가장 높으신분이 개회선서를 하는것이 관례이나 이 대회는 특이하게 외국인(?)인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개회선언을 한것으로도 유명한 대회이다. [8]
개막식 입장은 프랑스어 알파벳 순서[9]로 진행되었으며, 프랑스어로 'Corée'인 대한민국은 25번째로 입장했다.
본격적인 캐나다의 홈그라운드 악운이 슬슬 생겨난 대회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캐나다는 은메달 5개와 동메달 6개를 획득하였지만 금메달을 획득에는 실패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192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서 스위스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후로 최초로 개최국이 금메달을 따지 못한 사례가 되었다. 게다가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도 노골드를 따는 최대의 굴욕을 얻었다.[10]
농구와 핸드볼, 조정에서 여자부 경기가 추가되었다.
승마 종목에서 영국의 앤 공주가 참가하였다. 여자선수는 성별감정을 받은 뒤에 참가해야 되었지만 앤 공주는 특별히 그런 절차 없이 승마종목에 참가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서도...[11]
루마니아의 체조선수인 나디아 코마네치는 14살의 나이로 올림픽에 출전하여 10점 만점의 연기를 7개나 선보이며 대회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게 된다. 그리고 그전부터 강국이었던 소련도 한국계 체조선수인 넬리 킴이 3관왕을 하여 역시 나디아 코마네치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고..
남자 단거리육상에서는 카리브해의 선풍이 불었다.
인구가 2000만명도 안되는 작은 나라인 동독은 미국보다 더 많은 40개의 금메달을 쓸어가는 위엄을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총 메달수로는 미국보다 딸리긴 하였지만 우리나라식으로 따지면 소련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국가가_치팅.jpg
10000m종목에서 평균 25분의 기록이 나오는데 41분이라는 막장기록이 나온 대회이기도 하다. 아이티에서 "서류정리 잘했다고" 선수대신 공무원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마라톤에서 일본 선수가 54년이 걸린 기록이 있지만 그거야 탈진에, 손발이 안맞아서 생긴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하지만 이건 뭐... 이 선수가 들어올때 다른선수들은 이미 탈의까지 다 끝났었다고 한다.
중거리 육상은 전통적으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영어권 국가 선수들이 강세를 보여 왔지만 이 대회에서 쿠바의 알베르토 후안토레나가 남자 8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비영어권 국가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한국의 종합성적은 금 1개 은 1개 동 4개로 레슬링종목에 출전한 양정모는 이 대회에서 한국 스포츠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즉, 올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가 연주된 첫 대회라는 얘기. 또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동메달을 따내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이자 여자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냈다.[12]
- ↑ 몬트리올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종목이 개최되었는데 그 지역 중 하나가 수도 오타와. 그러니 수도에서 열린 대회는 아니지만 수도에도 올림픽 경기장은 있는....
- ↑ 예상 보안경비의 40배가 넘는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 ↑ 여기에는 캐나다의 고질적인 영어권-프랑스어권(퀘벡주) 대립의식이 한몫 했다. 원래 올림픽은 '국가'가 아닌 '도시'가 개최 주체여서 경기장건설 등의 예산지출을 해당 도시에서 해야 하나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지 않게 지원해준다. 그러나 퀘벡주 프랑스어 사용지역인 몬트리올에서 올림픽을 개최하자 퀘벡주를 제외한 중앙정부 및 타 주 정부가 완전히 쌩 깠다. 몬트리올시가 파산 직전까지 간 가장 큰 이유. 34년 후 브리티시콜럼비아주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때 똑 같이 복수했다. 참고로 퀘벡주는 지금도 심심하면 캐나다에서 분리독립하겠다고 주민투표 한다.
- ↑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의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에 홈구장인 스타드 올랭피크를 거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기장을 운영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건설된 경기장을 1년 내내 어떻게든 활용이라도 해야하는데 하필이면 프랑스어권 캐나다에서 인기없는 야구구단의 홈구장으로 활용됐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 ↑ 게다가 이 부채는 IOC같은 국제 연맹등에서 지원 받고도 모자른 금액들이라고 한다. 몬트리올 때도 빚 때문에 개최 반대가 상당히 심했는데...
- ↑ 물론 서울 올림픽에서도 북한을 비롯한 7개 국가들의 소규모 보이콧은 존재했다. 보이콧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 ↑ 물론 예비성화가 있어서 그것으로 복구했긴 하다.
- ↑ 명목상으로 보면 영국의 여왕이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사람이 맞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개회선서를 영국 여왕이 해준 적은 이때 단 한번뿐이다. 게다가 개회선언을 자신의 모어인 영어가 아닌 불어로 했다. 그 뒤에 동계올림픽만 개최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캐나다에서 열린 다른 올림픽는 총독이 와서 개회연설(88 캘거리 동계-장 소베, 2010 밴쿠버 동계-미카엘 장)을 했다. 하지만 어차피 그들도 여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니까.
- ↑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다. 원래 도시 이름도 '몽 레알'이다. Montreal에서 e 위에 액센트 기호가 있는 것에 주의. 몬트리올은 영어식 발음이다.
- ↑ 그러다가 12년이 지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야 한방에 보상받아 역대 최고 금메달 개수로 1위에 등극하게 된다.
- ↑ 사실 승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올림픽 종목에서 남녀가 대등하게 겨루는 유일한 종목이 승마이다(요트의 일부 세부 종목도 성 구분을 하지 않지만 모든 세부 종목을 성 구분 없이 하는 것은 승마뿐이다). 다른 종목은 여자버프로 인해 여자끼리만 경쟁해서 낮은 기록으로도 금메달을 딸 수 있지만 승마는 그런 거 없다. 성검사를 하는 주목적은 의학적 여자가 아닌 사람이 여자 종목에 참가하여 메달을 따는 걸 방지하는 것이니까.
- ↑ 여성 개인 종목의 최초의 메달은 1984 LA 올림픽에서 양궁 종목에서 나왔다. 금메달리스트 서향순과 동메달리스트 김진호가 그 주인공이다.
- ↑ '아미크'는 캐나다 동부 원주민 언어인 오지브웨(Ojibwe) 어로 '비버'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