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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하계올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
21회 | → | 22회 | → | 23회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 →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 | 1984 LA 올림픽 |
И́гры XXII Олимпиа́ды Games of the XXII Olympiad In Moscow | ||
대회기간 | 1980년 7월 19일 ~ 8월 3일 | |
개최국가/도시 | 소련/모스크바[1] | |
공식 주제가 | Стадион моей мечты (Stadium of my dreams ) | |
마스코트 | 미샤 | |
참가국 | 80개국 | |
참가선수 | 5,179명 (남자: 4,064명, 여자: 1,115명) | |
경기종목 | 21개 종목, 203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 |
선수 선서 |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 | |
심판 선서 | 알렉산드르 메드베트 | |
성화 점화 | 세르게이 벨로프 | |
주경기장 | 레닌 중앙 스타디움 (현 루즈니키 스타디움) |
올림픽 공식 주제가.
1 특징
반쪽 대회 시즌 1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개최지로 확정되어 공산국가 특유의 중앙집권 체제와 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풍토를 잘 반영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자 인권 외교를 표방하던 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동조해 많은 국가들, 특히 서방 세계라 불리는 국가들에서 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2] 그러나 그리스나 아이슬란드, 스웨덴처럼 보이콧하지 않고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서방 국가들도 있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미국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 싫고, 그렇다고 항의해야 할 것같은 나라들은 국기 대신 올림픽기 또는 자국 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입장하여 이 대회 참가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시해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대만 선수단이 강제로 당하는 그것을 자발적으로 했다 그 말이다. 덤으로 소련과 사이가 1960년대 이후 좋지 않았던 중국도 이 때 그냥 불참해 버렸다. 원래 이 대회를 통해 하계 올림픽 무대에 처음 데뷔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4년 뒤인 1984 LA 올림픽으로 연기됐다. 이외에 일본과 대만 등도 불참했다.
대한민국도 보이콧했다. 미국의 보이콧 선언에 서방국가들이 동조하는 분위기인지라 그 영향이 당연히 한국에도 미쳤는데 '보이콧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일각에서는 '그러면 참가를 원하는 선수에 한해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 쥐어주고 개인 자격으로라도 참가시키자'는 절충안도 나왔는데, 정서적으로는 북한의 우방국 이미지인 공산국가 소련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반감도 있고,[3]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최종 엔트리 마감 1주일 전인 1980년 5월 17일이 되어서야 KOC 긴급총회를 통해 결국 불참하기로 확정했다.
이 때문에 불운을 맛본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가 당시 여자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였던 김진호. 그녀는 최전성기에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의 영광과는 아쉽게 멀어졌고, 4년 후 1984 LA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하필이면 갑툭튀한 서향순이 금메달을 가져갔다. 그래도 항상 여자 양궁 신궁 계보에 반드시 김진호의 이름부터 출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1970년대 초반 펩시가 소련에 진출하여 짭짤하게 수익을 내자, 이에 맞서 코카콜라도 소련에 진출하려 했다. 소련 당국에 지속적인 로비를 한 결과 올림픽 때 코카콜라를 팔 수 있게 허가권까지 받아 냈고, 이를 계기로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그놈의 아프간 침공이 터지면서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1987년이 되어서야 코카콜라는 본격적으로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미국 패스트푸드점들이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개방을 주장한 고르비 정권이 되어서야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역사상 다섯 번 일어난 집단 보이콧의 하나이며, 그 규모가 그 다음 대회인 LA 올림픽과 함께 가장 커서, 파행으로 치러진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언급된다. 한 마디로 반쪽 대회. 올림픽 주 경기장인 루즈니키 스타디움(당시는 레닌 스타디움)은 보수를 거쳐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홈 구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신축한 다른 경기장으로 홈을 이전했다.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곳이자, 러시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릴 경기장이기도 하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없던 자리는 소련(금메달 80, 메달 195개)을 위시로 동독(금메달 47, 메달 126개), 불가리아(금메달 8, 메달 41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공산권 국가들이 순위를 차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전체 메달의 약 40%를 소련과 동독 두 나라가 차지했으며, 금메달만 따진다면 60% 정도다. 이탈리아가 5위, 헝가리, 루마니아에 이어 프랑스와 영국이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 북한은 26위였다. 역대 최고 성적[4] 메달수로 따지면 순위는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폴란드, 루마니아, 영국, 쿠바 순서가 된다고.
공교롭게도 차기 개최국이 바로 미국이었는데[5]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게 됨에 따라 결국 차기 개최국가의 국기 게양식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대신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기(市旗)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 대신 로스앤젤레스의 시가(市歌)가 연주되어 올림픽 사상 최초로 특정 국가의 도시 시기와 시가가 연주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사상 최초이자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꺼같다[6]
이 때의 보복을 잊지 않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칼을 갈면서, 4년 후 반쪽 대회 시즌 2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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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마스코트인 미샤(Миша/Misha). 불곰국이라는 별칭인 러시아답게 곰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푸근하고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1위로 꼽히고 있다.
34년 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렸으며, 이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 출범 이후로는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이다.
2 기타
만화 근육맨에서 초인올림픽이라는 전개가 나온 것도 이 때였다고 한다.
- ↑ 모스크바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종목이 개최되었다. 물론 개최 당시는 소련 한 나라에서 열린 거지만 소련이 깨진 지금 국가 기준으로 한다면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공동개최다.
- ↑ 그러나 같은 나라면서 선수단을 따로 보내는 푸에르토리코는 참가했다.
적은 내부에결국 미국 시민인 선수들은 한 번도 안 빠지고 올림픽에 모습을 보인 게 맞다. - ↑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1973 모스크바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민스크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 ↑ 은메달 3에 동메달 2개. 금메달이 없어서 순위는 더 낮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금메달 4개, 동메달 5개(금, 은, 동 순 16위)가 최고 성적이고, 이건 3번째로 높은 성적이다.(2012 런던 올림픽 20위) 다만 메달 개수로 따지면 의외로 1992년이 21위, 2012년이 순위권 밖이고 이게 18위라...
- ↑ 같은 해 열렸던 동계 올림픽 개최지도 미국 뉴욕 주 레이크플레시드. 주로 동계올림픽이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1992년까지) 동계 대회가 먼저 열리게 된다. 그 대회 당시 서방 국가들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이 예측되었지만, 이 때는 동구권 선수들이 그냥 참가하고 다음 하계 올림픽 때 보복했다. 중국도 참가했다.
- ↑ 미국 측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거부했다. 미국은 선수는 참가시키지 않았지만, 일부 임원과 심판은 파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