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지원

청와대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 내용과 문서, 자료 등을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처리하면서, 업무과정과 추진실적을 표준화된 일지 형식으로 기록하고 통합 관리하게 하는 시스템. 정책입안자, 제시의견, 협의사항, 의사결정과정이 전부 관리되는 만큼 정책실명제의 기틀이 될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03년 3월 게시판 위주로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그룹웨어(CUG) 도입을 시작으로, 11월 업무일지 기록 방식 중심의 e지원 시스템을 오픈했다. 이후 문서관리시스템, 과제관리시스템 등을 차례로 구축했다. 외부 인터넷과 분리된 일종의 인트라넷으로 볼 수있다.

이름은 청와대 정원 '녹지원'에서 따왔다. 청와대의 디지털 정원이라는 뜻. 2006년 2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개발팀 5명이 국유특허를 취득했다.

2007년 4월 제정한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과 이 시스템 덕분에, 노무현 정부는 전 정권 기록 전부를 합한 것보다 25배 많은 기록을 저장했다. 사실 이렇게 많은 게 정상이고, 이전 대통령들은 여러한 이유등을 문제로 자료의 많은 부분을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공정성과 투명성에 문제가 있고, 네트워크 시스템 기반 조차 구성되지 않았기에 기록이 남지 않았다. 물론 90년대 이후에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량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실제로 은닉된 자료가 있다는 것이 위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자료 : 국가기록원 역대 대통령 기록물 건수
 * 이승만 - 7400여건
 * 박정희 - 3만 6천여건
 * 전두환 - 4만 2500여건 :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 관련자료 없음
 * 노태우 - 2만 1200여건
 * 김영삼 - 1만 7000여건 : IMF 관련자료 없음
 * 김대중 - 20만 8000여건 : 김대중 도서관에 보관중.
 * 노무현 - 825만여건

한 때, e지원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이주하면서 e지원의 내용을 별도의 하드디스크를 이용하여 유출해 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와대로서는 반환을 요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요구하며 한때 반환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e지원에 있는 내용들 중 상당수의 숫자는 국가 안위와 관련된 중요 기록물들이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사설 서버를 통한 접속은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기에 불가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거세게 저항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막판에는 이를 받아들여, 결국 사설서버는 철폐되었다. 대신 청와대를 방문해서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은 확실하게 보장받았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e지원의 이름을 명칭 개편을 통해 위민이라는 이름으로 통일 하였다. 위민으로 통일한 이유는 공식적으로 청와대의 새로운 이미지 개편 작업을 위해 단행되었다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위민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민의 문서관리 방식도 e지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