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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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1대2대3대4대5대6대7대8대9대
이승만윤보선박정희
10대11대12대13대14대15대16대17대18대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 대법원의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박탈된 인물
* 헌법재판소의 2016헌나1 판결로 탄핵된 인물
역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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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고건32대 이명박33~34대 오세훈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초대 고건2대 이명박3대 김진선
대통령 기록관 존영 [1]
이름이명박(李明博)
출생지일본제국 오사카 부 (현 일본 오사카 부)
본관경주 이씨[2]
학력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출신정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종교개신교(장로회)
부모아버지 이충우, 어머니 채태원
형제자매3남 2녀 중 3남
자녀슬하 1남 3녀
영부인김윤옥
출생1941년 12월 19일 만 74세
재임기간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이니셜MB
서명


1 개요

대한민국의 제 17대 대통령.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윗바닥까지 신화를 쓴 인물.

대한민국정치인, 기업인이다. 샐러리맨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래 30세에 대기업 이사, 37세에 대기업 사장, 48세에 대기업 회장까지 승진하였고, 이후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까지 한 인물이다. 호는 청계.[3] 이름 영문자 이니셜을 딴 약칭인 'MB'로도 불리기도 한다.[4] 별칭으로 어맹뿌로 불리기도 한다.


2 생애

2.1 유년시절

이명박의 부모가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하던 중, 오사카의 조선인 마을에서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이때 지어진 일본식 이름이 '츠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라고 전해진다. 이때 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자수성가로 조선에 있던 친척도 불러오는등 나름 괜찮게 생활했던 걸로 보인다.

해방 후 이명박의 집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정원을 넘어선 귀국선이 좌초해서 모든 재산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한다. 아버지가 일가친척의 목장일을 봐주게 되어 경상북도 영일군의 흥해에서 잠시 살다가[5], 포항시내로 이사했다. 집안이 상당히 가난했다고 하는데, 온식구가 좁은 단칸방에 모여 살아야 했으며,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6]로 때워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초등학생이었던 시기에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 전쟁에서 누나와 남동생을 잃었다. 전쟁 때문에 생활고는 더 심해졌고,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집안장사를 도왔다. 집안이 가난하여 길거리 행상을 할 일이 많았다고 한다.[7]

야간 상고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의 입시준비 끝에[8][9]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지금은 경영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당초 대학교 중퇴 학벌을 만들기 위해 등록만 해놓고 자퇴할 생각이었으나, 1학기 이상 다녀야 된다는 사실에 의도치 않게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10]

고려대 상과대학 학생회장 시절에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당해 투옥된 경력이 있다. 이 때 함께 운동했던 인맥들은 6.3 동지회를 결성해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며 그의 가장 큰 원군세력 중 하나가 된다. 그 중 한 명이 당시 중앙대 학생이었던 이재오 정치인.

6.3 항쟁으로 체포되어 판결을 기다리는 이명박(중앙)


2.2 현대건설

현대건설 신입사원 시절 증명사진

1965년, 현대건설의 재정/경리과에 입사하였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운동 전력으로 취업길이 막막해지자 청와대에 직접 탄원서를 넣자 그 패기를 높게 산 박정희 대통령이 비서진을 보내 현대건설 합격을 통보했다고 한다고 하는데, 후에 공개된 위키리크스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오히려 정주영 회장에게 '이명박을 조심하라' 라고 경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을 오해(잘 봐줘라)하고, 전격 지원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일 가능성이 높다.

면접에서는 건설이 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창조입니다." 라고 답했다고. 입사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30세에 이사, 37세에 사장, 48세에 회장까지 올랐다. 이전부터 범상치않은(?) 시각도 있었지만, 회장직에 오른데는 여러모로 복잡한 외부사정이 크게 작용했다. 이전 사장이던 조성근의 아내가 유명 트로트 가수와 염문을 가진 것이 사실로 들통나자, 이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조성근이 물러났고, 당시 부사장이었던 이명박이 어부지리로 공석을 채우게 되었다. 조성근 개인으로서는 부인에게 배신당하고 그 충격으로 딸까지 자살하는 등 개인으로서는 엄청난 비극이었겠지만 제 3자인 이명박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었던 셈.

임기 내 이라크 건설 수주에 주력하였다. 당시 현대건설은 중동에서 터졌던 연이은 전쟁으로 막대한 공사 미수금이 쌓였고 대금회수에 차질을 빚던 상황이었다. 이명박은 공적 자금을 투여받은 후 각종 국내외 공사를 무난히 진척시키며 위기를 극복했으나, 이라크 정부로부터 공사미수금 2억달러를 회수하는데는 실패[11], 몇 년 후인 현대건설 부도의 책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1990년에 배우 유인촌[12]이 열연한 야망의 세월, 2004년에 배우 유동근이 열연한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로 다뤄지기도 했다. 한편 1992년 퇴임 후 정계에 진출했는데, 그가 입당한 당은 당시 정주영이 창당했던 통일국민당이 아닌 민주자유당이였으며, 이 때문에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한다. 정주영 창업주가 사석에서 '(이명박은) 노비로도 못 쓸 사람' 이라는 말을 했다는 풍문이 있지만, 달변이기도 한 정주영 창업주가 그 정도 수위로 악담을 했다는 얘기는 확증이 있지 않은 이상 쉽게 믿기는 힘든 부분이다. 현재까지 정 명예회장이 직접 밝힌 이 전 대통령의 정치입문 관련 이야기는 "대선출마 대신 우리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의원 수를 늘리자."고 주장했다는 것과, 드라마(야망의 세월)로 창작된 [13]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일에 대한 아쉬움[14] , 이 사장이 민자당 입당 후 정 회장의 반값 아파트 공약을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는 소문 및 이에 대한 정주영 본인의 소감이 완곡하게 묘사된 정도이다.


2.3 정계 입문

1992년 대선에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지만, 이명박은 경제 관련 인사로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의원에 출마함으로써, 정주영 일가와 관계가 틀어진다. 이명박은 여기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1995년 국회의원 임기가 1년 남았지만 처음으로 실시된 서울특별시장 선거후보 경선에 출마하였다. 최종경선까지 갔지만, 결국 정원식에게 패배한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종로에서 11~14대 종로구 국회의원 이종찬, 그리고 노무현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이 그가 선거비용을 거짓 신고했다고 언론에 폭로하고, 이명박의 측근들은 그를 외국으로 도피시켰던 사실까지 밝혀지자, 이명박은 추세를 보다가 형이 내려지기 직전 자진 사퇴한다. 이렇게 생긴 공석에는 노무현 후보가 종로 보궐 선거에 다시 도전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3월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그는 2년 6개월을 구형받았으며 서울고등법원에서 40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4월 대법원은 이명박의 범인 도피 혐의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로써 이명박은 그 당시 해 3년 전에 국회의원 선거권이 박탈당했지만 1년 후 광복절 특사사면복권되었다.


2.4 32대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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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선거권이 회복된 것은 계기로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울특별시장으로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는 당시 떠오르던 정치인 김민석[15]이었는데,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로 상당히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김민석으로부터 과거의 여러 의혹을 제기받아 이때부터 과거 비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중교통 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내걸어 일찌감치 분위기를 잡았고, 후보토론에서도 판정승을 거둔데다[16] 유례없는 낮은 투표율 등[17] 온갖 유리한 조건을 받으며 52%의 득표율로 당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을 계기로 생겨난 별명은 불도저 시장. 특유의 추진력으로 토목건축적인 정책을 밀고나가 서울 외관을 바꿔 생겨난 별명이다.

취임하자마자 공약대로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행하여 우여곡절의 과정 끝에 공사는 마무리를 짓는 데 성공하였다. 이명박의 서울시장 대표적인 커리어이자 그를 대통령으로 진화시킨 최대의 교두보로 화자되지만, 임기 내에 끝내려는 무리한 시도 때문에 이런저런 탈도 많은 공사였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서울특별시 대중교통 체계 개편 역시 주요 커리어로서 교통카드 티머니도 이때 도입되었고 버스의 번호는 지역에 따라, 색은 종류에 따라 체계적으로 재정비하였으며 이용요금은 환승횟수가 아닌 이동거리 비례로 바꿔 당시 어려웠던 버스회사의 재정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또한 중앙버스차로제를 도입하여 대중교통의 질을 높이기도 했다. 2007년 타임지에서는 위 두가지 정책을 높이 사 '환경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인정하는 성공적인 정책이지만, 어떤 정책이든 한계는 있는 법. 지랄염병 버스(...) 참고.

이 외에도 뉴타운 사업 및 서울숲 조성, 숭례문 개방 등을 통해 대선을 향한 고지를 밟아간다.


2.5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 살림을 사는 당대표를 뽑는 게 아닙니다. 나라를 살릴 대통령을 뽑는 선거입니다, 여러분! 저 이명박은 여러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ㅡ 한나라당 내부 경선 연설 中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ㅡ 한나라당 내부 경선 연설 中

성공적인 시장경력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상황은 노무현 정권 5년의 민생,경제파탄과 실정을 심판 해야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매우 우세 했고, 정권의 임기 막판의 지지율 저하와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 및 당시 분열과 막장을 보여주던 여당 대통합민주신당의 바닥을 찌르는 지지율로 인해 한나라당소속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기정 사실화될 정도였다. 이 때문인지 대선 본선보다도 한나라당의 경선이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 발생했는데,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박근혜 후보와의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는 경쟁이 발생했다. 이명박은 여론 지지도, 박근혜는 당내 지지도가 우세했는데, 경선 룰에 따라서 승부가 뒤집어질 수 있는 그야말로 초접전이었다.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로 인해 둘의 과거 비리는 이때 대부분 드러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며, 여담으로 유명한 발언인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와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그러다 북핵 실험 등 박근혜에게 불리한 사건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고, 혈투 끝에 우세했던 여론 지지율을 앞세워 경선에서 승리하여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본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과 매치를 벌이게 되었는데, 말이 좋아 매치였지 지지율이 2배 이상 차이나는 거의 이명박의 독주체제였다. 선술했듯 여당의 너무나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예정된 시나리오기도 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변수가 생겼으니, 이회창의 한나라당 탈당 및 후보 독자출마였다. 같은 보수성향에다 당의 후광이 없어도 네임밸류가 컸던 정치인이기에 표가 분산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돌풍은 오래가지 못하고 지지율은 정동영은 이명박의 절반, 이회창은 정동영의 절반의 양상이 고정되었다.[18] 정동영은 BBK의혹을 내세우며 이명박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이명박은 747 공약대운하 공사를 내세워 마이페이스를 걸어갔고 결국 지지율은 득표율로 그대로 연결되어 여유롭게 당선되었다. 표차가 가장 큰 선거가 되었지만, 정동영과 이회창 외에도 권영길, 문국현 등의 유력후보가 난립한 선거였기에, 과반 득표율은 달성하지 못했다.


2.6 이명박 정부

재임 당시 자세한 여러 내용들은 이명박 정부 항목을 참고할 것.


2.6.1 대통령 재임 주요 사건 일람

퇴임연설하는 이명박.[19]


2.7 퇴임 후

임기 막판의 급작스러운 독도 방문이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론 지지율을 올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후 대선 과정에서 존재감이 희석되었고,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자당 후보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지지율 퇴임에 성공했다.[23]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한 이후 중앙정계나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중이다. 지방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기자들을 목격하고 자리를 피하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다.

현재는 사무소를 차려[24] 재단활동을 벌이는 등 개인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페이스북으로 간간이 근황을 올리는 중이다. 해외순방을 자주 다니며 여러가지 대외적인 행사에 참여하곤 하며 캄보디아 총리의 경제고문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25] 운동하거나 자전거를 자주 타는 모습을 보여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을 보이는 중. 4대강 비리, 자원외교 비리, 방위산업 비리 등 본인 임기 중의 사건과 검찰수사 여부가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자서전으로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을 출판하였다.

2015년 10월 베트남벤처기업 세일즈 명목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조의를 오며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26]

2016년 7월 한 새누리당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나도 국정운영을 못했지만 박근혜는 더 못한 것 같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애초에 발언 취지는 대우조선해양롯데그룹 관련 검찰의 정권 표적 수사 의혹과 관련해 말한 듯. 이외에도 영남권 신공항김해국제공항 확장으로 내린 결론에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고. 이명박 측근들은 해당 보도에 즉각 반발하며 설마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나섰으나, 실제 발언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드립을 친 전례도 있는지라...[[[http://news.jtbc.joins.com/html/068/NB11270068.html #] 그 동안 발언을 삼가던 태도와는 상반되어 눈에 띈다.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사건이 터지면서 재평가되었다.

[2016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차기 정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라고 최근들어 누누히 강조해 왔다고 한다.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잡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완전히 등을 대고 갈라선 반박 세력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 중 단 한번도 '역할'을 맡기지 않은 데 따른 섭섭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측근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로는 반기문 UN 사무총장, 김무성새누리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라고 한다. 특히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직접 저울질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인물로 드러났다. 나머지 두 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최근 들어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에는 측근들과 같은 여러 인물들이 방문하면서 활기를 띄고 있다고 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또한 최근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 또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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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일 청계천에서 열린 청계천시민걷기대회에 참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

[2016년 10월]에는 문재인을 비난하면서, 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비공식 인터뷰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3 평가

이명박/평가로 분리하였다.


4 여담

  •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외국(오사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 최초의 기업 CEO 출신 대통령이다.[27]
  • 현대건설 사장 재직 시절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 넷상에서 이명박이 학생운동 시절 도피 차원에서 여장하는 사진(...)이 돌아다닌적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사진 속 배경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의 신반포4차아파트 상가인데[28] 이 곳의 입주 시기는 1979년이기 때문. 또한 지나가던 한성운수 29번 버스를 보면 1980년대에 한창 다니던 차종이다.
  • 서울특별시 시장 재직 시절 스타크래프트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9]
  • 카우치 사건[30]으로 인디 밴드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자,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은 홍대 퇴폐공연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으름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 밴드의 반발로 무산되고 오! 부라더스 공연을 관람하여 인디 밴드와는 화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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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 후 첫 철도 착공식인 원주강릉선 착공식에 병풍으로 KTX-산천 열차를 사용하였는데, 하필 착공식이 강릉역에서 열린 나머지 KTX가 영동선 스위치백을 넘는 장면이 목격되었으며, 400억짜리 병풍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철덕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 이명박은 의외로 닮은 사람이 많다. 코미디언 서승만, 배우 유동근[31]도 이명박을 조금씩은 닮았고 특히 마릴린 맨슨베어너클 시리즈의 악역 졸개인 가르시아,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존조 셸비도 이명박과 닮았다. 인피니트김성규는 방송에서도 언급되었을 정도로 닮았다. 양궁선수 기보배도 닮았다. 폴아웃: 뉴 베가스의 그렉과도 닮았다. [[1]] [[2]]
  •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2016년 현재 76세이며 임기중에도 70세 전후의 할아버지였다. 당장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나이차도 10살 이상이고 이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도 나이가 많다. 운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걸 보면 자기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듯 하다.
  • 유행어로는 '나도 해봐서 아는데~'가 있다. 사용예로는 '나도 호떡 장사 해봐서 아는데~'.'내가 건물 만들어봐서 아는데~내가 배도 만들어 봐서 아는데~' 식의 발언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할 수 있다. 농담식으로 넘기면 될 듯. 그리고 여러가지 장사를 해본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여고 앞에서 한 뻥튀기장사...[가난했던 유년시절]
  • 배우 유인촌야망의 세월에서 주연을 연기한 덕에 이명박과 연줄이 닿았는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 도중 내뱉은 욕설때문에(유인촌 문서 참조) 논란으로 이명박까지 구설수에 오른적이 있었고 디시인사이드 2008년 올해의 유행어에 순위권에 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북한에서는 이명박을 쥐명박, 쥐새끼로 욕하기도 하였다.[32][33][34]
  •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임기 종료시까지 소속된 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쫓겨나지 않은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소속된 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당했는데 처음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지킨 채 임기를 마무리한 것. 현재도 새누리당 평당원으로 지내는 중.[35][36]
  • 논필가 지만원에게 [뒷조사를 당했다.] 의외로 사이가 안 좋은듯.[37]
  • 조지 워커 부시 前 미국 대통령과 좋은 관계였던 듯. 퇴임 후에도 사적으로 만난적도 있었고 그의 그림 중에 이명박 초상화도 있었다.[38]
  • 청담동 가로수길 꼬르소 꼬모에서 김윤옥 여사와 브런치를 즐긴다든지 원래 취미였던 테니스장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목격되는 등. 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듯.
  •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순국한 군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남아있는지 매해마다 빠짐없이 묘역을 참배하는 중이라고 전해진다.
  • 패드립도 잘 친다 카더라(...)
  • 대선 후보 당시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원더걸스를 꼽았다.
  • 노홍철이 아는 형님 중 가장 높은사람이다. 무한도전에서 게스트로 초청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멤버들의 만류로 무산되었고 노홍철 본인에 의하면 정치적 목적은 없고 실제로 친분이 있다 카더라.


4.1 먹방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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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을 통틀어 가장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정치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박원순 시장, 문재인 의원, 김무성 의원, 안철수 의원 등과 비교해 보아도 압도적일 정도로 탐스럽게 먹는다.[39] [비교해보자.]

특히 국밥 먹방은 보는 사람마저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이고, 어묵 먹는 사진이나 가래떡 먹는 사진 역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군대 짬밥까지 맛있게 먹는 모습은 압권. 아무리 정치인은 원래 서민 코스프레 쇼를 잘 하게 마련이라 하더라도 짬밥까지 저렇게 맛있게, 복스럽게 먹을 수 있는 정치인은 아마 이명박이 유일할 것이다.

이명박을 증오하는 진보진영 사람들도 그의 이러한 먹방능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좀전에 밥을 먹은 사람도 이명박의 먹방만 보면 금방 또 밥을 먹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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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도 후쿠시마 오이 먹방만은 실패. 어째 셋 다 찝찝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다(...) 그래도 한입 베어물고 만 중국 원자바오 총리와는 달리 이명박은 우적우적 전부 씹어먹었다고 한다(!)[40]

4.2 수트빨의 대가

과거 대기업에서 고위직을 오래 지낸 경험 덕분인지 양복 고르는 안목도 제법 있는 데다가 대통령 중 비교적 큰 키에(173cm) 슬림한 몸매 덕분인지 슈트빨을 잘 받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연관 검색어에도 수트핏, 수트간지 등이 있을 정도. 다른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봐도 신체비율도 일품. 때문에 얼굴만 가린 채로 낚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

그리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서 샤넬 메이크업 베이스, 유리아주 립밤, 디올 립글로우, 아벤느 미스트, 설화수 기초 등을 사용한다고(...). 인터넷에서는 맹뿌템, 명박템으로 불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가 지나가면 짙은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5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25번)민주자유당7,923,718 (38.5%)당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신한국당40,230 (40.5%)당선 (1위)1998년 3월 의원직 [사퇴]
([불법선거운동])[41]
2002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한나라당1,819,057 (51.8%)당선 (1위)
2007제17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11,492,389 (48.7%)당선 (1위)


6 저서

7 관련 문서

  1. 공식초상화 24671.JPG
  2. 경주 이씨 39세손 '相'자 항렬이다. 개명 전 이름은 이상정(李相定)이다.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과는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현재 이 나이대의 경주 이씨 사이에서 항렬이 낮은 편에 속한다. 나이상으로는 아들뻘인 이상민이주노(본명 : 이상우) 등과 항렬이 같다.
  3. 본래 어렸을 때 아호는 '일송'이었지만, 서울시장 재직 중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대학 동문이던 역사학자 김정배의 권유로 지었다고 한다.
  4. 취임식 당일 본인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YS나 DJ처럼 나름 자주 쓰이곤 했다. 성까지 포함해서 2MB로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묘한 비하적 의미 때문인지 언론에서는 MB만 쓰인다. 본인의 "Be MBtious"(...) 드립도 유명하다.
  5. 흥해읍 덕성리에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이 있다.
  6. 곡주를 빚고 남은 잔찌꺼기를 뜻한다.
  7. 회고에 의하면 소년시절 또래 아이들 특히 여학우들에게 챙피하여 겨울에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밀짚모자를 썼다고 한다. 이명박,<신화는 없다>
  8. 당시 서울대 입시에서는 제2외국어를 반영을 하고 있었다. 이명박은 동지상고를 야간으로 나왔는데,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없었던 실업계 출신인지라 차선책으로 고려대를 선택했다.
  9. 이때 서울대 재학 중이던 친구가 네 주제에 대학은 무슨, 꿈깨라 라고 비하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는...
  10. 대통령선거 출마 전에 출판하였던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
  11. 이 대금은 2003년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 전쟁으로 붕괴한 후 일부 돌려받았는데, 이 전 대통령이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후세인 정권 하 관료들의 매너 및 일하는 태도를 극찬한 일을 비춰본다면 아이러니한 일.
  12. 드라마 3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기하였다.
  13. 선배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자들의 업적까지 이명박 사장의 작품으로 나온다.
  14. 이미 세상이 아는 명사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언론을 통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단순히 선배들 체면만이 아닌, 이 전 대통령 본인의 인망도 올라간다는 측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다. 다만, 영웅시대에 관해서는 유동근의 연기에 대해 이환경작가와 면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15. 사실 386세대의 대표주자로서 이때만 해도 상당히 끝발 날리던 정치인이었다. 젊은 정치인으로 15대 총선에서 최연소 당선되었고 386세대 대표주자라는 위상을 밀어붙이며 서울시장까지 노렸으나, 뒤에 나온 대로 이명박에 밀려 낙선. 그리고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을 지지하며 당을 옮기면서 철새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후 "가출했던 아들이 집에 돌아온 심정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민주당에 복당, 김민'새'(...)라는 오명을 얻은 채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고, 군소 정당인 민주당(2014년)의 대표로 여전히 정치는 하고 있으나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가 없다. (2010년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5년간 선거권 박탈.)
  16. 김민석은 젊은 나이 때문인지 말이 빠르다는 지적이 있었다.
  17.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투표율이 낮을수록 대개 젊은층의 표가 떨어져나가 보수당에게 유리하게 된다. 거기다 김민석이 우세했던 강북지역은 가장 낮은 투표치를 기록했다.
  18. 이회창이 이명박의 지지율만 흡수할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정동영의 지지율도 제법 흡수했다. 여당도 야당도 탐탁치 않게 여긴 20대의 표심이 반영된 것이다. 사실 이회창 지지율의 대부분은 이인제의 지지율을 전부 흡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 임기 중후반부터는 안경을 쓰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20.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2월 25일자로 종료되기 이전의 사건이긴 하나, 정말 임기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사건과 관련해서는 보름 후에 대통령이 될 이명박이 더 주목받았고, 서울시장 시절 숭례문을 개방했기에 직접적인 연관점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의 사후 처리는 이명박 재임 중 이루어졌다.
  21. 남북관계를 완전히 냉각시킨 시발점으로서 의미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 금강산에는 단 1명의 남한 관광객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22. 아동 포르노의 정의가 실제 아동 청소년에서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되는으로 바뀌었다.
  23. 노태우 12%, 김영삼 6%, 김대중 24%, 노무현 21%, 이명박 24%. 민선 이전의 대통령은 지지율 조사기록이 없다.
  24. 사무소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임대료 월 13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에 퇴임 직전에 공사한 삼성동 자택 유지비용도 그토록 아방궁이라 공세를 벌였던 노무현의 경남 봉하마을에 비해 배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특히 임대료와 자택 수리비용은 모두 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5. 사실 대통령 취임 이전에도 7년간 맡았던 적이 있었다.
  26. 이명박도 김영삼이 "우리는 도덕적 선구자가 아닌 능력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발굴해낸 인물이었다.
  27. 이전 문서에서는 재벌 출신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재벌 기업인은 맞지만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서 틀린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28. 정확히는 현재의 서울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역 8-2번 출구의 건너편.
  29. 2003년 WCG 폐막식에서 우승자 이용범과 이벤트 경기를 벌이는 사진. 종족은 저그로서 경기를 위해 5개월 전부터 연습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뉴비는 뉴비. 시작 5분만에 4드론으로 패배했다(...). 거기다 상대방의 정찰기(오버로드)를 잡는 위엄(...)을 보였다고 한다. 초반부터 히드라를 뽑으셨나... 참고로 상대 이용범은 이후 프로 적응 실패에 당시 팀원들과의 잦은 불화, 게다가 범죄까지 저지르면서 게임계에서 완전히 추방당한 상태다.
  30. 여담으로 저거 보도했던(...) 아나운서가 나중에 이명박 욕했다. 유튜브에서 잘 찾아보면 나온다.
  31. 영웅시대에서 이명박 역으로 열연하였음
  32. [[3]]
  33.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에 비유(물론 부정적인 의미이다.)하는 경우는 비단 북한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런 거]라던가 [이런 거](...)
  34. 예전에 우리민족끼리에서 쥐명박이 때려잡기라는 게임을 만든 적도 있었다. 현재는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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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대통령 임기 막판에는 인기가 시들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려 당 차원에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결국 당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쫓겨나거나 탈당해버리는 관습이 존재한다. 일례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토사구팽 당했고,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전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여생을 보냈다.
  36.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배경으로는 퇴임 지지율이 높았던 점도 한몫했지만, 결정적일 수치는 아니었다.(탈당했던 김대중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역대 대통령이 대선까지 어느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던 점과는 달리 친이-친박을 필두로 척을 치는 이미지가 강해서 박근혜와 크게 엮이지 않은 점이 큰 요소였다.
  37. 그의 주장으로는 이명박의 부친은 (이명박)자서전에 언급한대로 양반 태생이 아니며, 친일 행각을 한 노비이며, 부친의 원래 이름은 떡쇠며 (32세였던, 소화14년에 이충우로 개명함.) 이명박은 그의 일본인 첩 사이에서 낳은 서자라고 했다. 사실이 맞는지 확인바람.
  38. 참고로 이 양반, 김대중을 'This man', 노무현을 'easy man'이라고 부르는 결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39. 유일하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정동영 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가난했던 서민 출신으로서의 식성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40. 사전 협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제대로 먹방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참고로 좌측의 일본 정상은 간 나오토.
  41. 그리고 후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