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소련/러시아 정보기관
방첩 및 첩보
정치경찰
소련러시아
체카(Cheka)
(1917~1922)
통합국가정치국(OGPU)
(1923~1934)
내무인민위원회(NKVD)
(1934~1946)
국가보안위원회(KGB)
(1954~1991)
해외정보국(SVR)
(1991~ )
연방보안국(FSB)
(1995~ )
군사정보총정보국(GRU)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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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 Комитет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КГБ) 꺼미쩻 거수다르스뜨빈노이 비자빠스노스찌 (까게베)

1 개요

국가보안위원회는 1954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했던 소련의 정보기관이었다. 1954년 소련 내무부(МВД) 소속에서 장관회의 소속 독립기관으로 독립했다. 첩보, 방첩, 정보 수집 및 정치경찰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법무기관이나 사법기관의 동의없이 독자적으로 수사,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1991년 8월 쿠데타 실패 이후 중앙정보국(ЦСР)을 거치면서 각 공화국별로 해체되었다.

국가보안위원회는 정보기관이라는 본 업무 이외에도 정치경찰이라는 업무를 수행했던 특성상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1917년 체카로 시작한 소련 비밀경찰은 이후 국가정치부(GPU: 게페우)와 통합국가정치부(OGPU), 내무인민위원회(NKVD: 엔카베데), 국가보안위원회(KGB) 순으로 조직이 변화했다.

2 역사

KGB 창설은 라브렌티 베리야와 관련이 깊다. 1953년 스탈린 사후, 당시 내무인민위원장이었던 라브렌티 베리야는 권력 강화를 꾀하면서 국가안전부(MGB)를 내무부(MVD)로 합쳤고, 그 결과 경찰, 첩보, 수사, 내부감시기관이 함께 있는 부서가 만들어졌다.[1] 물론 베리야의 의도는 정보기관과 내무기관을 자기 휘하로 두어, 차기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이었다.[2]
당연히 베리야가 숙청된 이후 이렇게 권력이 강한 부서를 유지시키기에는 여러모로 지나치게 부담스러웠다. 따라서 1954년 내무부를 기존 방식대로 경찰/행정안전부 부서로 두고 옛 국가안전부의 첩보, 방첩부서를 장관회의에 소속된 별도기관으로 분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보안위원회가 탄생했다.

국가보안위원회 본부는 루뱐카(Lubyanka) 광장에 있는 전 러시아 보험회사 건물, 일명 루뱐카이다. 10월 혁명 후 체카(Cheka)가 쓰기 시작했고 NKVD가 사용하며 대숙청 당시에 악명을 날렸다. 거의 한국 1970, 80년대의 남산 수준의 공포의 대상. 지금은 FSB 본부가 되었다.
루뱐카는 1898년에 신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전 러시아 보험회사'의 본사였다. 1917년 10월 혁명이 발발한 직후, 건물의 소유권은 정부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체카의 본부가 설치되면서 루뱐카는 비밀경찰 본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특히 대숙청 당시 건물 상주 인원들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증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1940년, 알렉세이 빅토로비치 슈셰프라는 건축가가 2배 이상 커진 건물의 증축안을 내 놓았지만 2차 세계대전과 각종 어른들의 사정이 겹치고 겹쳐 절반 수준만 진행되었다. 이후 1983년 추가증축을 거친 끝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루뱐카 건물이 완성되었다. 1983년 증축 전까지의 루뱐카 건물은 옛 러시아 보험회사 건물과 새로 증축한 건물이 함께 있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당시 사진

소련 비밀경찰의 시초였던 체카가 이 자리에 입주했고, 무엇보다도 크렘린과 가까이 위치한다는 이점 때문에 소련의 역대 비밀경찰조직은 모두 이 건물을 본부로 사용하였고 그 악명 높은 체카의 라브렌티 베리야부터 KGB 국장, 유리 안드로포프까지 3층에 위치한 같은 집무실을 사용했다. 그리고 지하엔 감옥이 위치해 있었는데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냉전 시대에는 게슈타포와 같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냉전 당시에는 CIA 등 서구의 여러 내로라하는 첩보조직에 침투, 킴 필비 사건과 같이 내부 조직 내 스파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할 정도였다. 특히 MI6의 경우 이 사건으로 한 때 국장이 첩자로 의심받을 정도였으니, 그만큼 서방 첩보기관은 냉전이 끝날 때까지 조직 내 침투한 KGB 첩자에 대한 공포심이 심했다. 하지만 냉전 시절의 정보기관이 항상 완벽했던 것만은 아니었듯이, KGB의 성격 상 지나치게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 아프가니스탄 전쟁8월 쿠데타 등에 참여하면서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일정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1991년 8월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당시 의장이었던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가 체포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이후 각 공화국 정보기관으로 계승되었다.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국내방첩을 담당하는 FSB와 해외첩보를 담당하는 SVR이 계승하였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의 알리예프처럼 소련 붕괴 후 독립한 공화국들에서 지도자 노릇을 하기도 하고 벨라루스 지부는 여전히 KGB(벨라루스 이름은 KDB)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비록 KGB는 해체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KGB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보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오늘날 푸틴 치하에서 이들은 실로비키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러시아의 주요 정치, 사회, 경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KGB 입장에서 오늘날의 러시아는 진정한 제2의 전성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시에 위치한 KGB 박물관)

3 관련 인물

4 미디어

  1. 우리나라로 치면 경찰, 행정안전부, 국정원, 감사원이 모두 한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셈.
  2.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서(혹은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일지라도), 국가권력이 정보기관정치경찰처럼 만들어 국가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현대 역사에서 매우 자주 있었던 일 중 하나였다. 당장 한국만 봐도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시작해 오늘날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어떤 논란에 휩싸이는 지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3. 단, 이 시기에는 내무부 개편 전의 국가보안부(MGB) 시절로 나온다.
  4. 실화인 킴 필비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