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弼備
해럴드 에이드리언 러셀 "킴" 필비(Harold Adrian Russell "Kim" Philby, 1912년 1월 1일 ~ 1988년 5월 11일)
1 개요
영국의 첩보기관 MI6의 요원, 인데 그 정체는 도널드 매클린(Donald Maclean), 가이 버지스(Guy Burgess), 앤서니 블런트(Anthony Blunt)와 함께 케임브리지 5인조라고 불린 소련의 거물 간첩.[1]
2 생애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저명한 아랍 학자 존 필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공부하던 와중에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였다. 이때 소련 첩보조직은 옥스포드와 함께 영국 엘리트의 산실인 케임브리지에 일단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킴 필비를 포함한 5명을 포섭한다. 이때 소련의 담당 정보원은 이들 다섯 명에게 과격한 정치,사회단체와 일체의 인연을 끊을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영국의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뭔가 책 잡힐게 있어서 출세를 못하면 안된다는 이유였다고. 이때문에 버지스나 블런트는 아예 소련을 방문하고 난 다음에 소련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공산주의와 거리룰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킴 필비의 경우 이미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린 것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공산주의자들과 연을 끊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공산주의 비판을 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영국내 나치 지지자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고 한다.-출처 :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2013)
1933년에는 유럽 국가를 순방하면서 코민테른과 사회주의 지하 조직들 간의 연락원이 되었고 이 때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공산주의자 앨리스 프리드먼과 결혼했다.
귀국하여 자유주의적인 잡지 "리뷰 오브 리뷰스"의 편집장이 되어, 소련에게 가치있는 정보를 출판하였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타임즈의 종군기자로서 프란시스코 프랑코에게 접근하여 소련에 정보를 빼돌렸다. 프랑코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랑코 군대의 전선을 취재하면서 공화파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고 훈장을 수여받은 경력으로 나름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정보기관 MI6에 들어갔으며, 이후 냉전시기에는 공산주의 인맥을 사용하여 소련으로부터 정보를 빼내는 역할을 맡아서 승승장구하며 승진했다. 그러나 실상 가치있는 정보는 오히려 영국 MI6와 미국 CIA로부터 소련으로 줄줄 새어나가고 있었다.[2]
2016년 BBC가 발굴해 보도한 동독 슈타지 요원 특강 동영상(1981)에 따르면, 애시당초 언론인의 길을 걸은 것 자체가 KGB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다고. 처음부터 MI6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언론인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 이 때 그가 털어놓은 이중 간첩질의 비결이 압권인데, 그냥 퇴근할 때 서류가방에 특급 기밀 서류를 넣고 와서 KGB 요원이 사진을 찍은 뒤 아침에 출근할 때 되돌려 놨다고. 가만, 거기 MI6 아니었어? [3]
결국 미국에서 소련의 비밀통신을 감청하고 암호를 해독해 내면서 꼬리가 밟혔으나 1963년 유유히 소련으로 망명. KGB에서 새로 일자리를 얻고 대령까지 진급했다. 말년에는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대외정책상담역으로 활동하면서 회고록까지 출판하는 등 끝까지 MI6를 엿먹이다가 천수를 누리고 1988년 세상을 떠났다. 필비의 장례식은 소련의 당,정,군 최고위 인사가 모두 참여한 국장으로 치뤄졌으며, 소련에서는 그의 얼굴을 찍은 기념우표까지 냈다. 전직 KGB가 미쳐날뛰고 있습니다 아 한번 KGB면 영원히 KGB 였지? 뭐?
필비를 위시한 케임브리지 5인조의 활약으로 MI6는 거의 초토화 되었고, CIA조차 70년대까지 피해를 복구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