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R

1 개요

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 효소 연쇄 반응

분자생물학의 알파이자 오메가
환각이 노벨상이 되어 버린 케이스

1984년 캐리 멀러스가 개발한 DNA 복제 방식으로, 이 방식으로 인해 원하는 유전 정보를 거듭제곱으로 증폭시킬 수 있어서 유전공학분자생물학의 혁명을 가져왔다.

2 배경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에 의해서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진 뒤, 생물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유전자라는 것을 조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즉, 특정한 유전자를 없애거나 외부에서 유전자를 주입하는 방법을 통해서 생물학의 문제들을 접근하게 된 것. 그러기 위해서는 DNA의 염기 서열을 원하는 양만큼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다.

가장 분자적인 접근이라면 DNA 서열을 통째로 유기 합성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건 아주 짧은 서열이라도 어마어마한 노가다가 드는 일이라 합성 기술이 좋아진 21세기에나 가능해진 일이다. 반대로 가장 생물학적인 방법, 즉 단세포들의 복제 장치를 이용해서 염기 서열을 증폭하는 일[1]은 세포라는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무엇보다도 세포가 복제할 수 있는 형태로 DNA를 가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원하는 만큼 DNA를 얻어야 하는, 일종의 닭과 달걀의 문제가 있었다.

한편,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센트럴 도그마의 기본 축인 복제[2]의 생화학적인 원리가 차차 밝혀지게 된다. 즉 DNA 복제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짐을 알게 된 것이다.

1. 이중 나선을 풀어헤침
1. 풀어진 이중 나선에 프라이머(primer)라고 불리는 RNA 서열이 일종의 가이드로 달라붙음
1. DNA 중합 효소가 DNA 주형 가닥과 상보적인 서열들을 합성, 한 가닥의 이중 나선이 두 가닥의 이중 나선으로 복제됨
1. 프라이머 RNA를 DNA로 바꿔치기하고[3] 복제된 DNA들을 하나로 이음

마침내 과학자들은 그러면 세포 말고 복제에 필요한 효소만 뽑아서 DNA랑 프라이머랑 섞어주면 자기가 알아서 복제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멀러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단 복제가 일어난 다음에, 또 복제가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잘 통제해서 반복하면 한 번 반복할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4] DNA 카피 수를 늘릴 수 있겠다! 하고 착안하게 된다.

즉,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효소들 중에서 정말 필요한 DNA 복제 효소만을 남기고, RNA가 아닌 DNA 구조의 프라이머[5]를 만들어 넣어준 뒤, 온도를 높여서 1.번 과정이 저절로 일어나게 하고, 다시 온도를 조금 낮춰서 2. DNA 프라이머가 붙게 한 뒤 3. 중합 효소가 복제를 마치면 4.번 과정이 필요없는 DNA 두 가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6]

3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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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의 세 단계를 나타내는 그림. 각 단계는 변성(Denaturation), 결합(Annealing), 신장(Elongation) 단계라고 한다. 변성 단계에서는 두 가닥의 DNA를 분리하고, 결합 단계에서 프라이머가 이 DNA에 결합한다.[7] 또한 신장 단계에서는 중합 효소(polymerase)가 DNA를 합성한다. 합성 단계에서 걸리는 시간은 자기가 증폭하고자 하는 DNA의 길이에 따라 다른데, 요새 가장 많이 쓰이는 Taq 중합 효소는 1분에 1000개의 뉴클레오타이드를 합성한다. 그리고 케리 멀러스는 이걸 LSD를 빨고 일어난 환각에서 보고 개발해냈고, 이걸로 노벨상을 수상했다(여자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도 있다.).LSD에게 노벨상을!

PCR가 싸지고 효율성이 크게 좋아진 중요한 계기는 극한효소의 발견이 정말 컸다. 고온에 DNA를 때려박아 놓음으로써 여러 효소들이 필요없어진 것은 좋았는데, 정작 복제에 필요한 중합 효소가 고온에 버티지를 못해서 불완전했다. 처음엔 PCR를 할때 대장균의 중합효소를 사용했는데, 위의 변성단계에서 DNA중합효소까지 같이 변성되어 버린 것.[8] 따라서 한번 사이클을 돌릴 때마다 효소가 비활성화돼서 새로 효소를 넣어주어야 했고, 거기다 위의 세 단계가 정확한 온도에서 작동해야 했기 때문에[9] 이 온도를 컨트롤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10]

그런데 Thermus aquaticus[11] 에서 발견된 중합효소 [12]는 고온에서도 안정해서 위의 1~3단계를 여러 번 반복해도 활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번거로움과 비효율을 한번에 깨트리게 되었다. 요즘은 고온에도 잘 버티고 잘못 합성된 서열을 교정할 줄도 아는 pfu 같은 중합 효소들도 개발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반도체로 작동하는 온도 조절 장치등이 등장하면서 PCR는 노벨상을 받은 기술에서 생물학 랩에서 못 하면 갈굼당하는 수준으로 널리 보급화된다. [13] 물론 PCR 기술 자체도 높은 정확도가 필요할 경우 다른 종류의 효소들을 섞어서 사용하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DNA를 만지는 곳에서는 PCR 장치를 다 구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양덕은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PCR 기계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4 각종 응용과 활용

엄밀하게 PCR는 DNA 서열을 증폭하는 것만을 뜻하지만, 샘플이나 용도에 따라 다양한 파생 방식이 있다. 배지에서 키운 세균의 콜로니를 증폭시킬 DNA로 하는 colony PCR, RNA역전사해 cDNA로 만들어서, cDNA를 증폭시켜 실험체 내에서 해당 유전자가 얼마나 발현중인지를 알 수 있는[14] 역전사 PCR(Reverse Transcription PCR, RT-PCR), 원래 DNA나 RNA의 양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real time PCR[15], 잘 모르는 서열을 일단 복제하기 위해 랜덤한 프라이머를 사용하는 multiplex PCR, 복제 방식상 기하급수가 아닌 산술급수식으로 복제하는 linear PCR[16] 등등 수많은 파생 기술들이 존재한다.

물론 활용법도 무궁무진하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예는 과학 수사나 친자 감별 등에서 자주 이용하는 DNA 지문 분석. 이것은 microsatellite라고 불리는 개인차가 큰 유전 정보를 분석해서, 부모의 유전자나 알려진 데이터베이스와 일치하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여담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PCR 기계는 굉장히 비싸다. 쓸 만한 게 천만 원부터 시작한다. PCR는 딱 한두 사이클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쓸 만한 양의 DNA를 얻으려면 30번 이상 반복해야 하며 온도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므로 빠른 가열과 냉각이 기계적으로 가능해야 하고 이걸 통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수적이기 때문. 근데 저 위에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바가진가?[17]

5 트리비아

PCR의 발명으로 노벨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는 사실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 있다고 보기는 힘든 케이스이다. 버클리에서 박사를 받고는 학계를 떠나 작가가 되었다가(...) 그것도 때려치우고 캔자스 시티 의대에서 잠깐 일하다가, 빵집을 운영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들어간 Cetus라는 바이오텍에서 DNA 관련 일을 하게 된다. PCR를 마약 빨고(...)[18] 발명한 것도 여기서의 일. 이 회사를 관둔 다음에는 유명인들의 DNA로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벨상 대박... 다나카 고이치와 더불어 노벨상이 학문적 업적도 중요하지만 '인류에 공헌한' 넘사벽급 기술들에 수상된 흔치 않은 케이스.

98년 자서전에서 HIV 회의론자임을 인증하고 점성술을 신봉하는 등 삽질을 저지른 바람에 학계에서는 거의 흑역사 취급당하는 상태.

2015년 고1 9월 모의고사 국어영역 비문학 파트에 등장했다. 본격 문과 농락
  1. 21세기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도 항상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플라스미드 프렙이라든가...
  2. DNA에서 DNA를 만드는 것.
  3. RNA는 불안정해서, 유전 정보를 안정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유전체에는 적합하지 않다.
  4. 충분한 원료(dNTP)만 있다면 이중 나선 1개가 2개가 되고, 22개가 되고, 계속 2배씩 증가한다!
  5. 일반적인 세포에서는 RNA 프라이머가 떨어지고 앞 가닥부터 연결해주거나 필요 없는 부분부터 복제함으로써 잘라버리게 된다. 그러나 인공적인 환경에서는 잘라내면 끝이므로(...) DNA 프라이머를 이용해 가닥이 짧아지는 것을 방지한다.
  6. 엄청나게 긴 생명체의 유전체와는 달리, 주로 PCR로는 짧은 염기서 열(길어야 수천 개 정도)을 복제하기 때문에, 프라이머는 양쪽에 한 군데씩만 있어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인 완전 복제가 가능하기도 하고.
  7. 그림에서는 온도가 얼마라고 나오지만 반드시 저 온도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프라이머의 길이와 조성에 따라 온도가 다르다. A-T 결합이 수소 결합 2개인데 비해, C-G 결합은 수소 결합을 3개나 가지고 있어 결합을 끊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많이 든다.
  8. 효소의 주 성분은 단백질임을 상기하자. 웬만한 효소는 후라이팬 위의 계란후라이처럼 익어 버려서 더 이상 효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9. 복제하려는 DNA 서열에 따라 결합이나 신장 단계의 최적 온도가 달라진다. 21세기의 실험실에서도 PCR가 안 될 경우 온도를 1도 단위로 바꿔가면서 컨디션을 잡아야 하는데...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0. 극초기의 PCR는 사람이 튜브를 들고 세 개의 다른 온도로 맞춰진 비커를 스톱워치에 맞춰서 퐁당퐁당(...)해가며 실험했다고 한다. 본격 자밀레
  11. 온천에 사는 원핵생물.
  12. 종명을 따서 Taq polymarase라고 한다. 고온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불저항 만렙 열안정성이 아주 높다. 심지어 제대로 작동하는 온도가 55-60도대이다! 일반적인 단백질은 37도가 최적이고 42도가 넘어가면 망가지는 걸 생각하면 흠좀무.
  13. 그렇긴 해도 '연구실 수준'에서 싸진 거지 보통 사람이 보면 아직도 비싸 보일 것이다. PCR에 필요한 게 중합 효소뿐 아니라 프라이머나 완충 용액등이 필요한데 프라이머 가격도 만만치 않다.
  14. mRNA로 cDNA를 합성할 수 있으니까 많이 발현 중이라면 당연히 그 유전자에 대한 mRNA가 많이 있을 것이고, cDNA가 많이 합성된다.
  15. 과거엔 역전사 PCR, real time PCR은 둘 다 줄여서 RT-PCR이라 불렀으나, 요즘은 real time PCR은 q(quantitative) PCR로, 역전사 PCR을 RT-PCR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정식 논문엔 대부분 어떤 것의 약자인지 지정해주니까 별로 상관없다.
  16. 정확하게는 PCR가 아니라 LAD(linear amplification of DNA)이지만 보통 다들 linear PCR라고 부른다.
  17. 일반인 및 아마추어 과학자용 PCR 장비는 당연히 제대로 된 실험실용 장비보다 느리고 부정확하다.
  18.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LSD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