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돌 틴탑의 멤버 최종현은 창조(틴탑) 문서 참조. |
이름 | 최종현 (崔鍾賢) |
출생 | 1929년 11월 21일, 경기도 수원시 |
사망 | 1998년 8월 26일 |
본관 | 수성 최씨 |
가족 | 슬하 2남 1녀(장남: 최태원) |
학력 |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과 석사 |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으로서 전 SK그룹 회장.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의 동생이자 현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이다.
2 생애
1929년 경기도 수원군(현 수원시)에서 태어났다. 1952년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1956년에 위스콘신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3년 후인 1959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귀국하였다.
1962년에 선경직물 이사직을 맡으면서 선경그룹 경영에 참여하였다. 형 최종건이 1973년 폐암으로 별세하자 선경그룹을 지휘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선경그룹[1]이 그리 크지 않았고 유망한 기업이었지만 최종현이 회장이 된 이후 엄청난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물론 최종건이 닦아놓은 기반이 있었지만 창업주가 아님에도 거의 창업주와 같은 대접을 받고 SK 그룹을 최종건의 자식이 아닌 최종현의 아들이 최태원이 물려 받은 이유.
"선경을 국제적 차원의 기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가지 명제를 분명히 제시해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째 명제는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완전계열화를 확립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유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업에의 진출이 불가피한 것이며, 더 나아가 석유정제사업까지도 성취시켜야 하겠습니다. 둘째 명제는 기업 확장과 더불어 경영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입니다. 섬유공업에서 석유정제사업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를 성취해 나가는 데에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자본력과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제적 기업으로서 손색없는 경영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975년 선경그룹 신년사에서
1975년에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선언하여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에까지 이르렀고, 노태우 대통령 재임 중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과 자신의 아들 최태원이 결혼함으로써 노태우와 사돈지간이 되었다. 이는 한국통신의 자회사 인수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직원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평판이 매우 좋았다는데, 한 성깔 할 것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직원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서 그랬다고. 한 번은 SK케미칼 소속 신약 연구원인 김대기 박사가 부작용으로 인해 개발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하는 자리에 다른 임원들과 함께 있었는데, 매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고는 "김박사,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닌가?"라는 뜻밖의 발언을 한다.
주변의 임원들은 술렁거리고 김박사도 당황했는데, 그 다음에 내던진 말이 압권. "부작용을 미리 발견해서 그것까지 해결하면 더 완벽한 신약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앞으로 더 노력하시오." 부전자전이라고, 아들인 최태원 역시 SK 직원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꽤 좋다고 한다. 하지만 사생활이 막장 드라마라서 문제
참고로 위 일화는 1999년 10월 10일 MBC에서 방영된 성공시대에서 다뤄졌는데, 이 때 최종현 회장 역을 맡은 배우가 하필이면 반란군노무 시키로 낙인찍힌 그 분이다. (...)
3 사망
1998년 8월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 유언에 따라 화장(火葬)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이후 SK 그룹의 회장직은 몇년 간 전문경영인 출신인 손길승이 맡다가 아들 최태원에게 승계되었다.
특히 최종현 회장의 화장 유언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컸다. 기존 장례문화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화장이국내 굴지 기업의 회장의 유언으로 본격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화장문화가 어느정도 대중화 보급된 데에는 최종현 회장의 공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오늘날 언론에서도 화장이 보급화된 계기로 최종현 회장의 유언을 꼽곤 한다.- ↑ 당연히 SK라는 사명은 선경의 약자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