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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秉禧
1926년 08월 01일 - 1997년 01월 13일
1926년 경기도 용인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하여 장교로 복무하였다. 그러던 중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였다. 5.16 군사정변 직후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인 김종필이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되자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이 되었다. 서울분실장으로서 당시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였다.[1]
대령으로 예편한 후 1980년까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7대, 8대, 9대, 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는데 지역구는 주로 수원시(소선거구제), 수원시+화성군(중선거구제)이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김형일 후보와,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유용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시절에는 삭발까지 하면서 서울특별시에 있던 경기도청을 수원시로 이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수원시에 삼성전자 공장을 유치하였다. 한편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시절 대한농구협회장,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도 역임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 중 일부를 강제로 헌납당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으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모종의 사유로 출마를 포기하게 되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당선되었으나 이듬해인 1997년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만석공원에 그의 동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