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XXI 유보트

독일의 잠수함 계보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주력 잠수함 계보
Type I 유보트>>Type II 유보트>>Type VII 유보트>>
훈련함→전투함훈련함/전투함전투함
Type IX 유보트>>Type X 유보트>>Type XIV 유보트>>
전투함기뢰부설/수송함보급함
Type XVII 유보트>>Type XXI 유보트>>Type XXIII 유보트
전투함전투함전투함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잠수함 중 실험함/소수 건조함/페이퍼 플랜
전후 독일의 잠수함 계보
Type 201 잠수함>>Type 205 잠수함>>Type 206 잠수함>>
전투함(조기퇴역)전투함전투함
Type 209 잠수함>>Type 212 잠수함>>Type 214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전투함수출용 전투함
Type 216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건조계획

전후 미국 해군에 취역하여 항해중인 U-3008.
제원
수상 배수량1,621톤
수중 배수량1,819톤
전장76.7m
전폭8m
흘수6.32m
추진 방식디젤-전기 추진
추진 체계MAN M6V40/46KBB 과급 6기통 디젤엔진 2기(4,000마력)
SSW GU365/30 복동식 전동모터 2기(5,000마력)
SSW GV232/28 침묵주행용 전동모터 2기(226마력)
속력수상 15.6노트(28.9km/h)
수중 17.2노트(31.9km/h)
침묵주행시 6.1노트(11.3km/h)
항속 거리수상 10노트(19km/h)로 15,500해리(28,700km)
수중 5노트(9.3km/h)로 340해리(630km)
최대 잠항 심도240 m
무장함수 어뢰발사관 6문(어뢰 23기 or 어뢰 17기 기뢰 12기)
20mm 대공포 4문

1 개요

21형 유보트는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이 건조한 잠수함으로, 처음으로 수중 항행을 주로 하도록 설계된 잠수함이었다. 7형 유보트에도 장비되었던 스노클을 도입하고 배터리 용량을 늘려 작전반경을 늘렸으며 전기 모터의 출력을 올리고 수중고속항행을 위한 디자인을 채용하여 수중속도를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21형 유보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투용 유보트의 최종 발전형이다. 2차 대전 때의 독일 무기답게 훗날 현대적인 잠수함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 이 유보트는 현대형 잠수함의 시초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1] 수중속도가 수상속도보다 빠른 잠수함이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잠수함은 실제로는 일정시간 잠수할 수 있는 형태로 수상주행을 하다가 전투나 회피/긴급시에만 잠수할 수 있는 가잠함으로 보는게 맞다. 하지만 대전이 진행되면서 레이더가 발달하여 수상항행중인 잠수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고 항공전력이 잠수함에 가장 큰 적으로 떠오르면서 더이상 자체무장으로 상대를 쫓을수 없는 잠수함으로서는 새로운 항행방식을 고려해야 했는데 이것을 고려해서 만든것은 수중 항행이 주가 된 21형이었던 것이다.

원래 21형은 과산화수소를 이용한 발터 엔진을 채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이쪽은 17형(소형), 18형(21형과 같은 대형)) 과산화수소를 이용해 연소에 필요한 산소를 연료 자체에 함유된 형태로 공급함으로써 물 속에서 장시간 고속항행이 가능한, 말하자면 현대의 AIP 기관의 원형. 그러나 전쟁 말기의 물자부족과 각종 제약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선체의 형태만 수중고속항행용의 유선형 디자인을 유지하여 개발된 것이 21형.

21형은 현대식 잠수함의 기본을 마련했으며, 현대의 재래식 잠수함AIP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성능에 큰 발전이 없었었다. 그런데 21형의 발상은 단순히 기존 잠수함에 배터리를 많이 넣고 수중항행을 수상항행보다 더 중요시하는 쪽으로 컨셉을 전환한다는 개념이었으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수준의 기술로도 가능한 것이었다고 한다. 외계인 고문에 의한 최신 기술의 활용보다는 오히려 기존 기술의 극대화에 치중한 것으로, 요약하자면 발상의 승리.

2 특징

21형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바로 유체역학을 고려해 유선형으로 설계된 함체와 사령탑이었다. 거기에 7C형 유보트의 3배에 달하는 축전지를 탑재했다. 덕분에 수중항행능력이 엄청나게 증대되었고, 이로 인해 부상상태로 있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5노트로 축전지 재충전 없이 2~3일을 수중항행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노클을 이용한 축전지 충전에는 5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21형은 또한 7C형보다 훨씬 조용해져서 잠항 상태에서 발견해 내기란 어려웠다.

21형의 유선형 함체는 수중 항행 속도를 높여주었다. 늘어난 잠항 시간과 잠항중에 한해 수상함들을 따돌릴 수 있는 이 능력은 연합군의 대잠세력의 추적 및 파괴 작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가속력도 뛰어나서 공격 위치 이동에도 이득을 보았다. 이전 유보트들은 공격 위치를 잡으려면 부상해서 가속해야 했는데, 이때문에 특히나 항공기에 자주 들켜 격침당하곤 했다. 21형은 뛰어난 수중 기동성으로 이러한 문제를 없애버린 것.

무장능력도 기존 유보트들과 달리 유압식 어뢰장전체계를 탑재해서 7C형 유보트가 어뢰발사관 1개 장전하는 속도보다 21형이 어뢰발사관 6문 전체를 장전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고(...). 21형은 20분 안에 18개의 어뢰를 발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탐지체계로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성능을 가진 수동소나를 함수 좌우현에 하나씩 장착했다.

거주환경도 개선되었다. 음식 저장을 위한 냉장고라던지. 이전 유보트들이 침상 위든, 어뢰 위든(?!), 파이프 사이사이에 음식을 끼워넣었던것을 생각하면...

결론 : 가격은 안드로메다로
가격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9형 유보트가 척당 320만 달러 가량인데 21형은 척당 287만 5천달러로 가격이 압도적으로 비싼 것은 아니었다.

3 건조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함부르크의 블롬&보스 조선사, 브레멘의 AG 베세르 조선소와 단치히의 F. 쉬샤우조선소에서 총 118척을 조립했다. 함체는 8개의 조립식 블럭으로 나뉘어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되었다. 덕분에 건조 속도가 줄어 6개월에 1척씩 뽑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 조립된 21형 유보트들은 많은 수가 여러 결함을 겪었고 결국 다시 건조해야 했다. 이유인 즉슨 이 조립 블럭들이 조선 경험이 부족한 조선사에서 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작 118척이 건조되긴 했는데, 종전 전까지 전투에 투입할 만한 건 4척뿐이었다고(...)

21형 잠수함의 최종 조립은 원래 브레멘 인근의 파게(Farge)의 작은 항구에 건설된, 폭탄을 견뎌낼 수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벙커인 발렌틴(Valentin) 잠수함 기지에서 수행되기로 계획 되었었다. 이 기지는 약 10,000명의 포로 수용소와 전쟁 포로의 인력을 동원하여 1943년부터 1945년사이에 건설 되었다. 1945년 3월에 이 시설은 90%의 공정률을 기록했으나, 연합군의 그랜드 슬램(Grand Slam) "지진" 폭탄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버려졌다. 몇주 뒤, 이 지역은 영국군이 점령했다.

4 탐지체계

FuMB Ant 3 발리 레이더 탐지기가 스노클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또한 탑재 레이더는 FuMO 65 Hohentwiel U1 레이더와 Type F432 D2 레이더 송신기가 장비 되었다.

5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운용

5.1 독일

U-2511과 U-3008은 전투 초계가 가능했던 유이한 21형이었고 둘 다 아무 배도 격침시키지 못했다. U-2511은 5월 4일에 영국군 순양함을 포착했지만 독일의 종전 소식을 받았다. U-2511은 모의 공격을 하고서 포착당하지 않은 채로 현장을 떠났다. 영국군 순양함 입장에선 종전 안했으면...
1957년, 2차대전이 끝나면서 자침 되었던 U-2540이 인양 되었고 연방해군(Bundesmarine)의 연구선 빌헬름 바우어(Wilhelm Bauer)로 개장 되었다. 빌헬름 바우어는 1982년까지 군과 민간에서 연구선으로 사용 되었다. 1984년에 빌헬름 바우어는 브레머하펜에 위치한 독일 해양박물관(Deutsches Schiffahrtsmuseum)에 전시 되어 대중에 공개 되었다.

5.2 프랑스

U-2518은 프랑스 잠수함 롤랑 모리요(Roland Morillot)가 되었다. 롤랑 모리요는 1956년의 수에즈 사태때 현역이었고, 1967년까지 현역에 있었다. 롤랑 모리요는 1969년에 해체 되었다.

5.3 소련

이 21형을 아주 제대로 뽑아먹었다(...)

포츠담 회담 결과 4척의 21형 유보트가 소련으로 넘겨지게 되었다. 이들은 U-3515, U-2529, U-3035, U-3041로서, 소련 해군에서 B-27, B-28, B-29, B-30[2]으로 각각 취역했다. 하지만 서방 정보부에서는 소련이 이보다 더 많은 21형 유보트를 확보했다고 추정했다. 미 합동참모본부의 합동정보위원회가 1948년 1월에 예상한 바에 따르면, 2달동안 6척을 더 건조해서 작전 가능한 21형 유보트를 15척 보유하고 있다고 예상했고,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시기에 단치히에 위치한 21형의 부품 생산 공장과 21형이 조립되던 조선소를 확보해서 1년 내로 39척과 절반의 조립구역을 건조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U-3538 ~ U-3557(이후에 TS-5 ~ TS-19, TS-32 ~ TS-38이 됨)은 미완성인채로 단치히에 남아있었고 1947년에 해체되거나 침몰 되었다. 4척은 포츠담에 배치되어서 1955년까지 실험에 사용되었고, 1958년부터 1973년까지 자침 또는 무기 실험으로 사용 되었다. 21형은 핵심은 21형의 복사판인 프로젝트 614 잠수함의 기반이 되었고, 21형의 많은 특징은 프로젝트 613 잠수함에도 반영 되었다.

5.4 영국

U-3017은 영국 해군에 HMS N41로 취역했다. HMS N41은 1949년 11월에 해체될 때까지 실험에 사용 되었다.

5.5 미국

소련이 실물을 뽑아먹을때 미국은 기술을 뽑아먹었다(...)

미국 해군은 U-2513과 U-3008을 얻었고 대서양에서 작전에 사용 했다. 1946년 11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U-2513을 방문했을때, 잠수함은 대통령을 태우고 130m 깊이까지 잠항했다. U-2513은 1951년에 표적함으로 사용되어 침몰 했다. U-3008은 1956년에 해체 되었다. 이쯤이면 소련에 비해 별로 덜 써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밑의 '영향' 목차를 보면...

6 생존함

유일하게 온전히 생존한 21형은 빌헬름 바우어(전 U-2540)뿐이다. 다른 21형 잠수함의 잔해들 역시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985년, U-2505, U-3004, U-3506의 부분적으로 해체되고 남은 잔해가 함부르크에 위치한 폭파된 "엘베 2(Elbe II)" 잠수함 벙커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이 벙커는 자갈로 채워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도굴꾼들은 해치를 열고 유물들을 꺼내가려고 파내려갔다. 이 잠수함들의 잔해들은 현재는 주차장 아래에 있으며 접근이 불가능하다. U-2513은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Key West) 서쪽 70해리(130km) 지점의 수중 65m에 놓여져있다. 이 잠수함을 잠수부들이 방문 했었지만, 깊이 때문에 숙달된 잠수부가 아니면 찾아 가기 힘들다고 한다. 다른 4척은 1946년의 현창 작전의 일부로 북아일랜드 일대에서 가라앉았다. 2001년과 2003년에 해양 고고학자 이네스 매카트니(Innes McCartney)가 데드라이트 작전을 탐사했을때 U-2511과 U-2506가 발견 되었다. 두 배 모두 의외로 상태는 괜찮았다고.

7 영향

21형의 설계는 미국의 GUPPY(Greater Underwater Propulsion Power Program)의 결과 개발된 가토급, 발라오급, 텐치급 잠수함들, 그리고 나토에서 명명한 소련의 프로젝트 613 위스키급줄루급의 잠수함 프로젝트들과 같이 전후의 진보한 잠수함 설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8 관련 항목

  1. 이것의 불법복제개량버전이 소련위스키급. 추가개량버전은 로미오급.
  2. 이후에 B-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