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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피그말리온
작곡 : 알란 제이 러너, 프레드릭 로우
감독 : 조지 쿠커
주연 : 오드리 헵번, 렉스 해리슨
1 개요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알란 제이 러너와 프레드릭 로우가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1964년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2 줄거리
음성학자인 헨리 히긴스 교수(Professor Henry Higgins: 렉스 해리슨 분)가 그의 절친한 친구인 피커링 대령(Colonel Hugh Pickering: 윌프리드 하이드-화이트 분)과 묘한 내기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즉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하층 계급의 여인을 한 명 데려와 정해진 기간 안에 그녀를 교육시켜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 내기의 실험 대상으로 선택된 여인이 바로 빈민가 출신으로 꽃을 파는 부랑녀 일라이자 둘리틀(Eliza Doolittle: 오드리 헵번 분)이다. 한편 일라이자는 발음을 고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히긴스의 말에 혹해서 히긴스 교수를 찾아간다. 그리고 끊임없는 개인 교습을 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마치 귀부인처럼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일라이자는 더 이상 과거의 하층 계급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상류층에 속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히긴스는 발음만 바꾸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즉 호박에 줄 그어봐야 수박 되는 거 아니라는 뜻.
영화에서는 히긴스와 일라이자가 사랑에 빠지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원작 피그말리온에서는 일라이자가 히긴스에게 자기를 말만 번듯하게 하는 괴물로 만들어놓았다고 그러자 히긴스가 어떻게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냐며 다투고 파국적인 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원작 희극을 극장에 올릴 때부터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자는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질린 버나드 쇼는 대본 뒤에 긴 산문으로 된 후일담을 덧붙여서 히긴스와 일라이자가 이어질 수 없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기까지 했다.
3 트리비아
브로드웨이판 마이 페어 레이디는 56년 초연 이후 7년동안 2717회나 공연될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컨텐츠는 영화화되는건 당연, 이때문에 판권 경쟁이 치열했는데 최종 승자는 워너 브라더스였다. 1962년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화 판권료로 500만불을 지급하였는데 이 금액은 현재 가치로 4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초연 주역을 맡은 것은 렉스 해리슨과 줄리 앤드루스로 영화화 버전에도 두 사람이 캐스팅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었으나 하지만 렉스 해리슨만 캐스팅되고 줄리 앤드류스만 캐스팅에서 배제되었다. 줄리 앤드류스가 브로드웨이에선 스타였지만 할리우드에선 인지도가 낮았던 탓으로 2천만 달러 가까이 투입되는 대작에 인지도가 낮은 줄리 앤드류스를 캐스팅하는데는 부담이 있었다. 원작자는 반발했지만 이미 어른의 사정으로 버스는 떠났으니 어찌하리오.
줄리 앤드류스 대신 워너 사가 선택한 일라이자는 당대 최고의 스타인 오드리 헵번으로 오드리 헵번은 이 영화 출연으로 영화 역사상 2번째로 100만 달러를 받는 여배우가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비비안 리 공식처럼,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일라이자=줄리 앤드류스 일 정도로 줄리 앤드류스의 뮤지컬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러니한건 정작 줄리 앤드류스 본인은 처음부터 영화화 버전에 자신이 캐스팅될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일종의 되면 좋고 말아도 상관없는 심리라고 할까. 애초에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은 무리수였다. 오드리 헵번은 뮤지컬 경력이 있긴 했지만 그녀가 맡은 뮤지컬 배역들은 고도의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는 소위 쉬운 배역이었다. 하지만 일라이자 역의 경우 고도의 가창력이 요구되는데다 뮤지컬 넘버에서 일라이자의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가창력이 딸리는 오드리 헵번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배역이었다. 오드리 헵번은 본인이 일라이자의 뮤지컬 넘버를 모두 부르길 원했고 혼신의 노력을 했으나 가창력이 굉장히 딸렸기 때문에 영화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워너 사는 오드리 헵번 몰래 노래를 더빙할 뮤지컬 가수를 섭외하는데 그게 마니 닉슨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워너 사는 오드리 헵번이 일라이자의 뮤지컬 넘버를 소화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더빙할 계획이었고 그게 그 시절엔 당연한 관례였다.
더빙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데보라 커. 왕과 나의 캐스팅도 마이 페어 레이디의 캐스팅과 비슷한 면이 많다. 데보라 카는 오스카에 무려 6번이나 노미네이트되고도 수상못한 비운의 여배우로도 유명하다.
역시 더빙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여배우 나탈리 우드. 미스테리한 죽음으로도 유명하다.
'왕과 나'의 데보라 카가 그랬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나탈리 우드의 노래도 전부 더빙되었을 정도로 그당시 가창력 안되는 배우들의 더빙은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었다. 오히려 본인이 다 소화하고 싶다고 한 오드리 헵번이 특이한 존재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워너 사에게 필요했던건 흥행을 담보해줄 수 있는 오드리 헵번의 인기였다.
어쨌든 이 더빙은 오드리 헵번 몰래 진행되었으나 영화 촬영이 어느정도 진행됐을 무렵 오드리 헵번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아 촬영장을 뛰쳐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다음날 촬영장에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하고 수습했지만 말이다. 오드리 헵번이 크게 반발했으나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자포자기 상태에서 영화사의 결정대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영화가 반쯤 진행됐을 무렵, 할리우드에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오드리 헵번의 노래는 모두 더빙이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갈수록 커지자 언론에서 워너 사에 사실 확인 요청을 했고 워너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문을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기 이르렀다 오드리 헵번 워너사 개깪끼해봐 이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워너사에선 오드리 헵번이 노래한 부분은 반정도는 된다고 해명했으나 이런 해명은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워너사를 죽입시다
더빙 논란과 각종 구설수로 인해 마이 페어 레이디 캐스팅에서 배제된 줄리 앤드류스에게 엄청난 동정 여론이 생겨났고 마이 페어 레이디는 줄리 앤드류스의 모국인 영국에선 흥행에 실패했다. 저기 오드리 헵번도 영국 사람인뎁쇼 이렇게 수많은 논란 속에 완성된 마이 페어 레이디는 당시 할리우드 장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고 자그마치 7천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비평가들의 찬사도 잇따랐고 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노미네이트되어 10개 부문을 휩쓰는 대성공이었다.
"아 ㅅㅂ 좃됐네" "다음 영화는 우리랑?" "버스 떠났어 새꺄"
아이러니하게도 인지도로 인해 마이 페어 레이디의 캐스팅에서 배제된 줄리 앤드류스는 메리 포핀스에 캐스팅되었고 메리 포핀스가 마이 페어 레이디의 흥행을 앞지르고 최종 흥행은 1억불, 본인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서 자신을 캐스팅에서 탈락시킨 워너 사에 복수를 했다.
오드리 헵번 개인에겐 커리어의 정점을 장식하는 영화면서 상처만 남긴 영화가 되었다.
본인이 전혀 의도한게 아님에도 당시 오드리 헵번이 인지도로 줄리 앤드류스의 배역을 뺏었다는 여론에 시달려야 했고 당시 할리우드에서 더빙은 비일비재했고 앞서 말한 데보라 카와 나탈리 우드는 찬사를 받으며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누렸음에도 본인의 연기는 저평가되고 오스카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무려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알짜 부분 (작품, 감독, 각색, 연기 등등) 상은 다 휩쓸어간 대작의 타이틀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부분은 2015년 9월 2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게다가 상대역인 렉스 해리슨의 남우주연상 시상을 본인이 했으니 속이 오죽하랴. 나중에 시간이 흘러 오드리 헵번의 연기가 재평가되고 최소한 오스카 노미네이트 정도는 받았어야했다는 인식들이 강해졌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때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한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보면 억지로 미소 짓고 있는듯한 모습이 자주 포착돼서 오드리 헵번팬들의 슬픔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더 안습스러운건 마이 페어 레이디 논란 이후 오드리 헵번의 작품 선택은 더더욱 신중해졌고 여기에 가정 불화와 재혼, 출산 등으로 이어져 사실상 은퇴했단 점에서 지못미.
그래도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영화고 영화 자체로도 걸작이라 여러모로 소장 가치가 있는 영화다.
당대에 영국 흥행에는 실패했다...라고는 하지만 어지간히 인지도는 있는 영화라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에그시(테런 애저튼)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에그시의 발음이 런던 뒷골목 양아치의 말투고 콜린 퍼스의 발음은 정통 신사의 그것이라 꽤 상징적인 부분.
'공자다정(公子多情, The Greatest Lover)'이라는, 일명 성반전 버전의 마이 페어 레이디라 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도 있다. 곽요량 감독의 1988년작 홍콩 영화로, 주윤발과 매염방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홍콩으로 몰래 밀입국해 들어온 촌스럽고 경박스러운(...) 대륙 청년 전진(주윤발 분)이 사교계의 여왕인 아니타(매염방 분)를 만나 일류 플레이보이로 교육받으면서 점차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